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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동네(송파구)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오직 하나’라 해도 좋다) 공원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올림픽 공원.
처음 이사 와서는 성내천도 가보고(거기 잉어떼가 볼만해서 비린내만 맡으면 마음 설레는 내 발길을 여러 번 유혹했다) 가락동 쪽도 기웃거려 보고 그도저도 다 귀찮으면 아파트 옆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다 들어오기도 했지만, 특히 날이 좀 궂을 때면 영락없이 내 발길은 올림픽공원을 향하곤 했다.
그 까닭은......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개구리’ 때문이었다.
그렇다.
올림픽 공원에는 개구리가 산다.
올림픽 공원의 너구리는 종종 방송에도 소개가 되고, 청설모나 다람쥐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남들은 잘 모르는 희귀한 세미-알비노 청설모(이런 말이 있는가 모르겠다. 하여간 완전히 희지는 않고 노란 청설모가 한 마리 있다)가 있다는 것까지도 나는 알지만, 그리고 성내천으로 이어지는 몽촌토성 해자엔 이맘때면 일일이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오리 떼들이 날아드는 것도 알지만, 내가 가장 아끼고 귀히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이 개구리들이다.
개구리가 산다는 걸 안 건 이사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흐린 여름날 저녁이었다.
공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남1문에서(그때는 남1문을 개방하지 않았다) 남2문 쪽을 향해 공원 울타리를 끼고 걷는데, 안쪽 숲에서 우렁찬 개구리떼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수백 마리의 합창이었다.
공원으로 들어가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 봤지만, 소리는 여전하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우거진 숲이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개구리가 궁금하여 공원으로 갈 때면 당연히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무슨 까닭인지 늘 문을 잠가놓아 빙 돌아가야 했지만)
맑은 날에는 조용할 때도 있었지만, 좀 흐리거나 비온 직후에는 수많은 개구리들이 그야말로 시원한 소리의 홍수를 들려주었다.
작년 초여름에는 비가 연일 계속되자 길가에 생긴 얕은 웅덩이에 올챙이까지 수십 마리 헤엄쳐 다닐 정도였다.
봄이 아닌 여름 올챙이인 걸로 보아 논개구리가 아닌 산개구리 종류일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그 실체를 대충이나마 알게 된 것은 올 봄이었다.
그 부근을 ‘화훼단지(이름도 참 멋대가리 없지)’라고 이름붙이고 꽃을 심어 놓으면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길을 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예전에 눈썰매장이었다는 드넓은 비탈에 벌개미취 한 가지만 몽땅 심어 놓는 등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식재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적 감각과는 상관 없이 넓은 공터에 나무가 제멋대로 우거지니까 좀 정리해 보겠다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기계적인 ‘화훼단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장 나의 관심은 개구리였으므로 개구리의 정체를 추적해 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연못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다면?
단 한군데 남은 곳....
화훼단지 아래쪽에 무슨 을씨년스런 구조물이 하나 있는데 철망으로 막아 놓아 들어갈 수 없게 해 놓았다.
그 공간은 구조물을 포함하여 기껏해야 십여 평 정도...
그런데 그 안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내려와 곁에 있는 컨벤션센터 경비원에게 물으니, 십여 년 전 눈썰매장을 운영할 때 설치한 구조물(비탈을 만들기 위해 흙을 파 올리고 남은 구덩이에 아마도 눈썰매 등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이란다.
요 몇 년 새 눈썰매장이 한물가고 폐허가 되면서 빗물이 고이고.... 그렇게 해서 개구리들이 살 공간이 마련된 것이었다.
개구리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또한 궁금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젠 그들이 어엿한 주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올여름에 유난히 비가 많이 오자 급기야는 수백 미터 떨어진 테니스장 쪽 숲에서도 개구리소리가 들려오는 등 그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길가에서도 한두 마리씩 내 눈에 띄었는데, 혹 무심한 사람들에게 밟힐세라 놈들을 숲 속으로 밀어넣기 바빴다.
그렇게 다시 여름이 가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이제 놈들은 땅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내년 봄을 기약하고 있으리라...
그 곁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들의 잠이 편안하기를 빌었다.
고3담임으로서 대입지원 상담으로 바쁘다보니 얼마간 공원을 들를 수 없었다.
지난 23일.... 크리스마스 이틀 전 날....
오랜만에 공원을 향했다.
그날도 습관처럼 발길을 개구리 마을로 돌렸다가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 그 자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흉물스런 구조물이 사라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자리가 말끔하게 메워져 먼지가 풀풀 나는 마른 땅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너무도 기가 막혀 한참 꿍꿍거리다가 그 다음날 밤 이런 글을 써 공원 홈페이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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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질문] 정겨운 개구리 울음소리 이젠 들을 수 없나
이름 | 김효곤 담당부서 | 공원시설팀 작성일 | 2007-12-25 조회 | 12
그동안 컨벤션센터 앞 화훼식재지 끄트머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을씨년스러운 구조물이 철망 안에 있어서 영 보기 좋지 않았는데...
