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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생긴 일들, 새해에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 ‘다들 사는 게 힘들구나.’ 병문안을 온 사람이 쉴 새 없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곁에서 보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리다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져 한 달을 입원했다면서 죽을 뻔 했다고, 너무 아팠다고, 하고 또 하고 한다. 그 와중에 장사가 안 되서 힘들다는 이야기. 남편은 직장이 어려워져서 월급이 안 나와 쪼달리고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 병문안을 해주러 온 게 아니라 병문안을 받으러 온 사람 같았다.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든 건 병원 안에 있거나 바깥에 있거나 별 다르지 않나보다. 그리고 많이 털어놓고 싶었는데 사람이 없었나보다. - ‘천사도 귀환을 하는구나.’ 아내가 심하게 안 좋았던 투병 초기 1년 반 정도를 일산 재활병원에 있었다. 그때 바로 곁 침대에 1년 정도를 같이 보낸 환자가 있었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심한 장애를 입었고 시집 안 간 딸이 간병하며 지냈다. 그 엄마가 나와 동갑이라 친구가 되었고 우린 가족 같았다. 딸인 그 친구는 내가 아내를 돌보듯 엄마를 24시간 곁에서 돌보면서 지냈다. 밥을 먹여주고 씻기고 소변도 일일이 호스로 빼내면서... 정말 우린 너무도 공감하는 소소한 일들이 많았다. 기저귀가 떨어져 빌리고 빌려 주는 것과 심지어 잠이 모자라 자주 하품을 하는 것도, 그 친구는 평생 엄마를 돌봐야만 할 것 같다고 사귀던 남자 친구도 헤어졌다. 누가 이런 상황을 이해해주겠냐고 결혼도 거의 포기하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컴퓨터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그렇게 엄마를 돌보면서도 밤마다 웨딩사진을 손보는 포토샵 직업을 유지했다. 일이 몰리면 밤을 세고 일을 많이 한 달에는 월급을 타면 한 턱 냈다. 종종 더운 여름 맥주도 한잔 씩 하면서 서로들 힘을 보탰다. ‘잘 견디자!’ 하면서. 그 친구가 그려준 이미지 일러스트에 나는 시를 쓰고 그렇게 십여 편 넘게 모아졌다. 그냥 소장용으로 책을 만들 때 한권 더 만들어 선물로 보내주었더니 마냥 기뻐했다. 그렇게 지내다 우리가 청주로 오고 헤어진 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며 지냈다. 그런데...소식이 좀 뜸했는데 남을 통해 들었다. 위암이 걸렸단다.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와 약을 먹으면서 자기도 투병중이란다. 장기 간병에 지쳐 면역력이 떨어진 것일까? 걱정되어 연락했더니 그래도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고 아마도 잘 완쾌될 것 같다고 전화기를 통해 여전히 까르르 웃으며 밝은 소리가 들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다시 해가 지나고 통화를 했을 때 병원을 나와서 고향으로 내려갔단다. 고향인 바닷가로 내려가 집을 수리중이라고 했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다치기 전 횟집을 하던 서해안 경치 좋은 곳으로. 수리 다 되면 여름에 초대를 하겠다고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곧 여름이 되면 다시 얼굴도 보고 반갑게 만날 수 있겠다 싶었다. 성탄절이 지난 다음 날, 12월 26일 함께 아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새벽에 ㅇㅇ가 먼 하늘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오지 못해도 기도를 부탁합니다] 소식 준 그이도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술 한 잔을 하면서 괴로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면서. ㅠㅠ... 세상이 주저앉는다. 왜 이리 마음이 아프고 추울까? 같이 잘 견디고 너는 엄마를, 나는 아내를 끝까지 돌보자고 영차! 약속도 했었는데 먼저 가다니. 이제 나이 서른 중반, 결혼도 안 했는데 너무 아깝다. 아내와 그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천사 같다고 했었다. 그 엄마도 늘 딸에게 미안해하면서 그래도 딸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었다. 천사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귀환을 하는 법일까? 내게 그려주었던 그림 몇 장을 다시 보면서 소리 내지도 못하고 울었다. 나는 불 꺼진 병실에서 술 대신 연신 쓴 커피를 하염없이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같은 간병하는 가족으로 장시간을 살면서 기대던 의지가 무너진다. 