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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추석연휴가 끝나가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저희의 예상과는 달리 많은 분들께서 서울지역 공부방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지난 7월에 100여분 가량이 오신데 이어 이번에도 연휴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이 거의 찰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신 것입니다.
한 시간에 걸쳐 공부방에 오시는 분들의 자기소개를 들어보았는데, 자식세대로의 세대교체에 공감하시고 이를 위해 무언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생각에서 오시는 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처음 오신 분들도 많지만 열성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서울지역 공부방도 응집력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그저 새로운 경제 이야기나 들어보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자식세대를 위해 정말로 무언가 해보려고 하시는 분들이 참여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머지 않아 서울지역 공부방은 자식세대로의 세대교체를 선도해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번 공부방에서는 한국의 고용구조 문제에 관해 강연을 했습니다만 그에 앞서 양심과 도덕의 문제에 대해 한 말씀 드렸습니다. 이에 고용구조 문제에 관해서는 강연장에서의 설명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지식인의 양심과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에 대해 한 말씀 드려보기로 하겠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 민간연구기관으로서 국내에서는 많은 분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세계 20여개 국에서 저희 연구소의 <경제시평>을 구독하고 있을 정도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 연구소의 책임자로서 일하는 저 역시 제가 원하든 원치 않든 지식인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런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히 저는 대학생 시절을 포함하여 연구하는 일을 제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 지난 30년 동안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 비해 하나라도 더 많이 배우고 연구하며 문제해결의 대안들을 고민해오고 있으니 보통사람들에 비해서는 세상 경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한두 가지라도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두 가지 더 많이 안다는 것 또는 지식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끔씩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런 생각들을 통해 지식과 지식인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흔히들 책 속에 담겨 있는 것을 지식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현실 세상에는 훌륭한 지식을 담은 책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온갖 잡서들이 더 많이 넘쳐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설명의 편의상 이 세상에는 단 한 권의 책밖에 없으며 그 책 속에 담겨있는 내용은 모두 오류가 없는 진짜 지식(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처럼 과학적 사고와 논리에 입각한 지식으로 한정)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지식이 책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 책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똑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똑 같은 지식을 지닌 지식인들의 주장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심지어는 정 반대의 주장과 행동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예컨대 이수일과
여기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 자체에 대한 인식 또는 정의가 잘못된 경우와, 둘째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한 가지로 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진짜로 지식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앞서의 단 한 권뿐인 책 속에 담긴 내용만이 정말로 유일한 지식이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그 지식을 접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지식인이 되어야 합니다. 책이 단 한 권뿐이듯이 지식인도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는 전혀 현실성도 설득력도 없는 말입니다. 모든 지식인들이 그저 컴퓨터의 메모리와 같이 기계적인 암기적 지식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지식인과 책이 구별이 안됩니다. 굳이 지식인이 필요 없게 됩니다.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책을 찾아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란 단지 책 속에 들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 책을 본 사람의 이해력과 통찰력에 의해 파생되는 창의적 지식(creative knowledge)까지를 포함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지식이란 공부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계속 쌓이고 축적되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책 속에 담겨 있는 지식은 앞서 진짜 지식으로 가정하였는데 진짜 지식이란 달리 말하면 현시점에서 ‘검증된 지식(tested knowledge)’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진짜 지식이라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까지로 국한되며 앞으로도 계속 진짜 지식으로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으며, ‘검증’을 통해서 진짜 지식임을 확인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모순된 말이기는 하지만 진짜 지식이란 항상 변할 수 있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진짜 지식이 항상 불안전하고 불안정한 것은 지식인의 이해력과 통찰력에 의해 2차적으로 파생되는 창의적 지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인의 창의적 파생지식이야말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검증된 지식 못지 않게 살아있는 지식 즉 이해력과 통찰력을 지닌 지식인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지식이 제대로 발전하고 있느냐 못하느냐는 단순히 양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많으냐 적으냐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대학을 간다고 해서 또는 모두가 다 무조건 공부를 한다고 해서 지식이 발전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는 한 나라의 학문적 수준이나 지식 수준은 단지 지식인이라는 간판을 붙인 사람 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력과 통찰력을 갖춘 창의적 지식인의 수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지식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간판을 붙인 사람들은 넘쳐나지만 창의적 지식인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창의적 지식이 책 속의 지식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치열하고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책 속의 지식이란 창의적 지식들이 치열한 공개적 검증과정을 거쳐 쌓인 축적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지식을 얻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지식인은 항상 검증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인이 검증을 두려워한다면 더 이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식은 지식인을 통해 끊임없이 창조적 생성 발전을 하지만 역으로 지식인은 끊임없이 검증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1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조그만 저희 연구소와 제가 전문지식기관으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많은 국민들로부터 높이 평가 받고 있는 것은 단지 책의 내용을 암기해서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책 속의 내용에 대한 이해력과 통찰력을 통해 파생되는 창의적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제시평>아니 저희 연구소의 발간서적들을 보시면 얼마든지 그런 창의적 지식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나 저만이 몰래 감춰두고 보는 마법의 책은 결코 없습니다. 