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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함정 클래식
허 열 웅
깊은 밤, 바람에 실려 오는 자스민 향기와도 같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를 듣는다. 서정적이면서 우아한 선율 탓인지 서둘러 떠나는 겨울의 옷자락 여미는 소리도 감미롭다. 희뿌연 하늘에 하현달도 귀를 기우린다. 오늘은 봄이 첫 빗장을 여는 입춘이다. 한강의 얼어붙었던 어름에서 쩡~쩡~ 금이 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우리나라 최고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조승우가 몇 년 전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틀었다. 보통사이인 여인이 옆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 곡명을 알아 마치자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유명한 이곡은 대중적인 고전음악으로 첫 여덟 마디 동안 피아노가 묵직한 화음만 내뿜고, 갑자기 일렁이는 오케스트라가 들어온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클래식은 잠자던 사랑의 불길을 당기는 촉매제인지도 모른다.
세계최고의 부자인 빌 케이츠도 음악으로 인해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가 젊은 시절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관람하러 갔다가 며칠 전 회사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여자와 재회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다. 또 한 최첨단 기술의 선구자 스티브 잡스도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사업에는 성공했으나 가정적으로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췌장암 말기 죽음을 앞두고 가족과 화해를 하고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며 운명을 했다고 한다. 짧고도 길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너와 나, 저 앞에 펼쳐진 길보다 더 기나긴 추억을 갖고 있잖아”의 가사를 들으며...
전 세계에 8,000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세계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의 영화음악 앨범 ‘시네마(Cinema)’에 들어 있는 노래가 흐른다. 이 CD에는 뉴욕 필하모니의 음악 감독을 역임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번스타인의 곡 Maria와, 오페라의 유령, 에비타, 그리고 어린 시절 프랑크 시나트라 버젼으로 즐겨들었던 Moon River 등 수많은 명곡들이 16트랙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주말의 영화’에서 많이 듣던 곡도 들어있어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게 한다. 이 가수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특이하게도 법과대학 출신이며 장님이다. 선천적인 녹내장을 앓다가 12살 무렵 축구시합 도중 머리에 충격을 받아 실명했다고 한다.
두 번째 곡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를 노래한 ‘La chanson de lara’를 들으며 다섯 번도 넘게 보았던 영화의 원작을 떠올려본다.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57년 발표한 이 장편소설은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전쟁 속 로맨스를 그린 명작이어서 노벨문학상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러시아 정부는 혁명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도록 압력을 넣어 노벨상 역사 이래 상을 거부하는 첫 사례가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작가동맹에서 탈퇴시키고 국외로 추방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암에 걸려 2년 후 51세에 사망하였다.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장편소설을 나는 고등학교 시절 호기심으로 읽다가 긴 이름의 등장인물들과 역사적 혼란으로 힘겹게 완독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나는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깊은 밤 적막으로부터 외로움을 선사받을 때 음악을 듣는다. 그 가운데 교향곡 5번을 좋아한다. 이 곡이 [운명]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까닭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제자이며 베토벤의 전기傳記를 쓴 유명한 신틀러가, 하루는 이 곡의 제1악장 서두에 나오는 주제의 뜻을 물었더니 베토벤은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하면서 힘찬 몸짓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이 교향곡은 ‘운명’이라는 참으로 극적인 제목으로 불리게 되었고, 또 그것이 인기를 높이는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 곡이 청중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파리 음대 강당에서 연주할 때 이 대학 교수가 남긴 자서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드디어 장쾌한 음악의 연주가 시작되자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빠져들었습니다. 드디어 음악회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박수 칠 생각을 그만 잊어버린 것입니다. 한참 후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드디어 모든 청중들이 오랫동안 박수를 크게 치자 나도 모르게 따라 했습니다. 마음을 진정하지도 못한 채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자를 집어 들고 머리를 찾으니 머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아함과 낭만, 그리고 드라마틱한 감성의 대명사인 안드레이 보첼리의 노래는 한 편의 영화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 내가 그의 노래를 들으며 더욱 보람과 행복을 느낀 이유는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며 칠 전 문화센터 수필 강의에 새로 들어온 분에게 수필집 <빈 뜰에 떨어진 사유思惟>를 드렸다. 다음 날 좋은 책을 그냥 받을 수 없다며 답례로 선물 해준 CD에서 보첼리의 듣고 싶었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다. 그 동안 친구가 보내준 카카오 톡에서 ‘마리아’만 들을 수밖에 없어 아쉬웠는데 여러 곡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가슴에 머물러 있는 감동적인 클래식 음악은 사랑의 함정으로 발을 헛디디게 유혹하고, 글을 쓰는 작가는 조그만 칭찬에도 자기 늪에 빠져드는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이 듣기 좋으라고 해주는 흔한 덕담 ‘글을 잘 쓴다’는 말도 진짜로 알아듣고, 이런 멋진 선물이라도 받는 날은 고래 따라 춤추는 철부지 어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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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악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랑이다. (시드니 래니어 "교향곡". 1875)
깊은 밤, 바람에 실려 오는 자스민 향기와도 같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식견 높으신 향기로운 글에 머물러 쉼을 누립니다.
고맙습니다.
숲 속에 사는 나뭇꾼이 선녀를 기다리는 의 마음은
한 곡의 아름다운 메로디요, 한 편의 의미 깊은 시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좋은 음악은
차가워진 가슴을 녹여줍니다.
감사합니다
떼 눈 속에 핀 동백꽃은 교향곡 운명처럼 장엄한 모습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