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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옥에서 문하면 <이리 오너라!> 외쳐대는 고대광실 솟을대문을 떠 올린다. 그런가 하면 문은 구색으로만 달아 놓았을 뿐, 언제나 닫힌 듯 열려있는 우리 시골 마을 사립문도 있고 문은 문이로되 아예 문이 없는 일주문도 있다. 큰 대문이 있는가 하면 작은 편문이 있다. 문은 경계에 서 있다. 안과 밖, 속과 성, 등용과 고배의 문도 있다. 사도행전의 <미문(美門)>은 선천성 앉은뱅이로 구걸로만 살아 온 한 인간이 새 생명을 얻은 구원의 문이기도 하다. 지옥의 문이 있는가 하면 천국의 문이 있다. 베를린 장벽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그의 통일의 문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분단의 그늘에 가린 비극의 판문(점)도 있다. 현실의 문도 있지만 마음의 문도 있다. 너와 나를 가르는 마음의 문이야 말로 아무에게나 열기도 열리기도 힘든 차가운 철옹성의 문이기도 하다가 때로는 사랑이라는 묘약에 도취되어 스스로 허물어져 열리고 마는 마법의 문이기도 하다. 참 그렇지 또 하나의 문, 지구촌을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달궈 내, 희비 쌍곡선의 운명을 가를 골문이 있었구나.
2
기둥ㆍ보ㆍ도리로 건물의 뼈대를 완성하고 지붕을 이으면, 그 다음에 벽을 치고 건물 내부 공간을 꾸미는 일에 들어간다. 이를 일러 수장 드린다고 말한다. 건물 안에 사람들이 출입하고, 공기가 소통되며, 빛이 비치게 하려면 벽에 문을 달거나 창을 낸다. 한옥에서 건물에 달리는 문과 창은 그 크기와 모양을 비롯하여 개폐방식이 비슷하여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용도상으로 구분하자면 문은 주로 사람의 출입을 위한 것이고 창은 환기와 채광을 위한 것이다. 한옥 한 채에 들어가는 문과 창은 그 수나 종류가 다양하며 비록 같은 무늬로 살대를 꾸몄다 해도 문이냐 창이냐에 따라 구조가 달라진다.
한옥은 별다른 치장이 없는 건물이어서 외모가 단순하면서도 조촐하지만 막상 문과 창을 보면 변화 있고 다채롭다. 집을 지을 때, 건물 뼈대를 세우는 일은 대목의 몫이지만, 창호를 짜는 일은 소목이 맡는다. 가구를 만드는 목수를 소목장이, 또는 줄여서 소목이라 한다. 대목은 일이 좀 거칠어도 묻힐 수가 있으나 소목은 섬세한 솜씨가 있어야 한다.
한옥에서 뼈대가 잘 맞춰져야 집 모양새가 제대로 나오지만, 창호가 이뤄 내는 멋과 조화의 아름다움도 매우 크다. 토담집일 경우는 흙벽이 힘을 받는 탓에 창호를 크게 낼 수 없으나, 목조로 뼈대를 만든 한옥은 정면의 거의 전부가 벽 없이 창호로 이뤄진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옥의 창호는 건물의 표정을 드러내는 얼굴과 같다. 문짝이 달린 부분을 문얼굴이라고 하는 것도 창호가 얼굴 구실을 하기 때문이리라. 창호는 여닫는 방식에 따라 여닫이창(문) 미서기 창(문) 미닫이창(문) 들창 분합문 등 이 있다. 여닫이는 밀거나 당겨서 한쪽으로만 여닫는 창호를 말하는데, 한 편에 돌쩌귀나 지도리를 달아 놓았다. 미서기는 창호 두 짝이나 네 짝을 서로 좌우 옆으로 스치고 지나가며 여닫는다. 미닫이는 창호를 한쪽 옆으로 밀어서 여닫고, 들창은 밖으로 들어 올려 여는 창이다.
