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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역사
연옥 Purgatory
지옥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관념은 신학자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기독교보다 역사가 깊은 종교들에서도 지옥은 무서운 것이었지만, 불변하거나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의 지옥은 운명을 개선해 줄 수도 있는 윤회전생주기에 근거한다. 모든 존재는 때가 되면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오리게네스의 주장은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와 교회정통파의 거센 반발을 받았으나,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성서에는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와 제물 따위를 바치면 실제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음
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 ' 마카베오하 ' 12장 43-45절은 유대의 애국자 마카바이오스가 전쟁으로 죽은 유대 인 병사들의 영혼을 위해 20만 드라크라를 제물로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에게 전사자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헛되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이 커다란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그야말로 갸륵하고 성스러운 것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 거지 나사로는 물론, 엘리야와 에녹까지 안식을 취했다는 아브라함의 Abraham`s
bosom이 있다. 그것은 '휴식장소refrigerium'와 같은 의미였다. 유대 민족의 교부들과 세례 받지 못한 어린아이들의 림보도 거론되었다. 아주 명확하지는 않지만, 바울도 불에 의한 구원과 같은 것을 암시한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 여러 세기에 걸쳐 그려진 여러 가지 환상도 역시 연옥의 형벌이 지옥의 형벌과는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보여 주었다.
교회가 제 3의 사후세계를 승인하기에 이르는 역사에 대해서는, 프랑스 역사학자, 자크르고프가 '연옥의 탄생The Birth of Purgatory'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연구서는 학문적 탐구 작업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교회가 연옥을 승인하는 과정을 고찰했던 러시아의 중요한 중세 연구자 아론 구레비치는, 르고프가 사후세계의 환상체험을 등한시했다고 비판하면서, 교회가 연옥을 공식적으로 수용하기 훨씬 전부터 연옥에 대한 개념은 환상체험 속에 확립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새로운 연옥 교리는 1253년 교황의 친서에서 언급되지만, 트렌토 공의회(1545-1563)에 이르러서야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회의 후에 작성한 트렌토 공의회의 교리 문답서를 보면, "독실한 자들의 영혼은 한동안
연옥의 불길 속에서 정화된 후, 마침내 더러운 것들은 들어올 수 없는 영원한 나라로 갈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연옥에 유배된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의 기도가 있어야 하고, 특히 기꺼이 제물로 바칠 수 있는 희생양이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한편 주교들은 "교화에 득 될 것이 없는 난해하고 미묘한 문제들, 특히, 미신을 부추기고, 부정이득을 꾀하거나, 권위를 실추하고 모욕하는 성향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언급을 피하도록 강력하게 교육받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갈등이 싹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연옥은 이단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승인한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반드시 초기 프로테스탄트를 가르키는 것은 아니지만, '순교자의 서Book of Matyrs '(1563)의 저자 존 폭스같은 프로테스탄트는 그렇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1,12세기에는 정통 교회가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자유로운 사고가 만연하였다. 불가리아의 어느 사제의 이름을 딴 이단 종파인 보고칠 파가 동쪽에서 서진해 왔고, 발도 파와 카타르 파 또는 알비 파가 스페인 북동부의 카탈로니아와 피레네 산맥에서 북쪽과 동쪽으로 진출하여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근처로 집결했다. 성지 순례와 십자군 원정과 같은 대규모 이동 또한 이단 사상의 확산을 부추겼다.
중세를 피로 물들인 이단과 종교재판의 장구한 역사에 대해서는 아주 짧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교회에서 낙인찍힌 이단자들 대부분은 절대로 자신을 이단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훌륭한 기독교인이라 자부했다는 사실다. 그들은 갈수록 부패하고 탐욕스러워지는 교회 관료주의에 안주하는 기성 기독교인들보다 자신들의 신앙이 훨씬 깊고 성스럽다고 생각했다. 성 프란체스코(1182-1226)의 탁발 수도회는 바로 그런 정서 위에서 창설되었다. 교회는 마지못해 프란체스코 회를 포용하고 흡수했고,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이단 사상이 일어나는 강력한 동기라 할 수 있는 반 교권주의 외에 이단자들이
공통적으로 견지하던 것은, 그리고 교회가 마니 교 사상이라고 부르면서 핍박의 빌미로 삼았던 것은 바로 이원론이었다. 하지만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이 마니Mani란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더 그럴 듯한 의견은, 중세의 하급 성직자와 귀족은 물론 무식한 일반 민중들까지도 모호한 이원론에 경도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그 뿌리를 뽑으려고 했다. 이른바 알비 지방의 이단 소탕전과 그 뒤의 끔직한 이단재판이 채찍이었다면, 당근은 바로 연옥이었다.
