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새우젓 쪄 먹다 >
- 文霞 鄭永仁 -
지인으로부터 진짜 한국산 새우젓 한 통을 선물로 받았다.
내가 ‘진짜 한국산’ 임을 강조하는 것이 뭣하긴 하지만, 진짜 한국산 토종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어려운 퓨전시대이고 다문화시대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진짜 한국산 새우젓이라고 해도 소금이 중국산이면 얼치기가 된다.
그래서 ‘진짜’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노랫말처럼 ‘내가 너를 모르는데….’
엊그제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 회를 떠 올라고 하는데 회 먹을래? 혹시 방사능 때문에 안 먹을까봐서.” 나는 그랬다. “회 먹은 지 무진 오래 됐다. 방사능이 쳐 질러 들어가도좋으니 사 주기만 해라.”
우리는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마치 수입 쇠고기파동처럼…. 사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면 먹을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될까?
육안으로 보아서 그게 진짜 새우젓인지 아닌지 구분하기에는 문외한(門外漢)이지만, 겉보기에도 발가스름한 게 구미를 당기에 한다.
어렸을 적 입맛을 되살려 내가 직접 양념하여 쪘다. 기본양념에 깨소금,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고 물을 약간 부어 렌지에 돌렸다. 제대로 찐다면 밥물에 찌는 것이지만…. 집사람은 출생 지역적으로 찐 새우젓 경험자가 별로 아니다.
‘아, 어렸을 적 지겹도록 먹던 것이 아닌가?’
꽁보리밥 양은도시락 반찬에 으레 찐 새우젓 아니면 꼬창짱아찌였으니. 그것도 반찬그릇은 간장 종재기에 담아 도시락 귀퉁이에 ‘푹’ 눌러 박았다. 그래도 그건 양반이다. 맨날 고추장만 싸 온 아이들도 많았다. 또 점심 굶는 아이도 많았으니깐.
밥 한 숟가락에 새우젓 몇 마리면 충분할 정도로 짰다.
찐 새우젓을 먹으니 처음에는 제 맛이 안 돌아온다. 몇 번을 먹으니, 그 당시 입맛으로 슬금슬금 되돌아온다. 무척 짰지만 맛의 여운(餘韻)이 잦추 젓가락이 새우젓으로 간다.
나는 어렸을 적, 새우젓을 자주 먹어서 그런지 유난히 새우젓을 넣은 음식을 좋아한다. 김치를 담글 때도 우리 집에서는 으레 다른 젓갈보다는 새우젓을 넣게 할 정도로. 특히 젓국을 넣은 젓국찌개, 거기다가 애호박과 두부를 채 썰어 넣은 젓국찌개는 깔끔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새우젓을 넣은 애호박부침도.
하기야 새우젓은 한식 음식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찰음식만 빼 놓고. 김치는 당연하고, 돼지고기나 족발, 순댓국에, 북엇국에 새우젓을 넣어야 제 맛인 것을 보면 궁합이 맞는 음식인가 보다.
찬 꽁보리밥 찬물에 말아 달랑 찐 새우젓 개다리소반에 올려놓고 제대로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던 그 시절, 그 맛! 결국 맛의 고향은 어렸을 적 에 길들여진 맛이다. 더구나 똥오줌 거름을 준 조선애호박이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특히 젓갈붙이를 좋아한다. 젓국찌개, 찐 새우젓, 젓국애호박무침, 젓국두부찌게, 새우젓달걀찜, 젓국수란 등.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발효식품의 왕국이다. 김치류, 장류(醬類), 주류(酒類), 젓갈류, 당류(糖類) 등. 그중에서 젓갈을 빼놓을 수 없다. 새우젓, 명란젓, 창난젓, 꼴뚜기젓, 오징어젓, 황새기젓, 토하젓(土蝦젓) 등 가히 세계적이다. 뜨신 밥에 얹어 먹는 매콤한 어리굴젓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돈다.
똑같은 재료라도 잘 썩으면 것이 발효(醱酵)고, 잘 썩지 못하면 부패(腐敗)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에게 유익하게 썩으면 발효고 그렇지 못하면 부패다. 이즘 신문 방송에 도배하다시피하는 기사는 발효적 기사가 아니라 부패적 기사다. 도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한국의 부패지수는 가히 세계적이지만 그런 국가가 돌아가는 것을 보는 외국인들은 기적이라고 한다. 아마 그전보다 토박이 발효식품을 덜 먹고 퓨전이나 인스턴트음식을 많이 먹어서 인간들이 제대로 발효되지 못하고 부패만 하는 것 같다.
그중에 내가 새우젓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주로 어렸을 적 새우젓만 접해 왔고, 깔끔하고 개운하며 은은하고 깊은 여운 맛을 지녔기 때문이다.
조산애호박 굵직하게 채 썰어 넣고, 순두부 야들야들하게 썰어 넣고 거기다가 젓국을 넣어 토기 옹백이에다 끓인 새우젓 젓국은 가히 한국의 숨겨진 일품요리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음식의 대표적인 맛은 무엇일까? 중국 음식처럼 느낌함도 아니고, 일본 음식처럼 깔끔함도 아닐 테고, 서양음식처럼 저울에단 맛도 아닐 게다. 내 맛으로 보기에는 매콤함, 구수함, 개운함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매운 맛은 세계 곳곳에 깃잘을 꽂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 몽블랑 꼭대기, 네팔의 트레킹,남미의 최말단, 러시아의 동장군 속에서 우리의 매운맛 라면 ‘신(辛)라면이 야단이라고 한다. 느낌함의 원조인 중국에서도 매운 라면의 인기는 날로 라고 한다.
누가 그랬다. 가장 세계적인 맛은 가장 한국적인 맛이라고!아마 새우젓 젓국의 웅숭깊은 맛이 세계의 맛이 되지 않을까?
인천 소래포구에서 생새우나 새우젓이 많이 나기로는 수도권서민이면 옛날부터 다 아는 사실이다. 협궤열차(挾軌列車) 느릿느릿 다니던 수인선(水仁線). 젓갈 철이 되면 사방에서 몰려 들었다. 그 당시 소래를 갈수 잇는 교통편은 수인선과 버스 노선 한 개뿐이었다. 때가 되면 주로 할머니들이 젓갈이나 김장을 담그기 위한 생새우나 새우젓을 사기위해 몰려들었다. 소래포구에서 나오는 버스에는 새우젓을 잔뜩 산 할머니들로 만원사례였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더구나 덜컹거리는 비포장 흙길이었다. 그 버스가 21번이던가, 22번이던가?
그러면 버스 안의 할머니들의 비릿한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내 젓 터져요, 내 젓 터져! 내 젓 터져요, 내 젓 터진다고!”
하기야 쪼그랑박같은 할머니의 두 젖이 터질 리 없고, 가슴에 앉은 새우젓주머니가 터진다고 아우성이었다.
저문 날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오늘 먹은 새우젓처럼 그리운 그 맛, 짭쪼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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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젓국 : 젓갈이 삭아 우려낸 국물.
2) 개다리소반 : 상다리 모양이 개의 뒷다리처럼 구부러진 작은 밥상.
3) 젓갈붙이 : 젓갈 종류에 딸린 음식.
4) 젓국수란 : 젓국을 탄 물에 쇠고기, 파, 따위를 썰어 넣고 끓이다가 달걀을 깨뜨려 넣어 반쯤 익힌 반찬.
5) 젓갈 : <젓가락>의 준말 젓으로 담근 음식.
6) 쪼그랑박 : 덜 쇠어 쪼그라든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