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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가끔 한번씩 기획산행을 한다. 기획산행이라봐야 예전 같지는 않다. 이 나이에 뭐 대단한 것을 하겠냐만은, 그래도 우리 나이치고는 제법 양질의 산행에 도전한다. 작년 울릉 전 지역 탐사와 응봉산 용소골 탐사가 그 것이고, 올해는 이번이 내장-백암산 종주가 그것이다. 종일 걸어서 다리가 우~리~~~하게 걸으면 그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산행의 무게감 때문인지 신체에 약간씩 하자가 있는 친구들은 기피하고, 모두 5명이 내장-백암 종주에 도전한다. 한마디로 한국100명 2개를 한번에 꿰어 차는 산행이다.
5.26(토)일 새벽 일찍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고 새벽 5시 정각에 집을 나선다. 서울 친구들은 아침 6시에 모인다고 해서, 나는 가는 길이 편도 1차선인 88고속도로가 있어 서울보다 시간이 더 지체된다 싶어 미리 나선 것이다. 나는 자동차전용도로로 경주-영천으로 가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북대구 지나 금호분기점에서 빠져나와 구마고속도로-88고속도로로 올라탄다. 그리고 담양IC에 내려 내장산 국립공원의 백양사로 들어온다. 하지만 약속시간인 9:30분보다 1시간 빠른 8:30분에 도착하여 1시간을 기다린다. 이제 백양사 주차장에서 친구들을 만나 내 차를 여기에 두고 전현수 차를 타고 내장산으로 들어가 산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내장산에서 백암산으로 연결된 산행을 하고 백약사로 떨어져 내 차로 다시 내장산으로 가서 모든 일정을 끝낼 것이다.
우리가 백양사에서 만나기로 한 9:30분이 지나 9:50분 경에 서울 친구들이 백양사에 도착한다. 그들도 시간을 잘 지켰다는데 조선족 중국인인 안홍미씨가 약속 장소를 착각한 바람에 조금 늦어 졌다고...........하긴 그녀는 한국에 익숙치 않으니, 저 정도로 호흡을 맞추어 주는 것만 해도 대단한거지.
내장산은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 장성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국100명산중에서도 단풍 제일의 산으로 꼽힌다. 내장산의 최고봉인 신선봉(神仙峰)의 높이는 763m이고, 노령산맥의 중부에 위치하며, 북쪽에서부터 월령봉(420m)·서래봉(580m)·불출봉(610m)·망해봉(640m)·연지봉(蓮池峰, 671m)·까치봉(717m)·연자봉(675m)·장군봉(將軍峰, 696m)의 내장구봉이 동쪽으로 트인 말굽형으로 분포하는 호남 5대 명산(지리 월출 천관 내변 내장)의 하나이다.
특히 가을철 단풍이 아름다워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혔다. 백제 무왕 37년(636년) 영은조사가 세운 내장사와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쌓았다는 동구리 골짜기의 내장산성이 있으며, 금선폭포, 용수폭포, 신선문, 기름바위 등의 명소가 있다. 내장산은 백암산과 함께 1971년도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양사에 내 차를 두고 전현수 차로 내장산으로 왔다. 우리는 급히 내장산 케이블카 승강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산행 준비를 한다. 산행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어 서두른다. 저녁에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니까..........
오늘 산행의 멤버인 안홍미와 이성표. 안홍미는 조선족 중국인으로 한국에서 비철금속 무역업을 하고 있는 캐리어우먼이며, 옆의 이성표는 나의 초등학교 4,5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말수가 적은 성실한 산꾼이다.
오늘 산행은 거리가 멀어 시간과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연자봉까지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연자봉으로 오른다.
내장산은 원래 본사 영은사(本寺 靈隱寺)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이라고 불리었으나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하여 내장(內藏)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지명도 내장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장산은 백암, 제암, 일림, 무등, 방장, 조계, 백운산 등과 함께 호남정맥 상에 있으며 전라남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험준하지만 동남부,서남부,북서부 일대는 화강암류 및 편마암류가 미약하게 분포하여 비교적 낮은 산세를 보인다. 서래봉 일대는 절리의 발달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기암괴석을이룬다.
