신16:12-17, 받은 은혜를 감사로 드리는 예물은 축복을 가져 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로 축제의 날입니다. 또한 둘째 주일은 등대 교회생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기쁘고 즐거운 예수 축제의 날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전통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셈입니다. 청교도들의 신앙 전통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감사축제를 성경적으로 돌린다면 추석이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하고 또 초막절이 되어야 합니다. 오ㅐ냐하면 한해의 첫 수확을 가장 좋은 것으로 조상님께 바치고 즐기는 축제가 추석이니 그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조상님께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씀 앞에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하고 명령하셨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절기를 적용하려면 어디에다 맞추어야 할까요?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이 예수님의 생명이고 생수이고 큰 복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입니다.
'너는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되었던' '하이타'는 '~ 이다, 2인칭 완료형이기 때문에 과거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던 상태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되었던'이 아니고 '이었던'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 볼수 있습니다. 다시 보면 애굽에서 종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종이었던 때가 있어야 이 규례를 지키는 맞습니다. 종된 일이 없었는데 그날을 기억하고 지킨다는 것은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우리는 종살이를 했습니다.
우리는 죄에게 종살이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도 그 종살이를 잊지 못해서 애굽에 있을 때는 고기 가마옆에서 고기 뜯던 것을 기억한다면서 혹은 부추먹던 것을 기억한다면서 돌아가고 싶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체적으로 종살이를 한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죄에게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 종이었던 우리를 개인적으로는 나를 그 죄에서 구원하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죄에서 구원을 받았음에도 자꾸만 과거로의 회귀를 합니다. 그래서 고기가마옆에서 고기 뜯던 것을 생각하고 고기 뜯으러 갑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술이 있습니다. 담배도 있고 도박도 있고 지금도 첩을 두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그 외에도 예수를 믿는데 방해 되는 것, 버려야할 습관들이 그러한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우리, 나를 생명의 자리로 옮겨 주셨다는 것을 분명히 '야다'의 앎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지키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의지로 행함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개입하심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기 그렇습니다.
요즘 불효 하는 자녀들을 참 많이도 뉴스에서 접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면 그런 자식이 있겠습니까? 부모의 권위를 짓밟고 자식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전에는 죄에 종이었는데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값없이 구원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롬3: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합시다.
이 규례를 지켜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규례''하혹킴'은 정관사'하'와 '호크'가 만나서 된 단어로 '호크'는 '조각하다''기입하다''새기다'의 '하카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첫째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속력이 영원하다는 법령의 의미입니다. 창1:1절에서 '바라'가 '창조하다' '새기다'라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같은 이치로 볼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입장에서는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을 마음에 새기고 혹은 간직하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예수님의 비유중에 씨 뿌리는 밭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길가 밭은 듣는 즉시 잊어버린 사람이겠고 돌작 밭은 어느 정도 기억하다가 잊어 버리는 사람이겠고 가시 밭은 기억은 했지만은 세상의 일로 실천하지 못하는 성도이고 좋은 땅은 늘 마음에 새기고 말씀에 분부하신대로 지키는 성도라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2:6) 또한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그렇다면 자신을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죄에서 구원해 주심을 늘 기억하고 그일이 깨달아지고 그래서 감사하고 있는가? 그 물음에 예가 된다면 멋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열매입니다.
13-15절은 소출을 모두 저장한 후에 7일 동안 지키는 축제입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면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십니다. 우리 번역은 빠져 있는데 남성단수 2인칭입니다. 다시 번역을 하면 '그가 너를 축복하실 것이다'입니다. 하는 일에 복을 주시는 것 뿐만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인격적인 관계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복 만달라고 비는 종교는 많습니다. 정항수 떠다 놓고 장독대에서 비는 일도 복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너와 나와의 관계를 중요시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13절로 돌아가서 단어를 보면 '너희 타작 마당'은 '믹고르네카'는 우리의 개념으로 본다면 벼짚에서 낱알을 분리시키는 것으로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왕겨에서 낱알을 분리 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른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심판이 생각이 들어요, 알곡이 되어야 천국 곡간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우리 주님이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키시면 천국 잔치가 벌어 질 것입니다. 그날을 고대하며 우리는 긴 순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바로 '초막절'에서 '절'이란 단어가 '긴 여행을 하다''순례의 길을 가다''춤을 추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애굽에서 건져 주셨는지를 기억하고 또 어떻게 풍성한 열매를 먹게 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감사하므로 절기를 지키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은 우리를 위한 길이며 또한 하나님과의 신앙을 갱신하는 절기라고 하십니다.
14절에서 축제는 다 함께 지키라 하십니다.
먼저는 자신이 들어가고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 객, 과부등 함께 즐거워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베풀어 주신 은총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온것,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에 들어가서 얻는 추수가 다 하나님의 은총이고 하나님의 백성에겐 동일하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 할것이 있습니다. 많이 추수를 해서 즐거워 하라는 것이 아닌 거기까지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즐거워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도 바울이 빌4:4절에서 주신 말씀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했습니다. 그런데 '항상'이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항상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게 되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라는 범위를 확실하게 하면 평안이 찾아 오는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그래서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을 기억한다면 기뻐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서 찬미를 부르며 기뻐하라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15절에서 축복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얻은 모든 소득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기 다반사 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한 것이지 무슨 하나님이 주신 복이야, 그래서 하나님께 드림이 인색합니다. 그런데 고전3: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자라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제가 옥상에 배추를 20포기나 심었습니다. 8월 중순에 심었는데 배추가 자라질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는데도 비료를 사다 주라고 해서 두번이나 주었습니다. 김장철에 되어 다른 배추는 속이 꽉 찼는데 봄통 배추같습니다. 어제 김장을 했습니다. 어찌나 배추가 질기던지, 기간이 절대로 짧은 것도 아닌데,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내가 배추를 자라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나의 가진 소유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고백할 때 진심으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신8:18) 그래서 하나님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죠. 또한 자기만을 위한 쓰는 것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로서 부자가 자신만을 위하여 쓸려고 할때 모두를 거두워 가시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눅12:16-21)
하나님은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을 받고 또한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15절에서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것을 인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복을 받고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도요한은 '네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했습니다.(요삼1:2) 이런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데 그런데 거기에 따라오는 조건이 있습니다. 신5:29절에 보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한다"하셨습니다. 복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시면 됩니다. 시편기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나이다"(시5:12)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반드시 예물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16절에서 여호와께 공수로 보이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절기를 지키러 올라 올때에 빈손으로 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드리는데 힘대로 드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뵈오려고 나아갈 때는 반드시 감사의 예물이 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억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해서 드리는 것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주일 예물을 봉헌 하는 것입니다. 많던지 적던지 정성껏 드리시면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마6:21)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가를 가름하는 말씀이라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섬긴다면 힘대로 드릴 것입니다. 대상16:29절에는 다윗이 감사하여 전하는 말씀으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아올 때에는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들고 오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할레루야!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기 위하여 일년에 세번 감사의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 이상으로 구원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단의 세계에서 이끌어 내어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 이 일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입술로 감사하시고 손으로 감사하시고 발로 감사하시는 전인격으로 감사를 올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하늘산소.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