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우호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해설입니다.
예,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 축하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기록된 날로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항상 어려운 책이었어요. 저와 여러분에게만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어떤 성경학자 어떤 신학자도 계시록이 어렵지 않다고 하는 분이 없을 정도로 계시록은 항상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을 해석한 책들과 해석했던 어떤 사람들이 있지만, 거의 일치가 안되고 또 읽어보면 확신이 안서요. 노력들은 대단히 했는데 성경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거의 좀 무리한 해석, 억지해석, 아니면 그릇된 해석, 이런 해석들이 난무 했을 뿐이고, 거의 계시록이 바르게 풀어지지 않은 채 억지책을 많이 썼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서 그런 책을 보고 만족이 안되죠.
저도 목회자로써 신학을 하고 또 목사가 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가지고 계시록을 모를 때는 항상 마음 한구석이 좀 찜찜하게 가려져 있었어요. 어쩌면 이게 성경 전체의 결론과 같은, 우리 신앙의 궁극적 소망이 되기도 하고, 성경 전체의 결론과 같은, 결론이 흐리멍텅 해버려 봐. 얼마나 참 답답하죠. 그래서 지금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목사님들이 예외 없이 계시록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요. 계시록을 모르니까. 그래서 목사님들이 다 계시록에 대해서는 묻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가서 목사님들에게 계시록 질문하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그것은 모르는 것을 물으니까 꼭 따지는 것처럼 해가지고 목사를 시험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니까.. 그래서 계시록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게 예의예요. 지금 현재까지는.. 오늘 이후로는 물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 알게 될 테니까. 여기 뭐 중학생 정도면 다 알게 될 것이고, 초등학생도 거의 보니까 알아듣는 것 같아요. 초등학생들도. 그러니까 전혀 뭐 어렵다고 그리 처음부터 주눅 들지 말고 첫 시간부터 잘 들어야 돼요. 그 동안에 요한계시록이 어려웠던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그 어려웠던 이유, 뭐 누구보다도 저에게 제일 어려웠을 테니까요. 저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권도 안빼고 가르쳐야 되는 사람이고, 그런 걸 한번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일년에 몇 번 씩 해야 되고, 설교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는 사람이 계시록 모르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러니까 제 자신에게 계시록을 알고 나서 보니까, 왜 이것이 그동안에 그렇게 어려웠었는가가 정리가 되었어요. 그 이유를 제가 한 열가지 정도 찾아서 말씀드리는데, 이건 다 해소됐습니다. 이제. 이 어려웠던 원인이 이게 대부분인데 이게 다 해소되었어요.
첫째, 요한계시록이 어려웠던 이유 중에 첫째는, 요한이 계시를 볼 때, 계시를 받을 때는 그림으로, 동영상으로 봐놓고 그림은 한 장도 안 그리고 글자로만 썼어. 이게 결정적으로 어려웠던 거예요.
두 번째, 계시록만 모르는게 아니라, 목회자나 성경학자나 성도들이나 할 것 없이 구약도 잘 모르고, 신약도 잘 모르고, 계시록만 모르는게 아니라 다른 책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다른 책을 잘 모르면 계시록은 진짜 안보여요. 어떤 면에서는, 구약과 신약이 원만하게 다 보이고 나면 거의 계시록이 보일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다른 책도 모르면서 계시록을 알겠다는 그 자체가 잘못된 거야. 다른 책을 65권까지를 성실히 공부한 사람이라야 계시록을 볼 수 있다, 아마 그런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래서 다른 성경도 잘 모르기 때문에 사실 계시록이 어려웠다 할 수 있겠죠.
세 번째, 그동안에 기독교 역사상 이런 저런 종말론들이 나왔는데, 그 종말론들이 잘못된 종말론이 만연되어 버렸어요. 우리 사회에.. 특히 한국과 미국 이런데 잘못된, 엉터리 종말론이 만연돼 가지고 이것들이 우리 눈을 가리워서, 그래서 계시록이 잘 안보였다 할 수 있어요.
네 번째, 과잉 해석, 쓸데없이 성경을 계시록을 막 과잉해석 해가지고, 이 해석이 오히려 본문을 어렵게 만들어 버립니다.
다섯 번째, 계시(啓示)라는 말과 묵시(黙示)라는 말을 혼동해서 썼어요. 혼용을. 위험합니다. 앞으로 보세요. (사람이 간식으로만 사는게 아니야. 이리 봐.)
‘계시’라는 말은 ‘열어서 확 보여준다’ 이런 뜻이고, ‘묵시’라는 것은 어딘가 은근슬쩍 가리워서 ‘아는 사람은 알게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할 목적으로 그런 문학적인 기술 방법이었어요.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할 목적이 있을 때,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쓰는 그런 문학 형식이 묵시라는 말인데, 이건 잘못된 말입니다. 계시록은 누구를 모르게 할 목적이 하나도 없어요. 전혀. 그건 계시록을 모를 때 하도 어려우니까, 아, 이건 모르는 사람을 모르게 할 목적으로 아리까리하게 일부러 썼나보다. 그런 생각을 자꾸 묵시 문학이라 그러는데 아닙니다. 전혀 요한계시록은 묵시 문학이 아니고 그냥 계시록이야. 열어서 다 보여주는 책이죠. 몰랐을 뿐이야. 우리가..
그 다음에 계시록을 보는 관점이 유연하지 못했어요. 어느 한 관점이 한쪽으로 치우친, 그런 편향된 그런 시각을 갖고 있으면 계시록뿐 아니라 아무 책도 안보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있거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이러면 안보여요. 그래서 계시록을 바라보는 관점이 유연하지 못했다. 그건 나중에 제가 말씀 드릴께요.
그 다음에 계시록은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책이다, 함부로 손댔다가 큰일난다 하고 스스로를 어렵다고 암시를 준거야. 본래도 조금 어렵지만 어른들이나 자타가 전부다 함께 계시록 함부로 손대다가 큰일 난다, 이렇게 해가지고 계시록은 뭐 아예 알려고 노력했으면 좀더 일찍 열렸을 텐데, 수많은 목사님들이 그만 아예 계시록은 그저 손 안대는 걸로 계시록 몰라도 구원에는 지장이 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서 손 안대버린 것 같아요. 차라리.
