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이번 상하이 7인제 대회에 스폰서로 참가한 한 회사에서 남자 대표팀의 작은 후원과 테스트 제품 시연을 부탁해 왔습니다. 그 제품이 도착하여 남자 럭비 대표팀이 합숙을 하고 있던 인천의 한 호텔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간김에 두 팀이 안되는 인원으로 훈련을 하고 있던 여자대표팀과 함께 운동을 하게 되었고 저녁도 함께 먹게되었습니다. 마침, KBS 다큐멘터리 3일의 첫날 촬영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진짜 첫 만남은 5월 1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선발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대표팀 코치님은 대학교 선배님이신 강동호 코치님이시고 감독님은 제가 대학생 때 고려대학교 감독을 하셨던 한동호 감독님이라 인연이 있는 지도자 분들이 가르치는 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랬던 선수들이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새까맣게 그을린채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땀 흘리는 선수들을 보면서 자랑스럽기도 했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5월에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들이 그새 제법 "럭비선수" 같아 보여 놀랍기도 했습니다. 또 즐겁고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에게서 긍정적인 측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상하이에 가다
첫째 날
남녀 대표팀이 참가한 이번 상하이 7인제 대회는, 남자대표팀은 젊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온 세대교체 팀이었지만 여전히 대회 3연패를 노리는 아시아 최강팀이었습니다. 그 반면 여자대표팀은 상위 4개국이 참가하는 정식 대회가 아닌 초청 팀들의 발전을 도모하는 하위 그룹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대회 얼마 남지 않아 부상선수가 속출, 대회 참가가 무산 될뻔하기도 했고 출발 전날 스케쥴이 나와 도착 당일 2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선수 전원이 상하이에 도착, 시합은 얼마 안남았는데 체크인을 늦게 해주는 호텔 직원과 실랑이 끝에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부상 선수들로 교체인원이 많지도 않았고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시합에 나가서 장수팀과 안후팀과의 첫 두 경기는 모두 패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첫게임에 잘 안되었던 부분을 보강하고 작은 목표를 세워 달성해 나가는 여자팀의 각오는 비장하기만 했습니다. 비록 패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내일을 기약하며 경기장을 나섰습니다.
둘째 날
둘째 날은 저녁 7시에 한경기만 있어서 남자부와 다른 여자부 경기들을 보며 야간경기를 준비했습니다. 상대는 중국 상비군, 첫 두 경기에서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해보자고 약속하고 경기장에 들어갔습니다. 약속된 플레이가 몇개 시도 되었고 Ruck에서 서포트 하는 플레이가 한결 나아진 것으로 보여, 많은 발전에 만족할 만한 부분들이 많았던거 같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패배. 그래도 첫날보다 한결 나아진 플레이에, 야간경기도 경험해 본것으로 만족하며 경기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셋째 날
오늘은 4팀중 1위와 4위, 2위와 3위가 맞붙고 그 다음에 순위 결정전을 하는 순서였습니다. 첫 상대는 첫 날 대패를 당한 안후이와의 경기. 과감한 플레이로 날이 갈수록 향상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보다 20점 정도 점수차를 줄이고 경기 종료. 마지막 경기는 첫날 만난 장수팀과의 경기. 마지막 경기도 아쉽게 패하긴 했지만 첫날 보다 많은 점수차를 줄이고 많은 성장을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모든 경기가 종료되고 여자대표팀은 경기장을 돌며 관중들 에게 인사를 했고, 어느팀 보다 뜨거운 성원과 격려의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도 한국 여자럭비 국가대표팀에 격려를 부탁했고 "내년에 또 봅시다" 라는 말로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즐겁게 럭비를 하는 선수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괜한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대한민국 여자럭비가 나갔으면 하는 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여자럭비는 엘리트 스포츠 그리고 남자럭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맥락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가두고 있는 "비인기 종목"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럭비에 있어 지금 우리는 목적을 확립하고 장기 목표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실업팀이나 대학진학등을 외치는 것은 우리에게 능력부족이며 여러분이 그것을 요구하는것도 시기상조라고 생각됩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면 더 발전을 해나가 실업팀 창단이나 대학팀의 창단도 이뤄져야 하겠지만 현재는 그것이 이뤄지기 어렵다는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더 잘못된 일은 그것을 하지못하면서 여러분에게 괜한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하고 선수들을 도구화 하는 것입니다. 그런일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믿고 있지만 잘못된 방향의 언론보도가 나올때마다 안타까운 것도 사실입니다.
가끔 여자럭비의 현실을 남자럭비 혹은 엘리트 스포츠의 틀안에서 생각하고 현실을 조명하는 글이나 신문기사를 보게 됩니다. 과연 지금 럭비가 여러분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맞는 기대인지, 그것을 해줄수 있는 우리의 역량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럭비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진정 돌아갈 실업팀이나 대학팀이 없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더 나은 미래와 즐거운 럭비를 위해 우리 스스로 우리를 가두고 있는 "비인기 종목" 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기사는 이제 그만"
개 경주장에서 훈련하는 대표팀 기사
이런식의 보도 행태는 제가 어린 시절부터 이어졌지만 대한민국 럭비의 현실을 바꾸거나 이런기사에 감동 받은 독지가가 나타나서 후원을 해준 일은 없었던것으로 기억됩니다. 여자럭비가 시작하는 지금, 좋은 문화를 만들어가고 럭비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대표라면 진실을 호도하고 우리를 불쌍한 사람들로 만드는것에 단호히 거부할수 있는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여러분들은 충분히 가치있고 자랑스러워 할만한 일을 하고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다.
대안은...PROACTIVE PROACTIVE PROACTIVE
대안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수동적인 구태에 벗어나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누군가가 우리의 현실을 바꿔줄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가치와 성과로 새로운 현실을 개척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실수 있다고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처음이기에 할 수 있고, 처음이기에 좋은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하고, 처음이기에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승의 그 날 까지 건투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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