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06:00
아침을 먹고
백두산 등산을 위한 복장을 점검하였다.
천지 부근은 바람이 거세어 춥고 비가 올 수 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천지에는 구름에 가득하지만
천지에 오를 즈음에는 구름이 사라질것 같다는
호텔주인의 오랜 경험에 의한 희망적인 말과
다년간 여러번 천지에 오른 안내자의 말에 기대를 걸어본다.
특히
깨끗한 몸으로 오르기 위해 새벽에 목욕재계한 여학생들의 정성이 하늘이 닿기를 기대해본다.
먼저
장백폭포를 향하였다.
오르는 중간에 온천수로 옥수수, 계란을 삶는 곳을 지났다.
1년 수익이 몇억이 될 정도란다.
멀리
숲 위로 장백폭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르는 길 따라 곰취군락을 지났다. 자주방망이, 어수리와 민박쥐나물 군락도 보았다.
백두산 주변은 야생화뿐만아니라 많은 종류의 약초가 자라고 있다.
아직도 백둔산 주변에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식물종이 있다.
드디어
장백폭포에 가까이 왔다.
더 가까이 가고 싶지만 사진 찍기는 이곳이 그만이다.
장백폭포는 천지의 물이 달문을 통해 1,250m를 흘러 68m의 낙차를 이루는 폭포이다.
백두산의 겨울은 혹독한 추위로 대부분의 폭포가 얼지만
장백폭포만은 얼지 않고 계속 흐른다.
장쾌하게 흐르는 물줄기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거센 바람은 폭포의 물마저 옆으로 비스듬히 휘날려 떨어지게 하고
천지를 넘어온 구름이 스치듯 지나친다.
마음같아선 폭포의 물보라치는 밑에까지 가보고 싶지만.....
장백폭포에서
그 장엄한 물의 기둥을 바라보며
가슴 깊숙한 앙금까지 씻어내고는
소천지를 향하여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내려가는 나무통로 옆으로 많은 야생화들이 반겨주었다.
민박쥐나물, 자주솜방망이, 어수리 등 눈에 익은 꽃들이
군락을 이루거나 홀로 조용히 피어있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새로운 꽃들을 찾을때마다
아는 선생님이 꽃의 이름과 특징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연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계곡으로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갈 수 있는 코스도 있다.
돌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물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듯하다.
수직벽에 붙어서 의젓하게 피어있는 투구꽃이 예쁘다.
꽃 하나를 만날 때마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재미가 크다.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을까?
꽃이 피는 것은 자손을 퍼트리기 위한 숭고한 행위이다.
벌과 나비, 때로는 새와 바람까지도 이용하며 자신만의 씨앗 맺기와 퍼트리기를 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섭리자의 섬세한 손길 따라 이루어지는 자연 오묘한 생태이다.
누가 이 작은 꽃의 생명을 보고 가볍다고 하겠는가?
인간의 생명이 존중되어야하듯이 자연 속에 어우러져 사는 만물의 생명이 존증되어야한다.
그래서 도를 닦는 옛 스님들 중에는 길을 가는데도 빗자루로 쓸며 갔다하지 않는가?
성경에는 상한 갈대라도 꺾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있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자연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생명에 대한, 신에 대한 범죄이다.
소천지에 다다르니
크지 않지만 조용한 호수가 나타났다.
이곳은 물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는 물길은 없다한다.
그렇지만 물은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단다.
물오리 몇 마리가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호수 주변에는 자작나무 군락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동상은 이곳에 약초를 캐다가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버스 주차장을
향하여 내려오는 중에 큰 바위를 만나면 이렇게 바위를 떠받친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큰 바위가 넘어지는 것을 바치기 위해서일까?
이렇게 바위를 바치는 공력을 쌓으면 허리가 안 아프게 된단다.
한번 해볼 만한 행위이다.
재미있고 흥미롭지 않는가!
흥미로운 전설과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지고 생산되어져야한다.
삶의 지혜와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속담과 격언 그리고 전설들은 계속 생산되야한다.
너른 계곡을 널널하게 흐르던 물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땅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물길이 땅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백두산 폭발하며 용암이 흘러내릴 때
땅속으로 흘러들었던 용암길이 물길이 되어 지하삼림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이곳은 역삼각형의 계곡으로
깊이가 6-8m정도이고 좁은 곳은 충분히 건너다닐 수 있을 만큼 위쪽은 폭이 좁다.