그 다음에 미지의 미래, 미래는 미지죠. 아직은. 미래니까 아직 안왔으니까. 성경에는 미래를 기록한 것인데, 미래는 미지의 세계니까 역시 어렵죠. 그래서 미지의 미래를 다루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개혁자 중에 마르틴 루터라는 아주 유명한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이 뭐라 그랬냐, 계시록을 보고 ‘요한계시록에는 이 책안에 기록된 단어 숫자만큼이나 수수께끼가 많은 책이다’ 이랬어요.
그건 노골적으로 하면 한마디도 모르겠다 그런 말이죠. 그런데 학자가 되가지고 한마디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무식하게 말하면 안돼. 학자들은 모른다는 말도 신학적으로 해야 돼. 여러분도 잘 모르겠거든 그렇게 아주 유식하게 말해야 합니다. 이 책은 이 책에 있는 단어 숫자 만큼 수수께끼가 많은 책이다. 이 안다는 말인지 모른다는 말인지 아리까리하게.. 노골적으로 하면 한마디도 모른다는 이야기고.
그리고 존 칼빈은 창세기부터 차근차근 자기 교회에서 설교를 했어요. 설교를 해가지고 요한계시록 3장까지 다 했습니다. 실제로. 한절도 안빼고. 그리고 4장 이후로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고 손을 땠어요 이 양반이. 붓을 꺾어버리고. 진짜. 아니 19장만 더 하면 계시록이 끝이 나는데, 창세기부터 거기까지 와가지고 끝내고 싶은 욕망이 누군들 없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3장까지 하고 4장에서 솔직히 모르겠다고 붓을 꺾었으니까, 여러분 그렇게 탁월한 지성을 가진 칼빈이 어렵다고 한거 보면 어렵기는 어려운 책이죠.
이런 열가지 정도가 우리를 그동안 어렵게 했던 건데, 이런 것을 다 넘어서서 이제 계시록이 열린거니까.. 사실 뭐 여러분, 지금까지 이번에는 와서 마태복음부터 여기까지 왔고, 지난 세주간 연거푸 온 분은 창세기부터 여기까지 온건데, 여러분 계시록 한권만 바로 알아가도 시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그만큼 계시록은 어렵고 혼자서는 풀지 못할 책이예요. 정말.. 저도 이 성경 연구 시작해서 꼬빡 15년 만에 계시록이 열렸으니까요.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도 말예요.. 15년 걸려서 열렸는데 이 계시록이 열리던 날의 희열과 그 기쁨이라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어떤 결혼할 때 기쁨보다 오히려 난 결혼 무덤덤하게 했는데. 우리 살아가면서 정이 깊어지고 그러는 것이지,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결혼했어요. 저는 중매결혼을 했는데 점쟁이가 중매를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결혼을 했거든요. 그래 결혼은 무덤덤하게 했는데 정말 계시록이란 것은 얼마나 알고 싶었겠소. 내가 남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나 혼자 믿는 사람이면 모르는데 남을 가르치는데 그냥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성경강좌에 계속 사람들이 오는데, 그 계시록 모를 때는 그냥 읽고 말았습니다. 읽고 하여간 예수님 오시기는 오신다 그냥. 읽고 말라고 하니까 얼마나 찜찜하겠소.
그러다가 계시록이 열렸으니까. 정말 참 그 기쁨을 말로 다 못하죠. 저는 제 일생을 살아오면서 제일 희열이 넘쳤던 날이 계시록이 뻥하고 뚫렸던 그날이예요. 이제 그보다 더 기쁜 날이 있다면 예수님 다시 만날 때 더 기쁘겠죠. 예수님 다시 만나는 거 말고는 그 때 기쁨 같은 기쁨이 또 있으리라고는 기대가 안됩니다. 그만큼 그때 저는 정말 성경 가르치는 사람 혹은 목회자 전도자로써 정말 행복한 전도자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제가 볼 땐 창세 이후로 아무도 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왜냐하면 지금까지 나온 책이 뻔하거든요. 계시록 해석 쓰라는 게 뻔하니까, 서점에 가서 한 열권 스무권 주어오면 그게 답니다. 다. 지구상에 나와 있는 요한 계시록 주석이라는 게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계시록을 중요시 하고 이건 아주 복스러운 책이야.
어쩌면 보세요. 구약 성경에서 큰 예언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오신다. 메시야가 오신다 이런 예언이야. 그런데 그건 왔지 않습니까? 복음서를 볼 때. 그리고 신약에 와서 큰 예언은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느냐 하는 걸 기록한 책이 바로 요한 계시록인데, 그걸 모르면 신약의 핵심을 놓치는 거죠. 새 언약은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언약인데, 언제 어떻게 오시는지 그걸 모르면 신약 성경 새 언약의 큰 핵심을 거의 놓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힘이 없죠.
자 그런 정도 하면 이제 되고 두 번째. 계시록이 기록되었던 그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시대는 지도를 그냥 봅시다. 이 로마가 온 세상을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물론 그때는 동양에 중국이라든지 인도는 두고 이 지중해 판도를 놓고 말할 때, 로마가 거의 온 세상을 지배한다 할 정도로 그런 때입니다. 그런 때에 로마 황제 중에 제 11대 황제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다스리던 때인데, 때는 AD 81년부터 96년까지 로마 황제 플라비우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제 11대 황제로 다스린 그런 때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도들은 다 이미 순교했고, 사도로서는 요한 사도만 남아서 교회를 지키고 있었죠.
