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김치의 칠미(七味) >
文霞 鄭永仁 -
옛 어른들은 김장을 ‘반농사’라 했다. 춥고 긴 겨울, 서민생활에서 쌀·김치·연탄만 있으면 ‘겨울 끝 !’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기에. 김치로 끓인 갱시기를 먹을 지라도.
우리 집도 오늘 반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참으로 김장하기 편해서 절임배추로 하는 것이 대세이다. 어떤 곳에서는 속까지 버무려준다고 한다. 그래도 집사람은 김장하기가 힘들다고 궁시렁거린다. 겨우 20포기하면서.
두 늙은이만 달랑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무채를 썰고, 속을 버무려서 김장을 담갔다. 하여간에 우리 집만의 맛깔스러움이 별로다. 우리 집이 김장농사를 지은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김치 담그기에 대한 우리 집만의 솜씨미가 무미 덤덤하다. 게다가 일머리가 부족한 집사람은 김장철이 돌아오면 한동안 끌탄을 한다. 맞벌이를 할 때는 그간 여러 코스를 통해서 조달하여 먹었기 때문이다. 누나가, 둘째형수가 셋쩨형수가 담가 주던 김치 맛이 다 다르다. 아마 그게 솜씨 맛이 아닐까 한다.
연신 절임 고갱이를 뜯어 속과 먹어보지만, 영 나나 집사람이나 자신이 없다. 어쨌거나 지지고 볶고 마무리한다.
배추는 다섯 번 죽는다고 한다. 배추밭에서 뽑히고, 칼로 포기 가르고, 소금에 절이고, 속으로 버무리고, 김칫독으로 땅에 묻히고……. 지금이야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냉장고에다 묻지만.
거룩한 죽음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오직 남을 위해 살다가 결국 먹혀지기 때문이다. 김치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은 햇빛, 비, 바람, 흙 등의 자연의 에너지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이다. 거기다가 농부의 땀까지……. 그러니 천지인(天地人)이 어우러지는 철학적 산물이다.
배추 무 고춧가루 파 등이 바로 천사요 보살이다. 다 담그니 집사람 얼굴에 흐뭇함이 배인다. 마누라도 보살이요, 천사다.
어떤 이는 김치에겐 오미(五味)외 발효미(醱酵味)를 하나 더해서 육미(六味)라고 한다. 나는 솜씨미를 하나 첨가해서 칠미(七味)라고 하고 싶다.
어찌 보면 김치는 우리 민족만의 종합예술이다. 모든 게 어우러진 요즈음 그리도 떠드는 융합작품(融合作品)이다. 오방색(五方色)에다 겨울을 나긴 위한 과학적인 발효와 숙성의 우리 민족의 최고의 융합이 아닌가 한다. 그외 융합작품의 대표주자는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비빔밥이다.
유명한 한국의 젊은 세프는 한국 음식이 다른 나라 음식과 비교되고 훌륭한 것은 완제품(完製品) 음식이 아니라 반제품(半製品) 음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음식은 반은 요리사가 하지만, 반은 먹는 사람이 요리하여 가면 먹을 수 있는 창조적인 음식이라는 것이다. 비빔밥만도 그렇다. 각종 비빔자료를 가지고 먹는 사람이 자기에 맞게 비벼 먹을 수 있다. 김치는 또 어떤가. 김치로 요리 해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김장문화는 1, 2, 3차 산업을 뛰어 넘어 6차 산업인 것이다.
더구나 이번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로부터 인류무형유산으로 김장문화가 등재되었다. 정식 명칭은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 김장문화는 나눔의 문화요, 발효의 문화요, 숙성의 문화요, 융합의 과학이다.
더구나 장류나 젓갈류까지 생각하면 한국은 발효음식의 대국이다.
사실, 김장 담그기는 고도의 경험과 창조성의 집합체이다. 배추 고르기, 소금 선택, 알맞게 절이기, 젓갈의 선택, 고춧가루, 버무리기, 그리고 보관과 숙성까지…. 사실 김치냉장고의 출현도 김치의 합리적인 보관의 대표적인 융합작품이다.
나는 지금 비장(秘藏)의 나만의 김치로 요리하는 레시피를 공개한다.
우선 시금시금하게 익은 작은 포기김치 하나를 꺼내 썬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밑동 부분보다는 이파리 부분을 길쭉하게 썰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밥숟가락에 서리서리 얹어 먹을 수 있다. 마치 보쌈김치 하듯이.
대접에 밑동 부분보다는 길쭉한 이파리부분을 넣고 들기름 몇 숟가락을 친다. 물은 자작자작하게 붓는다. 거기다가 설탕을 조금치고 무쇠밥솥 밥물에 찐다. 밥물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압력밥솥이기 때문에 그냥 전자레인지에다 한 20분 푸근하게 돌린다. 이때 김치대접 밑에는 좀 큰 접시를 바친다. 따끈하고 고슬고슬한 밥 한 숟가락 떠서 들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그 김치를 서리서리 얹는다. 그 맛에 대해선 생략한다.
누가 그랬다. 추억의 반은 맛의 추억이라고….
나는 들기름에 찐 김치를 먹을 때마다 김이 서리서리 나는 무쇠밥솥 뚜껑을 열고 찐 김치 투가리를 꺼내시던 투박한 엄마의 손이 아른하게 떠오른다 그것도 매닥질한 부뚜막 위에서…….
‘버무리다’라는 낱말은 ‘융합(融合)하다’라는 한자어의 순우리말이 아닐까?
돼지고기 서너 근 푸욱 삶아서 곰삭은 새우젓과 갓 버무린 속과 고갱이와 함께 입이 터지도록 밀어 넣던 왁자지껄도 이젠 내 나이처럼 시들해지고 저물어간다.
더구나 남은 달랑무우처럼 둘만 있으니, 이게 뭔 재미여! 구수한 된장 배춧국에 쭈욱 찢어먹던 이웃 아줌마들의 수다도 다 사라져가는 지금, 우리 부부는 그나마 겸상해서 반농사를 먹는다.
그나저나 가족들이 좀 모여서 김장 담근다고 해도, 저마다 스마트 폰 들고 있을 풍경 생각하니, 그놈의 전자파도 함께 버무리니 뭔 맛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