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푸름을 잊지않고 찾아오는 오월은 성모님에 달
뜻하지 않게 희생된 세월호 희생자에 명복을 빌며
하루를 조심스레 다녀 왔습니다.
집을 나서니 모든 스트레를 확 던져 버리고 자연의 경이로움과 세월을 낚는 강태공처럼 하루일과가 순식간에 가 버렸습니다.
26명이 버스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에 오르자 묵주기도는 시작이되었고
어느듯 연풍성지에 다달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원주 명륜동성당 본당식구전체와 범계성당 구역 그리고 다른 많은 신자들 과 더불어 11시미사를 경건하게 드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연풍성지 신부님의 낭낭한 목소리의 강론 말씀과 공지사항을 듣고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웰빙식사이기도 하지만 허기 때문인지 양푼처럼 큰 그릇에 담은 음식이 많은줄 알았는데 먹다보니 그것 모두를 비웠습니다.
모두들 잘들 드셨나 봅니다.
식후 시간이 되는데로 14처의 십자가 기도를 마치고 제2차 대화의장 에서는 집에서 장만 해온 여러음식을 우리 회장 성낙봉 리콜라오 회장님께서 손수 장만 해오셨습니다.
늘 어디를 가든 준비 하시느냐 자매님까지 힘들게 하시더군요.
늘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 하시길 빕니다.
건강 하시구요
한사람 희생으로
우리 회원 모두가 즐겁구 배부르니 좋지요.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고맙습니다.
우리 회원님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을 기약하면서 다녀온 그곳 사진 몇장을 올려봅니다.
1791년(정조 15) 신해교난(辛亥敎難)으로 연풍지역에 은거하던 가톨릭 교인 추순옥(秋順玉)·이윤일(李尹一)·김병숙·김말당·김마루 등이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자리이다.
괴산읍에서 연풍, 문경 방면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고, 문경새재 서쪽 기슭의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연풍면은 소백산맥의 산릉에 속한 험지여서 예로부터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은신처를 찾는 순교자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어 일찍이 신도촌이 형성되어 왔다.
1963년 천주교회가 연풍공소의 예배소로 사용하기 위해 조선시대의 향청 건물을 구입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헌병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사용된 적도 있었다. 이곳에서 논과 집터 정리 작업을 하면서 박해 때 죄인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 3개를 발견하였고, 1968년에는 한국천주교 103성인(聖人)에 속하는 황석두(黃錫斗:1811~1866)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남에 따라 성지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황석두는 1813년(순조 13) 연풍면 병방(兵房)골에서 태어나 1866년(고종 3) 충청남도 보령군 오천면 갈매못성지에서 순교하였다.
1974년 천주교회에서 이곳을 성역화하였고, 1982년 평해 황씨 문중산에 묻힌 황석두의 유해를 이장해왔다. 성지 내에는 옛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십자가상 왼쪽에는 역시 갈매못성지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등 5인의 성인상과 순교현양비(殉敎顯楊碑)가 서 있다. 문 앞에는 처형석(處刑石)을 전시하고 있으며,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이 있다. 매년 2만여 명이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첫댓글 과천천사가 베드로 형제님이시군요~~ ㅎ수고했어요
이름바꿔야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