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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丈錄
(백장록)
- 백장 선사 -
백장스님의 어록은 일찍부터 독립된 본이 있었다.「조당집(祖堂集)」에 의하면,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려 있다.” 하였고, 또 “문도 신행(神行)과 범운(梵雲)이 법어를 결집(結集)하여 어본(語本)을 편집하였는데, 오늘날 어본이 후학들에게 유행되고 있다.” 고 한 탑명(塔銘)의 내용에서 문도들이 모은 어록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에는 어록(語錄)과 광록(廣錄)을 구분하여 싣고 있는데, 광록은 다른 어록과는 달리 긴 자설(自說)의 법문형식으로서 교학적인 배경이 두텁다. 법문은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고, 그 중에서도 대승입도돈오법은 스님의 대승법문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하겠다.
스님의 제자로서 「전등록(傳燈錄)」에서 말하듯이 위산(위山)과 황벽(黃檗) 두 스님이 중요하다. 위산스님은 그 제자인 앙산(仰山)스님과 함께 위앙종(위仰宗)의 종조가 되고, 황벽스님은 임제(臨濟)스님을 배출하여 임제종의 원류가 된다. 즉 5가 종파에서 최초의 두 파가 백장스님 아래에서 나온 것이다.
백장스님 이후, 선원(禪院)은 생활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율원(律院)등에 속해 있던 선원이 독립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상당(上堂)하여 공개적으로 설법하는 설법당(說法堂)이 마련 되었다. 또한 대중운력이나 10가지 소임 등 선원생활을 규율하는 청규(淸規)가 백장스님에서 부터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엄격한 규율과 대중운력을 통한 경제적 자립은 폐불 속에서도 선문(禪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스님의 일상생활을 나타내는 한마디는 이러하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
백장어록(百丈語錄)
사가어록 수록본
1. 행록(行錄)
1.
스님의 휘(諱)는 회해(懷海:749-814)이며, 복주(福州) 장락(長樂)사람이다. 성은 왕씨(王氏)로 어린 나이에 세속을 떠나 삼학(三學)을 두루 닦았다. 그때 대적(大寂 : 709-788, 馬祖스님의 호)스님이 강서(江西)에서 널리 교화를 펴고 있었으므로 찾아가 마음을 쏟아 의지하였는데, 서당 지장(西堂智藏 :735-814), 남전 보원(南전普願 :748-834)스님과 함께 나란히 깨친 분이라고 이름났었다. 그리하여 당시 세 분의 대사가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스님이 마조(馬祖)스님을 모시고 가다가 날아가는 들오리 떼를 보았는데, 마조스님께서 물으셨다.
"저게 무엇인가?"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갈까?"
"날아갔습니다."
마조스님께서 갑자기 머리를 돌려 스님의 코를 한번 비틀자 아픔을 참느라고 소리를 내질렀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날아갔다고 말해보라."
스님께서는 그 말끝에 느낀 바가 있었다.
시자들의 거처인 요사채로 돌아와 대성통곡을 하니 함께 일하는 시자 하나가 물었다.
"부모 생각 때문인가?"
"아니."
"누구에게 욕이라도 들었는가?"
"아니"
"그렇다면 왜 우는가?"
"마조스님께 코를 비틀렸으나 철저하게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깨닫지 못하였는가?"
"스님께 직접 물어보게."
그리하여 그 시자가 마조스님께 물었다.
"회해시자는 무슨 이유로 깨닫지 못했습니까? 요사채에서 통곡을 하면서 스님께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알테니 그에게 묻도록 하라."
그 시자가 요사채로 되돌아와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그대가 알 것이라 하시며, 나더러 그대에게 물으라 하셨네."
스님(백장)이 여기에서 깔깔 웃자, 그 시자가 말하였다.
"조금 전에 통곡하더니 무엇 때문에 금방 웃는가?"
"조금 전에 울었지만 지금은 웃네."
그 시자는 그저 멍할 뿐이었다.
2.
다음날, 마조스님께서 법당에 올라왔다.
대중이 모이자마자 백장스님께서 나와서 법석(法席)을 말아버렸더니 마조스님은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백장스님께서 방장실로 따라가자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말도 꺼내지 않았었는데 무엇 때문에 별안간 자리를 말아버렸느냐?"
"어제 스님께 코를 비틀려 아파서였습니다."
"그대는 어제 어느 곳에 마음을 두었느냐?"
"코가 오늘은 더 이상 아프질 않습니다."
"그대는 어제 일을 깊이 밝혔구나."
