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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루루루~코로로로~"
마음 속까지 흔들어 대는 '습지의 신'
두루미들의 합창소리를 들어보세요!
60년 전 DMZ로 시간여행
"뚜르르르르르 … 뚜르르르르르…"
낮고, 부드러우며, 가슴을 울려주는 두루미들의 합창소리가 민통선 내의 정적을 깨고 임진강 평화습지원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적과 소음이 끊어진 곳에서 허리가 분단된 민족의 아픔이라도 달래주려는 것일까?
두루미들의 울음소리는 구슬프다 못해 마음의 파동까지 송두리째 흔들어 주는 어떤 알 수 없는 공명(共鳴)이 느껴진다. 가늘고 긴 다리로 빙판을 딛고, 긴 목을 빼들고 흰 날개를 퍼덕이며 '뚜르르르~' 소리를 내는 두루미의 자태는 아름답다 못해 고귀하게만 보인다.
연천군 중면 삼곳리 민간인통제구역 초소를 지나면 전쟁으로 부서진 다리가 보이고, 남과 북을 갈라놓은 임진강에는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고요한 정적이 감돈다. 시간마저 멈춰버린 적막강산은 방문객을 60년 전으로 훌쩍 되돌려 놓고 만다. 겨울의 진객 두루미를 찾아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DMZ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953년 7월 27일 월요일 오전,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포화가 들끓던 전선이 고요해졌다. 휴전! 전쟁이 끝난 것이다. 남과 북의 군대는 마주 하던 전선에서 즉각 2km씩 후퇴를 하며 그 공간에 155마일에 달하는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DMZ 후방 5~20km 밖에는 민간인 통제선(Civilian Control Line)이란 민간인 통제구역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흘러온 60년의 세월! 우리의 귀하신 손님인 수백마리의 두루미들은 바로 그 DMZ 접경지역과 민통선을 해마다 찾아아 서식을 하고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천혜의 오지에만 두루미들이 서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상에 단 2900여 마리 밖에 없다는 귀하신 존재인 두루미들은 저 멀고먼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 습지나 자연보호구 등지에서 번식을 하다가 겨울이 오면 먹이를 찾아 이곳 DMZ 접경 연천, 철원, 임진강, 한강 하구 등지로 날아온다.
그 중에서도 민통선 접경 철원평야와 연천 임진강 평화습지원은 두루미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겨울 낙원이다. 특히 북한땅에서 흘러내려오는 임진강변에 조성된 평화습지원 일원은 두루미들을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평생을 두루미 연구에 바친 세계적인 두루미 연구가 죠지 아치볼드 박사도 이곳 DMZ 두루미 서식지를 방문하고 나서,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생태계에 두루미들이 서식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타임지는 아시아에서 가보야 할 25곳(25 Authentic Asian Experiences) 중에서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DMZ를 '냉전의 역사 속으로 가는 발걸음(Step into Living Cold War History)'이라고 하며 15번째로 선정하고 있다. 이제 DMZ는 민족 분단의 아픔을 넘어 세계적인 생태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두루미들의 낙원 ' 임진강 평화습지원'
눈이 하얗게 덮여있는 적막강산에 보이는 것은 오직 두루미들뿐이다. 간간히 다른 새들과 고라니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가장 눈에 많이 띠는 것은 역시 두루미다. 운이 좋았다!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이지만 두루미를 발견한 순간 가슴이 뛰었다. 나는 무려 3일 동안이나 두루미들에게 푹 빠져 이곳을 찾고 있었다.
지난 1월 5일 15시 45분, 현재 육안으로 관찰한 두루미 개체 수를 천천히 세워보니 거의 200여 마리나 되었다. 이렇게 많은 두루미를 보기는 처음이다. 새해에 장수와 행운의 상징인 두루미 무리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상에 확대하여 펼쳐놓고 바를 정(正)자를 그려가며 다시 수를 정확히 헤아려보니 무려 215마리나 되었다.
