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화려한 공작, 가까이서 보면 그 실체가 의외로...
[양정철의 뉴스 셰프] 일부 부처 개각이 단행됐습니다. 기본적으로 내각 인사는 대통령 권한입니다. 새로 임명된 사람들 면면을 놓고 품평할 생각은 없습니다. 국회가 인사 청문을 통해 그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다만 개각 과정에서 청와대와 언론이 보여준 몇 가지 행태는, 우리 사회 심각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정상도 아니고 상식도 아닌 일이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행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 ‘몰상식’에 대한 익숙함고통이나 폭력, 변태적 학대에 익숙해지거나 한발 더 나아가 그 상황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심각하게 봐야겠지요. 소위 매조키즘(masochism)이 그것인데요. 타인에게 물리적이거나 정신적 고통을 받고 성적 만족을 느끼는 병적인 심리상태를 일컫습니다. 그 반대인 새디즘(sadism.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충동을 만족시키는 비정상 성 심리)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출범 이후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검찰의 가병화(家兵化)입니다. 인권과 정의수호의 보루여야 할 기관이 정권의 강압통치, 폭압통치 수단으로 추락해 버렸습니다. 그 원인은 정권의 검찰장악입니다. 그런데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보내려는 시도에 대해 <조선일보>는 이렇게 분석합니다.
“권 수석(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통령 부인인 김윤옥 여사의 초등학교 7년 후배다. 김 여사와는 어린 시절부터 얼굴을 아는 사이다. 대구 출신에 사시 20회로 대검차장과 서울고검장을 지낸 권 수석은 김준규 검찰총장이나 이귀남 법무 장관보다 1·2년 선배다. 그만큼 검찰 조직에 대한 장악력이 높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더구나 그는 이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비판은 못할망정 대통령과 청와대의 검찰장악을 당연하게 해석합니다. 용감한 건지 무식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카드는 불발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그런 용인술로 검찰을 장악하는 것이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권 수석은 8월 법무장관에 기용될 가능성이 있다. (중략) 어떤 방식이 됐건 집권 후반기 검찰 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포석을 깔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권력기관의 중립화’를 강조하는 건 기대도 않습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에 왜 굳이 대통령 비서하던 사람을 내보내 반발과 오해를 사려느냐는 질타는 꿈도 안 꿉니다. 하지만 명색이 언론사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 법입니다. 몰상식한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행태를 ‘매조키즘’으로 해석해야 할지 ‘새디즘’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법무부장관뿐이 아닙니다. 역시 불발로 끝난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의 통일부장관 안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부 장관에 류우익 전 주중대사가 내정됐다. 류우익 전 대사는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할 적임자로 꼽혀 왔다.” 이런 기사가 말이 될까요. 경색된 남북관계는 통일부장관이 대통령 신임을 못 받아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대통령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누가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갖다 붙일 말을 붙여야 그럴듯하지 않겠습니까.일부 언론은 이런 전망까지 내보냈습니다. ‘그가 지리학자 출신이어서 한반도 주변 정세에 해박해 통일부장관에 적임이다.’ 세상에, 언제부터 지리학의 지평이 국제정세 전반까지 확장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리 인사보도가 속보경쟁에 춤을 추고, 정보 소스에 따라 널뛰기를 해도 최소한의 체통은 지키며 보도해야 합니다. 몰상식을 뻔뻔스럽게 기정사실화 해서 국민을 현혹시켜서야 되겠습니까. 2. ‘말장난’에 대한 익숙함청와대는 스스로 이번 개각의 성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일’ 중심 개각! 개각을 발표한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새로 입각된 분들로 해서 새 내각은 그야말로 일 중심의 내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받아 적기 바쁘고 그럴 듯한 의미를 부여하기 바쁩니다. “이번 개각은 전 현직 차관들이 포진한 실무형 ‘일 중심’ 진용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대통령이 이번 개각에서 ‘실무 전문가 중심의 내각 색채’를 강화한 것은 국정 실무를 보다 중시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이번에 입각한 분들로 인해서 새 내각은 그야말로 일 중심의 내각’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뜻이다. 새 내각 인사 17명 중 김황식 총리를 비롯한 10명이 관료 또는 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런 특징은 분명해진다.”