백장스님께서는 절하고 물러났다.
다른 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어제는 우연히 외출하게 되어 미처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마조스님이 '악!' 하고 고함을 치자 백장스님께서는 바로 나가 버렸다.
3.
백장스님께서 다시 참례하면서 모시고 서 있는 차에
마조스님은 법상 모서리의 불자(拂子)를 보고 있었으므로 백장스님께서 물었다.
"이 불자를 통해서(卽) 작용합니까, 아니면 이를 떠나(離) 작용합니까?"
마조스님이 말씀하였다.
"그대가 뒷날 설법을 하게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대중을 위하겠느냐?"
백장스님께서 불자를 잡아 세웠더니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통해서(卽) 작용하느냐, 이를 떠나서 작용하느냐?"
백장스님께서 불자를 제자리에 걸어 두자 마조스님께서는 기세 있게 악! 하고 고함을 쳤는데
백장스님께서는 곧장 사흘을 귀가 먹었다.
이로부터 우뢰같은 명성이 진동하였다. 신도들이 청하여 홍주(洪州)의 신오(新吳) 국경지대인 대웅산(大雄山)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거처하는 바위와 묏부리가 깎아지른 듯 높았기 때문에 스님을 백장(百丈)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 머문 지 한 달이 못되어 현묘한 이치를 참구하는 남자들이 사방에서 찾아왔는데, 당시 위산 영우( 山靈祐:771-853)스님과 황벽희운(黃蘗希運)스님이 으뜸이었다.
4.
황벽스님이 스님의 처소에 와서 있다가 하루는 하직을 하면서 말하였다.
"마조스님을 친견하고 싶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어떤 법문을 남기셨는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리하여 마조스님께서 두 번째 참례했을 때 불자를 세웠던 이야기를 해주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법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때 내가 마조스님의 고함(喝)을 듣고 나서 그 뒤로 사흘을 귀가 먹었다."
황벽스님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내밀었다.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네는 이제부터 마조스님의 법을 잇지 않으려는가?"
"아닙니다. 오늘 스님의 법문으로 마조스님의 큰 기틀(大機)에서 나온 작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마조스님을 모릅니다. 만일 마조스님을 잇는다면 앞으로 나의 법손을 잃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 견처(見處)가 스승과 같으면 도는 반쯤밖에 안되고, 견처가 스승을 능가해야만 전수를 감당할 만하다. 그대는 스승을 훨씬 넘어설 만한 견처가 있군."
그 뒤에 위산스님이 앙산혜적(仰山慧寂:803-887)스님에게 물었다.
"백장스님이 마조스님을 두 번째 참례하고 불자를 세웠던 인연에서 두 분의 경지가 어떠하였겠는가?"
"큰 기틀(大機)의 작용을 환하게 나타낸 것입니다."
"마조스님은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는데, 몇 사람이 큰 기틀(大機)을 얻고 몇 사람이 큰 작용(大用)을 얻었겠는가?"
"백장스님은 기틀을 얻었고, 황벽스님은 그 작용을 얻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가 말로 떠드는 무리(唱道師)일 뿐입니다."
"그래, 그렇지."
5.
마조스님이 하루는 백장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산 뒤에서 옵니다."
"한 사람을 만났는가?"
"만나지 못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만나질 못했는가?"
"만났더라면 스님께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
백장스님께서 "저의 잘못입니다" 하자, 마조스님은 말씀하셨다.
"아니 내 잘못일세."
2. 상당
1.
백장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신령한 광채 호젓이 밝아 靈光獨耀
육근(六根)·육진(六塵)을 아득히 벗어났고 脫逈根塵
영원한 진상 그대로 드러나 體露眞常
문자에 매이지 않도다 不拘文字
심성(心性)은 물듦이 없어 心性無染
그 자체 본래 완전하나니 本自圓成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한다면 但離妄緣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라네. 卽如如佛
2.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신통한 일입니까?"
"대웅산(大雄山)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스님이 절을 하자, 백장스님께서는 그대로 후려쳤다.
3.
서당(西堂)스님이 백장스님께 물었다.
"스님은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법을 열어 보이겠습니까?"
백장스님이 손을 두 번 오무렸다 펴자, 서당스님이 말하였다.
"다시 어떻게 하겠습니까?"
백장스님은 손을 세 번 끄덕끄덕하였다.
4.
마조스님이 사람을 시켜 편지와 장(醬) 세 항아리를 보내왔다.
백장스님께서는 법당 앞에 죽 놓으라 하고는 상당하더니
대중이 모이자마자 주장자로 장항아리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말을 한다면 부수지 않겠지만 못하면 부수겠다."
