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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관악삼성단맥종주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안양 서울
한남관악지맥이 한남정맥 수원 백운산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관악산 정상으로 가면서 전위봉으로 우뚝한 철탑들이 즐비한 도면상631봉에서 잠깐 내려간 서울시 관악구, 과천시, 안양시 동안구의 삼개행정구역을 분기하는 등고선상590m 지점에서 동남방향에서 온 한남관악지맥(관양능선 팔봉능선 육봉능선)이 좌측 북쪽으로 흘러 용마능선 한남관악현충원단맥 사당능선을 흘리고 단맥은 서쪽으로 분기하여 학바위능선을 따라 국기봉(490)을 지나 관악구, 안양시 동안구, 만안구의 삼개행정구역을 분기하는 십자안부 무네미고개(250, 1.5)로 내려선다
이후 관악구와 만안구의 경계를 따라 기지국 오르는 도로에서 三聖산(470, 0.8/2.3)으로 올라 남쪽으로 학우봉(367)으로 해서 관악역으로 가는 학우봉능선과 천진암으로 가는 천진암능선을 떨구고 북쪽으로 장군능선으로 진행하며 도로를 만나 도로따라 삼막사 안부 도로에 이르고 거북바위를 지나 우측으로 등고선상430m 둔덕봉인 국기봉(430)에서 깃대봉(430)으로 가는 여맥산줄기를 떨구고 서서히 좌측으로 휘어 북쪽으로 가던 산줄기가 북서방향으로 진로를 틀어 내린다
등고선상310m십자안부(1.2/3.5)를 지나 장군봉(410, 0.7/4.2)에서 우측 북동방향으로 국기봉(416) 돌산(234)으로 가는 여맥산줄기 칼바위능선을 떨구고 단맥능선은 서서히 좌측으로 휘어서 북서방향으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다 살며시 오른 금천구, 관악구, 안양시 만안구의 3개행정구역을 구분하는 호암산(민주동산, 390, 0.5/4.7)에서 좌측 서남방향으로 금천구와 만안구의 경계는 석수능선이라 부르며 경부선 석수역으로 내려가고 단맥능선은 금천구와 관악구의 경계를 따라 천만길 절벽을 내려가 능선상에 있는 호압사(210, 0.6/5.3)에 이른다
바로 이 호암산 밑으로는 강남순환고속도로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2016년도 준공예정인데 글쎄 잘되어야할터인데 말입니다
산복터널(190, 0.7/6)-목골산(199)-독산고개 도로(70, 2/8)-83봉-정심초교(70)를 지나 등고선상90봉을 넘어 금천구내로 들어가 서북진하며 주택가로 내려간다(70, 1/9) 이후 도심 한복판을 빌딩과 주택들 사이를 비집고 가야하는데 지형이 몽창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복개한 하천이 어디있는지 현재의 도면만 가지고서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그 도심구간은 서북방향으로 직선으로 연결해 남부순환도로 시흥IC, 구로공단, 경부선철로, 46번국도, 1번국도를 지나 도림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신정1교(6/15)에서 끝나는 약15km의 산줄기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육안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끝나는 곳까지 약9km가 산줄기 답사가 가능한 구간이다 물론 실제적인 산줄기며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충실하게 단맥 산줄기를 그려본 신정1교까지 답사를 해 본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신경수님 글] |
○산행코스 : 서울대제2공학관버스정류장- 연주샘-깔딱고개- 연주암헬기장-연주대-연주암헬기장- 깔딱고개-학바위능선-무너미
고개-삼성산-삼막사-칠성각-거북바위-장군능선-찬우물-호암산(민주동산)헬기장-호압사-산복터널-목골산-정심초
교-독산고교-독산고개도로-구로전화국사거리-구로디지털역
[산행지도]
2호선 전철의 서울대입구(관악구청)역에서 3번출구로 나와 5513번 지선버스를 타고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한다. 이른아침 서둘러 와 산으로 들고 까악 까악~까마귀가 소리내어 부르는 리듬을 타고 오름짓을 하게 된다. '관악산
생태보전구역'이라 쓰인 안내목을 지나며 나보다 더 빠른 사람들이 관악산에서 내려오며 인사를 나누며 고도를 높여갔다.
계곡을 건너 [공학관3, 학바위능선 700m]의 이정목 아래 계속 계곡의 목책계단을 따르며 연주샘을 지나
관악산이 조망되는 계곡을 건너고 목책계단 발자욱 소리와 같이 걷는 겨울산은 모두가 검정과 하얀색 뿐 '깔딱고개의 하단'이정목
을 지나
관악산의 '지형'을 옮겨보면
한남정맥의 중추를 이루는 경기도 안성군 칠장산에서 슬기봉 광교산 등을 거쳐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 서울 한강 남쪽에
이르러 마지막 힘을 다해 불꽃처럼 솟구친 산이 관악산이란다. 관악산은 동봉(연주봉)의 관악, 서봉의 삼성산 북봉의 장군봉
과 호암산을 아우르고 있습니다란 글귀의 오늘 산행하게 될 산줄기가 이곳 안내판에 쓰여 있으며 옛 금천의 진산(鎭山)인 금지
산경산경을 이루는데 이 산경의 최고봉이라는 관악산.