분합은 보통 대청마루와 방 사이 또는 대청마루 전면의 문에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다. 분합문짝의 수는 한 칸에 두 짝 세 짝 네 짝 여섯 짝 등으로 다양하다. 분합문은 평소에는 여닫이로 쓰다가 필요할 때면 돌쩌귀라고 할 수 있는 비녀장을 문 위에 달아 문짝 전체를 하나로 들어 걸 수 있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합문을 <들어열개 창> <들어열개 문>, 한문으로는 조문(弔門)이라고도 하고 거문(擧門)이라고도 한다. <거문>이라는 말뜻은 말 그대로 들어 올린다는 의미이겠는데 다른 말로 <조문>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초상을 치를 때면 분합문을 들어 올리는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들어열개 구조는 한옥이 갖는 매우 특징적인 문의 하나이다. 주로 대청과 방사이나 대청 전면에 달아 평소에는 칸막이구실을 한다. 여름철이나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에는 문 전체를 들어 올려서 서까래에 배목을 박아 건 걸쇠 또는 등자쇠라고 하는 달대에 달아매 방과 마루를 하나의 공간으로 쓸 수 있게 한다. 칸막이로 사용하던 문짝을 열거나 떼거나 들어 올리면 안방 대청 건너 방의 넓은 공간을 하나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분합문을 들어열개로 이용해 공간 확장의 극대화를 꾀한 대표적인 우리 건축물로 경회루를 들 수 있다. 경회루는 정면 112척에 7칸 측면 93척에 5칸의 웅장한 누각인데 2층 전부가 마루구조이다. 측면을 기준으로 난간이 자리 한 퇴칸 마루가 제일 낮고 양 협칸 부분 마루가 한 단 높고 가운데 어칸 마루가 제일 높게 3단으로 되어 있다. 어칸 중앙 부분이 제일 높은 자리이다. 이런 특이한 3단 마루라는 층단 구조는 군신간의 연회나 외국의 귀한 사신을 맞이한 연회에서 오늘로 치면 <헤드테이블자리>를 제일 높은 어칸에 두고 차례로 단을 낮춰 넓은 내부공간에서의 상호 시각차단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루 밖의 경관을 어느 자리에서도 막힘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한 뛰어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는 문을 닫아 두었다가 필요하면 매 칸마다 좌우로 반씩 문짝을 열어 젖혀 가장자리 문에 접어 얹고 다시 그것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루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터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필요에 따라서 좁게, 또 넓게 공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구조하는 것이 건축가들의 소망이라면 이 방식이야 말로 최상의 경지라 할 만 하다. 이런 유의 건축물은 같은 동양권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정확한 기록이나 유구는 없지만 신라의 안압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임해전>이나 백제의 왕궁에 축조했다는 <임류각>도 이런 들어열개 방식의 아름다운 분합문이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 본다.
3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의관을 깨끗이 차려 입은 이목구비가 준수한 한 선비가 점쟁이 앞에 앉아 점을 보는 광경을 목격했다. 호기심이 동한 이성계가 다가가 남 점보는 구경을 한다. 선비가 문자 책을 이리저리 넘기다가 이내 물을 문 <問>자를 짚는다. 선비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점쟁이 이르기를 “송구스런 말씀이오나 <問>자라 함은 남의 집 문(門)앞에 있는 입(口) 형국이니 선비께서는 평생 문전걸식할 팔잡니다. 더는 보고 말 것이 없는 팔자이니 이만 돌아가시지요”라고 하는 것이다. 선비가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한다. “조상은 만 석궁 부귀를 누렸으나 어느 대부터 집안이 망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혈혈단신 문전걸식으로 연명하고 있는 거지 신세이나 언젠가는 팔자가 펴리라 생각하고 없는 형편에 선비처럼 변색을 하고 점이나 한번 보려고 찾아왔는데 내 팔자가 그러하다니 어찌 할꼬”하면서 자리를 뜬다.
이성계가 용한 점쟁이를 시험할 요량으로 “내 점도 한번 봐 달라”고 자신의 점을 청한다. 점쟁이가 자를 고르라고 하자 이성계 하는 짓이 짐짓 이리저리 글자를 고르는 척하다가 아까 선비가 골랐던 물을 문(問) 바로 그자를 골랐겠다. 점쟁이가 이성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일어나더니 이성계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성계가 영문을 몰라 연유를 물었다. “아니 어찌하여 내게 큰절을 하신단 말인가?" 점쟁이가 정색을 하고 이성계의 귀를 빌렸다. “선비님! 천기를 누설하지 마십시오. 선비님은 머지않아 이 나라의 군왕이 되실 팔자시요.” “아니 아까 선비도 같은 자를 뽑았는데 어찌하려고 내게 그런 역모될 말을 함부로 하는가?” “<問>이라는 자는 좌로 봐도 임금 君이요 우로 봐도 임금 君이온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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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같이 보려고 가져갑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