“이 대통령도 평소 ‘나는 임기 말까지 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우리 정부는 임기 말까지 열심히 일하는 정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해 왔다.”이런 말장난, 이제 지칩니다. 1억 가까운 연봉을 받는 장관 가운데 일 안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연봉을 떠나 그 중책을 맡았으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분골쇄신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너무도 뻔하고 당연한 자리를 뭉뚱그려 ‘일 중심’ 개각이라니, 언어의 유희를 떠나 국민 농단입니다.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관료 출신, 정치인 출신, 혹은 학자 출신 여부로 일 중심이냐 아니냐가 나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출신 배경은 스타일이나 개인별 특장(特長)에 불과합니다. 임명되면 똑같이 국민을 위해 밤낮 없이 일할 뿐입니다.게다가 자신들이 관료출신들을 임명하고 싶어 임명한 것도 아닙니다. 친위내각으로 가려고 언론에 인사내용까지 흘렸다가, 당의 반발이 심상찮고 청문회를 통과할 자신이 없어 무릎 꿇은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일 중심’ 운운은 궁색한 포장에 불과합니다. 어설프게 포장한답시고 말장난하는 청와대나, 졸졸 따라다니며 나발 부는 언론이나, 둘 다 측은합니다.3. ‘잔머리’에 대한 익숙함이번 개각은 장고(長考) 끝의 악수(惡手)입니다. 기세 좋게 개각안을 짜 밀어붙이려다가, 당의 심각한 반발기류에 두 손 두 발 다 든 경우입니다. 자신들이 내세운 ‘일 중심’은커녕, 내각조차 겉도는 레임덕을 맞을 게 뻔합니다. 두고 보십시오. 관료 출신들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동물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불변의 진리입니다. 현재 청와대가 그걸 모를 리 없습니다.한마디로 ‘레임덕 개각’입니다. 그런 개각의 여진을 최소화 하거나 줄이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발표시점을 잡은 게 금요일 저녁입니다. 금요일 밤에 개각 명단이 발표되는 진풍경이 펼쳐진 건 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대개 의미 있거나 중요한 발표는 피하는 법입니다. 토, 일요일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정부에 불리한 뉴스는 금요일에 발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말 연휴 분위기로 인해 금요일 저녁 TV 뉴스와 토요일 조간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번도 마찬가지입니다. 잔머리가 뻔히 보입니다.지금까지 이명박 정부는 금요일, 혹은 연휴 직전에 네거티브 이슈를 발표하는 잔머리 홍보를 자주 해왔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이 농협 전산망 마비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건 어린이날과 징검다리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국무총리실이 ‘상하이 스캔들’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그간 제기됐던 의혹의 대부분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덮은 날도 금요일입니다. 몰매를 맞을 게 뻔한 이명박 정권 낙하산 인사 발표도 모두 그런 식입니다. 언뜻 기억나는 것만 꼽아도, △취임 10개월밖에 안 된 전임 총재를 밀어내고 정부 입김이 작용한 낙하산 인사로 부임한 유종하 적십자사 총재 △공안통으로 유명한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낙하산 임명 발표된 것도 모두 금요일이었습니다. △한국농촌공사 사장(홍문표 전 한나라당 의원) △마사회장(김광원 전 한나라당 의원) 인사 발표는 추석 연휴 전날입니다. 그때에도 조간신문의 1판 마감시간이 지난 저녁 6시쯤에야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돌렸습니다.눈 가리고 아웅이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입니다. 그런데도 다 익숙한 모양입니다. 다들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갑니다.좋은 습관이야 익숙해지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몰상식 말장난 잔머리 같은 것에 우리 사회가 익숙해지면 국민과 사회만 골병들 게 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