경제분석 보고서를 내는 곳이 대한민국에 어찌 저희 연구소뿐이겠습니까? 국책연구기관이나 재벌연구소, 국내외 금융기관 등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기관이나 전문가 등 지식인 등 수천명이 저희 연구소의 <경제시평> 등 자료를 구독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외국의 유명 씽크탱크기관마저도 저희 연구소의 보고서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10년 전 연구소를 창립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미 넘칠 정도로 공개적으로 검증을 받아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똑 같은 책을 본 두 사람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경우는 두 사람의 양심의 차이에 기인할 수 있습니다. 또다시 설명의 편의를 위해 두 사람 모두 다 똑 같은 수준의 이해력과 통찰력을 지닌 지식인이며 심지어는 가치관도 같다고 합시다. 즉 두 사람은 양심을 제외한 나머지가 유전적으로 동일한 복제품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런 두 사람이 같은 책을 보고 서로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은 분명 둘 중에 한 사람은 책의 내용이나 그로부터 파생되는 창의적 지식과는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거짓말을 할까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의 문제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심(良心)이란 말 그대로 선량한 마음을 말합니다. 선량한 마음은 맹자의 말씀처럼 사람의 타고난 본심(本心)에서 저절로 발로되는 것입니다. 측은해하는 마음(測隱之心),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본심인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어질고 자비로운 인(仁)이 발현되며, 부끄럽고 미운 마음으로부터 정의(定義)를 행하게 되고, 겸손한 마음으로부터 예의(禮儀)가 표출되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으로부터 지혜(智慧)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이 양심 즉 네 가지 본심에 따라 인·의·예·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네 가지 본심은 모든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러나 이 네 가지 본심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의·예·지를 행할 용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반인들조차도 이러하거늘 항차 일반인들보다 한두 가지 더 많이 알고 있는 지식인의 경우에는 양심적 행동이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지식인이 더 많이 알고 있는 자신의 지식에 따라 양심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용기와 노력이 요구됩니다.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는 것이 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지식인들에게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특별히 더 많은 양심적 행동이 요구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식이 속성상 무형의 ‘힘 또는 ‘권력(power)’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많은 지식인일수록 더욱 유명해지고 영향력이 커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지식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을 참고 삼아 선택하고 의사결정하며 행동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니까요. 유명해지고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 바로 그것이 곧 힘이요 권력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힘이나 권력은 금력이나 제도화된 권력만이 다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비제도화된 무형의 힘과 권력도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 포럼에 오시는 분들이나 전국 각지의 공부방 모임에 오시는 분들이 저희 연구소가 재벌처럼 돈이 많기 때문이라든지 제가 대통령이나 힘있는 정치인이거나 유명 연예인이라서 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저희 연구소가 발신하는 지식과 정보에 공감하시고 신뢰하셔서 자발적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연구소나 저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무형의 힘과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만 이미 21세기는 제도화된 힘이나 권력보다는 무형의 힘과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20세기는 산업자본을 바탕으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장관 등 제도화된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였다고 한다면 21세기는 지식정보 발신력을 지닌 저희 연구소와 같은 전문지식 창출기관이 힘과 권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21세기는 지식정보화 시대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지식과 정부가 힘의 원천이며 권력의 근원이 되지 못한다면 굳이 지식정보화 시대라고 부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세상은 컴퓨터와 인터넷 등 정보통신 혁명을 통해 그렇게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미 2003년 대선과 총선 때부터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누구든 인터넷 상의 네티즌들의 여론과 움직임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근대사를 돌이켜볼 때마다 통렬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이른바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양심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한국의 근대사는 조선 말엽 외척들의 부패탐학 정치, 일제 식민지배, 한국전쟁과 냉전 속의 분단 독재정권, 민주화 이후의 무능과 정경관언사법 유착의 부도덕한 기득권 세력들에 휘둘리고 얼룩져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대화 과정 속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양심에 반하여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해오면서 기득권에 편입해온 반면, 힘없는 일반국민들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오로지 머슴처럼 살아오는 삶을 강요당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욱 첨예화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미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로 접어들어 대부분 일반국민들의 삶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지식정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21세기형의 무형의 힘과 권력을 부여 받은 지식인들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로 들어서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지식인들이 비양심적인 행동을 한다면 일반국민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들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지식인들의 양심적인 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연구소나 제가 잘나서 나서려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전문지식기관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자식세대들을 위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만일 강력한 무형의 힘과 권력을 지닌 저희 연구소나 제가 사적 이익에 눈이 어두워 지식인으로서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국가와 국민들 그리고 자식세대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와 상처를 주겠습니까? 상상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제, 도덕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유학적 의미의 도덕보다는 근대국가적 의미의 도덕에 국한하기로 하겠습니다.