연옥은 효과적인 선전도구였다. 지옥의 유황불 운운하며 겁주는 레겐스부르크의 베르톨트 같은 설교자들 때문에 천국에서 소외당했던 민중이 이제는 '연옥'의 개념을 통해 다시 구원의 희망을 얻었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보면, 연옥은 아브라함의 품과 두 개의 림보를 솜씨 좋게 통합한 것이다.(하지만 단테는 이교도의 림보를 지옥의 제1환First Circle of Hell으로 규정했다.) 그럼으로써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아이들도 연옥에서는 아주 짧은 정화기간을 거치면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연옥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이 믿었던 유령ghost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도 해명해 주었다.
또 사람이 죽을 때 받는 개별 심판Particular Judgment at death과 궁극적인 최후의 심판Last Judgment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 하는 복잡한 의문도 풀어 준 셈이었다. 성인이나 순교자 그리고 용서할 수 없이 사악한 영혼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연옥에 가게 되리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그리고 교회는 살아있는 자들이 기도하면 죽은 자들이 연옥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공공연하게 설교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연옥의 여왕이 되어 당치 않는 역할을 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4,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마리아 묵시록The Apocalypse of Mary'을 보면, 성모 마리아는 지옥에서 죄인들에게 일시적인 휴식refrigerium을 얻어 주는 일을 했다. 바울 역시 비슷한 일을 했는데, 수도원들에서는 바울의 이야기다 더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과 같은 이야기 형식을 갖추지는 못했다. 1070년의 기적 이야기에서는, 한 여인이 젊은 시절 동성연애(!)를 한 죄로 지옥에 갔다
가 성모 마리아Mother of God의 중재로 목숨을 온전히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이야기를 보면, 성모 마리아가 죄를 지은 귀족을 구해 주기도 한다. 그 귀족은 죄를 지었지만 가난한 자들과 교회에 대해 큰 자비를 베풀었고, 이것이 죄를 보상할 만했으므로 성모 마리아는 악마의 무리에서 그를 구해 준다. 다만, 그를 묶은 사슬은 아직 살아 있는 다른 죄인이 죽을 때까지 그대로 매고 있으라고 명한다. 일단 지옥에 떨어지면 아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앞에 말한 죄인들은 연옥에 있을 때 구원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물론 당시에는 아직 그렇다고 결정된 사항은 아니었다. 연옥에 대한 정의가 확립되기 얼마 전, 1220년경 하이스테르바하의 카이사리우스가 쓴 글을 보면, 크리스티안이라는 이름의 젊은 사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크리스티안은 성모의 도움으로 악마들에게서 구출되는 환상을 경험한 뒤 개과천선해서 죽을 때까지 경건하고 겸손한 삶을 산 인물이다.
그 덕에, 젊어서 두 명의 사생아를 - 둘 다 수도사가 되었다 -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어서 곧장 낙원으로 간다고 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마리아의 구원이야기는 테오필리스에 관한 것인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파우스트 전설을 다룰 때 다시 소개하겠다.
"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소서, 현재도, 죽은 후에도. " 예수는 심판자이고, 마리아는 중재자다 심판 장면을 그린 수많은 그림에서 예수는 심판자로, 마리아는 중재자로 나타난다.
연옥관이 널리 퍼지고 마리아가 연옥에서 행하는 권능이 점점 커짐에 중세에서는 마리아를 예찬하는 기운이 드높이 일어났다. 나중에 프로테스탄트는 그런 현상에 대해 '성모숭배열Mariolatry'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을 썼다. 사람들의 뜻을 쫓아서, 교회는 마리아에게 더욱 초자연적인 속성을 부여한 것 같다. 마리아는 부모의 죄(성교)를 거치지 않고 무염시태에서 태어난 순결한 여성이다. 아들이 지상에서 죽은 것과 달리, 마리아는 죽지 않고 그냥 잠들었다가(몽소Dorminition) 육신이 성화하여 천국으로 갔다.(승천Assumtion). 이것은 1950년이 되어서야 신앙의 조목이 되었다. 마리아는 그 모습 그대로 지상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고, 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마리아의 성화상은 실제로 웃고, 진짜 눈물을 흘리고, 신자의 기도를 들어준다. (동정녀의 이미지를 보존하기 위해 성보상자들relics은 중세 후기에 대부분 폐기되었다.) 마리아는 '요한계시록' 12장 1절에 나오는 '태양을 입은 여자'다. 예수의 탄생장면에서는 새 생명의 어머니이고, 비탄의 성모상Master Dolorosa에서는 슬픔에 잠긴 죽음의 여신이다. 프랑수아 비용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쓴 기도시에서 마리아를 "하늘의 여신이요, 지상의 여왕,/ 수렁 같은 지옥의 왕후"라 부르면서 칭송한다.
