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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극락암 홍매 2015년 3월 8일
다른 사찰에서는 칠성각으로도 불리우는 극락암 수세전(壽世殿) 앞
삼소굴옆 산수유꽃
삼소굴(三笑窟) ; ‘팔능거사’로 전국에 명성을 날리던 대구의 서화가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 : 1862~1935)의 글씨다.
‘호계삼소’는 유교·불교·도교의 진리가 그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것을 상징하는 이야기다. 중국 송나라 진성유(陳聖兪)가 지은 ‘여산기(廬山記)’에 나온다.
동진(東晋)의 고승 혜원(慧遠·334~416)은 중국 불교 정토교의 개조(開祖)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처음에는 유학을 배웠고, 이어 도교에 심취했다. 그러나 스무살이 지난 뒤에는 승려가 되어 여산에 동림사(東林寺)를 지어
머물며 수행했다. 입산 후 그는 ‘그림자는 산을 나서지 않고, 발자취는 속세에 들이지 않는다(影不出山 跡不入俗)’라는 글귀를 걸어두고, 다시는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그런 혜원은 찾아온 손님을 보낼 때는 언제나 사찰 아래 있는 시내인 ‘호계’까지 가서 작별 인사를 했다. 호계를 건너가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유학자이고 시인인 도연명(陶淵明·365~427)과 도사(道士) 육수정(陸修靜·406~477)을 배웅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청담(淸談)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지나고 말았다. 그의 수행을 돕던 호랑이가 그것을 보고 울음소리를 내자 문득 이 사실을 안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40년전 1975년 여름 여기 극락암에서 靑苑이라는 법명을 내려주신 경봉스님께 삼배 올리고...... 지금 계신곳이 어딘지 여쭈었더니,
내게 들리는 스님 말씀 "야반삼경에 문빗장을 만져보거라" 호쾌대활(好快大活) : 읽기만해도 가슴이 툭 터인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낙관은 완당(阮堂)이다. 삼소굴 옆에 위치한 원광재(圓光齊)에 걸려 있는 현판중 하나이다.
다음주 월요일 선암사의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된 홍매, 백매와
구례 화엄사 흑매 탐매후 또 사진 올릴까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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