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영어발음 좋아지기!
우리는 한국인의 영어 발음이 안 좋은 것도 알고 있고, 영미인이 한국어를 이상하게 발음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지 구명해본 적이 있는가? 선천적으로 구강구조가 다르기 때문인가? 영국이나 미국에서 자란 한국 아이들이 완벽한 본토발음을 내는 것을 보면 선천적인 차이는 아니다. 차이가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저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필자가 아는 한 그 원인을 밝히고 설명해 준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영어 발음을 연습하면서도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캐묻지 않았는지 필자 스스로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도 모르면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투자했다는 사실에 허탈감도 느끼고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질문들을 가지고 한동안 속앓이를 하던 필자는 드디어 원인을 깨달았다.
한국인들의 혀는 평상시 윗니-잇몸-입 천장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데 반해, 영미인들의 혀는 평상시 아랫니-잇몸에 내려와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차이가 발음과 리듬에 차이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필자로
하여금 아예 새로운 영어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필자는 음성학 교재들을 다시 읽어 보았지만, 그런 설명을 하고 있는
책은 한 권도 없었다. 혀의 높이, 조음 위치에 대한 설명은 있었지만 혀의 위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래도 필자는 확신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혀를 아래에 붙이고 있으려고 했다. “혀를 아래로 붙이고 있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혀가 아래에 있다가도, 딴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혀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좁은 입안에서 평상시 혀의 위치를 옮기는 것이 그렇게 힘든 작업인 줄 몰랐다. 혀를 아래로 내리고 있으면 입 주위의 근육이 덩달아 조금씩 움직였다. 근육을 움직이다 보면 가끔씩 통증이 오기도 하고 근질근질하기도 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 연습을 하다보니, 조음구조의 전환은 영어 실력과 별로 상관이 없는 물리적인 현상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즉 영어 발음이 좋은 것과 영어 실력이 좋은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영미인들은 혀의 위치와 입의 근육이 영어가 가진 소리들을 조음하기 편하게 발달돼 있을 뿐이다. 한국인의 조음구조는 한국어의 소리들을 발음하기 편하게 발달된 것과 마찬가지다. 비로소 영어와 한국어 조음구조의 차이를 조금씩이나마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한국 사람의 조음구조를 영어식으로 바꾸어 놓는다면,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발음할 때 미국 사람이 발음하는 것처럼 바꾸어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어 ‘소리 세계’에 들어간 과정 영어의 발음을 익히는 방법에는 모방하기(mimicking)와 조음구조(articulatory setting)를 조정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음도 알게 됐다. 그동안 필자가 하던 작업은 조음구조를 조정하는 것이 아닌 모방하기였음도 알게 됐다. 영미 학자들이 쓴 영어 음성학 교재에 혀의 위치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나 설명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됐다. 자기네 말을 발음할 때 혀의 위치는 당연히 그렇게 돼 있는데, 그들이 그 부분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의 영어 발음이 잘 되지 않는 이유가 혀의 위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영미 음성학자들이 알 까닭이 없다. 그들은 한국어의 조음구조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영어의 개별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영어 발음이 우리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차츰 느낌으로 알게 됐다.
조음구조를 바꾸는 연습을 하면서, 두 개 이상의 음절이 오는 경우 영어에는 반드시 리듬이 들어가는 이유가 무언지도 알게 됐다.
리듬을 넣지 않으면 그러한 조음 구조를 가지고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이론이 아닌 감각으로 깨닫게 됐다. 강세와 리듬이 먼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의 조음구조를 가지고는 강세와 리듬을 넣어서 발음해야 편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영미인은 영어를 발음하기에 가장 편한 조음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영미인들은 사진을 찍을 때 ‘치-즈(cheese)’를 발음하라고 하는데, 그 단어를 발음하면 실제로 웃는 모양이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영어의 조음구조를 연습하고 발음을 익히니 영어가 전혀 다르게 들려왔다. 그때만 해도 필자는 AFKN-TV 프로그램으로 청취 교재를 만들어 강의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듣기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영어를 들을 때 신경을 집중하고 들어야 했을 뿐이다. 그러나 조음구조를 연습하면서는 소리가 다르게 들려왔다. 영어의 소리 그 자체가 들려왔다. 영어 단어들이 아닌 영어의 소리가 다 들려왔다. 영어라는 소리 세계가 처음으로 열리는 느낌이었다. 나의 듣기 실력이 다른 차원으로 뛴 듯했다. 뜻을 알아들으려고 신경을 집중하지 않아도 소리 전체가 들려왔다. 그렇게 영어의 소리 세계가 들리니 ‘이러다 미국인 되는 거 아냐?’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