산봉우리의 모양이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이 되며 빼어난 수십개의 암릉을 가지고 있는 관악산을 공부하여 보면서 오르며
'풍수'의 안내판에 보면 호암산 능선에는 통일신라때 판 것으로 추측되는 산상 우물(한우물)도 있는데, 이것도 관악산의 불기
운을 누르기 위한 짐작된다는 찬우물이 아닐까 해서 그곳 또한 가보고 싶다.
관악산의 기상레이더관측소는 각을 세우며 너른암릉에 자리하고 있어 멀리서 보아도 알아 볼 수 있는 산정의 모습을 보면서 투
벅투벅 발자욱 소리에 닿은 제3깔딱고개의 이정목이 있는 깔딱고개에 선다.
삼막사로 가는 이정목을 지나
[연주대]를 조망하며
[관악지맥의 암봉]들의 갈 곳에 금을 긋고
[석탑]이 유난히 빛나 보이는
[삼성산과 국기봉]의 별스런 느낌처럼 다가와 있는 겨울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눈내린 하얀 설산을 향해 가는 올라가면 올라 갈수
록 반해진다. 산의 휑했던 빈가지들의 풍경이 밤새내린 눈으로 뒤바뀐 세상이 되고 골바람도 머져 있어 한동안 조망바위에 설
수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무대뽀 산행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아 되돌아 서며 연주암헬기장를 지나 나무테크 계단을 따라 연주암에 오르시는
보살님과 길을 따른다.
주고 받는 덕담이 새해 인사를 대신하며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면서 연주대의 풍경을 벗삼아 조망대에서
발걸음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석축을 쌓아 올린 곳의 연주대
경기도 기념물 제20호. 깎아지른듯한 바위 벼랑 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고 30㎡쯤 되는 대가 구축되어 있어 이를 연주대라 하는데 거기에는 응진전(應眞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불당이 꾸며져 있다. 그 뒤에는 우뚝 솟은 말바위[馬巖]가 있어서 이 바위에 올라타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왕조 개국 초에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권유를 듣고 태조는 도읍을 한양에 정함에 즈음해서 이 연주대에 친히 올라 국운장구를 빌며 원각(圓覺)·연주(戀主) 두 절을 짓고 서울을 비치는 화산(火山) 불길을 진정시키고자 꾀하였다고 한다. 그 뒤 임금 자리를 아우인 세종에게 양보한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곳에서 놀았다 한다. 이때 양녕대군이 중에게 준 오언절구 “山霞朝作飯 蘿月夜舂燈 獨宿孤巖下 惟存塔一層(산노을로 아침밥을 짓고, 女蘿의 덩굴에 걸린 달이 불을 밝히네. 홀로 외로이 바위 아래 오로지 탑 한층만이 남아있네)”이라는 한시가 명시로 전하며 효령대군은 여기에서 오랫동안 수도하였기에 그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내려온다. 세조 때에도 태조 때의 예에 따라 여기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옮김] |
“山霞朝作飯 蘿月夜舂燈 산노을로 아침밥을 짓고
獨宿孤巖下 惟存塔一層 女蘿의 덩굴에 걸린 달이 불을 밝히네,. 홀로 외로이 바위 아래 오로지 탑 한층만이 남아있네
이라는 한시가를 읊어보며
에서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의 연주대를 무대로 한 배경에 또한 되새김을 하면서 연주대로 향했다. 기상관측소의 이정목을 지나
관악산 연주대에 올랐다.
등산객이 없는 텅빈 산의 관악산을 처음 보게 된다. 관악이란 이름은 산의 모양이 마치 '삿갓(冠)'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기상관측소옆 연주대 불꽃바위(632m) 그 자체가 볼꺼리다. 불꽃바위위에 2등 삼각점도 관악지맥시 약속하며 되돌
아 선다.
온 길을 다시 나무데크를 따르며 국기봉을 사면으로 돌아 제3깔딱고개에 닿게 된다. 나무데크는 계속 길을 잇고 K.B.S 송신소
의 현위치 이정목은 '안양유원지 7km, 팔봉능선 2km, 연주암 0.3km'의 갈림 길에 닿게 된다.
삼성산을 향해 무너미고개로 고도를 낮추며 서진하게 된다.