어떠한 성인이라도 생전에 또는 사후에(대개는 사후에) 기적을 일으켰다. 하지만 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할 때는 마리아가 으뜸이었다. 마리아는 살아있으면서 초자연적인 신분을 얻었을 뿐 아니라 연옥에서도 가장 큰 권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세례 요한이 마리아와 함께 중재자의 직책을 공유했지만, 13세기말부터는 - 연옥이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는 때였다. - 마리아가 홀로 등장해 아들의 진노에서 죄인들을 보호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그래서 중세 후기에 전염병, 전쟁, 기근으로 유럽 전역에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을 때, 마리아가 세례 요한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트렌트 공의회는 그녀의 권위를 제한하느라 애썼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카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그 노력이 별다른 성과를 거둔 것 같지는 않다.
연옥은 이론상 매우 타당하고 게다가 인간미 넘치는 조치였지만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이 연옥개념을 부정하고, 동시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우상숭배적'신앙을 부정한 것은 끊임없이 공표된 사실이므로, 여기서는 특별히 다루지 않겠다. 결국 교회는 사후 형벌을 면해 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교황의 사면, 즉 '면죄부'로 장사를 시작했다. 자선 헌금함에 돈을 넣을 때 촛불을 밝히고 기도해 주는 것으로 끝났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심히 정도를 벗어날 위험이 있었고, 실제로도 자주 정도를 넘어섰다. 예를 들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Dives'보다도 훨씬 믿음이 좋
다는 돈 많은 사람들이 공력을 세운답시고 가난한 사람을 고용해 단식과 기도와 성지순례를 하게 하고, 십자군 전쟁에 참전시키고, 심지어는 고해자의 누더기 옷을 입히고 몸에 채찍질을 하며 고행하도록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교회는 이러한 행위 대신 적절한 헌금과 재물만 바치면 속죄한 것으로 인정해 줄 만큼 비굴해졌다.
중세 시대에 교회는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연옥은 그
런 교회에 인간의 사후 운명까지 주관하는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전능한' 로마 카톨릭 교회에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연옥은 단테의 정죄산과 같은 일시적인 지옥이었다. 그곳에서는 지옥과 같은 종류의 벌을 받기는 하지만, 지옥의 벌처럼 호된 것은 아니었다. 연옥은 마치 '정련소의 불'처럼 사람의 원죄와 후천적으로 저지른 악을 깨끗하게 살라 버리는 불을 연상하게 한다. 화가들은 연옥으로 내려온 천사들이 죄를 정화한 벌거벗은 영혼들을 낙원으로 데리고 하는 모습을 그렸다. 19세기까지 카톨릭 교회의 대부분의 제단 장식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묘사하고 있었다.
단테의 지옥편 Dante`s Inferno
단테(1265-1321)에 대한 해설서들은 단테가 만들어낸 지옥Inferno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은 단테의 '지옥편Inferno' 과 그 지옥의 공학, 지형도에 관한 내용이다. 단테가 지옥 광경을 그려내며 발휘한 건축적 창의성은 언제나 독자를 매료한다. 요즘 나오는 '신곡Divine Comedy'판본은 대개 지도와 도해를 싣는다.
한편 옛날의 삽화가들은 '신곡'사본에 등장인물과 괴물뿐만 아니라. 둑, 해자, 성곽, 도랑, 디스 시City of Dis의 시뻘겋게 달구어진 철벽 등을 그려 넣었다. 갈릴레이도 1587년 학생 시절, 단테의 지옥 구조에 대해 재미있는 논문을 쓴 바 있다. 베르길리우스가 묘사한 하데스는 평면적으로는 광활하지만 상하의 깊이가 그리 대단치 않는 데 비해서, 단테의 '지옥편'은 그리스도가 지옥의 제 1환을 정보한 뒤 가공할 만한 지진 때문에 생긴 지반 붕괴, 균열, 폐허를 3차원으로 묘사한다.
유배 생활 중에 단테는 위대한 시를 지으면서 역사, 당시 피렌체의 청치, 성직자의 푸태, 동시대인의 도덕적 자세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자신의 정신 상태를 연구하는 데데 힘을 쏟았다. 7시기가 지난 오늘날, 그가 풍부한 정서를 지녔다는 것은 금방 알아볼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당시 현실에 맞춰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 줄거리'만 따라 '지옥편'을 읽는 독자라 해도, 단순히 순례의 이야기에 경탄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거기에 묘사된 광경, 음향 , 그리고 악취(!)에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다.
단테는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주제와 씨름한다. 철학, 신화, 신비주의에 관한 주제, 악마,
유혹, 환상에 관한 주제, 우화, 괴기주의, 희극에 관한 주제, 그리고 심리학적 주제- 단테는
이런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한 배려 속에 연결했다. 그의 종교관은 보수적이었지만,
그의 상상력은 예외였다. 비록 '신곡'이 환상여행vision tour을 봉해 고적 적인 하데스의 속
성과 기독교적 지옥의 속성을 급진적으로 결합한 것에 불과하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단테의
예술적 공헌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더욱이 그가 끼친 영향은 그 이상이었다.