아무도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깨버리고 방장실로 돌아갔다.
5.
어떤 스님이 통곡을 하며 법당으로 들어가자 백장스님께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부모를 함께 잃었습니다. 스님께서 날을 잡아 주십시오."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일 한꺼번에 묻어버리자."
6.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을 의지하여 의미를 이해하면 삼세 모든 부처님의 원수가 되며,
경전을 떠난 한 글자는 마군의 말과 같다 하니 이럴 땐 어찌합니까?"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동정(動靜)을 굳게 지키면 삼세 부처의 원수가 되며, 그렇다고 이 밖에서 따로 구하면 마군의 말이 된다."
7.
어느 땐가는 설법이 끝나 대중들이 법당에서 내려가는 차에 백장스님께서 그들을 불렀다.
대중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 무엇인고!"
8.
백장스님께서 대중운력으로 밭을 개간하고 돌아오는 길에 희운(希運: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밭 개간이 쉽질 않지?"
"대중들이 다 일을 했습니다."
"도용(道用)만 번거롭게 하였군."
"어찌 감히 일을 그만두겠습니까?"
"얼마나 개간하였는가?"
황벽스님이 밭을 매는 시늉을 하는데 백장스님께서 별안간 할(喝)하고 고함을 치자
황벽스님이 귀를 막고 나가버렸다.
9.
백장스님께서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아래서 버섯을 따옵니다."
"산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는데 너도 보았느냐?"
황벽스님이 호랑이 소리를 내자 스님께서는 허리춤에서 도끼를 집어들고 찍을 기세였다.
황벽스님은 스님을 잡아 세우면서 얼른 따귀를 후리쳤다.
백장스님께서는 느즈막하게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중들아, 산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있으니 그대들은 드나들면서 잘 살펴 다녀라.
노승도 오늘 아침 한 입 물렸다."
그 뒤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황벽스님의 호랑이 화두를 어떻게 보십니까?"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때 백장스님이 도끼 한 방에 찍어 죽였어야 했는데 무엇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는 그러면 어떻게 보는가?"
호랑이 머리에 탔을 뿐만 아니라 호랑이 꼬리도 붙들 줄 알았습니다."
"혜적(慧寂:앙산)아, 무슨 말을 그리 험하게 하는고."
10.
백장스님께서 상당할 때마다 늘 한 노인이 항상 법을 들고 대중과 함께 흩어져 가다가
하루는 가지 않으므로 백장스님께서 물었다.
"서 있는 사람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노인은 말하였다.
"저는 과거 가섭불(迦葉佛) 때 이 산에 살았습니다. 그때 한 학인이 묻기를,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하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 라고 대답하여 여우 몸을 받았습니다.
지금 스님께서 대신 이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를 해 주십시오."
"그럼 질문해 보게"
"많이 수행할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因果)."
노인은 말끝에 크게 깨닫고 스님께 하직을 고하면서 말하였다.
"제가 이제는 여우 몸을 벗고 산 뒤에 있을 것입니다. 불법대로 화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장스님께서는 유나(維那)에게 종(白槌)을 쳐서 대중에게 점심 뒤에 대중울력으로 죽은 스님을 장사지내겠다고 알리게 하였더니, 대중들은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백장스님께서는 대중을 거느리고 산 뒤 바위 아래로 가서 죽은 여우 한 마리를 지팡이로 휘저어 꺼내더니 법도대로 화장하였다.
만참(晩參)법문 때 백장스님께서 앞의 인연을 거론했더니, 황벽스님이 대뜸 물었다.
"옛사람은 깨닫게 해주는 한 마디 (一轉語)를 잘못 대꾸하였기 때문에 여우 몸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오늘 한 마디 한 마디 어긋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가까이 오게. 그대에게 말해주겠네."
황벽스님이 앞으로 다가가 백장스님의 따귀를 한 대 치자 백장스님께서는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오랑캐의 수염이 붉다 하려 하였더니 여기도 붉은 수염 난 오랑캐가 있었구나."
그때 위산스님은 회상에서 전좌(典座 : 대중의 와구臥具나 음식 등 살림을 맡는 소임) 일을 보았는데
사마두타(司馬頭陀)가 여우 이야기(野狐話頭)를 들어 질문하였다.
"전좌는 어떻게 하겠소?.
전좌가 손으로 문짝을 세 번 흔들자 사마가 말하였다.
"꽤나 엉성한 사람이군."
전좌가 말하였다.