마음에 불안감과 함께 찬바람이 밀려 와서 외로움을 더 한다. “니가 무슨 죄라고... 혜미야...“ * 지금 읽어보니 글이 참 무겁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던 2010년 중이라 그랬나보다. 더구나 비슷한 처지의 그 아이와 내 심정이 겹쳐지면서 쓴 글이라 더욱 그랬나보다. - ‘사랑한다는 것은 ’여기까지‘를 배우는 것’ 사람들은 종종 사랑 때문에 가난해진다. 더 주고 싶어서 더 잘해주고 싶어서 그 기준 때문에 언제나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해야 한다. 사랑도 책임도 미안함도 여기까지만 해야 한다. 아무리 걱정하고 기대하고 무엇이라도 더 하고 싶어도 ‘여기까지’를 알고 수용해야 모든 끝이 아름다울 수 있다. 때로는 신앙도 그렇다. - ‘어중간한 사람들이 가장 괴롭다’ 화장실이 급해서 문이 조금 열려진 칸을 확 밀었다. 쿵! 안에서 무엇이 부딪혔다. 사람이 안에 있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요." 엉겁결에 사과를 하고 옆 칸으로 들어갔다. '근데 왜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보는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아차! 하면서 이유가 번쩍 떠올라 미안해졌다. 재활병원의 샤워실 화장실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 있다. 문이 잠기지 않거나 조금 열린 상태에서 변기에 앉아 일을 보는 사람. 심지어 어떤 때는 다 벗고 씻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는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빠른 사람도 있다. 그런데 왜 그럴까? 치매 걸린 사람도 아닌데 그러는 것은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거동을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보호자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온전히 문제가 없는 사람은 혼자서도 문 잠그고 잘 한다. 문제는 한쪽이 마비되었지만 상주하는 간병인을 둘 정도가 아니거나 좀 위험하지만 형편이 안 되어 혼자서 지내야하는 어중간한 사람들이다. 만약에라도 미끌어져 넘어지거나 기운이 딸려 쓰러져도 문이 안으로 잠기면 비상조치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잠그지 못하게 한다. 스스로 잠그기도 쉽지 않지만. 세상에서 절망감으로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이 주로 이 상태에서 그런다. 아주 문제없거나 아주 나쁜 경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 - ‘행복의 비결은 기죽지 않고 사는 길’ 아이를 키우면서 늘 생각한 것은 ‘기죽지 않고 살게 하자!’ 였다. 아이가 무엇인가에 억눌려 자기 생각과 감정을 닫고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자기주장을 하면서 스스로 결심해서 선택하며 살기를 바랐다. 물론 그것에 따르는 책임도 준비도 당연히 포함해서.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결정과 선택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랐다. 나와 다른 것은 최대한 설득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하기를 바랐고, 그 이상 불가능한 것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포기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나의 선택 또한 그만큼 값지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매몰차거나 나를 소홀할 때 참 섭섭했지만 견뎠다. ‘점점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먼 산 언저리마다...’ 그 노래를 떠올리며 그렇게 감당했다. 12월 추운 겨울 어느 날, 밤 11시20분도 넘은 시간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바 일 끝나고 배가 고파서 24시간 하는 순대국밥 집 앞에 왔다고 밥 좀 사달란다. 며칠째 콧물감기에 목도 아픈 채 낫지가 않는다면서 콜록거린다. 힘들어 좀 쉬고 싶었지만 알바 대타를 못 구해 그냥 일한단다.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시무룩해서 말을 한다. “오늘 점장님께 야단을 맞았어. 목소리가 너무 작고 행동이 느리다고...” 전에도 그런 말 들은 적 있고 자기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며 우울해 한다. “아냐! 니가 지금 아파서 그런 것이야. 좀 조용히 말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어릴 때는 그렇지도 않았어. 얼마나 활기차고 목소리도 씩씩했는데. 걱정하지 마! 필요하면 의도적으로 마음먹고 조금 큰소리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면 되지 뭐! 