이 세상에서 단테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도시국가 피렌체의
부유한 친척 손에서 자랐고, 거기서 고전문학과 당대의 시에 대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그
는 이탈리아 어휘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동기에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의 방언들을 통합하
는 '범이탈리아적' 언어를 확립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비록 단테가 '신곡'을 피렌체 방
언으로 쓰겠다고 결심하면서, '범이탈리아적'에 대한 구상은 무산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당초
의 계획을 실천한 셈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씌어진 '신곡'은 훗날 테트라르카와 보카치와의
공헌과 더불어 토스카나 방언을 이탈리아의 문어로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단테는 상인, 군인, 정치가, 철학 교수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거쳤다. 그리고 당시의 복
잡한 정치 문제에 휘말려 생의 마지막 20여 년을 빈궁한 생활은 아니었다 해도 여러 망명지
를 떠돌며 보내는 불운을 겪었다.
단테의 유년 시절에 관한 일화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아홉 살 때 한 살 아래의 베아트
리체를 만난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궁정 연애의 전형이었다. 둘은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
고,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했지만, 단테는 일생 동안 그녀를 향한 시를 썼다. 그녀는 1290년
에 죽었는데, 그 후 정확히 10년 뒤인 1300년에 단테가 '신곡'을 집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서 기억되는 해다, 그녀는 시에서 '신성한 사랑' 또는 '은총'으로 등장해 시인 베르길리우스
가 체현한 인간이성Human Reason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단테가 1300년
에 '신곡'을 쓰기 시작한 데는 몇 가지 다른 이유도 있다. 1300년은 그가 35세가 되는 해였
고, 인생을 70으로 보는 그에게는 인생의 반 고비를 넘는 나이였다. 또한 1300년은 한 세기
에서 다른 세기로 넘어가는 해이기도 했는데, 단테는 숫자들을 시적 도식의 본질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 시련기도 그 무렵 시작되었다.
단테의 물리적, 윤리적 우주를 그려보려면, 표면이 울퉁불퉁한 원뿔 또는 깔때기 모양의
구멍이 지구의 북반부에서 지구 중심까지 뚫려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 원뿔형 구멍
의 한가운데가 예루살렘이고, 예루살렘을 둘러싼 원의 지름은 약 3,950마일(6,357km)이며,
이는 지구의 반지름과 같다. - 갈릴레이는 지구의 반경이 그 보다 몇 백마일 더 짧다고 계
산했다. 이 구멍은 루시퍼와 부하천사들이 하늘에서 추락할 때 그 무게와 힘이 지각을 때리
면서 생긴 것이다. 그 충격으로 밀려난 물질들은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지옥에서 탈출할
때 사용하게 되는 그 통로를 따라 남반구까지 이동하여 어는 고도 위에서 뒤집힌 원뿔 모양
으로 연옥의 정죄산mountain of Purgatory을 이루었다. 지옥의 입구는 둥근 천장으로 덮여
있는데, 갈릴레이는 그 천장의 두께를 405.52마일(652km)로 계산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두
께가 얇은 곳에 갈라진 틈이 있었고,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그 틈으로 들어간다. '지옥편'
서곡을 읽어보면, 순례자(단테)가 어두운 숲을 헤매다가 표범, 사자, 암 여우를 피해 언덕을
오르는데, 이곳이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은밀한 입구였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귀
가 적혀있다.
"여기 들어오는 모든 자들이여, 희망을 버릴진저."
단테의 지옥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동설을 믿었던 갈릴레이와 달리 단테가 프톨레마
이오스의 천동설을 믿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는 그 중심에 지
구가 있고, 지구 둘레를 투명한 천구 9개가 돌고 있었다. 제 1천부터 차례대로 열거하면, 월
천Moon, 수성천Mercury, 금성천Venus, 태양천Sun, 화성천Mars, 목성천Jupiter, 토성천
Saturn, 이어서 제 8천이 항성천fixed stars이었다. 제 9천은 원동천prime mobile이며 ' 최초
의 원동력first mover'으로서 우주의 조화를 유지한단. (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당시엔 외행
성 3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 이 천구들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최고천Empyrean은
하느님, 천사, 성인이 머무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단테의 천국들heavens은 각각의 천구 안에
설정되었다. 지옥도에서 현관vestibule은 열 번째 구역을 이룬다. 이것은 최고천이 우주의
제 10천을 이루는 것과 같고, 또 지상낙원earthly paradise이 아홉 단계로 된 연옥의 꼭대기
에 위치하는 것과도 같다.
정확한 구조와 상징적 수비학에 대한 단테의 정열은 시 자체의 구조에도 적용된다. '신곡'
은 모두 삼운구terza rima로 씌어졌다. 모든 연stanza은 3행으로 되어있고, 각 연의 1,3행이
서로 압운rhyme을 이루며, 제 2행은 뒤따라오는 연의 1,3행과 압운을 이룬다. 각각 33곡으
로 되어있는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은 또 한 차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지옥편'의 서곡
을 포함하면, '신곡'전체가 100곡이 되는데, 이런 구조를 이토록 읽기 쉽게 운용하는 것은 놀
라운 일이다.