그리고 그에 앞서 AD 64년부터 68년까지 네로 황제 대 박해가 지나갔고, 네로황제 박해 끝나고 바로 2년 후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버린, 불타게 될 때 그 예루살렘을 함락시켜서 불태운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형님이야 형님. 티투스라고. 이 도미티아누스는 자기 형님 티투스도 로마 황제고 그들의 아버지되는 플라비우스 베스파샤누스 황제도 로마 황제니까, 3부자가 연이어서 로마 황제를 지낸 아주 명문이죠. 그리고 이 2차 박해가 90년부터 96년까지 7년 대 박해로 이어지는데 그 어간에 요한 계시록이 기록됩니다. 그때에 성도들과 교역자들은 극도의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네로 황제때 그 많은 사도들, 교회 중직자들 이런 사람들이 끝없이 순교하고 그 죽는 것도 죽는 것이지만, 혹독한 고문하며 극악무도한 그런 박해를 겪어 봤기 때문에 제 2차 박해가 도래하니까, 성도들은 그만 초죽음이 되었고, 성도들보다 더 두려워 떠는 사람이 교역자입니다. 교역자.. 각 지교회를 맡아서 양들을 보살피는 교역자들은 일순위야 일순위. 체포대상 일순위. 얼마나 두렵겠어요. 여러분, 만약에 끌려가 가지고 잡혀가서 목을 달랑 그저 짤라 준다면 뭐 조금 힘들어도 일순간에 끝나지만, 장기 고문 같은 경우. 여러분 그 고문 기술자 하는 사람들이 원래 로마에서 나온 거예요. 로마에서. 장기 고문 같은 게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참 두려움이 사람을 때로는 죽게 만들어요. 죽게 해.
여러분, 예수님도 십자가 다가오니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까, 예수님 엄살이 아니죠. 말을 시키지 말라고 말이야. 이렇게 두려움이라는 게 무서운 거예요. 여러분 2차 세계대전 때에 전쟁터에 나가서 죽은 사람보다 전쟁터에 아들, 딸을 내보내놓고 근심한 사람이 더 많이 죽었다는 거예요. 실제로 미국에서. 박해가 다가올 때 그렇게 두려웠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섣불리 속단합니다.
지난번에 네로황제 박해 때도 예수님 그렇게 까지 사도들 다 숨져도 오도 안하는데 오기를 뭘 와. 또 봐라 또 이거 박해온다 지금도 안오는 걸 볼 때 예수님 온다는 거 거짓말이다 말이야. 이렇게 되면 흔들리는 거죠.
또 어떤 성도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했다 하고 속단하기도 하고 곧 오실꺼야, 오신다, 막. 여러분, 그때 오시면 우리는 어떡하라고 우리는.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말아버리게? 그러니까 이런 굉장히 혼란스러운 때를 우리가 조금 이해를 해야 해요. 그런데 만약 그때 그 당시에 예수님께서 속히 오신다, 곧 온다 하는 이런 식으로 알았고 매 주일마다 예배 마치고 혹은 만났을 때에 성도가 다 어려운 시대니까 다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면서 ‘형제여, 인내합시다. 주께서 임하십니다. 마라나타, 마라나타, 주께서 임하신다.’ 인사를 그런 식으로 하니까 늘 그저 예수님 곧 오시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안오시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러고 어떤 사람들은 ‘곧 오신다, 오실꺼야, 오신다 오셔야 돼 막.’
여러분, 요한복음에 보면 이런 말이 있죠.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보고 ‘네가 젊어서는 띠띠고 너의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은 때가 되면은 너보고 팔을 벌리라 하고 너를 원치 않는 곳으로 끌어갈 때가 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주께서 게바가 어떤 죽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을 미리 말씀하심이러라. 그렇죠?
그렇게 하니까 베드로가 베드로 참 때로는 말하는 거 보면 말하는 거 맘에 안들게 해요. ‘주여, 얘는 어찌 되는데요?’ 얘가 누구야. 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조금 언짢아 하시면서 ‘요한을 내가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게 하고자 할지라도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야? 너나 날 잘 따라와.’ 그랬죠. 이 말이 와전돼 나가가지고 ‘요한은 예수님 올 때까지 안죽는데..’ 또 그런 소문이 퍼졌다는 거야. 요한은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올 때까지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냐 그것만 말씀하신 뿐일러라.’
이렇게까지 요한이 복음서에 해명하는 것은 왜냐하면, 사람들이 또 철도 없이 자꾸 또 그런 소리를 해. 봐라 다 순교했는데 요한만 순교 안한 거 봐라. 요한이 순교하기 전에 예수님 오신다. 그래 요한이 밧모섬으로 체포되어 가고 나니까 바로 오실꺼라. 그러니까 믿어야 할 걸 믿는 게 아니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니까 사람들이.. 분위기가 이해됩니까? 그 정도는 우리 짐작할 수 있겠죠? 또 무리한 짐작이 아니죠? 그 증거가 다 있잖아요. 증거가.. 그러면 이때 이 교회가 재림 자체를 막 부정하고 낙심해버린 사람도 문제고, 곧 오실꺼야 오신다 하고 오시기를 대망하는 것도 문제가 돼요? 문제가 안돼요? 문제가 되죠.
