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패키지, 승마체험 이용료 1만원이면 여행사 수수료가 7000원"
특산품은 수수료 30~50% 바가지 요금으로 이어져… 장거리 택시 요금 흥정도
年관광객 700만명 육박 외형은 하와이와 비슷… 만족도·경쟁력은 떨어져
지난달 26일 제주국제공항에서는 관광객 500만명 돌파 기념식이 열렸다. 관광 흥행몰이에 성공했던 작년(10월 4일)보다 무려 39일이나 앞당긴, 제주관광 사상 최단기간 기록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은 1996년 400만명에서 2005년 500만명, 2009년 650만명 등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목표치로 세웠던 670만명 돌파는 물론 700만명까지 넘보고 있다. 제주관광업계에 신바람이 불면서 관광객 1000만명 시대로 가는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제주관광의 외형이 커지면서 겉은 화려해지고 있다.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국제적 관광지로 가는 제주관광의 미래가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2008년 초부터 제주도청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제주관광 고비용 개선운동' 덕에 인하하거나 동결됐던 관광요금이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관광 호황을 틈타 은근슬쩍 인상되면서 제주관광이 다시 비싸지고 있는 게 우선 큰 문제다. '싸구려 패키지 상품'과 '바가지요금'으로 이어지는 고질병이 여전히 제주관광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 ▲ 민속마을과 식물원, 해양수족관 등 대규모 관광시설을 갖춘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앞 전경. /이종현 객원기자 grapher@chosun.com
한 인터넷 여행사는 지난 9월 말 2박3일 일정의 제주 관광 패키지 상품을 성인 1인당 12만9000원에 판매했다. 여기에는 항공요금과 숙박, 아침·점심 식사 요금이 포함됐다. 김포~제주 왕복 항공요금(평균 15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런 패키지 여행상품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해답은 '송객(送客)수수료'에 있다. 송객수수료는 관광지나 특산물 판매점, 식당 등이 관광객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여행사 등에 주는 수수료인 일종의 리베이트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모(35)씨는 "관광객이 특산물 판매장에서 4만5000원가량의 산삼액즙을 구입하면 판매장은 그 가격의 30~50%를 여행사 등의 몫으로 챙겨준다"며 "3일 여행 일정이라면 특산물 판매점 3곳 이상을 끼워넣는 것이 통상적 관례"라 했다. 옵션관광으로 끼워넣은 관광지 이용료가 1만5000원이면 실제 관광지가 받는 이용료는 3000~5000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송객수수료라는 말이다. 결국 싼 패키지 상품으로 제주에 온 관광객이 '과도한 송객수수료'가 포함된 옵션관광과 특산물을 구입한 비용까지 지출에 합쳐 보면 결코 저렴한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송객수수료가 음성적이면서도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면서 바가지요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작년 조사한 송객수수료 실태를 보면, 관광지 이용료와 특산품 가격에 송객수수료가 최고 70%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객 한 명이 승마 요금으로 내는 1만원 가운데 3000원은 승마장 몫이고, 나머지는 여행사와 관광안내사, 관광버스 기사가 나눠 갖는다는 것이다. 제주지역 송객수수료 비율은 다른 지역의 관광지와 비교해 아주 높게 조사됐다. 서울과 경인, 강원 지역 사설관광지 송객수수료는 20~30% 수준이었고, 토산품점의 경우 서울과 경인지역은 10% 이내, 강원은 20~30% 수준이었다. 제주도는 과도한 송객수수료가 제주관광의 고비용을 낳고, 결국 '바가지'라는 불명예와 함께 제주도 관광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주범이라고 분석했다.
제주도관광협회 정윤종 기획운영부장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끼리 개별적으로 관광지를 찾아온 관광객들도 적정 요금이 아닌 과도한 송객수수료가 포함된 비싼 요금을 내고 있는 것"이라며 "일부 관광지가 개별 관광객용 할인 쿠폰을 발행하고 있지만 '비싼 제주관광' 이미지를 벗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고무줄 관광 요금, 흥정하는 택시 요금
제주관광의 또 다른 문제점은 관광 요금이 고무줄처럼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는 점이다.
제주도의 조사에 따르면, 일부 관광지 요금이 최고 2배 이상 인상되는 등 작년 상반기 이후 관광지 15곳 이상이 요금을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4만원까지 내렸던 골프 카트비도 일부 골프장을 제외하고 6만~8만원대로 오르는 등 요금인상이 관광 관련 업체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8년부터 '관광 고비용 해소 운동'이 전개되면서 내리거나 인상이 억제됐던 요금이 관광 호황을 틈타 '슬그머니' 원상복구되거나 오르고 있는 것이다.
또 장거리 운행 택시기사의 요금 흥정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세미나 참석차 제주를 찾은 박정순(62)씨는 "제주공항에서 서귀포 중문관광단지까지 가는데 택시기사가 다짜고짜 택시미터기 요금이 아닌 3만원을 요구해 왠지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 들었다"며 "후진국처럼 요금을 흥정할 게 아니라 택시업계와 행정 당국이 사전에 장거리 적정요금을 결정하면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