그리고 난 생각 먼저하고 행동하는 네가 참 좋아. 행동 먼저하고 생각을 나중에 하는 사람들 실수나 사고치는 거 여러 번 보았는데 늘 아슬아슬하더라.“ 그렇게 말 하고 얼굴을 보니 조금 밝아지는 것 같다. ‘아하, 애가 배가 고파서 밥 때문에만 나를 부른 게 아니구나. 속상하고 외로워서 나를 불렀구나.‘ 하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맘이 짠해진다. 앞으로 내가 분명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도 확실하고 아이가 사회생활하면서 이런 힘든 순간이 종종 닥칠 텐데... 어쩐다지? 미리 정을 조금씩 끊어나가야겠다 갑자기 비어버린 공백에 너무 힘들지 않도록. 그리고 그 자리를 기죽지 않고 자기주장과 선택을 적절한 선에서 하며 살게 해야겠다.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손해가 되어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행복해지는 훈련을. - ‘송구영신 예배에서 받은 말씀 –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지지난해 송구영신 예배 때 3시간을 견디느라 너무 힘들었다. 임명식과 인사주고 받는 시간을 빼고도 받은 복과 받을 복 이야기로 두 시간이었다. 그래서 옮겨서 가보았다. 지난 봄에 최용덕간사님이 집회하실 때 갔던 교회로. 신년을 맞는 설레임 속에서 두려움을 동시에 가진 현실을 직시하셨다. 여호수아의 본문을 통해 삶은 비록 신앙을 가지고도 세상 속을 지나간다는 것을. 모세와 베드로는 거룩한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었다. 왕궁에서 힘 있는 왕자일 때가 아니라 모래광야에서 양치기로 사는 일상 중에 만났고, 평생을 살던 갈릴리 호수에서, 그것도 밤새 허탕 친 창피하고 지친 새벽에 예수를 만났다. 우리들도 일상의 힘들고 지쳤을 때 늘 하나님을 만나고 새 목표와 힘을 얻어야 한다고. 성공한 사람, 성공해야만 신앙도 성공으로 평가받는다는 범람 속에서 새 위로를 받았다. 우리 같은 막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예수를 만난다는 희망의 말씀이었다. 암, 그래야 한다. 일상이 고단해도 그곳에서 늘 만날 수 있어야 하나님이고 예수다. 그걸 믿고 살아야 우리들이 진짜 신자이기도 하고. 지난 12월 한 달 동안 여러 모습으로 억눌리던 삶이 새로 살아나는 심정이다. 파릇한 새 생명 촉촉한 감정으로. - ‘그저 하루를 견디게 해달라는 기도로’ 신년이라고 좀 더 절실해진 마음으로 기도를 해본다. ‘그저 하루를 견디게 해주세요. 모든 산을 다 치워주고 강을 메꾸어 주지 않으실 거라면, 암담하고 희망이 없는 미래에 기적이 쿵 내려오지 않더라도, 그저 산을 넘을 힘을 주세요. 넘지 못하면 돌아서라도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지치지 않게, 그냥 주저앉지만 않도록 해주세요. 그저 꾸준히 살게 해주세요. 병에 대한 뛰어난 지식이 없어도, 무한한 열정과 천사 같은 성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흘 밤낮을 안 자고도 끄떡없는 건강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변덕부리지 않게 해주세요. 어쩌면 너무도 싱거운 소박한 안정감을 주셔서 제게 맡긴 아내가 편히 자고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극심한 비관과 터무니없는 희망도 말고요. 하루를 보낼 만큼의 예상 가능한 태도를 유지하도록.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올지라도 불평하지 않고 그 하루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좋겠어요. 아멘!‘ |
첫댓글 희망으로님,
님의 간절한 기도에 저의 부족한 기도도 보태봅니다.
그리고 올 한 해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감사와 찬양이 님의 가정위에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희망으로님,
님이 쓰신 책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 라는 책을
서울사는 남동생이 보내와서 정독하며 읽었습니다.
오래전 부터 그 책 읽어보길 원했는데,
동생 말이, 서울교보문고에는 이미 품절이고
인터넷으로 구해서 본인도 읽고 난 후,
그리고 며칠전에 부쳐온 거랍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찡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나 라면 그렇게 인내할 수 있었을까? '라는 숱한 물음표와 함께...
그동안 수 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신 님의 가정위에
이제는 주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넘쳐나는 남은 생애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 먼곳까지 제 책이 갔네요! ^^
빌어주시는 축복 감사합니다.
아무 유익도 드리지 못하는 처지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