여름에 풀이 무성하면 물길이 가려져 지나다니던 짐승이 빠지기도 한단다.
곰만이 이 물길을 헤치고 나오지만
노루나 다른 짐승들은 저승길이 된단다.
계곡 아래를 들여다보기가 겁이 난다.
물길너머 언덕에 핀 술패랭이꽃이
나를 반기는 듯 살랑거려 모델삼아 한컷 찍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인원을 파악하니 2명의 어른이 안보인다.
찾고 연락하는 가운데 일행과 떨어진 두 사람은
다시 산장으로 올라가 연락이 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길을 잃었을 때를 대비하여 어떻게 할까 미리 정해놓아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스스로 일행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잘 따라온다.
아이들 파이팅!
어른들은 아이들을 챙기지만 스스로는 잘 챙기지 못한다.
어른들 바보!
드디어
천지에 오르는가 보다.
가장 원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줄서고 있다.
한 지프에 5명씩 타고 천문봉을 향하여 올라갔다.
지프운전사는 날마다 운전하는 길이라 그런지
능숙하게 좌우로 운전하며 속도를 내고 올라갔다.
백두산이 높은 산이지만
그 오르는 길은 뱀길처럼 구부러져 있어 완만하였다.
그래도 지프의 손잡이를 힘주어 잡고 있었더니 팔이 아프다.
11:20
지프에서 내리니 거센 바람이 반겨준다.
모래가 날리어 얼굴을 때리고 몸이 바람에 밀려나간다.
태풍이 부는 것 같은 바람이다.
잠깐 천지를 바라보고는 뒤돌아서 모래의 공격을 피한다.
천지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는데 전모는 아니지만
뛰어내리면 물에 닿을 것 같은 천지가 저 아래 펼쳐져 있다.
위쪽과는 달리 바람이 거세지 않은지 잔물결만 일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고요가 머물면 산봉우리가 거울처럼 비친다고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카메라를 셔터를 연신 누르며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하나
끝내 고요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잠시 거센 바람을 피하여
반대편 쪽의 널리 펼쳐진 초원의 산자락을 바라보았다.
저 초원은 수목한계선(1700-2000m)을 넘어서서 나무가 자라지 않고 있다.
올라오면서 보니 구름국화, 두메양귀비, 구절초 등이 펼쳐져 있던데
내려갈 때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으려나!
내려가며 꽃들과 개별적으로 만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바람이 자고
구름이 걷히기를 바라며 연신 카메라를 들여다보지만
썩 좋은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일행 중에 한분은 천지를 찍으려고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여 연신 셔터를 누르고 계셨다.
일행들이 다 내려가서 이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내려가기를 기다렸지만
추운 바람 속에서도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이제 가시자고 소리쳤지만 바람소리에 들리지 않는가보다,
한참을 더 찍고 기다리던 다른 사람이 부르러 올 때까지 찍으셨다.
일행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거센 바람을 맞으며
다시 오기 어려운 이곳의 풍경을 좀 더 아름답게 잡으려는 그 정열은 가히 알아줄만하다.
모두가 이런 정열을 가지고 천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테지만.....
다시 지프를 타고 내려와 버스를 타고 지하삼림으로 향하였다.
12:50
지하삼림에 들어오니
아! 원시림이 이런 것이구나.
태고의 숲이 이렇게 유지되는구나.
나무의 일생이 이렇게 살고 지는구나.
아프리카 원시림을 책으로 읽으며
이런 원시림에 가보기를 꿈꾸었는데
과거 우리의 땅이었던 백두산 자락에 이런 원시림이 존재하는구나.
이끼 낀 곳에 발을 올려놓아보니
흡사 양탄자를 밟은 것처럼 푹신하다.
계곡으로 좀 더 내려가니 갑자기 땅이 푹 꺼져 60여 미터 저 아래 지하삼림이 펼쳐져 있다.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화산활동과 지진으로 단층작용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하지만
대자연의 오묘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연신 카메라로 그 풍경을 담아보았다.
내려가 볼 수는 없을까?
무언가 지금까지 보지 못하였던 신기함이, 놀라운 자연의 오묘함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한발만 더 내밀면
지하산림으로 떨어질 것 같은 절벽 끝에 해당화 같은 열매가 있다.