[삿갓승군]
삿갓승군에서 뒤돌아 본 국기봉이 우뚝하며
[삼성산과 호암산]의 엄마품처럼 다가오는 학바위능선을 걷게 된다.
학바위능선1의 이정목을 지나
[국기봉]
[국기봉과 삼성산]을
국기봉에 오를 수 없어 사면으로 통과하여
진행하게 될 돌고래바위 지나 푹꺼진 무너미고개를 지나 삼성산의 멋진 산줄기를 감상하며 눈이 내린 등산로를 따라 간다.
돌고래바위는 더 가까이 오고
학바위능선2의 이정목을 지나
[돌고래바위]를 지나
장군봉에서 가지를 쳐 나간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산릉아래 서울대학교와 봉천동, 사당동, 동작동이 조망되는 도심속을
조망하여 보며
이름모를 기암을 담아본다.
삼거리약수터(상)의 현위치 이정목을 지나 [무너미고개]에 내려서고 이곳도 여전히 생태경관보존지역인가 보다.
'삼성산 1.0km, 서울대후문 2.1km, 안양예술공원 2.4km'의 이정목을 지나
[기암]
걸어온 관악산의 마루금과 팔봉능선의 경치가 좋은 눈쌓인 설산이 아름답게 치장을 했다. 1월의 영하8도를 오르내리는 관악산
을 테마처럼 걷고 있는 군대군대 얼음길에 느릿거리지만 눈의 호사에 어쩔수가 없나 보다.
속살이 드러난 봉우리마다 겨울풍경도 분위가가 있어 좋다.
반사경이 있는 포장도로에 닿아 도로로 진행하여 오르면 시설물이 차지한 삼성산의 정상을 볼 수 있는 곳.
[삼성산]의 모습을 담아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며
반지르한 포장도로가 살얼음판 같아 조심하여야 했다. 작은 돌탑이 반기는 반월암을 지나 삼막사로 향했다. 호압사로 가는
이정목에서 삼막사까지는 0.5km의 거리로 갔다 돌아와 호압사로 가는 마루금을 따라야 했다.
역시 반지르한 포장도로를 더듬더듬 걷고
[三聖山三幕寺]의 일주문을 지나자 철갑을 두른 소나무와 고목이 듬성듬성 경내의 풍경에 한몫을 하는 것 같았다.
1,300년 된 고찰로
이 절은 677년(문무왕 17)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潤筆) 3대사(大師)가 관악산에 들어와서 막(幕)을 치고 수도하다가, 그 뒤 그 곳 에 절을 짓고 삼막사라 하였다. 사지(寺誌)에 의하면, 원효가 창건하고, 신라 말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개칭하였는데, 고려의 태조가 중수하여 삼막사라 하였다고 한다. 1348년(충숙왕 4)나옹(懶翁)이 이 절에 머무르면서 수도하였고, 1394년(태조 3)에는 왕사 무학(無學)이 이 절에서 국운(國運)의 융성을 기원하였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1398년 왕명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
대웅전을 비롯 명부전, 망해루, 대방, 요사, 칠성각 등의 당우로 중 이곳의 남쪽에 위치한 칠성각으로 향했다. 삼층석탑과 천불전
을 돌아 월암당 남쪽에 위치한 백련지암지 연못지(백련지)와
[삼귀자]
[삼귀자]를 지나
연등과 같이 계단을 걸어 올라선 칠성각에 닿으면
삼막사 마애삼존불상의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볼 수 없음에 아쉬웠으며
[남.녀 근석]
을 사진에 담아 칠성각 계단을 따라 삼막사 경내를 돌아 나왔다.
안양시가지 모습이 발아래였고 기차를 타고 다닐 적 절벽위 삼막사를 보이던 그 곳 아니던가 했다. 포장도로의 반지르르한 도로
를 따라 오르고
호압사가는 이정목을 지나 거북바위의 엿 파시는 할머니 소리가 크게 산울림되어 돌아왔다. '새해에는 엿을 먹어야 복이 온다고'
거북바위위에서 보이는 관악산의 폼나는 산세는 또 한번 돌아보게 했고 '국기봉 0.3km, 서울대정문 호압사 1.9km'의 이정목을 따
라 국기봉으로 향했다.
'호압사 1.8km'의 이정목와 깔딱고개를 지나며 경인교대와 그 뒤로 수리산이 조망되는 산길을 걸으며 서울대정문으로 가는 이정목
은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현위치 '운동장바위'과
'장군봉 0.2km, 칼바위 0.4km, 호압사 0.9km'의 장군봉으로 가는 이정목을 지나 119현위치목인 '찬우물'을 따라 가 보기로 했다.
혹시 아침에 보았던 호암산의 한우물이 그 곳인가 해서다.