제3곡에서 두 시인은 '지옥의 문'을 거쳐 지옥의 현관에 들어서는데, 단테는 이곳에 제 인
생은 물론 그 무엇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배치한다. 그 죄인들은
지옥에 들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한다. 지옥 현관을 지나면 아케론강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순환하는 세 강의 첫 번째 강이다. 아케론은 다음 강인 스튁스로 흘러 들어가고, ( 세 번째
강인 플레게톤을 거쳐) 마지막에는 지구의 중심에 있는 얼음 호수인 코퀴토스에 도달하게
된다. 단테는 극적 효과를 위해 레테- 전통적 지옥의 네 번째 강 -를 연옥으로 옮겨 놓는
다. 베르길리우스는 헤시오도스 같은 태도로 순례자(단테)에게, 이 모든 강물은 크레타의 이
다산중에 서 있는 커다란 금속상이 흘리는 눈물에서 발원했다고 말한다.( 이 입상은 성서의
'다니엘서' 2장 31-34절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근거를 둔 것이지만, 그 금속상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순전히 단테가 지어낸 것이다. )
지하세계의 원뿔 전체는 계단 모양으로 되어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간이 좁아지는데,
가장 아래 우묵하게 패인 구멍이 지구의 중심부인 코키토스가 있는 곳이다. 뱃사공 카론이
두 시인을 태워 건너는 아케론 강과, 그 다음 두 번째 강 스튁스 사이에 지옥의 1-5환이 위
치한다. 맨 위의 제 1환을 림보라 하는데, 이곳은 세례는 안 받았지만 덕망 있는 영혼이 -
대부분 이교도들이다. - 거주하는 곳이다. 제 1환에서는 아무도 형벌을 받지 않는다. 이곳은
일견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에서 낙원의 꽃 (아스포델)이 만발한 엘뤼시온 들판과 흡
사한 곳이다. 철학의 성Castle of philosophy이 있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제 1환은 통한의
눈물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베르길리우스 자신도 호메로스( 단테가 호메로스의 저작을 읽
은 것 같지는 않고, 단지 그 명성만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를 위시한 다른 이름난 이교도
들과 함께 제 1환에 머물고 있다. 물론 헤브라이 인들은 '그리스도의 지옥정벌'을 통해 구원
을 받았다. 단테는 세례 받기 전에 죽은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
다.
림보 다음에 놓인 제 2-5환은 무절제한 자들, 말하자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욕망에 굴
복한 사람들이 벌받는 곳이다. 단테는 죄의 유형을 분류하면서, 당시에 일반적이던, '일곱 가
지 대죄'분류를 따르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체계를 따랐다. 제 2환은 미노스가 지
키고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불어대는 욕망의 폭풍이 '육욕의 죄를 범한 자들the lustful'을
괴롭힌다. 지옥의 번견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있는 제 3환에서는 '폭식가들gluttons'이 악취
나는 차가운 음식찌꺼기 더미 위를 뒹굴고 있다. 플루토스('부'를 관장하는 신)가 지키는 제
4환에서는 주로 성직자들인 '탐욕스런 자들the avaricious'과 '방탕한 자들the prodigal'이 서
로 싸우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스튁스는 강이라기 보다는 더러운 진흙탕이며, 제 5환의 일부
를 이루는 동시에 디스 시City of Dis성곽의 해자 이기도 하다. 또한 스튁스는 상부 지옥과
하부 지옥의 경계선이 된다. 스튁스의 늪 속에는 '분노하는 자들the wrathful'이 서로를 쥐어
뜯고 있고,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the sullen'이 흐트러진 자세로 숨을 헐떡이며 진흙을 삼키
고 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위쪽 강둑의 큰 망루 아래서 플레귀아스의 배를 타고 스튁스를 건
너 지옥의 도읍이자 타락한 반역천사들의 거처가 된 디스Dis(사탄) 시에 이른다. 반역천사
들은 두 시인의 입성을 막지만 하늘에서 온 천사가 문을 열어 두 시인을 들여보낸다. 푸리
아이와 메두사가 경비하는 디스 시의 - 실제로는 디스 요새라 불러야 하겠지만 - 성벽 안
쪽으로 하부 지옥전체가 펼쳐진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제 6환이 시작되고, '이단
자들heretics'이 불타는 무덤 속에서 헐떡이고 있다. 한편 단테의 지옥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
지 않게, 디스 시의 성벽 안에서만 화형이 행해진다.