"불법은 이런 도리가 아니라네."
그 뒤에 위산스님은 황벽스님이 물었던 여우 이야기를 들어 앙산스님에게 물었더니,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황벽스님은 항상 이 솜씨(機)를 쓰십니다."
"말해보아라.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솜씨를 얻었는지, 스승에게서 배웠는지를."
"이는 스승에게서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 종지를 깨달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 그렇지."
11.
황벽스님이 물었다.
"옛스님들은 어떤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까?"
백장스님께서 한참 말이 없자 황벽스님이 다시 물었다.
"뒷날 법손들은 무얼 가지고 법을 전해야 하겠습니까?"
백장스님께서는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여겼더니......."
하시고는 방장실로 돌아갔다.
12.
백장스님께서 위산스님과 함께 일을 하다가 물었다.
"불이 있느냐?"
"있습니다?"
"어디 있느냐?"
위산스님이 땔감 한 토막을 가지고 입으로 훅 불어 백장스님께 건네주었더니 받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벌레먹은 나무 같구나."
13.
대중운력으로 김을 매는데 한 스님이 북소리를 듣더니 호미를 들고일어나면서 깔깔 웃고 돌아가니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좋구나. 이것이 관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가신 방편이다."
뒤에 그 스님을 불러서 물었다.
"그대는 오늘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저는 이른 아침에 죽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북소리를 듣고 돌아가 밥을 먹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깔깔거리면서 크게 웃었다.
14.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누군가?"
"저 아무개입니다."
"그대는 나를 아는가?'
"분명히 압니다."
스님께서는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물었다.
"불자를 보느냐?"
"봅니다."
백장스님께서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15.
백장스님께서 한 스님더러 "장경(章敬)스님 처소로 가서 그가 상당 설법하는 것을 보거든 너는 바로 좌구(坐具)를 펴고 절하라. 그리고 일어나면서 한쪽 신을 벗어들고 그 위의 먼지를 소매로 털어 거꾸로 엎도록 하라." 하였다.
그 스님이 장경스님에게 가서 일러준 대로하였더니 장경스님은 말하였다.
"저의 허물입니다."
16.
위산( 山), 오봉(五峯), 운암(雲巖)스님이 모시고 서 있는데 백장스님께서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서 속히 말해보라."
위산스님이 말했다.
"저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에게 말해주는 것은 사양치 않겠다만 뒷날 나의 법손을 잃을까 염려스럽구나."
다시 오봉스님에게 물었더니, 오봉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도 닫으셔야만 합니다."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머리를 갈아 그대에게 보여 주겠다."
다시 운암스님에게 물었더니,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거론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얼른 말해보게."
운암스님이 "대사께서도 지금(목구멍과 입술) 있지 않습니까?" 하자, 백장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손을 잃었군."
17.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한 사람 가서 서당 (西堂)스님에게 말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누가 가겠느냐?"
오봉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려느냐?"
"서당스님을 뵙고 나서 곧 말하겠습니다."
"본 뒤에는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돌아와서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18.
한 스님이 서당스님에게 물었다.
"질문이 있으면 답변이 있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질문도 없고 답변도 없을 땐 어찌합니까?"
그러자 서당스님이 말하였다.
"썩을까 두려우냐?"
백장스님께서는 이 소문을 듣고 말씀하셨다.
"원래 이 사형을 의심했었지."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일합상(一合相)도 얻지 못한다."
1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한 사람은 오래도록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부르다 하지 않는다."
대중은 대꾸가 없었다.
20.
운암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매일 구구하게 누구를 위하십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가 스스로 하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그에겐 자기 살림이 없다."
21.
백장스님께서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더니 불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니께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부처님이시다" 하자, 어린이가 말하였다. "모습은 사람과 닮아 차이가 없군요. 저도 이 다음에 이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
3. 천화
백장스님께서는 언제나 수고로운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대중들 보다 솔선하였다.
대중들이 모두가 민망하여 도구를 일찍 감추고 그만두시라고 청하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게 덕이 없어서 그러니 다른 사람을 수고롭게 해서야 되겠느냐."
스님께서는 이리저리 연장을 찾다가 찾질 못하면 밥을 굶으셨다.
이런 연유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 먹지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씀이 세상에 퍼지게 된 것이다.
스님께서 당나라 원화(元和) 9년 (814)정월 17일에 시적(示寂)하시니 춘추는 95세였다. 장경(長慶) 원년(821)에 칙명으로 시호를 대지선서(大智禪師)라고 하였으며, 탑은 대승보륜(大勝寶輪)이라 이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