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만남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복음말씀에서처럼, 언제 어떻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사람의 인생은 크게 좌우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누구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의 삶의 의미와 질이 결정되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 메르스에 대한 공포로 온 국민이 떨고 있고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첨단의 과학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질병 앞에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몸은 50조개 정도의 세포로 만들어져 있고, 우리가 아무리 청결하게 자기 몸을 관리한다고 해도, 500조개 정도의 바이러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몸속의 바이러스는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들로 이뤄져 있어 그것들이 밸런스를 이룰 때 건강을 유지하고, 밸런스가 깨지면 병들게 됩니다.
우리 몸의 500조개의 바이러스의 균형 유지를 위한 일사분란한 생체 신호체계가 작동합니다.
이러한 신호체계는 육체적 밸런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신호체계에 따라 크게 바뀌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태양을 보고, ‘아~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을 보니 상쾌한 아침이다.’ 라거나 또는 ‘아~ 아침부터 빛이 이렇게 뜨거우니 오늘 걱정이다’ 라는 마음가짐의 차이에 따라 그 사람의 하루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신호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긍정적인 삶과 부정적인 삶으로 나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나 혼자의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신호를 이로운 것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되기에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은 우리를 긍적적인 삶으로 이끌지만 어떤 사람들이나 사건들은 우리 인생을 그 반대로 이끌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떤 신호를 발견하여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우리 삶이 바뀌게 됩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그 사건이 어떤 것이냐 라기 보다는 그것을 어떤 신호로 받아 들이냐가 더욱 중요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생 동안 한번 정도 겪을지 모르는, 뒤에서 받치는 사고를 저는 3번이나 당했는데, 세 번째 사고는 정말 대형사고였습니다.
그 사고를 당하고 젊은 한의사에게 치료받으러 갔더니, 그 젊은 의사 왈 “왜 그렇게 인생을 싸우며 삽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었던 당시에는 황당하고 기분도 나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사건은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였고, 내 인생에서 피해야 되는 일들에 대해, 싸우려 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당한 사고에 대해 ‘아 정말 재수 없는 일들이 자신에게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들과 싸우면서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같은 사고를 당하고도 자기를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건에 대해서 자기의 마음가짐에 따라 믿음과 희망의 신호로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늘 죄 짓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왔던 부정적인 인간이었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신호를 받아들일 때,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500조개의 바이러스를 지휘하는 생체 신호가 건강을 지켜주듯이,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이 내 안에서 신호를 통해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 분이 어떤 신호로 나를 이끌어 주실지 귀 기울이고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마르 5:21-43)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그 많은 군중 속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앓고 있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밀고 당기는 어려움 끝에 겨우 예수님 가까이 다가온 여인은 ‘지금이 자기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병을 고쳐달라고 외칠 용기는 없었지만,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병이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드디어 병이 낳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 코웃음을 칠지 모르지만, 저는 드보라의 집에서 기도회를 할 때 놀랍게도 같은 치유의 은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신자로 오랫동안 하혈을 앓던 여인이 드보라의 집에 6개월 이상 머물면서도 한 번도 미사참여하지 않았었지만, 미안해서였던지 그날따라 미사에 참여하였고, 그 때의 복음말씀이 바로 오늘의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안수기도를 도는 동안에 이 여인은 저의 옷자락을 잡았고, 다음 날 기적처럼 여인의 병이 치유되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저도 그 사건이 매우 신기했고, 혹시 제가 치유의 은사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드보라의 집에 머물던 여인은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병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아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 오는 이 신호가 자기를 구원하는 신호라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오시면 다 좋은 분들을 만나는데 모두 축복받는 만남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십니까?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이들을 통해서 축복을 내려주시는 신호를 내가 알아차릴 수 있거나, 그 만남을 축복의 신호로 바꾸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오늘 바로 이 순간에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의 신호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직접 받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신부님 싸우며 살지 마세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