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읽다가 연안차씨 홈페이지를 언급하기에 잠시 가 보았다.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 차문 홈페이지에 반응하는 글을 썼는데, 이번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그곳의 Q&A 게시판을 보니 241~245번 게시물에서 ‘chky100’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이 류차문제에 대해 글을 남겼다. 금년 11월 26일부터 12월 12일 사이에 작성된 것이다. 이 분은 그 전에 Daum 카페 “문화류씨 - 뿌리 깊은 버드나무”(http://cafe.daum.net/moonwharyu)의 “류-차 문제” 게시판에 ‘연안’이라는 닉네임으로 11월 20일부터 11월 25일까지 관련 글과 답글을 썼다.
chky100의 주장은 옮길 가치가 없다. 이미 2008년에 문중 전체에서 결론이 난 것을 가지고 자기가 최근에 사안을 알았다고 마치 새로운 사건인양 호들갑을 떨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늦게나마 자초지종을 파악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예전 자료들을 ‘나이 들고 눈이 침침해서’ 읽을 수 없다고 말하는 분이다. 대체 이런 수백 년의 일이 급속도로 몇 년 이내에 부정된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의 집안이, 다른 일도 아니고 바로 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인 시조를 모독하여 문화류씨 집안을 극도로 모욕한 일에서 시작한 것임을 이제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를 일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억지 주장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떤 근거를 대면 ‘과거의 일을 어찌 알 수 있는가?’라며 역사 해석의 문제 뒤로 숨으려 한다. 왜 과거의 일을 알 수 없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이름과 생일부터 다 교육과 자료를 통해서 알고 믿고 있다.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나, 몇 달, 몇 년 전의 가까운 사건들조차 방송과 자료를 통해 알고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수십 년, 수백 년 전의 일이라도 믿을 만한 자료, 일차적인 자료에 먼저 비중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구나 어떤 일이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싶을 때는 그 조작 근거로 제시되는 자료들과 주장들을 엄밀하게 따져보고 하나하나 논리에 맞추어 반박해야 한다. 그 중 하나라도 반박할 수 없다면 그것이 거대한 둑을 무너뜨리는 작은 물구멍이 됨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데도 제시되는 근거와 자료들을 ‘내가 눈이 어둡고 늙어서’ 혹은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과 너희들이 쓴 것이라서 악의에 차 있을 것이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논의에 전혀 합당하지 않은 수준의 반응일 따름이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을 지적하며 본질을 흐리는 일도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결코 ‘승상’이라는 용어 하나 때문에 가공인물인 차건신(차건갑)이나 차승색 등등을 가공인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치 그것 하나만 가지고 차건신이나 차승색 등등을 부인하는 것인 양 호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다른 예로, 차천로가 “차원부설원기”의 위작자로 추정되는 것을 보고 ‘훌륭하신 조상님인데 모욕한다’는 식으로 흥분하며 그렇기 때문에 설원기가 위작이 아니라고 반응하는 것은 이런 논의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낸다. 차천로가 훌륭한 문필가이며 임진왜란의 수습 등에서 공을 세운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신분을 높이려는 욕구로 ‘강상을 어지럽히는 행동’을 해서 무려 수 십 년에 걸쳐 선조임금의 극렬한 비난을 받은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엄연히 적혀 있음도 사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차천로가 위작자로 가장 확실하게 추정되는 것도, 그것은 아무리 확신해도 직접적인 증거는 없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차원부설원기”가 그 책 자체에서 위작임을 스스로 노출하고 있고, 역사적 비평을 통해 그 주인공인 차원부라는 인물의 역사적인 행적이 모두 조작되어 있음이 판명된다는 사실에 있다. 설원기 중의 핵심인 “기(記)”의 저자가 박팽년이 아님이 증명되고, 그 저작시기의 조작에서 사육신변고를 기화(奇貨)로 삼으려 했음이 자명하게 드러나며, 계보의 조작 같은 것이 명백하게 이루어졌음을 그 책 자체의 검토에서 알 수 있다. 이런 것 중 하나라도 반박하지 못한다면 그것만으로 설원기의 신빙성에 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지적들에는 전혀 답하지 못하면서 ‘근거 없이 비난한다’고만 한다. 과연 그 ‘근거 없이 비난한다’는 말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논리는 전혀 복잡하지 않다. 역사적 사료의 관점에서 “차원부설원기”를 비평하면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그것이 위서(僞書)임에 동의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논문으로 확언한 역사학자에 몇 사람이 있다. 그 학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고 주장하며 평가절하를 하고 싶기도 하겠지만, 예를 들어 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 혼자 주장한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는 그런 주장이 혼자가 아닌 여러 학자에게서 나왔다. 반대로 그런 논문들을 반박하여 “차원부설원기”가 믿을 수 있는 문헌이라고 논증하여 밝히는 역사학자를 한 사람이라도 제시하고 그런 논문을 하나라도 제시하기를 바란다. 그러지 못하면서 평가절하를 하는 것은 자신의 논리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일 따름이다. 더구나 설원기가 위서임은 문화류씨 문중 전체가 몇 년간 매달려서 검토에 검토를 거듭해서 판명한 사실이다. 왜 이 중요한 사실은 애써 무시하는지 알 수 없다.