아침에 보았던 관악산의 안내판에 보면
호암산 능선에는 통일신라때 판 것으로 추측되는 산상우물(한우물)이 있는데 이것도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것으로 짐작되
는 곳인지 궁금해서다.
아직도 그 해답은 알 수 없고 혹?
찬우물위 운동기구시설을 지나 장군봉을 돌아 산악기상 관측장비를 지나 민주동산이라 쓰인 현위치목을 오른다. 호암산, 또한
민주동산(호암산)에는 헬기장과 저 한편에 태극기가 있는 산정이다. 진행하게 될 산줄기가 흐릿하게 이어지는 도심속의
마루금을 쳐다보면서 호암산을 내려가며 '서울둘레길 0.4km'의 이정목을 따른다.
수직절벽으로 이어지는 호암산아래 유난히 나뭇가지 사이 흰눈이 길손을 잡았다. 미끄러지듯 걷고 엉덩이 찌어 넘어지고
아이젠을 가져오지 않아 애를 먹는 듯 눈쌓인 가지를 붙잡으면 목덜미가 어디로간 순사례를 쳐대는 것만 같았다. 이곳 부
터는 처음 길을 걷게 되는 어설픈 길이라 그런가 보다.
'독산고교'의 이정목에 처음 이름을 올린다.
그 아래가 호압사였다.
무학대사는 호랑이 기세를 누르기 위해 호암산 호압사를 창건하게 되었다며 '약사여래'의 석약사불좌상는 중생의 질병 치료, 수면
연장, 재화 소멸, 의식 만족을 이루어 주며,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부처님(여래)를 말한다고 한다.
도량 내에 있는 500년이 지난 두 그루의 느티나무,보호수가 호압사의 오랜 세월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호압사의 뒤 산 길로 이어지는 '선우공원 2.4km의 이정목을 지나 산복터널의 이정목이 특이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산복터널은
금천구 시흥동과 관악구 신림동을 잇는 터널을 지나며 도심의 산책길로 이어진다. 늘씬한 참나무숲을 지나면 소나무숲이 길
을 잇고 '삼성동'의 갈림 길을 지나 헬기장이었다.
[헬기장]을 내려서며 '휴면시아 아파트'가 보이는 길따라 걷기 좋은 산책로를 걷게 되는데 편안함이 느껴지며 조금 더 진행하면
산복터널을 지나온 도로와 차량과 소리가 한 박자로 이어진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며 좁은 마루금의 아카시아 나무가 도열해 있는 산길 아래는 도심이다. 한쪽은 금천구의 독산동이며 또
한쪽은 관악구의 신림동의 경계를 따르게 된다. '독산고교 2.3km'의 이정목을 지나며 선우공원 독산고등학교를 향해 걷게 된
다.
나무계단을 오르며 '미성 둘레길'이란 안내판도 지나며 이정목은 계속 이어진다.
산불진화장비 보관함이 있는 목골산(199봉)에 올라 보면 운동기구가 있는 넓은 공터에 관악구의 도심이 조망된다.
어르신 한 분이 하염없이 앉아계셔 돌아서고
예쁜의자에 앉아 목골산을 대신한다.
'산울림다리'의 이정목을 지나
[산울림다리]이다, 산울림다리의 이름만큼 다리도 정겹다.
다리를 건너면 '독산자락길'의 안내판이 있으며
[금천정]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며
금천구 독산동의 먹거리 안내판을 지나
정심초등학교옆을 지나 연두색 철책을 따라 오르면 95.4봉의 운동기구가 있는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월야영매'의 한시가 오늘 산행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비록 매화나무와 둥근 달이 아니어도
산들바람 부는 설산의 향기 저절로 산에 가득 차는 산행을 되돌아 본다.
팔각정의 쉼터를 지나.
헤어지기 아쉬운듯 관악산의 모습은 감출줄 모르며 이육사님의 '청포도' 시가 있는 산길을 걷는다.
나보다 더 큰 키의 철망은 시작되며 철망터널을 빠져 나오면 '미성둘레길'의 이정목이 있는 아파트와 관천교회와 별초롱 어린이집
의 문을 나선다.
독산고교앞 도로였다.
횡단보도를 건너 독산고등학교 버스정류장와 난곡중학교를 지나 주택가와 동운아파트를 가로질러 나오면 구로전화국 사거리였다.
도로는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산행도 끝나게 된다. 스틱을 정리하여 전철에 오르며 전철안 온도가 따뜻했다. 등따신 구
들막 놔두고 얼음길에서 걷던 마루금이 스쳐간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陶山月夜詠梅(도산월야영매)의 '때로는 구름처럼, 때로는 산처럼' 의 시구와 같이 관악산의 여정이 저물어 갔
다.
귀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