시인들은 미노타우로스가 지키고 있는 깎아지른 경사면을 더듬어 내려가서 제 7환에 이르
고, 켄타우로스가 지키고 있는, 펄펄 끓는 피의 강 플레게톤을 만난다. 그때 괴물들 중 하나
인 네소스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해 준다. 제 7환에서는 '폭력을 휘두른 죄인the violent'이
벌을 받고 있다. 이곳은 세 원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원이 다름 아닌 플레게톤 강이
다. 이 끔찍스러운 강에는 전쟁광, 폭군, 약탈자, 조직 폭력배, 정신 이상자 등 살인을 저지
른 자들이 빠져 흘러가며 아우성치고 있다. 하르퓌아이가 지키고 있는 다음 원은 '자살자들
의 숲'( 아마 단테가 만들어낸 것들 중 가장 섬뜩한 개념일 것이다. )이며, 그 숲 가장자리에
는 부랑자들이 검은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모습도 보인다. 마지막 세 번째 원은 고리 대금업
자, 신성 모독자. 동성연애자들이 있는 '불타는 벌판'이다. 두 시인이 '불타는 벌판'을 빠져나
가는 유일한 방법은 돌이 깔린 수로의 둑을 따라 가는 것이다. 이 수로를 따라 흐르는 플레
게톤 강은 절벽에 이르러 폭포를 이룬다.
그 다음 괴물 게뤼온이 시인들을 절벽 아래로 싣고 날아서 내려간다. 이곳이 가장 정교하
게 만들어진 지옥의 제 8환이며, 앞의 것들과 다른 마지막 죄, 사기와 악의의 죄를 심판하는
곳이다. 제 8환은 말레볼제라고 불리며, 이곳에는 열 개의 둥근 구덩이 또는 '볼제(주머니
들)'가 있고, 각각의 볼지아(주머니) 위로부터 중앙의 구덩이를 향해 바퀴살 모양으로 돌다
리가 뻗어 있어서, 마치 거대한 석조 원형 극장처럼 보인다. 각각의 볼지아마다 죄인들이 들
어있는데, 그 중 첫 번째 볼지아에는 포주(남을 위해 여자를 농락한 죄)와 난봉꾼(자신을 위
해 여자를 농락한 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고, 뿔 달린 마귀가 양쪽 죄인들 모두를 끊
임없이 괴롭힌다. 두 번째 볼지아에서는 아첨꾼들이 똥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고, 세 번
째 볼지아에서는 적어도 교황 한 명을 포함하여 부패한 성직자들이 세례반 모양의 통속에
거꾸로 박힌 채, 발에 불로 세례를 받고 있다. 네 번째 볼지아에서는 거짓 예언자와 점쟁이
들이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머리가 완전히 등뒤로 돌아가 있어서, 눈물이 엉덩이로 흘러내
린다. 장님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역시 '오뒷세이아'에서 행하던 권능을 잃고 가엾게도 여기에
갇혀 있다.
다섯 번째 볼지아에 이르러 단테는 말레브란케('사악한 손톱들Evil Claw'이란 뜻 )를 등장
시킨다. 말라브란케는 성사극에 나오는 일단의 기괴한 악마인데, 그들은 부정한 관리들 -
부정 이득자와 공직에 있는 사기꾼들 -을 끓는 역청 속에 던지고 논다. 분위기는 그로테스
크한 희곡처럼 바뀌고, 제 21곡 끝부분에서는 급기야 전통적인 '방귀' 나팔까지 울려 퍼진다.
단테가 이 지점에서 희극적 이완을 뒤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
자신의 볼지아였기 때문이다. 그는 교황을 적대시하고 음모를 꾸몄다는 막연한 혐의에다가
공금을 횡령하고 정치적 뇌물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했다. 이 무서운
소극은 그에게 부여된 혐의에 대한 항변이다. 실제로 단테가 알고 지냈음에 틀림없는 위선
자들이 곧이어 다음 볼지아로 떨어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시인은 예수의 지옥정벌 직후 발생한 지진으로 여섯 번째 볼지아로 통하는 다리가 무
너졌음을 알게 되고, 성난 말레브란케의 추격을 피해서 울퉁불퉁한 비탈을 기어 내려가야
했다. 그 비탈 아래의 여섯 번째 볼지아에서는 위선자들이, 안쪽에 납을 대어 만든 무거운
망토를 입고, 그 무게가 힘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 발을 질질 끌며 줄지어 걷고 있다. 두
사람은 허물어진 다리의 벽을 타고 힘겹게 기어올라가 마침내 일곱 번째 볼지아에 다다르는
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니 도적과 뱀들이 서로 뒤바뀌어 변하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덟 번째 볼지아에서는 모략자deceiver들이 불꽃에 싸여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오뒤세우
스도 있었다. -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트로이아 인 (그리고 이탈리아 인) 편이었기 때문에,
오뒤세우스를 목마의 간계를 쓴 악인으로 본 것이다. 아홉 번째 볼지아에서는 불화의 씨앗
을 뿌린 자들이 악마의 칼에 참혹하게 토막 나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무하마드도 있었는데,
단테가 보기에는 그도 '믿음이 없는' 이단자였다. 이 볼지아는 사방 20마일(32km)정도의 좁
은 곳이었고, 꼭대기는 극도로 비좁았다. 마지막 열 번째 볼지아는 둘레가 겨우 11마일
(18km)에 폭이 반 마일(0.8km)밖에 안 되는 더 좁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그곳에서는 거
짓말쟁이(위증자, 위조자. 불륜의 정욕을 채운 자, 연금술사)들이 끔찍한 병에 걸려서 시달린
다.