한편, chky100의 글에 “일성록”의 기사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정조 때 민원이 폭주해서 민원을 대충 넘긴 것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런 완전 추측성의 말을 보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상언’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라도 제대로 검토해 본 적이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과연 정조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판단하려 “일성록”의 다른 기사들을 하나라도 조사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아무튼, 누가 뭐라 해도 “일성록”의 기사는 이것 하나는 증명한다. 곧 “차원부의 교지”가 위조라는 것. 그 차원부 교지에 적힌 날짜를 확인해 보았는가. 설원기는 스스로 ‘경태7년(1456년) 5월 17일’에 기(記)가, 그리고 ‘경태7년 5월 21일’에 서(序)가 쓰였다고 조작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설원기 자체에서도 차원부는 시호를 받지 않았음이 판명되는데 바로 그 교지에 버젓이 같은 시기인 ‘경태7년 5월 일’(날짜 명기 없음)에 나라에서 시호를 내렸다고 명기되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날짜를 그렇게 조작한 것도 가소로운 일인데, “일성록”은 더욱이 명시적으로 세 차례나 차원부에게 시호를 내려달라는 요청을 근거를 대면서 거절하고 있다. 또 하나 드러나는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상언을 올린 이들(차씨들과 류차동원을 믿고 있던 류씨들)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차원부에게 시호가 내려진 적이 없음을.
교지와 시호의 위조는 설원기 위조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주목된다. 정황적인 추정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지만 추정을 해보자면, 19세기나 20세기 언제쯤 그 교지를 후손이 선조를 위하는 마음으로 조작해 낸 것일 것이다. 여기서 내가 그 ‘선조를 위하는 마음’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조작과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조상을 멋지고 훌륭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그 그릇된 인식이다. 조상을 꾸며내기 위해서는 심지어 환부역조(換父易祖)라도 불사하겠다는 그런 관념은 이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 chky100은 차씨들이 설원기를 꾸며내고 류차동원설을 꾸며내어 어떤 이득을 얻었을까를 반문하고 그래서 그럴 리 없다고 암시하는데,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라면 공부를 하기 바란다. 워낙 설원기에서 꾸며지기 시작된 전설의 황제(黃帝)로부터 이어지는 꾸며진 장황한 내력이 집안의 진짜 역사인 양 믿는 관념이 너무 강해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결과이다. 그리고 실제 설원기가 위작되어 나온 것은 그 책에서 쓴 것처럼 1456년이 아니라 그 백 수십 년 후인 임진왜란 조금 전의 차천로 등이 살던 시기이다. 실제로 설원기는 단종복위사건과 아무런 역사적 관련이 없으며, 그것을 설원기의 위작자가 철저하고 교묘하게 이용했을 따름이다.
설원기는 차원부라는 가공행적의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륜 등의 인물들을 철저히 유린한 추악한 문헌이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아무런 죄도 없는 인물들을 흉악한 인물로 묘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문헌에서 진실을 찾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것이 진실로 위장되어 역사와 사회에 미친 악영향도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나는 “차원부설원기”를 위서(僞書)이자 악서(惡書)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chky100이 전후사정을 조금이라도 살폈다면 여러 글을 통해서 억지 주장들을 펼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랬다면 이렇게 또 그런 행위들이 지금까지 여러 차례 여러 사람에 의해 반복되어 온 잘못임을 다시 지적받는 부끄러운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확언하면, 설원기는 스스로 거짓을 포함하고 있음이 증명되는 문헌이다. 그런 증명들을 샅샅이 공부하고 그것들 전부에 대한 반박이 가능하면 그때 글을 쓰고 어떤 주장을 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설원기에서 처음으로 류효전을 등장시키면서 고려 태조가 그에게 ‘연안을 관향으로 삼도록 했다’는 구절조차 거짓이다. 연안은 그로부터 수백 년 후에나 생긴 지명이기 때문이다. 설원기는 이런 것을 포함한 많은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런 것에는 모두 눈을 감고 그럼에도 설원기는 믿을 만하고 류차동원설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chky100는 내게 “삼국지”는 위서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떤 “삼국지”를 말하는 것인가? 소설 “삼국지”라면 역사소설이다. 위서(魏書), 촉서(蜀書), 오서(吳書)로 이루어진 ‘진수’가 쓴 “삼국지”라면 정사(正史)이다. 어떤 정사 안에 어떤 한 사람의 계통에 관한 기록이 잘못 주어져 있다 해서 그 사람을 포함한 많은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행동을 했다는 기록들을 부인할 이유는 내게 없다. 반면에 설원기에는 그런 직접성이나 구체성도, 역사적 검증을 통과할 사실성도 결여되어 있다.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제는 해당 문중에서도 잘못된 역사를 털어버리자는 움직임이 더 커질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차씨 분들 중에는 지금까지 내게 찬동해온 분들도 있었고, 자신의 가문에 대고 그렇게 하자고 촉구하는 분들도 여럿 있었다.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에서 연안차씨에 대한 묘사를 수정한 사실(*)과 같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주: 연안차씨의 내력에서 대승공 운운한 부분이 근거가 없다 하여 제거해 달라는 민원을 한중연에서 문헌을 근거로 해서 수용한 것을 말함.) 역사를 포함한 인생세간의 일들이 반드시 진실과 거짓으로 양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명백한 진실과 명백한 거짓이 있을 때는 가능한 한 구별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고 좀 더 살맛나는 곳이 되지 않을까.
2013년 12월 22일
류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