만약 내가 오실 거라고 했는데 그때 안와 버리면 실망하면 이제 어떡할 꺼예요. 그럼 다 실망하게 다? 그러면 이럴 때 성도들도 염려지만 교역자도 두려워 하지만, 하나님도 천국에서 입장이 곤란한 거야. 그래 천사들 보고 ‘야 이거 뭐 앞으로 박해가 지금 10라운드까지 간다는데, 겨우 2라운드에서 저러면 어떻게 하냐, 천사들은 뭐하냔 말이야. 대책을 좀 세워라 말이야.’ 그러면 뭐 천사들 퇴근 못합니다. 우리는 맨날 사람 입장만 생각하지, 하나님이 염려한다는 것은 생각을 못해요 대부분이. 그래서 철이 없어요. 철이. 왜 철이 없느냐, 철학이 없으니까. 그래서 아마 천사들 중에 어떤 천사가, ‘하나님 제가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나름대로 평소에 준비해 둔 게 있습니다.’ ‘뭐야?’ ‘장차 될 일에 대해서 계시를 내려 보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 내일 아침에 조회때 브리핑한다. 수고했다.’ 그래가지고 죽 한 천사가 준비해논 걸 가지고 브리핑 하는데 하나님 쭉 보시는거야. ‘음~ 음흠~ 음. 그래 그렇지. 음.’ 쭉 보신 다음에 ‘내가 볼 때는 된 것 같애.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납득을 잘하게 될런지, 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니까, 예수그리스도의 결제가 나거든 빨리 내려보내 가지고 교회를 안정시켜라. 수고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그 천사가 포상 휴가 갔지 않겠나. 상당히 잘 만들었어요 진짜. 아주 칼라풀하게 동영상을 써 가면서 프리미어도 하고. 상당히 잘 만들었어. 근데 조금 어려워 조금. 많이 어려운 게 아니고 조금 어려워요. 저보고 하라고 했으면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겠는데, 하여간 조금 어렵습니다. 또 번역을 조금 어렵게 했어 우리가 번역을. 이런 몇 가지 어려움이 있어 가지고 지금까지 참 어려웠었는데 이런 거 다 해소되었으니까.. 본문 들어가도 되겠죠? 요한 계시록 1장 펴봐요. 배경은 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누구에게? )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 뭐 아무 해석할 것이 없습니다. 읽으면 다 알만한거야. 제가 아까 과잉 해석들이 어렵게 한다 그랬죠. 저는 어지간하면 해석을 안합니다. 최소한의 해석 이외는 해석을 안해요.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거기 줄을 좀 그어 보세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여기까지. 좀 말이 너무 길죠. 제가 줄을 그으란 데는 줄을 그어야 합니다. 나중에 다 챙길 테니까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뭘타고 오시리라? 구름, 구름을 동그라미 해봐요.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데 이 구름이란 뭐냐, 구름이란 그냥 구름입니다. 그러니까 구름이란 뭐냐, 이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 이야기는. 아 뭐 구름타고 오신다면 구름타고 오는거지 뭐, 구름이 뭐냐고, 구름이란 첫째, 둘째, 셋째, 쓸데없는 소리야 그게 다. 아무 주석이든지 보면, 이 구름에 대한 해석이 막 구름같이 올라와. 그러니까 구름에 가려서 아무 것도 안보여요. 그리고 여기 봐요. 그리고 구름타고 오시든지 티코타고 오시든지 뭘 타고 오는 게 중요한게 아니죠 그렇죠? 오시는 게 중요한 것이지 뭘 타고 오느냐 그것 가지고 시비할 거 없어.
그리고 뭐 우리 보고 구름 준비하란 것도 아니고 그렇죠? 이런 쓸데없는 해석하지 말라고. 여태까지 어려웠던 게 바로 그 쓸데 없는 해석을 많이 해가지고 어려워졌어요.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어떤 자라? ‘전능한 자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뭘 보았다고요? 거기 줄을 그어봐요. ‘일곱 금 촛대를 보았다.’ 으흠.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절부터는 제가 읽을 때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그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어떤 모습인지. 제가 다 물어 봅니다. 제가 읽겠어요.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자 여기까지. 앞을 보세요. 상상을 해 볼 때 그 모습이 초라한 모습 같아요? 위엄있는 모습 같아요? (위엄있는 모습) 오호~ 여러분, 계시를 잘 보네 보니까.
그러니까 요한이 그림으로 보고 동영상을 보고 글로 썼는데, 다시 여러분 머릿속으로 그림으로 상상이 되어진다면 여러분 상당히 머리가 좋은 거예요. 이게. 보통 좋은 게 아냐. 학자들은 보통 이런 게 안 보여. 위엄 있는 모습 맞죠. 초라한 모습이 아니죠.
17절.
17 내가 볼 때에,(‘내’가 누구죠? 사도요한이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왜, 아 뭐 위용이요, 히용히용.. 예. 그 영광과 그 혁혁한 위엄에 압도당해서 그저 까무라쳤다 그렇죠. 요즘 아이들 말로 뿅 가버린 거죠 그냥. 여러분 이 사도요한이 산전수전 다 겪었고요, 로마 황제 앞에 가서 눈도 끄떡하지 않는 분이고, 예수님과 요한 사이에는 상당히 친밀한 사이예요. 그렇죠? 그런데 예수님 부활하신 모습이 얼마나 그 영광과 위엄이 굉장했기 때문에 그대로 압도돼 가지고 죽은 자 같이 되었다는 거예요.
..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어찌하지 말라? 거기 줄을 그어 봐요.)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왜 두려워 말라 그래요? 예? 두려워 하니까. 그렇죠. 두려워 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죠. 얼마나 두려웠던지 죽은 자 같이 되었다니까. 곧 어떤자라?
18 곧 산 자라,
거기 줄 그어봐요. 산자라. 믿습니까? 자 여기 보세요. 우리는 죽은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다시 살아나신 분을 믿는 거지요. 그냥 다시 살아나신 것도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님. 맞아요? 앞을 보세요. 혹시 여러분 집에 아직 십자가에 예수님 못박아 놓고 아직도 안빼 주고 혹시 그런 사람 없어요? 그건 신앙이 아니라 고약한 거야. 그건 장식품이라도 그건 안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빠져 나오도 못하고 거기 못박혀 있는 그런 예수 믿는 거 아니야. 농담이 아닙니다. 그건 기독교는 그런 거 하면 안돼요. 대개 카톨릭이 그 박아놓고 안빼 주죠? 아 그 사람들은 진짜 잘 안빼 줘요. 오래 됐는데 아직도 안빼 주고 애를 먹여. 그리고 그거 쳐다보고 쯧쯔하고 그러는 거야. 일절 그런 걸 자기 집에 장식하는 거 그거 잘못된 겁니다. 우리는 빈 십자가에 빈 무덤을 믿는 거요. 맞아요? 예. 살아나셨기 때문에.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그렇죠. 지금은 어때요?)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누가? 난 깜짝 놀랬어요. 난 사망과 음부의 열쇠는 염라대왕이 갖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시록을 보니까 그게 아니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도 예수님이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어쩌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죽은 예수가 아니고 살아계신 예수님이까 어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초라한 예수님이 아니고, 그렇게 요한 같은 사도가 한번 보기만 해도 까무라칠 정도로 그런 위엄 있는 예수님께서 일곱 금 촛대가 일곱 교회인데, 일곱 교회 사이를 지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까, 어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또 아까 제가 줄을 그으라 할 때,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고 장차 올 자라.’ 어떤 자라? 전능한 자라. 그러니까 어떻게 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또 예수님이 말할 때,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아니고 누구라고요? 예수님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야. 조지 부시가 아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자 1장, 앞을 보세요. 1장을 전체로 한마디로 말하면 뭐예요. 두려워하지 말라. 왜. 두려워 하니까. 너무 너무 두려워 해가지고 벌벌 떨고 있어. 그래가지고는 아무 것도 안되거든요. 그래서 1장 전체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성은 두려워하지 말라. 그냥 말로 두려워하지 말라 한마디 해가지고는 안돼. 지금 두려운데 두려워 죽겠는데.. 그래서 이 내용을 쭉 보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충분한 증거를 보여주면서 두려워 하지말라. 됐습니까?