양심과는 달리 도덕(道德)이란 태어난 순간부터 후천적으로 배우고 쌓고 길러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이 개인의 본심의 발로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면 도덕은 타인에 대한 배려 또는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으로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선(勸善)이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징악(懲惡)은 도덕에 의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심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도덕이란 공동체의 규율 또는 국가의 규범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덕을 최소한으로 성문화한 것이 법(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아픈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국민 모두에게 한 표의 권리를 부여한 민주주의 사상 역시 가장 강력한 도덕적 규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도덕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덕은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덕적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합니다. 즉 도덕적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용기보다는 학습(공부)이 중요한 것입니다. 도덕은 공동체의 규율이나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에 해당합니다. 그런가 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기반을 이루기도 합니다. 따라서 도덕을 관장하는 사람은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지는 모르지만 최고 수준의 엄격한 도덕성을 필요로 합니다. 국가 질서 및 규율 즉 ‘법과 정책’을 관장하는 것은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법과 정책’ 즉 정치가 올바로 이루어지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그것을 관장하는 사람의 도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들은 철저한 도덕성 검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필수인 것입니다. 도덕성이 결여된 정치인들이 집권을 하게 되면 법과 정책이 엉망이 되게 됩니다. 즉 나라 전체의 도덕이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기득권과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를 하게 됩니다. 사람 사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본능적인 짐승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자는 이기심과 본능에 의해 지배되는 짐승의 세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의 도덕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지식정보가 곧 힘과 권력을 의미하게 되며 국가는 지식에 의해 지배되게 될 것입니다. 그 경우 다소간의 시차는 있을지언정 창의적 지식정보 발신력을 가진 지식인들이 힘과 권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진보/보수 이념 중심에서 지식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정치판도가 일대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지식과 지식인에 의해 국가와 정치가 지배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치 권력을 갖게 되는 지식인들의 양심적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일반 국민들의 삶이 평안하고 국가가 제대로 발전해가기 위해서는 지식인의 양심적 행동과 정치인의 도덕성 검증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논거에 입각하여 저희 연구소는 부모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우고 전문적 지식을 갖춘 자식세대를 중심으로 철저한 도덕성 검증을 통해 세대교체를 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혼란에 빠진 한국경제와 사회가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본 포럼과 저희 연구소는 전문적 지식과 도덕성을 갖춘 자식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목표로 행동해오고 있습니다. 올 연초부터 시작했지만 이미 전국 각지의 많은 민초들께서 참여하시고 계시며 갈수록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각계각층의 전문가 및 지식인 계층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머지 않은 시기에 국민 여러분들의 장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선택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한다면 한국은 지난 100년 동안의 근대화 과정에서 겪어 왔던 불행한 역사를 또다시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로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이 양심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자식세대로의 세대교체를 위해 한국사회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진심으로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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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검증된 지식인 양심이 있는 지식인이 나라를 경영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지식인들이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회! 쉽지 않겠지만 그런 사회가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지식인의 양심에 대하여.. 저는 특히 언론계 종사자들을 보며 개탄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소장님을 비롯한 이해력과 통찰력을 겸비한 지성인들이 좀더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사회에 일갈해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 지식은 독이 될 뿐이다.
이 시점이야말로 우리나라의 향후 장래를 결정할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중대성에대해서 직접적으로 인지하고 있지는 않지만.....대부분 사람들은 피부와 직감과 분위기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이 현 한국의 대안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혼란스럽고 거짓과 부정이 뒤덮고 있는 세상에 모두가 양심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거꾸로 가는듯한 요즘의 일상에 힘이 되는 글입니다..감사합니다.
