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전남 화순 만연산 & 오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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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2012년 7월 7일(화) 오후
◈누구랑 : 혼자
◈날씨 : 무더운 오후
◈산행코스 : 수만리 큰재(14:38)~△전망대(608m/15:03)~△ 만연산(668m/15:32)~능선4거리(15:42)~
~만연사16:27)~오감길(17:19)~전망대3거리(17:43)~수만리 큰재(17:58)
◈산행시간 : 14:38~17:58(3시간 20분)
점심먹고 마눌님이랑 금당산을 갈려고 나오니 햇빛이 쨍쨍....
마눌님은 포기하고 헬스간단다
그래서 결국 혼자서 화순 만연산으로....
가끔씩 아버님이 전대 화순병원에 입원해 계시면 바로 보이는 만연산
또는 여수갈 때 수만리를 넘어서 동복으로 갈 때 지나가는 만연산...
봄에 철쭉이 피면 인산인해인데...
하여튼 물하나만을 배낭에 담고 나섰다.
등산로도 그냥 머리에 있기에....
산행을 마치고 본가에 들러 인사만드리고 귀가했습니다
<만연산 위치>
<다녀온 개념도>
<다녀온 개념도 #2>
<무돌길 안내>
<숲 길>
<수만리 큰재와 대동산>
<무등산 정상에는 먹구름이..>
<화순시가지>
<무등산>
<전망대 구름다리>
<만연사와 만연저수지 그리고 화순읍>
<지나온 능선>
<만연산 정상석>
화순의 진산(鎭山)으로서 무등산의 지붕으로 불리는 만연산(668m).
만연산은 무등산에서 뻗어온 능선이 화순읍을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다.
날카로운 바위 봉우리들이 솟아 있어 험해 보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부드러운 능선들이 반긴다.
만연산은 크게 두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낮은 봉우리는 날카로운 암벽이 많아 남성미를 풍기는 반면
정상은 부드러운 여성적인 멋이 배어있다.
<먹구름에 쌓여있는 무등산>
<수만리 큰재가 보입니다>
<화순 수만리>
수만리 큰재 왼쪽에 대동산
<이정표>
<능선사거리>
무등산환종주를 하려면 수레바위산으로...
<울울창창...>
<오감길과 만납니다>
<오감길 #1>
<오감길 #2>
<만연산능선과 만연사>
<만연산 능선>
<만연사 대웅전 #1>
<만연사 대웅전 #2>
<만연산 능선>
<만연사 범종각>
<나한산 만연사>
만연사(萬淵寺)는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179번지 만연산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만연산은 나한산(羅漢山)이라고도 한다.
절은 고려시대인 1208년(희종 4)에 만연선사(萬淵禪師)가 창건했는데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전한다.
만연선사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에 무등산의 중봉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지금의 만연사 나한전이 서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는 16나한이 석가불을 모실 불사를 하고 있는 꿈을 꾸다가 잠이 깨었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눈이 내려 백설이 온 세상을 덮고 있는데, 만연선사가 누운 자리 주변만은 눈이 녹아 김이 나고
있는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고 한다.
창건 이후 절은 큰 사찰로서의 법등을 이어왔던 듯, 고려 후기 조계산 수선사의 창건주인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각(舍利閣)을 비롯하여 대웅전·시왕전(명부전)·나한전 등 3전각과, 승당·선당·동상실(東上室)·서상실·동별실(東別室)·서별실·수정료(守靜寮)·송월료(送月寮) 등의 전각이 있었다.
또한 경내 중앙에는 큰 설루(說樓)가 있었으며 그 아래에 사천왕문과 삼청각(三淸閣) 등이 있었다.
산내암자도 학당암(學堂庵)·침계암(枕溪庵)·동림암(東林庵)·연혈암(燕穴庵) 등 4암이 있었다 한다.
그리고 고려 말기에는 향나무로 삼존불상과 십대명왕상, 16나한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금어 비현(丕賢) 스님이 그린 괘불과 범종불사가 있었음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절은 병자호란 당시 외적 방어에 일조 하기도 했다.
《창의일지(倡義日誌)》에 의하면, 1636년(인조 14) 12월 16일에 만연사 스님 지삼(智森)·지환(智環)·경훈(景勳) 등이 종이 10속(束)을 바쳐 군중일지를 만드는 데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달 30일에는 장(醬) 다섯 항아리와 마른나물 100속을 의병장 조수성(曺守誠)에게 보내기도 했다.
또 이듬해 1월 10일 지삼·지환 스님 등이 밥쌀 20말과 산나물 200묶음, 장지(壯紙) 다섯 묶음, 유지(油紙) 두 묶음,
삼으로 만든 신발 60켤레를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1793년(정조 17) 9월에는 절에 큰 불이 일어나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국내 유일의 진언집 판각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절은 이듬해 도료장(塗料匠) 경관(慶冠) 스님에 의해 중건되었다.
한말에는 당시 국창(國唱)으로 불리던 이동백·이날치 명창이 만연사에서 창악을 연마했으며, 정광수·임방울 등 당대의 명창들도
이곳에서 창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만연사는 고요하게 쏟아지는 계곡의 시원한 물이 좋아 속세의 때를 씻어내주는 듯 정신을 상쾌하게 하여 많은 소풍객이 찾아든다.
절의 산내암자로는 선정암(禪定庵)과 성주암(聖住庵)이 있다.<물교문화에서>
<전나무>
한편 절에는 전라남도에서 지정한 보호수(제10-77호) 전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둘레 3.5m, 높이 29m로서
절의 영욕과 함께한 노거수이다.
이 나무는 만연사의 창건을 기념하여 화순 출신의 조계산 수선사 제2대 회주 진각국사 혜심이 손수 사찰 경내에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만연사의 연원을 짐작케 해주는 나무이다.<불교문화에서>
<만연사>
<이정표>
<이정표>
<오감길 안내도>
새롭게 조성한 웰빙등산로
<오감길 #3>
<오감길 #4>
<오감길 #5>
<오감길 #6>
<이정표>
전망대로 오릅니다
<수만리큰재길로 합류하고>
<대동산>
<만연산 안내도>
<무등산 국립공원화를 반대하는 현수박>
<수만리큰재에서 대동산으로 오르는 길>
언제 시간내에 이곳에서 올라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