그 다음에 19절,
19 그러므로 ①네 본 것과, ②이제 있는 일과, ③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그러면 몇 가지죠? 예. 요한계시록 책 안에는 세가지만 기록되었어요. 첫째는 네 본 것과, 둘째는 이제 있는 일과, 셋째는 장차 될 일. 예. 그 간단합니다. 이 세가지만 이제 해결하면 집에 가는 거야.
자 그림을 좀 봅시다. 여기 박해가 말이죠, 앞으로도 박해가 지금 두 번째 박해니까 아직도 이제 이번까지 포함하면 아홉 번. 이번 넘어가도 여덟 번 남았어요.제 1차 박해는 AD 64년부터 68년까지 네로 황제 박해가 있었고요, 이 때에 이제 바울, 베드로, 대부분 사도가 다 순교했죠. 그 다음에 90년에서 96년까지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가 있었는데, 이때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 갔었구요, 98년에서 117년까지 트라야누스 황제 박해가 있었는데, 이때 이그나티우스, 이그나티우스는 이제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입니다. 이런 분들이 순교했고, 117에서 138년까지 한 20년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게 또 고약하게 했어요. 그때 이제 여러 박해가 산발적으로 퍼져 나갔고요.
161년부터 180년까지 한 20년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박해가 있었는데, 순교자 저스틴 같은 분이 순교합니다. 그 다음에 202년에서 211년까지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가 박해를 해가지고, 이때 이레니우스 같은 분이 또 순교합니다. 235년에서 236년까지 막시미누스 황제가 또 박해를 하고요, 그때에 히폴리투스 같은 분이 순교했죠. 249년에서 251년까지 데키우스 황제 때 또다시 박해가 일어났는데, 파비아누스가 이때 순교하게 되고, 그 다음에 이제 257년에서 260년까지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박해를 하는데, 이때 오르게네스, 키프리안 이런 분들이 순교했습니다.
303년에서 311년까지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황제가 지독하게 박해를 했는데, 이 때는 교역자들 뿐만 아니라 성도들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가고 성경을 다 불태우고, 하여튼 뭐 제일 극악무도하게 박해를 한 사람이 이 마지막 박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이 밤이 깊었어 벌써.. 그런데 311년까지 기독교 박해가 있었고 바로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권을 잡아가지고 기독교 자유를 선포하는 거예요. 그러면 AD 64년부터 시작해가지고 311년까지 가니까, 약 250년간 걸쳐서 전후 10차례 걸쳐 박해가 진행된 거요. 그때 박해 때 얼마나 많은 교회 지도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다 순교 했거든요.
이러니까 지금 현재 어떤 궁극적 소망이 든든하게 세워지지 않으면 앞으로 순교 못하지요. 믿음 다 배반하고.. 그러니까 계시록이란 책이 얼마나 중요한 책인지 그 때로서는 아주 절박한 거예요. 요한 계시록을 세 주제로 나누면 첫째 네 본 것과, 이제 된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해라. 이렇게 해가지고 이 세 가지만 기록한 겁니다. 계시록 1장 20절 봅니다. 그러므로 ‘네 본 것’은 바로 나오죠. 네 본 것, 이제 된 것, 장차 될 일, 세가지 공부할텐데, 네 본 것, 바로 나오죠.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아~ 비밀이 나왔다. 또 모르겠어. 뭘 모르긴 몰라. 더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이것 보세요. 해석 되어 있어요? 안되어 있어요? 깨끗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석이 다 되어 있기 때문에,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거요. 일곱 별은 뭐라고요? 일곱 교회 사자(獅子)가 아닙니다. 사자(獅子)는 라이언(lion)이고, 이거는 사~자(使者)입니다 사~자. 따라합시다. 사~자. 우리 말이 이거 말야. 사자(獅子) 하면 라이언(lion)이 되거요. 사자! 하면 물건을 사는 것이 되고, 사~자(使者) 하면 이게 교역자가 되는 거예요. 교역자. 주의 사자. 사명을 띄고 보내심을 받은 자. 사~자.
이제 사자라는 말을 우리는 그런대로 번역을 잘 했는데, 영어 성경은 대개 다 엉터리입니다. 영어 성경은 킹 제임스 성경부터 이걸 갖다가 사자를 엔젤(angel)로 해놨어요. 엔젤(angel). 멍청한 것들이. 이게 왜 잘못된거냐 하면. 앞을 보세요. 히브리 개념으로 사자라는 말은 ‘말라크’라는 말이 히브리 개념으로 사자인데, 말라크가 두가지예요. 육체를 가지고 있는 말라크는 심부름하는 사람, 사명을 띄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예요. 육체를 가진 말라크는. 육체가 없는 말라크는 천사죠. 엔젤(angel)이야.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일곱 교회 사자라고 하는 이 사람들은 이 사자가 누구냐 하면 이 말라크를 헬라어로 옮긴 요한 계시록은 헬라어로 썼으니까. 이때는 앙겔로스로 쓴다는 거예요. 앙겔로스. 그 앙겔로스도 역시 두 가지인데, 육체를 가지고 있는 앙겔로스는 교역자, 하나님의 사자. 사명을 띄고 보내심을 받은 자고, 육체가 없는 앙겔로스는 엔젤(angel)이야. 그런데 무조건 엔젤(angel)로 봐버리니까 잘못된 거야. 영어성경이.