최근 그걸 치워버린 것까지는 좋았으나, 여름이면 그 안쪽 작은 늪(보이지는 않았지만)에서 떼지어 울어대던 수많은 개구리들의 보금자리까지 메워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세상에나... 거기 개구리가 집단서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요?
이제라도 그 자리에 작은 연못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깊은 흙속에 묻혀 영영 세상을 떴거나 혹 겨우 살아남았더라도 봄에 겨울잠에서 깨어나도 갈곳 잃은 신세가 될 개구리들을 살려야 합니다.
완전히 흙으로 덮어버려 도저히 개구리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상황에서 과연 내년에도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는 힘을 기울이면서 잘 보이지 않는 뒤에 가려 있는 정말 소중한 것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의 무신경이 가슴아픕니다.
강남구 우면산에서는 두꺼비 몇 마리 살리자고 개발제한에 통행금지까지 시킨다는 판국인데....
그랬더니 오늘 낮 이런 답변이 왔다.
답변 : 정겨운 개구리 울음소리 이젠 들을 수 없나
답변일자 : 2007-12-26 13:52:39
안녕하십니까?
올림픽공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제출하여 주신 고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화훼단지를 조성하면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주셨으나 맞은편에 위치한 웅덩이에 고인 물로 인하여 모기 등의 해충이 서식하여 고객의 불편을 초래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웅덩이 하부에 깊은 뻘이 조성되어 공원 이용객이 빠질 경우 인명사고가 우려되어 늦게나마 원상태로 복구하였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공원시설팀 / 김만준 410-1438
이런...
내 물음의 핵심은 완전히 무시당했군..
열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반박의 글을 올렸다.
방학 날 오후... 다들 사라진 지 오래인 텅 빈 교무실에 홀로 앉아....
[불만] 개구리의 보금자리를 찾아주세요-2(아랫글에 이음)
이름 | 김효곤 담당부서 | 공원시설팀 작성일 | 2007-12-26 조회 | 5
음.. 답변을 보고 기가 막혀 다시 올립니다.
제 말의 요지(개구리는 어떻게 되느냐는)에는 전혀 상관 없이 엉뚱한 말씀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네요.
그렇다면 몽촌 해자나 다른 호수의 물은 왜 그냥 두시나요?
면적이 넓은 만큼 모기도 엄청 생겨날텐데...
그리고.. 아무리 모기가 귀찮다 해도 거기 사는 개구리가 더 귀하지 않겠습니까?
인명사고 건도 그렇습니다.
기껏해야 신발 좀 버릴 정도겠지만, 정 걱정된다면 목책(철망 말고)을 두르고 "이곳은 개구리가 사는 깊은 늪으로 사고가 우려되오니 출입을 금해주십시오" 정도의 푯말 하나면 충분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내년 봄 땅속에서 나와 갈 곳 못 찾아 헤맬 개구리를 위해 아주 작은 연못 하나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림픽 공원은 인간의 휴식처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운동하고 휴식하기만 좋으면 그만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공원측에서 자랑하듯이 너구리, 청설모, 다람쥐가 사는가 하면, 오리나 백로 등도 날아듭니다.
여기 살던 개구리도 엄연한 올림픽 공원의 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구리들이 그 넓은 다른 호수들을 다 놓아두고 왜 하필 비좁은 이곳에 모여 살고 있었는가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단숨에 파묻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몇 년간 샅샅이 돌아다녀 봤지만, 공원 내 다른 호수에서는 거의 개구리를 볼 수 없습니다.)
제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글을 올리고 나서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담당자였다.
우선 죄송하다며, 그곳에 개구리가 사는 건 몰랐다고 변명하기 바빴다.
그러나 그곳은 원래 개구리 살던 데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놓은 구조물이니까 치우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개구리는 졸지에 무허가 난민촌 주민이 되어버린 셈이지)
그리고 ‘고객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것이었다.
역시 인간 중심의 답변이었다.
이런 당연해 보이는 인간중심주의가 안타까웠다.
이십여 분 동안 휴대전화가 뜨거워지도록 토한 나의 울분에 찬 열변은 여기서는 생략하려 한다.
다만 나는 ‘수조원 들인 고속전철을 멈추게 하면서까지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고자 했던 지율스님의 안타까움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완전 개통을 몇 년 늦추게 하면서까지(드디어 내일인가 개통한다) 사패산 터널을 반대했던 환경주의자들과 스님들의 본마음을, 청주 원흥이방죽의 두꺼비들을 위해 도시계획까지 바꾸게 한 또라이들의 고집을 이해해 주지 않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다시 공원 그 자리에 가서 개구리들의 명복을 홀로 빌어 주고 와 보니, 나의 울분에 대한 답변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답변 : 개구리의 보금자리를 찾아주세요-2(아랫글에 이음)
답변일자 : 2007-12-26 17:24:35
안녕하십니까? 고객님께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안전사고 예방차원에서 웅덩이를 메웠으나 사전에 개구리 서식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점 널리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향후에는 좀더 심도있게 자연여건 등을 고려하여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올림픽공원이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원시설팀 / 김만준 410-1438
......
요즘 나는 이렇게 작은 일에만 화가 난다.
첫댓글 이사람 연수(?) 좀 받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