그런데 그 열매가 길쭉하다.
맨 끝에 까지 남아서 둘러보고 다시 계곡을 오르니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우리들이 활동을 담아오던 연변방송국의 차명우 카메라기자가
개개인의 인터뷰 장면을 찍고 있었다.
나도 찍어보라고 하여 카메라 앞에 서니
할 말이 정리가 안 되어 돼돼거리다가 끝났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걸....
이제 백두산 일정이 끝났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한 번에 충족 할 수는 없지.
다음에 또 기회가 오지 않을까?
북한으로 갈 수 있다면 더 쉽고 새로운 백두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멀지 않아 그런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남북이 같이 하나 되는 날도 내 삶의 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 생각하며 아쉬움을 접어본다.
연길로
돌아오는 길에 미인송을 찍어보았는데
빠르게 달리는 차안에서는 잘 찍히지 않는다.
잠깐 섰다가면 좋을텐데.....
이곳의 소나무도
속리산의 소나무처럼 붉고 하늘로 쭉 뻗은 모습이
팔등신 미인의 몸매와 같다고하여 "미인송"이라 부른다.
갈 때와는 달리 여유로운 마음이다.
백두산 탐방으로 피곤하였는지 모두들 잠을 잤다.
한숨 깊게 자고 나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소를 끌고 가는 부자의 모습이 우리의 옛 시절 농촌 풍경임을 일깨워준다.
남녀가 평등한 중국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남자의 모습도 보였다.
17:50
갈 때 들렀던 휴게소에 다시 들렸다.
굳어진 다리를 풀어주려 둘러보다 화장실에 갔다.
남여가 구분은 되어있지만
저 자리에 앉아서 큰일을 볼 수 있을까?
화장실은 나라마다의 문화를 담고 있다.
일본에 갔을 때도 우리와는 다른 모습을 보았다.
쪼그려 앉는 변기의 엉덩이를 문 쪽으로 향하게 되어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던 한국말 잘하던 일본인,
우리나라에서 7년 정도 살았고 아내가 한국인이라던 일본인에게 물어보았는데
그게 그렇게 되어있느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같이 간 동료들과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일본사람은 화장실을 아주 청결하게 관리한다.
그것은 우리가 묵었던 연수원에 입소한 일본 초등학생들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들어있지 않은 화장실문은 활짝 열어 놓는다.
우리는
화장실은 냄새나고 더러운 곳이기 때문에 꼭 문을 닫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사람들은 화장실 문을 노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이 닫혀있으면 사람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드려 보아야한다.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배웠다.
과거에는 뒷간에 사람이 오는 기척이 있으면 헛기침을 하여 사람이 있음을 알렸다.
지금도 어르신들은 노크를 하면 기침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만의 점잖은 문화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문 쪽으로 향하고 있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일을 볼 수가 없다.
누가 와서 노크할지 모르니 준비하고 있어야한다.
때로 급하면 노크도 없이 열기도 하니...
잠금장치가 없는 문은 꼭 붙들고 있어야한다.
그럼
중국은 왜 문이 없을까?
누구나 일 보는 장면을 빤히 볼 수 있는
터진 구조의 화장실을 만들게 되었을까?
천안문 광장에는 뚜껑만 있는 화장실이 있단다.
용기 있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뚜껑을 열고 쪼그려 앉아서 일을 볼 사람이 중국인 말고 또 있을까?
아무리 급할지라도.... 그저 그것이 궁금하다.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럴듯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래도
도시의 화장실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도시를 벗어난 곳의 공중화장실, 학교화장실 등의 모습은 천연 그대로이다.
또 여름 날씨에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코를 틀어막고 일을 보아야한다.
그런 곳에서는 아직 한 번도 큰일은 보지 못하였다.
분명 아내는 이런 곳에서는 오줌보가 터져도 참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오래전 똥을 거름으로 사용하던 우리의 재래식 화장실 모습이다.
다만
조금 더 더럽고 더 냄새가 날뿐이다.
사실
재래식 화장실 형태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냄새나는 것이 그렇기는 하지만
거름으로 활용 할 수 있으며,
물을 사용하지 않기에 수세식 변기에 비하면 훨씬 자연 순환적이고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생제, 방부제 많이 먹는 요즘 도시인의 똥은 거름으로 쓸 수도 없다나!