말레볼제의 밑바닥에 있는 우물에는 키가 50피트(15m)나 되는 거인들이 늘어서 있다. 이
것은 그리스 신화의 타르타로스에 갇힌 거신 족들의 이야기를 단테식으로 개작한 것이다.
나락의 밑바닥을 지키는 그 거인들은 상반신만 물위로 내놓고 있다. 그들 중 하나인 안타이
오스가 몸을 구부려 거대한 손으로 시인들을 들어다가 제 9환 한복판에 내려놓는다.
얼어붙은 호수인 코퀴토스는 반역자 디스의 영역이다. 그 주위에 있는 세 개의 고래 안에
는 온갖 배신자들이 갇혀 있다. 카이나(성서의 '가인'에서 따온 이름)에는 혈족을 배신한 자
들이 갇혀 있고, 안테노라(트로이아의 반역자인 안테노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는 호메로스
의 영웅이었지만,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와 트로이아인의 편이다.)에는 조국을 배신한 자들이
갇혀 있으며, 프톨레메아(자신의 장인이자 제사장인 시몬과 시몬의 두 아들을 초대해 주연
을 베풀고 나서 그들을 살해한 여리고의 수장 프톨로미에서 따왔다. )에느 손님을 배신한
자들이 갇혀 있다. 궁극의 중심- 지옥의 중심이자 지구의 중심- 인 주데카( 물론 그리스도
를 팔아 넘긴 유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에서는 은인을 배반한 자들이 벌을 받는다. 그
중앙에는 위대한 신에 대항한 최강의 적대자였던 디스(사탄)가 얼음 속에 갇혀 있다. 가롯
유다, 브루투스, 카시우스의 망령들을 먹어 삼키는 디스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린다. 이제
시인들은 지상의 상쾌한 공기와 별빛을 볼 수 있는 출구를 찾기 위해 털이 부숭숭한 디스의
허벅지 위를 기어올라간다.
단테가 그린 디스 또는 사탄의 모습은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독창적이다. 환상문학vision
literature에서는 대체로 사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피하거나, 기껏해야 괴이한 모습을 비추
는 것에 불과했다. 단테는 '툰달'을 읽기는 했어도, 거기에 등장하는 지네 형상의 사탄은 마
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상상해낸 사탄은 아주 그로테스크한 것이었다. 얼굴은 세 개였는데,
유다를 물고 있는 가운데 얼굴은 붉고, 브루투스를 물고 있는 왼쪽 얼굴은 검으며, 카시우스
를 문 오른쪽은 노랗다. 각각의 얼굴 밑에는 날개가 한 쌍씩 달려 있어서 그것을 퍼덕이면
코퀴토스를 얼려버릴 만한 바람이 일어났다.
새 얼굴을 가진 사탄은 화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피렌체의 대다수 사람들처럼,
단테도 산지오반니 대성당의 세례실 천장을 호화롭게 장식한 새로운 '최후의 심판'모자이크
화를 보았음에 틀림없다. 이 모자이크 화는 1300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해는 단테가 고향인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기 두 해 전이다. 바사리의 '예술가들의 생애'에 의하면, 단테는 역시 피
렌체 사람인 지오토와 막역지우였다고 한다. 추방당하고 나서 단테는 파도바 시의 스크로베
니 예배당을 방문한 것이 틀림없는데, 이곳은 1307년경 지오토가 그의 유명한 프레스코 화
를 완성했던 곳이다. 이 예배당은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아버지 레지날도의 약탈행위를 면죄
받기 위해 지은 것이었다. 레지날도는 죽어가면서도, "내 돈은 아무도 못 가져간다!"면서 금
고 열쇠를 가져오라며 배를 움켜잡고 악을 썼을 만큼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래서
지오토는 천국(그 역시 자신을 이곳에다 두었다)에서 엔리코가 성자들에게 예배당의 모형을
바치면서 경의를 표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단테는 짓궂게도 친구 지오토와는 달
리 엔리코의 아버지 레지날도를 고리대금업자들이 모인 지옥의 제 7환에 두었다. 제7환에서
두 시인이 게뤼온의 등에 업혀 더 아래쪽에 있는 지옥(말제볼제)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바로 레지날도다.