두루미 71마리, 재두루미 144 마리 관찰(1월 5일)
카메라 성능이 별로 좋지 않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식별 할 수 있었다. 부서진 다리를 중심으로 임진강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루미는 총 149마리인데 그중에 재두루미가 142마리, 두루미가 7마리로 관측되었다. 꽁꽁 언 강 속에 노닐고 있는 두루미들은 주로 재두루미이다. 새 도감을 찾아보니 재두루미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고 있다.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는 암수 동일하며 눈 둘레는 빨갛고 그 주위는 검으며 뒷머리·턱밑·뒷목은 희다. 앞목·가슴·등·배는 짙은 회색이고, 날개의 앞쪽은 엷은 회색이다. 몸길이는 약 127cm이다. 겨울에 암수와 어린 새 2마리 정도의 가족무리가 모여 50~300마리의 무리를 형성한다. 어류·갑각류·벼·식물의 뿌리 등을 즐겨 먹는다.(윤무부 저 한국의 새에서)
임진강 건너 습지에는 총 66마리의 두루미가 관찰되었는데, 그 중에 64마리가 두루미이고, 재두루미는 2마리뿐이었다. 이 사실만 보아도 재두루미와 두루미가 따로따로 무리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의 머리 꼭대기는 붉고 턱밑·목·날개의 뒤쪽은 검은색이며, 몸통의 나머지는 흰색이다. 다리는 검고 부리는 황갈색이다. 몸길이는 약 140~150cm이며, 날개를 펴면 넓이가 220~240cm이다. 휴전선 중서부 철원, 연천 등으로 찾아오는 드문 겨울철새로 가족군을 이루고 민물고기나 잠자리·메뚜기·개구리 등을 주로 먹는다.(윤무부, 한국의 새에서)
머리에 붉은 관을 쓴 '장수와 행운의 신선'
두루미는 머리 정수리에 붉은 관을 쓰고 있다. 이 단정(丹頂)은 두루미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줄어들거나 커진다고 한다. 두루미의 영문이름도 단정을 의미하는 'Red-crowned Crane'(머리에 붉은 관을 쓴 두루미)이라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단정학(丹頂鶴-머리 정수리가 붉은 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두루미'라는 이름은 '뚜루루루~ 뚜루루루~' 하고 울어대는 소리에서 붙여졌다고 한다.두루미의 전형적인 울음소리는 기관의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어릴 때는 목으로 연결되는 관이 짧고 가늘어 "피잇, 피잇(Peep, Peep)하고 울다가, 1년이 지나면 관도 길어지고 굵어지며 "뚜르르르~ 뚜르르르~" 하고 길고 굵은 소리가 바뀐다고 한다.
임진강 평화습지원에는 두루미들의 열창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목관악기를 연주하듯 고요한 임진강변에 길게 여음을 남기며 연주회를 열고 있었다. "뚜르르르~" 굵은 바리톤 음성을 내는 녀석은 수놈일까? "코로로로~"하고 메조소프라노 소리로 맞받아치는 녀석은 암놈이겠지.
조류학자 원병호 교수에 의하면 두루미가 과시행동을 할 때는 "큐웃, 큐루루루, 코로로, 코로로, 키로로" 또는 "쿠쿠쿠쿠쿠루루~…쿠루루~ 하고 운다고 한다. 일제히 울 때는 "가~오우, 가~오우"하고 시끄럽게 운다고 한다.
▲머리 정점에 붉은 관을 쓰고 있는 두루미와 두루미의 긴 기관
(자료 : 국제두루미네트워크)
멀리서 들어도 두루미 울음소리는 다른 새들과 확연히 구분이 된다. 참새나 박새, 까치소리처럼 경박하지도 않고, 촐랑거리지도 않는 소리다. 두루미가 우는 소리는 부드러운 목관악기 소리처럼 들어도 영 싫증이 나지 않는 소리다. 마치 바순이나, 오보에, 플르트 등 목관악기의 우아한 실내악 연주를 듣는 것처럼 감미로운 느낌이 든다.
슬픈 자에게는 슬픈을 달래주고, 한이 맺힌 자에게는 한을 풀어주며, 기쁜 자에게는 축복을 주는 소리랄까? 어찌 들으면 산천초목도 울 것 같고, 또 어찌 들으면 하늘을 찌르는 분노도 고요하게 재워줄 것만 같은 차분함이 깔려있다. 두루미는 중국에서는 학(鶴)이라고 하는데 시인 서정주는 두루미 울음소리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천년 맺힌 시름을/출렁이는 물살도 없이/고운 강물이 흐르듯/학이 난다/천년을 보던 눈이/천년을 파닥거리던 날개가/또 한 번 천애에 맞부딪치누나/산 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초목도 울어야 할 설움이/저리도 조용히 흐르는 구나(서정주, '학')
몸 길이의 반이나 되는 긴 다리를 얼음판에 딛고 걸어가는 두루미를 바라보노라면 영락없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걸어가는 지조 깊은 선비의 모습이 연상된다. 아니 선비들이 두루미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긴 다리와 긴 목은 습지에서 사는 데 아주 유리하다. 먹이를 먹으면서도 촐랑거리지 않는 우아한 자태는 배가 고프면서도 고픈 채를 하지 않는 굳은 절개를 지닌 선비기질을 보는 듯하다.
두루미는 장수·신성함·부부애·행복·행운 등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것만 취하여 몸을 보양하고 사기가 없어 예부터 두루미는 장수한다고 여겨왔으며, 신성사상의 십장생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어왔다. 천 년이 지나면 흰색의 학이 푸른색으로 변해 청학(靑鶴)이 되고, 이천년이 지나면 검은 색으로 변해 현학(玄鶴)이 되어 불사조가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두루미의 수명은 30년~8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순백색의 몸빛과 머리꼭대기 붉은 정점에서 오는 감각적 특성은 세속과는 다른 초연한 기품을 떠올리게 하며, 흰색과 검은 색의 배합에서 오는 고고함과 신성함을 호의현상(縞衣玄裳-소동파의 적벽부에서 나온 말로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라는 의미)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그만큼 두루미를 고결한 영물로 취급해 왔다.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 살아'...