그런데
왜 일을 보는데 남에게 다보여 주어도 괜찮은지,
그 모습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지,
어떻게 일을 보면서 눈을 마주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화장실 문이나 칸막이를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더러 관광객을 고려하여
공중화장실에 문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던데
중국인들은 그 문마저 열어 놓고 일을 본다고 한다.
답답해서 열어놓는다고 한다.
습관의 무서움이랄까.
일을 보며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것도 내똥 네똥 확인해가며....
과거에는
이성간에도 그렇게하였다니 할 말이 없다.
참으로 황당한 민족이다.
이러한 문화가 형성된 배경이 궁금하다.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은 생리적인 일은 남에게 보이기를 부끄러워한다.
또 그 부분이 우리가 치부라고 여기는 부분이다.
성적인 것과 연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대륙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기질일까?
단순히 미개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중국인들이
편리와 편안함에 눈을 떠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만들고
비누와 샴푸를 사용한다면 지금의 깨끗한 자연은 금세 오염될것이다.
화장실의 뒷처리를 어떻게하는지 그것도 관심있게 지켜봐야한다.
연길로 돌아오는 4시간이 넘는 버스여행은
자칫 지루하기 쉬운 시간이 될 수 있었으나
역시 여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훌륭한 가이드 덕분에 지루한줄 모르고 왔다.
이 시간을 이용하여 중국에 대하여,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서로 나누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서 메모를 하였다.
중국에서는 덕을 많이 쌓아야 천지를 보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처녀가 있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생각의 차이일까?
우스개로 지어낸 말일까?
중국에서 백두산이 10대 비경으로 알려지면서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이 한국인 60%, 중국인 40%에서
지금은 반대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 동안은 한국의 기업가가 백두산에 투자하여
한국인을 상대로 돈을 버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중국인이 더 많이 찾는 백두산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한국의 호텔이 돈을 벌어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정책을 펴고 있단다.
백두산 가는 길도 다시 내고,
백두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백두산의 호텔도 다 철거할 예정이란다.
수입을 고려한 정책변화라고 보고 있다.
천지에는 공안이 지키고 있어
깃발, 플레카드 및 단체 구호를 금지하고 있다.
과거 백두산을 찾았던 한국인 관광객 중에는 “백두산이 우리 것”이라고 행동으로 보여줌으로
그 기개를 드높였다.
그러나 그로인해 백두산에 대한 중국정부의 정책의 변화를 가져왔고
그곳을 관리해오던 연변 자치주의 수익과 조선족은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과거는 과거,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에서 있었던 동계아시안 게임에서
쇼트트랙을 우승하고 트랙을 돌때 선수들은 플레카드를 펼쳐보였다.
“백두산은 우리 것”
중국 전역에 생중계 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마치 일본선수들이 서울 아시안게임에 와서 우승하고는
“독도는 우리 것”이라는
플레카드를 들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중앙정부에서 길림성에 지시하여 백두산의 관리에 대하여
조선족의 접근을 제한하고
백두산에 우리가 접근하기 어려운 정책을 펴나가게 만드는 빌미가 되었다고 한다.
아쉬운 일이다.
중국인구 13억의 반은 여성이다.
대부분 여성이 직업을 갖고 있다.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진 나라이다.
집안일은 남자가 한다고 한다.
여자는 아이를 낳는데 고생이 많으니까?
그러나 조선족은 이런 면에서는 약간 다르다고 한다.
아직도 가부장의 위엄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한다.
역시 의지의 한국인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49배 크기이다.
우리나라의 끝이 마라도이듯이 중국의 맨끝은 해남이다.
겨울에 북경에서 해남(열대지역)까지 여행을 한다면
영하 15도에서 영상 30도의 기후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단다.
기회가 되면 자전거로 여행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중국의 지형은 고저가 별로 없다.
그래서 자전거가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자전거인력거, 자전거리어카는 보편적인 운송수단으로 잘 발달되어있다.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있었다.
“펑이요”로
부르는 친구는 10년 가까이 사귀어 맺은 우정이라야 가능하단다.
이러한 친구라야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여준단다.
