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sole mio
천상의 테너 Luciano Pavarotti의 타계를 애도하며...
O sole mio - Luciano Pavarotti
카푸아(Eduardo Di Capua/1865~1917)
Che bella cosa e na iurnata e sole
L'aria serena doppo me tempesta
Pell'aria fresca pare gia na festa
Che bella cosa e na iurnata e sole
Ma na tu sole chiu belo oi ne
O sole mio sta infronte a te
O sole,o sole mio sta infronte a te
Sta infronte a te
Quanno fa notte e o sole se ne scenne
Me vene quase una malicunia
Sotto a fenesta en me restarria
Quanno fa notte e o sole se ne sceene
Ma na tu sole chiu belo oi ne
O sole mio sta infronte a te
O sole, o sole mio sta infronte a te
Sta infronte a te
오 맑은 햇빛 너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후 너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 솔 불어 올때
하늘에 밝은해는 비치인다
나의 몸에는 사랑스런
오나의 태양 비치인다
오 나의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치인다
작사자는 시칠리아섬 태생인 지오반니 카프로,
작곡자는 나폴리의 작곡가 에두아르도 디 카프아(1869∼1917)이다.
1898년에 작곡되어 나폴리의 피에디그로타음악제에서 입상했다.
곡명은 ‘나의 태양이여’의 뜻이며 ‘오 나의 태양’으로 번역되어 있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
나의 마음에는 사랑스런 나의 햇님뿐 비친다 오 나의 햇님…”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애인을 찬양한 스케일이 큰 노래로서
오늘날 나폴리민요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세기의 테너 Luciano Pavarotti
6일 사망한 테너 루치아노 파파로티는 성악가 가운데 가장 높은
영예와 인기를 누렸던 오페라계의 슈퍼 스타였다.
오페라 팬이 아닌 이들도 그의 이름과 서정적이면서 장대한 목소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미소를 기억한다.
특히 청아한 미성과 빼어난 고음 뿐 아니라 가사의 운율을 리드미컬하게
읽어내는 뛰어난 가사 소화 능력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다는게 음악계의 평가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형종씨는 “파바로티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언”이라며
“엔리코 카루소에 견줄만한 위대한 가수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바로티는 1935년 10월12일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오페라광이자 아마추어 테너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지역 합창단과 성가대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정식 음악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다.
19세에 사범 학교를 졸업한 뒤 개인 교습을 통해 뒤늦게 성악의 길을 선택했다.
오페라에 데뷔한 것은 26세 때였다. 61년 레지오 에밀리아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그곳 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데뷔했다.
63년 영국 코벤트 가든, 65년 이탈리아 라 스칼라,
6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등 주요 오페라 극장에 차례로 데뷔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 파바로티가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72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린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공연이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9번의 하이C(3옥타브 도)를 소화해내야 하는
아리아 ‘친구들이여, 오늘은 즐거운 날’을 120년 만에 악보대로 불러 ‘
하이C의 제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88년 독일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열린 <사랑의 묘약> 공연 때는
1시간7분 동안 165번의 앙코르를 받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파바로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테너 호세 카레라스와 플라시도 도밍고다.
파바로티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 무대에서 이들과 함께
‘스리 테너 콘서트’를 연 이후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며
세계 구석구석까지 이름을 알렸다.
또한 대중 가수들과 함께 한 ‘파바로티와 친구들’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고아와 빈민을 위한 자선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에는 77년과 93년, 2000년 세 차례 찾아와 공연을 했다.
하지만 파바로티의 말년은 음악적 성취와 무관한 사적인 문제로 얼룩졌다.
막내딸보다 어린 35세 연하의 비서 니콜레타 만토바니와 염문을 뿌리다
2000년 부인 아두아 베로니와 이혼했고,
2003년 만토바니와 결혼을 해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또 전성기를 넘기고도 은퇴를 하지 않아 지나치게
대중적 인기에 영합한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2004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토스카>가 마지막 오페라라고 선언한
그는 고별 투어를 한 뒤 2005년 10월 이전에 완전히 은퇴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이후에도 공연을 계속했다.
지난해 7월 뉴욕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을 당시까지도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파바로티의 마지막 무대는 2006년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 전야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그가 무대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다.
전 세계인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하이C의 제왕’
파바로티, 이제 그의 이름은 전설로 남게 됐다.
영원토록 길이 남을 목소리를 남기고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들의 박수
테너
루치아노 파파로티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의 귀국독창회가 열리는 날,
공연시작 직전에 사회자가 헐레벌떡 무대 위에
올라와 당황한 목소리로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가수가 좀 늦을 거 같다며,
대신에 촉망 받는 신인가수 한 명을 소개했다.
그림 : 김판국 화백
참다운 격려는 기적을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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