이 두 '최후의 심판'그림(산 지오반니 성당과 스크로베니 예배당)이 나타내는 사탄의 모습
은 모두 괴상 망측하다. 사탄들의 양쪽 귀에서 기어 나와 죄인들을 잡아먹는 뱀 두 마리의
모습은 시적인 묘사라기보다는 차라리 기괴한 편이었다. 단테는 이 형상을 삼위일체에 대립
하는 것으로 재배열한 것이다. 비잔틴 양식의 '최후의 심판'그림들에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
긴 악마들이 그려져 있고, 죄지은 이들의 영혼을 잡아먹는 독사들이 사탄의 권좌에서 기어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은 지옥의 입Hellmouth을 그림의 구도 안에 배치하는 교묘한 방
법으로서, 피렌체(산 지오반니 성당)의 둥근 천장과,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있는) 지오토의
그림도 이 착상을 빌어 쓴다. 죄인들을 삼킨 후에는 곧 배설하게 될 터인데, 사탄이 앉아있
는 자세가 그것을 암시한다. 디스의 몸을 털투성이로 그리는 것은 성사극에 쓰이던 악마 복
장이 짐승 털과 새깃으로 덮여 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서 보티첼리의 그림에서도 금방 눈
에 띈다 디스의 날개에 대해 말하자면, 삽화가들은 성서에 나오는 스랍처럼 복잡한 날개를
포기하고 대부분 날개 한 쌍만 그려 넣기 시작했다.
단테의 문학적 묘사는 비록 그것이 신학적으로 합당한 것이고, 지오토가 그린 (스크로베
니 예배당의) 짐승 모습과 환상문학Vision literature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아주 새로
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사탄이 완전한 패배자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사탄은 침을 질질 흘리
면서 정신없이 물어뜯고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두 시인이 분명히 자신의 몸을 타고 도망치
고 있는데도 꼼짝 못 한다. 사탄은 얼어붙은 원형질의 모습으로 전락해 있다. 단테는 사탄을
간략하게 묘사한다. 이것은 환상문학Visions의 전통이며, 예술적으로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괴물을 묘사할 때, 깊은 인상을 주는 것과 우스꽝스런 느낌을 주는 것은 종이 한 장의 차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옥편'의 필사본은 세간에 유포되기 시작하면서 곧 선풍을 일으켰다. 이때는 단테가 여
전히 '신곡'의 후반부('연옥편'과 '천국편')을 집필하고 있던 1314년경이었다. 삽화까지 곁들인
'지옥편'사본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졌고, 이는 공공 미술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14세
기에는 이탈리아 도처에서 성당 건축이 활기를 띄고 있었는데, 그 성당들을 장식한 '최후의
심판'그림들은 단테가 고안한 연옥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 낸 연옥의 정죄산이
회화에서 연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
보다 화가들을 매료한 것은 역시 그의 지옥이었다.
단테와 함께 지옥의 역사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는 환상문학vision
literature의 세계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지옥을 허구나 비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
다는 점에서 지옥 자체도 무너뜨렸다. 그는 사실인 체하는 환상문학의 구태의연한 전통을
거부했고, 그 대신 독자를 단테 자신과 베르길리우스의 순례 이야기에 초대했다. 다시 말해
서 앞선 시대의 다른 작가들을 심미적, 비평적으로 음미하는 한 작가(단테 자신)의 예술 작
품 속으로 독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피렌체의 나르도 디 치오네의 벽화를 보면 어떤 사
람이든 그 그림이 문자 그대로의 지옥이 아니라 단테의 지옥을 묘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그림 19,20). 단테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지옥의 현실성을 약화하고 거부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뒤로, '신곡'에서 그린 순례 여행은 지속적으로 정신 세계의 은유로 작용했다. 프로이트
이후 끝없이 신화의 지도를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건대, 사자의 땅 또는 지옥-
그밖에 어떤 말로 불리는 것이든 간에 -여행이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헤매면서 정신적 재
생을 도모하는 개인적 경험을 우의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현대인의 종교'라 불리는 정
신 분석학에서는, 환자가 올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는 깊은 원인을
그의 '안내인'과 더불어 탐색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분석하고 검증하는 고통스러
운 연옥을 거친 후에 비로소 정신적 건강을 되찾고 상대적인 낙원에 이르게 된다. 마약 중
독이나 알콜 중독을 고치기 위한 어떤 12단계 프로그램에서는 중독과 파멸 행위로 몰락하는
것을 가리켜, 지옥으로 떨어지는 소용돌이 안에 휘말리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말하자면, 지
옥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털이 부숭부숭한 사탄의 다리를 타고 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
어오르는 것이다. 이 경우 술이나 마약이 없는 불안한 낙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행동 제한이
모두 연옥이다. 조셉 캠벨은 융에 의거하여, 모든 종교 신화나 기사 무훈담에 기본적으로 존
재하는 것이 '영웅 역정'이라고 본다. 역정 속에서 영웅은 먼저 '야수의 뱃속'으로 모험을 떠
나야 하고, 그 뒤에 이상을 향한 '시련의 길'을 걸어야 한다.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이러한 은유적 사고방식은 단테가 '신곡'을 쓰지 않았다면 태동조차
못 했을 것이다. '신곡'은 새로운 영역의 어휘를 제시해 주었고,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직관
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은이: 앨리스 K. 터너
첫댓글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