중국인은 좀처럼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교통사고가 일어나 사람이 죽어도 상대를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용히 일이 처리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난 사건이기에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해를 입어도 쉽게 화를 내지 않고
괜찮다고 말하며 지나가지만
그에 대한 복수는 10년을 두고 몇 10배로 갑아 준다고 한다.
중국인의 이러한 특징을 모르고
중국인을 무시하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단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약을 잘못 처방하여 죽은 주중공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친한파 중국인 한사람 없는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내었다.
분명한 잘못을 중국이 했는데도
대응할만한 능력이 없어 중국의 처분만 바라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에 꼭 지켜야할 수칙이 있단다.
1. 아프지 말아라
2. 싸우지 말아라
3. 무시하지 말아라
중국인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느리고(만만디)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쉽지만
농촌의 일은 모두 새벽에 이루어지고 낮에는 논단다.
먹고 사는 생필품은 우리보다 싸고 풍부하다.
차에 한번 넣는 기름값이 서민들의 한달 월급과 맞먹는 데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북경에서는 소나타가 400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팔린단다.
중국은 못사는 것 같아도
우리 기준으로 잘 사는 인구가 우리 인구보다도 많은 나라이다.
따라서 소비력이 이주 큰 곳이다.
고급시장이 활황을 이루고 있다.
한때 중국의 생활정도를 참작하여
저급제품으로 시장을 만들려던 기업들은 대부분 꼬리를 내리고 있지만
고급화 시장에 뛰어든 제품은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단다.
특히 통신 분야는 원천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큰 나라이기에 일찌감치 인공위성을 띄워서 통신을 하였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우리보다 먼저 사용하였다.
통신요금 체계도 우리와 다르다.
거는 사람 받는 사람 똑같이 반반 씩 부담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전화를 받을 때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꼭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불필요한 전화면 안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금은 우리보다 많이 싸서 그런지
우리를 태운 버스 운전기사도 운전하며 끝없이 전화를 하였다.
전혀 우리를 의식하지 않고서 말이다.
우리도 거는 사람이 전화요금을 모두 부담하는 방식에서
반반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바뀌면 불필요한 전화가 많이 줄어들텐데......
어느 나라든 그 나라만의 문화가 존재한다.
우리 눈에는 하찮고 미개한 것 같지만
그러한 문화를 형성한 배경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정서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는 당연히 존중될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한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미개하고 못산다고 무시하고 비난하면
그 나라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비싼 돈 들여서 하는 해외여행이 단순한 관광의 의미밖에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고 당당하다.
자신감이 넘친다.
기죽지 않는다.
자신의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유럽의 명소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목소리 큰 아시아인은 중국인이란다.
국제적 예의를 모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절대 기죽지 않는 그들의 당당함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도로에 가로수로 양버즘나무를 심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가루가 날린다고 지금은 잘 심지 않는다.
실제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하는데도
솜털 같은 것이 봄이면 많이 날린다.
중국도 가로수로 이 나무를 많이 심기 시작하고 있단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잘 자라서 목재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버즘나무만큼 잘 자라는 나무가 없었던 것 같다.
너무 잘 자라 잘라내기 바쁘다.
그런데 왜 잘 자라는 나무를 목재로 활용할 생각은 안하였을까?
예전부터 궁금하게 여기던 것이다.
나무의 질이 나쁜가?
교육 분야에 일하던 사람들이 모였으니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국제 학교에서 야영장에 들어가 야영활동을 하는데
우리는 철저한 시간계획을 세워서 학생들이 정말 힘들다고 할 만큼 알차게 교육을 시켰는데
그 후 영국학생들이 들어왔는데
교사들이 아침을 먹고는 교육시킬 생각은 안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어서 물어보았단다.
아이들 교육은 안 시키느냐고....
야영장에는 코스가 있고 코스마다 조교가 있다.
교사가 하는 일은 일어나는 시간,
잠자는 시간만 약속을 하고 나머지 활동은 스스로 알아서 하고
그에 대한 기록과 보고서를 제출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바람직한 교육일까?
지나온 과거의 나에게 주어진 교육의 형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안정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 스스로해서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교사가 잘 짜서 보다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다 유연성을 갖고 교육에 임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항상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교육방식이 필요하다.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느새 연길로 돌아오는 4시간 30분의 시간이 지났다.
8시경에 한라산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서 짐을 정리하였다.
그 다음은 발맛사지 하러 가는 것이다.
안하면 서운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