물어봅시다. 앞을 보세요. 요한이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가지고 이걸 편지 형식을 써가지고 일곱 교회에 보낼 겁니다. 맞아요? 그러면 그 수신자가 천사겠소, 일곱교회 교역자겠소? 아시는 말씀 하시나 마시나지. 지금 천사가 요한에게 계시를 가져왔는데 그걸 종이에 써가지고 일곱 교회에 보내는 건 또 천사가 받아 본다는 건 말이 안되잖소. 일곱교회 사자. 아니 그 1장 1절 다시 펴봐요.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종들’이라고 할 때는 교회 교역자들입니다.) ..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그러니까 천사가 요한에게 주셨고, 그 요한은 이걸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글로 써서 일곱 교회 교역자에게 보낼 테니까, 이것이 사자라 할 때 앙겔로스라 했다 할지라도 이걸 엔젤(angel)로 하면 안되고, 일곱 교회 교역자로 해야만 맞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2장에 보면,
[요한계시록 2장]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할 때 이 에베소 교회 사자도 사자지, 이게 그냥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일곱 교회 교역자이지, 이게 앙겔로스, 앙겔로스 엔젤 하면 안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영어성경 전부 엔젤(angel)로 하고요, 지금 우리 표준 새번역도 천사에게 ‘일곱교회 천사에게 편지하노니’ ‘에베소 교회 천사에게 편지하노니’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거는 순 누가 했는지 잘못 되었다. 하도 화가 나서 내가 그렇게 했더니 그 번역 한 사람이 내 강의하는 그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어떤 놈이 번역했는지 순 엉터리라 했더니 나중에 강좌 마치고 누가 꾸역꾸역 해 와가지고 ‘제가 번역했습니다.’ 하더라고요. 한신대 교수야 한신대 교수. 그래서 내가 그랬죠. 잘못된 거 맞죠? 잘못되었다 솔직히. 몰라서, 계시록을 모르니까 이제.
그러니까 영어를 안다고 번역하는 게 아니고, 히브리어를 안다고 번역하는 게 아니고, 헬라어를 안다고 번역하는 게 아니고 성경 자체에, 제가 그랬죠.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전했느냐, 이걸 알아야 되요. 그걸 알면 전혀 달라집니다. 자 그러면 아까 그 네 본 것 좀 봐요. 예수님께서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 앞을 보세요. 예수님의 오른손에 일곱 별을 갖고 있는데, 일곱 별이 일곱 교회 교역자야. 그런데 그 일곱 교회 교역자를 예수님 오른손에 붙잡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 하면, 예수님께서 오른손에 붙들고 쓰는 종은 사도들이다, 요한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니까 두려운 거야. 그런데 그 환상, 계시를 보니까, 예수님의 현재 일곱 교회 교역자도 예수님께서 오른손으로 다 붙잡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됐어요? 그러면 1장 전체를 한마디로 딱 묶으면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말이죠.
여기 보세요. 저하고 함께 성경을 보니까 핵심과 초점이 모아지는 거요? 흩어지는 거요? 모아지니까 쉬워요 어려워요? 쉬워지죠. 쉬워져. 여태까지 성경을 이렇게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항상 뻥튀기를 해가지고.. 여러분, 1장을 뻥튀기 해버리니까, 10장 되버리자나. 한 열장이나. 그럼 진리가 어디 갔냐. 못 찾아. 그런 식의 주석, 방법이라는 게 교회에 유익을 가져온 게 아니고 성경을 심히 혼잡하게 했어요. 어렵게 만들고.. 그래서 저는 역발상을 가지고 물론 뭐 또 설명이 필요해서 해석한 게 본문보다 길어질 수 있지만은 저는 어지간하면 본문보다 짧아지는 해석을 잘 합니다. 그쪽을 하다 보니까 설교를 빨리하는 거예요. 그럼 성경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고는 정말 우리가 알려고 하는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입장과 이런 쪽을 하나님 중심으로 본다는 거예요. 자, 그 다음에 저를 보세요. 2장, 3장은 제가 더 쉽게 할께요. 앞을 보세요. 앞을 봐요. 책을 봐서 될 것 같으면 제가 할 필요가 없지요. 2장 3장에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일곱 교회가 있어요. 그 당시 요한 당시에. 그 일곱 교회 편지 보낼 꺼야 그렇지요? 그런데 일곱 교회가 있는데 따라합시다. ‘에서버두 사빌라’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저는 하도 많이 해가지고 저는 일곱 교회 그냥 외워 버려 그냥..
그런데 일곱 교회를 두고 볼 때, 그 당시에. 잘 하는 교회도 있고 잘 못하는 교회도 있고, 잘하는 교회에서 또 책망 받을 때도 있고 막 그래요. 그래서 정황을 쭉 보여주면서 잘하는 것은 잘하는 데로 칭찬하고, 잘못한 거는 잘못한데로 책망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성도들은 그런 것도 자기들 교회가 얼마나 미흡하고 불완전한지도 모르고, 그냥 그저 겁나고 불안하니까 그냥 막 예수님 빨리 안오시는가 말이야, 이것만 생각했어요. 너희 교회 꼬라지를 봐라 말이야. 내가 지금 가도 되겠는가 말이야. 그렇게 그 당시 교회 상황을 하나님 시각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 쭉 보여주시는 거야. 성적표가 나왔어. 지금 그때 예수님 오게 되면, 자기들도 엉망이야 오히려.
그래서 이제 이렇게 하면 되요. 집에 가서 숙제인데, 다음 학기까지 레포트를 내. 무슨 레포트냐, 2장 3장에 있는 내용을 갖다가 어떻게 요약하느냐, 집에 가서 달력을, 1월달 것은 지나갔으니까 떼. 그래 찢어 가지고 뒤집어 엎으면, 앞 줄에 있는 금 시커멓게 줄 보이잖아요. 그렇죠? 쭉 도표를 만드는데,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 각 교회 칸칸마다 칭찬. 각 교회 칭찬으로 칸칸 다 메워놓고, 책망하는 거 메워놓고, 약속하는 거 다 메워놓고 이렇게 할 수 있겠죠?
