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형 양숙(張提刑 暘叔)에게 보낸 답장 1-1
答 張提刑 暘叔
老居士의 所作所爲冥與道合호대 但未能得㘞地一下耳라 若日用應緣에 不失故步하면 雖未得㘞地一下나 臘月三十日에 閻家老子가 亦須拱手歸降이온 况一念相應耶아 妙喜老漢이 雖未目擊이나 觀其行事컨대 小大折中하야 無過不及하니 只此便是라 道所合處라 到遮裡하야 不用作塵勞想하며 亦不用作佛法想이어다 佛法塵勞가 都是外事라 然이나 亦不得作外事想이어다
노 거사께서 하시는 바가 모두 가만히 도에 계합합니다. 다만 아직 “와”하고 한번 소리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뿐입니다. 만약 일상에서 인연을 만나는 곳에서 옛 걸음을 잃지 아니하면 비록 아직은 “와”하고 한번 소리치는 것을 얻지 못했으나 납월 삼십일에 염가노자가 또한 모름지기 손을 맞잡고 항복할 것입니다. 하물며 한 생각이 상응하는 것이겠습니까?
묘희(妙喜) 늙은이가 비록 아직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 살아가는 모습[行事]을 관찰하여보니 작고 큰 것이 알맞아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니 다만 이것이 곧 그것입니다. 바로 도와 합하는 곳입니다. 여기에 이르러서 진로(塵勞)라는 생각도 하지 말며 또한 불법이라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불법과 진로가 모두 바깥의 일입니다. 그러나 또한 바깥의 일이라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강설 : 불교적인 삶이란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깨달았다하더라도 일상적인 생활이 불교적이지 못할 경우도 있다. 이 편지의 주인은 마지막 깨달음은 아직 얻지 못했으나 일상사가 도에 전혀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더라도 염라대왕에게 끌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칭찬을 하고 있다. 진실로 불교적인 삶이란 먼저 지혜가 명철하고 그 명철한 지혜에 자비를 더하여 자신의 생활과 이웃에 잘 회향하는 삶이어야 한다. 회향에는 반드시 불교적 깨달음과 물질적 배려가 함께 병행해야 한다. 만약 진정으로 그렇게만 산다면 달리 불법이니 진로니 분별해서 생각할 것이 없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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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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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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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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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狀 201 - 張提刑 暘叔에게 보낸 答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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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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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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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진로가 모두 바깥의 일입니다. 그러나 또한 바깥의 일이라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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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진실로 불교적인 삶이란 먼저 지혜가 명철하고 그 명철한 지혜에 자비를 더하여 자신의 생활과 이웃에 잘 회향(불교적 깨달음과 물질적 배려가 함께 병행해야)하는 삶이어야 한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_()()()_
但未能得㘞地一下耳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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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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