내장산은 1971년 인근 백양사 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내장산에서 가장 많은 탐방객이 이용하는 코스는 탐방안내소-서래봉(624m), 불출봉(622m)을 지나 탐방안내소로 내려오는 코스로, 소요시간은 4시간이고 거리는 5.65km이다. 비록 정상인 신선봉을 거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내장산 등반이라 하면 이 서래봉 코스를 일컫는다.
현재 내장산국립공원에서 특별보호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곳은 총 5개 구간으로, '원적계곡', '내장동일원', '새재갈림구~남문, 은선굴', '일광정~용수폭포 일원', '자하동골일원'이다. 오늘 우리가 가는 길 중에 순창새재 지역의 일부가 여기에 포함되어 우리를 한동안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내장은 ‘호남의 금강’으로 불려질 정도로 가을철의 단풍이 유명하며, 금선폭포·용수폭포·금선계곡·백암계곡 등도 유명하다. 보천교 건물을 옮겨 세운 내장사가 있고, 내장사 입구 동구리 골짜기에는 임진왜란 때에 승병장인 희묵(希默)이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울 때에 쌓았다는 내장산성이 있다.
연자봉 직전에 정상인 신선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연자봉은 탐사 의미가 크게 없기에 우측길로 접어들어 바로 신선봉으로 나아간다. 신선봉 정상 코스도 내장산 등반객들에게는 크게 호감을 주는 코스가 아니다. 반대편 능선에 있는 서래봉과 불출봉의 등반성이 워낙 좋기 때문이다.
반대편 능선에 서래봉이 보인다. 내장은 주능선이 U자를 크게 그리는 형상이어서 종주하면 결국 회귀 되는 산이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코스는 좌측 신선봉 방면이 아니고 우측 서래봉 방면이다. 가장 높다고 해서 반드시 등반성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는 예가 바로 이 내장산에 있다.
내장산 정상인 신선봉이다. 강대춘, 전현수, 이성표, 문성호는 서울 무학국민학교 동기생들이다. 나는 초등학교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우리 때는 국민학교였으니까...........
여기가 정상이다. 여기서 소둥근재 갈림길까지는 40분이라고 적혀 있다.
정상으로 오려고 버린 봉우리들이 뒤에 줄지어 있다. 뒷쪽이 장군봉이고 그 앞이 연자봉이다. 우리는 연자봉 직전에 우측길로 빠져 정상으로 왔다.
소둥근재로 가는 갈림길을 찾으려고 독도를 부지런히 했지만 이렇게 버젓이 이정표가 있다. 국립공원은 역시 다르다. 그런데 골 때리는 사건은 그 뒤에 발생한다. 웃지 못할 사건이..............
소둥근재로 가는 길에 나타난 백암산. 우측에 가장 가까이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인 상왕봉이고 좌측 봉우리가 백학봉이다. 백암산은 전북 순창군과 정읍시 그리고 전남 장성군에 걸쳐 있다. 다시 말하면 내장은 전북이고 백암은 전남이다.
잠시 휴식
여기가 소둥근재지만 우리는 한참 헷갈렸다. 무식한 것이 용감하다고 여기서는 산 지식이 조금 있으면 오히려 낭패를 본다. 왜냐면 내장산 주능선에서 소둥근재와 순창새재는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코스의 야생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길을 막아 버리고 이정표들을 전부 아래 계곡으로 옮겨 놓았다. 국립공원에서 이런 넌센스를!!!!
덕분에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중간중간에 등반로라는 안내판을 따라 내려오면서 독도를 하니 명백하게 길을 잘못 들고 있었다. 우리는 능선으로 순창새재를 향해야 하는데 계곡으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옆으로 빠질 이유가 없는데 이러니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되돌아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잘못된 길이지만 그대로 계곡으로 내려와 다시 능선에 붙을 생각이었는데 그 아래 계곡에 소둥근재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완전 넌센스다. 일명 소죽엄재인 소둥근재는 '재' 지 계곡이 아니다. 능선의 야생동물을 보호하려고 했다면 적어도 국립공원 같으면 거기에 대한 멘트가 공지되었어야 했다. 능선에 있던 이정표를 그 아래 계곡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지도에는 능선으로 등반로를 표시해 놓고 실제로는 계곡 밑으로 이정표와 등반로를 옮겨 놓았다.