두루미는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일생동안 일부일처를 유지하며 산다. 한번 맺은 짝은 평생을 함께하며, 한쪽이 상실을 하면 홀로 살아가며 고결하게 절개를 지킨다고 한다.
두루미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다른 두루미에게 다가섰다. 짝을 찾기 위해 구애를 하는 것일까? 두루미는 짝짓기를 할 때 여러 가지로 구애의 춤을 춘다고 한다. 서로 절하기, 머리 숙이고 다가서기, 날개 펄럭이기, 머리 숙이기, 점프하기 등… 두루미들의 춤은 아무리 보아도 경박하지 않고 우아하게 보인다.
석양이 질 무렵 두루미들이 무리를 지어 북쪽을 향해 비무장지대 깊숙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두루미는 주로 물로 둘러싸인 습지를 좋아 한다. 천적이나 다른 동물들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여울이나 물로 둘러싸인 안전한 습지 한가운데서 둥지를 틀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두루미들이 보다 안전한 지역으로 잠을 자러 가는 겁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도 잠을 잤는데, 군남댐홍수조절지가 생긴 뒤로부터는 강물이 불고 얼어서 여울과 습지가 없어져버려 더 안전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지요."
자연그대로의 두루미 서식지를 보호해야...
마침 두루미 생태관찰대에서 박종학 한국두루미네트워크 이사를 만났다. 박종학 씨는 군남댐홍수조절지가 생기기전에는 두루미들이 이 지역에서 둥지를 틀고 서식을 했는데 댐 수위가 높아져 가면서 두루미들의 서식지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두루미들은 20~30마리씩 무리를 지어 필승교 쪽으로 날아가더니 이윽고 삼곶리 임진강 주변에는 두루미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곳 평화습지원은 연천군 중면 접경지일대에 4만8800㎡(약 15000여 평)규모를 조성하여 지난해 10월 31일 날 개장, 민간인도 두루미를 관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군남댐 건설로 두루미서식지가 수몰되자 대체서식지로 평화습지원을 조성한 것이다. 생태연못 14개소, 관찰로 2km, 관찰대 1개소를 설치하고, 생태해설사를 상시 배치하고, 먹이주기 등 습지체험을 하며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다. 자연적인 서식지에는 못 미치지만 그나마 두루미들을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10월 하순경부터 두루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이듬해 3월경까지 월동을 하다가 다시 고향인 아무르 강 등 시베리아 지역으로 날아간다. 두루미들이 서식하는 습지원은 두루미들을 위한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이곳 평화습지원도 세간에 알려지면서 점차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두루미 촬영을 하기 위해 무분별한 접근 행위나 소음은 극려 억제해야 한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1일 관람객수를 시간별로 제한을 할 필요가 있다.
☞임진강 평화습지원 가는 길 및 출입안내
-찾아가는 길 :승용차를 이용하여 국도 3선을 따라 연천읍을 거쳐 78번 지방도를 이용해 태풍전망대이정표를 따라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은 어렵다.
-연락처 : 임진강 평화습지원 현장 031-834-6946, 연천군 문화관광과 031-839-2061
-주 소 :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186번지 일원
-출입방법 : 삼곶리 민통선초소출입-신분증 제시-출입
-출입시간 : 10:00~16:00
-준수사항 : 출입 후 초소의 안내에 따라 행동하고, 개별행동은 삼가해야 한다.
-신분증지참 : 임진강 평화습지원은 민통선 안에 위치하여 방문시 신분증이 필요하므로, 방문자는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하여야 한다.
-두루미 생태관찰대
삼곶리초소에서 승용차로 5분 인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두루미를 관찰하며 사진을 촬영하기에 가장좋은 장소다. 주 소 :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삼곶리 군남홍수조절지 상류 민통선 내
첫댓글 고요함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찰라님 새박사 되셨군요. 두루미의 붉은 관이 마치 주교님이 쓴 붉은 모자처럼 보이네요. 분단선이 없이 맘대로 날아다니는 두루미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ㅋ ㅋ 새박사 윤무부 교수님께서 몸이 불편하시더군요 쾌유를 기원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두루미는 정말 멋진 새예요? 주교님잘모셔야죠^^
찰라님의 카메라속에 담긴 풍경들이 점점
높은 작품사진이 되여가고 있네요..
아프리카에서 의사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적부터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면서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이해하던 사진작가의 성함이 생각이 나지않지만
아프리카원주민의 생활상을 카메라렌즈에 담아가던 그분의
사진작품처럼 아름답습니다...!!
추운 겨울에 잘 계시지요!
새들과 함께 하는 저의 생활은 춥지가 않습니다.
건강하세요~
아름다운 장소들이 찰라님에 의해 발굴되고 알려지는군요. 어디에 가시건 계신 곳의 아름다움을 전하시는 찰라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이 한편의 글을 쓰기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셨을텐데 이렇게 편하게 정보를 접하니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