힘, 돈, 지식 이 모두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하겠다는 생활철학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자기배만 불리는데 사용해 왔으므로 민초들이 힘을 모아 선거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양심적인 지식인이 분명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리더로서의 모습을 찾아가겠지요. 그런분들을 만들어 내기위해서 우리도 하나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분들에게 사심있는 부탁은 하지 않는일 학연 지연 이런거 배제하고 오로지 그의 뜻에 울고 웃을 수 있는 그것만을 하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깊이있는 말씀, 마니마니 배우고갑니다~~시평가입차 연구소로 전화를 드렸는데 반갑게도 소장님과 통화하여 아주마니 반가웠답니다^^..산행에서 가족들과 함께 꼭 뵙겠습니다..건강하세요^^*
현실세계에서는 양심적인 지식인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양심이 없기도 하죠.(각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좋은글 감사합니다..
선진국과의 차이는 양심과 도덕 수준차이
양심있는 지식인,도덕성을 갖춘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물질만능주의시대에서 양심있는 지식인이란 찾기 어렵죠....김광수 경제연구소 부터 시작하여, 한사람, 한사람 변화하면 언젠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양심있는 지식인들로 가득 채워 지겠죠...
퍼갑니다..
"지식은 권력과 야합한다" 는 푸코의 지적을 되짚어 봅니다.
한때 진보신당을 자처했던 바의
제가 좋아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김상봉이나 박노자.
즉 진보신당의 예를 보면
지식인이 정치적 장에서는 영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관념적 급진성이 현실적 미숙성을 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해서 그 뜻이 훌륭하심은 추호도 의심치 않으나
그 입지의 방법에 있어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사실.
또한 지식인조차 인간이라는 사실을 환기합니다.
해서 .....
양심과 정도(正道)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케 하는 소장님 말씀 가슴속깊이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슴이 뛰는 글 잘 읽었습니다. 양심이 있는 지식인에 의한 세대교체를 김광수 연구소를 통해 기대해 봅니다.
검증된 양심의 지식인도 정치판 개혁에 뛰어들면 스르르 양심이 녹아 없어지는 것을 국민들은 많이 보아왔습니다..단 누구라도 하나의 양심이 계속되길 국민은 또 바라겠지요.꼭 국민이 바라는 양심이 되길 진정 응원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길....감사합니다.
해방후 도덕과 양심을 가진 지도자가 리더로 대한미국을 출범시키지 못한 후유증을 이제 떨고 일어서려면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지도자를 선발하여 국가를 통치해햐할 듯합니다
가슴 속 깊이 새겨지는 말씀입니다...
양심은 선천적이지만, 도덕은 후천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길러진다는 말씀에 특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은 대학입학과 취직을 위한 시험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지식인이 잘못된 사회구조를 보고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것은 직무유기입니다. 또한 전국민과 사회를 오염시키는 악성바이러스임에 틀림없습니다. 지식인이 비겁해지면 그 사회는 올바르게 서지 못함을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많이 목도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그들을 공정하게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양심적인 지식인보다는 기득권층에 빌붙어 지식을 팔아서 먹고 사는 지식기사가 대부분입니다.
글을 읽고서, 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이해력과 통찰력에 의해 파생되어 나오는 2차적 창의적 지식" 에 대해 깊은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양심적인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소장님에 말씀은 앞으로 지식인으로서 성장해 나가게 될 저같은 20대에게 좋은 지침이 될만한 말인것 같습니다.
이 공간이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행동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무리 뜻이 높다해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뀔수 없겠지요.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결국은 국민을 선도하는 입장과 국민의 뜻을 헤아려 같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허망한 관념이나 구태의 반복은 혼자만의 정치가 될것입니다...
도덕과 양심....정말 우리 시대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짜가와 거짓이 판치는 세상~~부모세대의 한사람으로서 이런 사회를 우리 자식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합니까. 우리는 알고 있고 이제는 뼈를 깍는 듯한 실천 만이 해결할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식세대에 의한 세대교체가 가장 적합한 패러다임이라는 걸 그래서 공감하는 것입니다.
양심! 양심을가진 정치인,지식인, 경제인등 나라를 이끄는 리더격들이 양심과 도덕을 먼저 생각한다면 지금 세상은 전혀 다른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겠죠!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