학교 다닐 때 숙제 많이 해봤잖소. 그건 다 연습이고 이게 진짜야. 이런 거 잘 할라고 그런 거 배워 논거거든요. 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에베소교회가 칭찬 받을 만한 것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았다는 거야. 그리고 이단을 색출했어. 잘했어 그거는. 그건 잘한 거야. 그런데 잘못한 게 뭐지요? 처음 사랑을 잊어버렸다는 거죠. 이런 식으로 잘한 거 잘못한 거 쭉 빼가지고 책망이 없는 교회가 한 두교회 있고, 칭찬 없는 교회가 한교회 있다고. 그러면 뭐 책망 쭉 각 교회 책망 목록을 다 빼보면은 금방 나오겠죠.
그걸 딱 읽어보고 우리 자신이나 우리 교회나 우리 가정이나 만약 그 책망 받은 말씀에 해당되는 거 있으면 우리 회개합시다. 됐어요? 빨리 회개 해야 돼 그거는. 그 다음에 반대로 예수님이 이렇게 할 때 기뻐하시고 이렇게 칭찬하시고 이런 게 있겠죠? 그리고 칭찬 없는 교회가 하나 있으니까, 그러니까 칭찬이 한 다섯 개 여섯 개 나온단 말이예요. 그러면 우리 잘 보고 아하 이렇게 할 때 예수님 기뻐하시고 이럴 때 칭찬하시는 구나. 그거 뽑아가지고 우리 열심히 합시다. 됐습니까? 그러면 넘어가는 거예요. 집에 가서. 저 혼자 해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여러분도 해야지. 이 정도는 숙제 할 수 있겠죠? 중학생 정도만 되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4장으로 넘어갑니다.
[요한계시록 4장]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내가 누구죠? 요한이 보니까 )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자 여기 ‘이리로 올라오라.’ 거기 줄 그어봐요.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줄긋고 자 여기 보세요. 지금까지 한국에 퍼져있는 잘못된 종말론자들은, ‘이리로 올라오라’ 이걸 휴거라고 그래요. 휴거. 어이가 없죠. 이게 휴거가 아니고 제가 보기로는 요한사도 한사람만 그때 하나님께서 올라오라고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서 올라오라는 거예요. 목적은 뭐냐면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인다는 거야. 맞아요?
그런데 다시. 책을 보지 말고 저를 봐요. 왜 이 종말론자들이 한국의 종말론자, 미국의 종말론자들이 이걸 휴거라고 하냐면, 이리로 올라오라 휴거라고 우기냐면, 이렇게 합니다. 이 사람들 참 재밌는 사람들인데, 아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 일곱 교회를 전 역사 가운데 나타난 교회를 일곱 시대로 나눴다는 거야.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 시대를 상징한다 하고 제멋대로 처음부터 설정을 했어.
맨 마지막에 라오디게아 교회 차지도 덥지도 않고 뜨뜻미지근한 교회는 말세 교회라고 자기들 나름대로 설정을 한 겁니다. 전 시대에 걸친 교회를 상징한다 이렇게 나눴기 때문에, 세대별로 나눴다 해가지고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라는 거예요. 제가 지금 틀렸다는 것은 바로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틀렸다는 거예요. 잘못된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이제 한 교회 한 교회 마다 말씀하실 때, 무슨 말씀을 하시느냐. 끝에 가면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렇게 이런 말이 일곱 번 반복됩니다. 그러니까 귀 있는 자는 개개인이고, 개인,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으라 하면 몇 교회 말씀만 들어야 되겠습니까? 일곱 교회 말을 다 들어봐야 되요.
일곱교회에 하시는 말씀 다 들어보면 이런 것을 칭찬하시고 이런 것을 책망하시는 구나 금방 알겠죠. 그렇게 하라는 말이지, 초대교회 성도들은 에베소 교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렇게 하신 게 아닙니다. 어느 시대든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물어봅시다. 아니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그때만 있습니까? 지금도 있습니까? 그때도 있었죠? 그때는 있었고 에베소 교회가 지금도 있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있다는 거야.
그럼 또 하나 더 물어보지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교회가 그때도 있습니까, 지금도 있습니까? 예. 그때도 있었죠. 그때 라오디게아 교회 진짜 있었다니까. 지금도 있어 또.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가는 삯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그때도 있고, 지금도 있고, 이세벨의 교훈을 용납하는 교회가 그때도 있고, 지금도 있고, 칭찬만 들을 만한 교회가 그때도 있고 지금도 있고. 그러니까 2장, 3장에 있는 내용은 보편적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보편적 관점. 어느 시대 누구든지 간에 귀 있는 자는 항상 들어봐야 돼. 이 일곱 교회 하는 말씀을.. 칭찬도 들어보고 책망도 들어보고.
반면에 아까 왜 ‘네 본 것’ 하는 1장에 있죠. 이건 역사적 관점으로 보는 건데, 그것은 ‘네 본 것’이기 때문에 과거가 되는 것이고, 역사적인 관점이 되는 건데,
그것은 그 때 당시에 성도들은 너무 두려워서 쪽을 쓰지 못하고 너무 절박한 문제야. 두려워하는 문제가. 그거 뭐 두려워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걸 쫙 보여주면서 이 정도 같으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안되겠나 하고 보여준 것인데, 그것은 역사적 관점. 2장, 3장은 보편적 관점. 어느 시대 어느 성도든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다 들어 봐야 돼. 됐습니까? 그 다음에 4장에,
[요한계시록 4장]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 줄긋고 가로 열고 ‘장차 될 일’ 그렇게 써요. 제가 계시록은 세 가지 밖에 없다고 그랬죠. 첫째는 뭐죠? 네 본 것과 하는 것은 1장에 끝났죠? 2장, 3장에는 이제 있는 일이면서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이건 보편적 관점으로. 그리고 ‘장차 될 일’은 이것은 미래적 관점으로 또 예언적 관점으로 봐야 돼요.