여튼 우리는 가짜 소둥근재에서 다시 능선을 타고 올라 순창새재에 닿았다. 결국 내장-백암 종주는 의도된 등반로 이탈까지 합하여 약17.5㎞ 거리로, 9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순창새재에서 부터는 길이 완만하다. 아늑한 숲길이라 밥 먹은 뒤 식곤증에도 그리 힘들지 않다. 마지막 백암산 정상인 상왕봉 직전에 가파른 오르막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백암산 정상 상왕봉이다. 4년전 한겨울에 눈 속에 여기 정상에 왔던가? 그때 같이 왔던 사람은 지금은 가고 없다. 여기에 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성표와 안홍미가 정상에 선다. 그들로선 초행이다.
백암산 정상 상왕봉에서 쉬운 계곡길로 바로 내려가면 백암산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정공법을 택해 주능선을 다시 돈다. 시끄새가 시발시발살 수 밖에 없다. 중간에 만나는 절벽 위 멋들어진 소나무.
저 계곡의 끝에 백양사가 있고 그 곳이 종착지이다. 서서히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구암사 갈림길 지나고 백학봉 직전이다.
백양사에서 올려다 보이는 멋진 바위산인 백학봉은 이제 400m 남았다. 그 백학봉의 바위 전체가 하얀색이어서 이 산을 백암산이라고 부른다.
창명 전현수의 표정도 지쳐 보인다. 이번 산행은 그가 제안한 것이다. 산을 늦게 시작한 창명은 오히려 장년에 접어 들어 왕성한 산악활동을 하고 있다. 언젠가 그도 우리들의 대장이 되겠지?
여기가 백학봉 정상. 여기는 그저 그런 지형이지만 백양사에서 보는 백학봉은 장관이다. 오죽하면 어느 시인이 가을에 백양사에서 올려다 본 백암산 백학봉을 한국 최고의 경치라고 일컬었겠는가? 보기와는 달리 우리는 하얀 바위봉 위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백학봉 정상 인증샷!
백학봉에서는 아래로 쏟아진다. 다리 힘도 빠졌는데 가파른 계단이라 후덜거린다.
백학봉의 바위 사면은 웅장하기만 하다. 사진으로는 전체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 저 아래 목적지 백양사가 보인다.
영천굴. 샤마니즘의 흔적도 강하다.
그리고, 절벽에 붙은 암자인 약사암이다.
백암산 능선
백양사는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며 40여 개의 사찰을 관할하는 거대 사찰로 이른바 한국5대 총림이다.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다시 말하면 한국 5대 사찰이다. 백양사는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如幻)이 창건하고, 고려시대인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한 후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다.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당시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염불을 하자 흰 양들이 몰려오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를 보고 사찰이름을 백양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중건을 거쳤다.
사찰의 주요 건물로는 환양이 세웠다는 극락전(極樂殿:지방유형문화재 32)이 가장 오래되었고,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43)은 1917년 만암(曼庵)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으로, 석가모니불 ·보살입상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건립한 사천왕문(四天王門:지방유형문화재 44)과 1896년경에 세운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이 밖에 백양사 재건에 힘쓴 소요(逍遙)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소요대사 부도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안치되어 있는 9층탑이 있다. 백양사에서는 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백양사 위로 백학봉의 일부가 보인다.
한국 최고의 갈참나무가 백양사에 있다. 나이가 700년이라고 한다.
내장-백암 종주를 마치고 우리는 부리나케 서둘러 내장사 입구에서 비빔밥으로 초요기를 하고 서울로 내 달린다. 중간의 죽암휴게소에서 해단식을 하고 안홍미, 문성호와 함께 나는 서울로 달려 퇴계원까지 간다. 거기서 문성호와 함께 새벽 6시까지 달렸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어느새 기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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