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골에 가도 보일러를 놓은 집들이 많아서
아궁이에 불 때는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밥 때가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나무 타는 냄새가 구수하게 나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새해를 맞이하고 한살 더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유연해지기보다 다혈질적인 성격이 더 심해집니다.
며칠 전, 폭발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화를 품고 있는 제게
강론 시간 신부님의 말씀이 새겨집니다.
‘얼마나 우리는 존재로서 잘 타고 있나요?
제대로 마르지 않은 나무를 불에 태우면 연기만 나고
잘 타지도 않아 애를 먹게 됩니다.
혹시, 우리 자신이 잘 타지 않아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연기만 피식 피워 올리며 공동체의 눈물과 콧물을 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고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
그나마 불꽃을 꺼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존재를 얼마나 잘 태워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릴 적, 땔감 속에 덜 마른 나무가 섞여 있으면 타는 내내 연기가 나고
불이 붙지 않아 후후 불다가 눈이 벌겋게 충혈 되고 기침을 했던 기억입니다.
그래서 물기가 남아 있는 나무를 태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고 있는 터라 강론말씀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방심하고 있던 틈을 타고 ‘너 때문이야’라는 물이 들이치고
마음자리가 온통 젖어 버려 자꾸만 매운 연기를 뿜고 있습니다.
애써 말려놓은 마음이 젖은 탓이 어찌 들이친 물 때문이겠습니까.
조금 더 구석구석 틈새를 살피지 못한 제 탓이 더 큰 것이겠지요.
겨울철 잘 마른 땔감을 준비해 두고 눈과 비를 대비해서
잘 덮어두거나 처마 밑에 들여놓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듯이
깜빡하는 순간 ‘화’라는 물에, ‘이기심’이라는 차가운 눈발에,
‘판단’이라는 굵은 빗줄기에 온통 젖어 버리기 쉬운 마음자리인지라
더 살뜰하게 살피고 성찰하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화를 태우느라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젖은 마음이 어서 마르도록
잘 타고 있는 마른 나무 곁에 살짝 놓아야겠습니다.
마음자리 잘 말려 소박하게 살라 올리고 있는 이들 곁에서
성장의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오로딸 수녀 드림
첫댓글 신부님 강론 때보다 더 쉽고 가까이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예전에 우리 어른님들이 불을 피울 때 하시던 말씀이 생각 납니다. 젖은 나무 땔때는 잔뜩 쟁여 넣고 때라는 .... 이제 가스와 석유 전기로 불을 대신하니까 연기 속에서 숨막혀 하면서도 감각속의 지각을 일깨우던, 느리지만 잊혀지지않는 우리 감각의 깨우침이 많이 줄어가는 느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