제가 아까 계시록을 보는 관점이 유연하지 못했다 하는데, 어느 한쪽으로 봐버리면 문제입니다. 전부다 어떤 학자들은 계시록은 종말론과는 아무 상관없고,
그 때 당시에 너무너무 어려운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서 만들어 썼다. 이렇게 지금도 빡빡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학자 중에. 또 어떤 사람들은 계시록은 전부 미래만 이야기한 것이다. 그것도 유연하지 못한 거예요.
제가 볼 때는 내용을 봐서 유연한 마음을 가지고 이거는 정말 전체 다 한가지 관점이 아니고, 역사적 관점과 보편적 관점과 미래적 관점 이렇게 딱 나눠진다니까. 이걸 제시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딱 제시해 놨잖아.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그러면 2장, 3장 까지 하고나면,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까지 끝나버리고 이제 뭐 남았죠? 예. 장차 될 일 한가지 남았어.
그러니까 ‘이리로 올라오라. 장차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똑 같죠. 이 후에 마땅히 될 일하고 장차 될 일 똑같은데, 이게 바로 번역자가 일관성의 원칙을 위배한 거야. 앞엣 번에 장차 될 일 이라고 번역했으면, 뒤에도 똑같은 말이 나올 때, 장차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이렇게 해야 되는데, 번역의 일관성의 원리를 놓쳐 버렸어. 이런 건 지금 새로 번역하면, 제가 앞엣 번에 장차 될 일 했으면 여기도 장차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이렇게 해야 맞거든요.
그리고 더 저의 해석이 더 분명하다 하는 것은 그 뒤에 끄트머리에 마땅히 될 일을 해가지고 ‘내가 네게 보이리라.’ 이때 내가 누구죠? 하나님이죠. 하나님.
하늘에서 하나님이 네게는 누구야 네게. 그러니까 내가는 하나님의 일인칭 단수죠. 네가는 이인칭 단수죠. 맞아요? 그러니까 이게 교회가 아니쟎소. 이게 지금 세대주의적 종말론자들이 이걸 자꾸 휴거라고 우기는 것은 뭐 때문에 또 우기냐면, 자기들이 일단 그렇게 일곱 세대를 나눈다 해놓고,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말세 교회이기 때문에 말세 교회가 지나간 다음에는 요한계시록 4장 이후에는 교회라는 단어가 안나온다 그래가지고, 틀림없다고 지금도요 뻑뻑 우깁니다.
우리 한국의 내노라 하는 사람들 전부다 그렇게 우기고 있어요. 지금도. 근데 이거 아닙니다 아니고요 휴거는 나중에 또 나와요. 진짜. 계시록을 공부해가면 나중에 나옵니다. 아직은 멀었습니다. 그 다음에 4장 2절,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그러니까 ‘내가’라고 하고 요한이 올라가는 겁니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그 모양이’뭐 같더라? ‘녹보석 같더라.’ 녹보석은 뭐냐? 그냥 녹색 보석이야. 녹보석이 뭐냐? 첫째 둘째 셋째. 쓸데없는 소립니다.
4장 4절,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여기 24보좌에 앉은 24장로는 누구냐? 몰라요. 명찰도 없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그건 모르는 거야. 이거는. 뭐 이름 알면 로비 할라고?
그런 것 갖다가 또 해석하기를 24장로는 열두 지파를 대표하고 열두 사도다. 그 대표는 누가 나갈 껀데 그러면. 열두 사도는 아직 요한은 아직 땅에 있는데 그래.. 이런 게 다 그런 해석은 그런 주석마다 그렇게 해놨는데 그거 엉터립니다. 그냥 24보좌에 24장로가 있다는 거야. 그리고 거기 이미 자리가 다 찼습니다. 거기 우리 자리가 있는 게 아니야.
그 다음에 5절,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다 해석이 되어 있죠.)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앞뒤에 눈이 가득하면 잘 보겠지 뭐. 그렇죠.)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이걸 또 사자는 마태복음이요, 송아지는 마가복음이요, 사람같은 건 누가복음이요, 독수리는 요한복음이다. 할렐루야. 뭐가 할렐루야야. 순 엉터리인데. 아닙니다. 그냥 그런 생물을 봤는데, 이것은 에스겔서 10장을 보면 ‘그 생물들이 케루빔인 줄을 내가 아니라.’ 케루빔이라는 천사야 천사. 복음서가 아니고. 복음서가 뭐하러 거기 앉았겠어요. 서양신학자들이 전부 다 이런 걸 복음서라 했어요. 예외가 없습니다. 99.99%가 이걸 다 복음서라 해놨어요. 아주 부질없는 짓이예요. 그러니까 신천지만 이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이라 하는 사람들도 순 엉터리로 해석을 많이 해요. 그러니까 위험하다는 거예요. 위험해..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던지면 안됩니다. 그 어느 존전이라고 또 면류관을 던집니까. 이런 것은 또 바로 귀에 거슬리는 거라. 알면 이렇게 번역 못해요.
‘보좌 앞에 내려 놓으며’로 고치세요. 여러분, 고쳐야 합니다. 번역 잘못된 것이니까.. 지금 뭐 보좌 앞에 면류관 던지면서 데모합니까? 지금? 말도 안되는 소리거든 이게 다. 그러니까 알면은 이렇게 번역 못해요. 모르니까 그냥 단어만 가지고 함부로 번역하는 거예요. put down 또는 lay down. ‘내려 놓으며’ 이렇게 해야 되요.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자 앞을 보세요. 여러분 4장을 한마디로 하면 뭐죠? 장차 될 일을 보여 주시려고 요한을 불러 올리셨는데 올라간 요한이 보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죠. 맞아요? 그 자체가 장차 될 일 아니죠? 앞으로 장차 될 일은 조금 이따 보여 줄 거야. 이거는 보좌 주위를 그냥 휙 둘러봤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자체를 가지고 해석 많이 해봤자, 장차 될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이것은 장차 될 일이 아니니까..
첫댓글 목사님 감사합니다. 스크랩해서 갑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