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립 장군의 얼이 깃든 '명문가의 짙은 묵향' 경주예술의전당, 오늘부터 26일까지 '충의당 3대 서예전' 13세 최병민·14세 최채량·15대 주손 최건 소장작품 전시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4년 10월 19일(일) 20:15 공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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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아주 의미 있고 보기 드문 서예전이 열린다. 국내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귀한 경주 역사문화의 자랑이 될 '충의당 삼대 서예전'이 선보인다. 그림이나 글씨 몇 점을 담아 전시하는 단순한 부자전(父子展)이 아니다.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14세 주손 최채량(82) 옹이 오늘부터 26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대전시실에서 선대와 본인, 그리고 후대까지 함께 하는 3대 서예전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오는 25일 오전 11시에 전시 현장에서 지역인사들을 초청해 개막식도 가질 예정이다. 조선중기 임진, 병자호란에서 신명을 바친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13, 14, 15대 주손이 평소 소장했던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 특히 정무공의 유묵(遺墨)과 함께 13세 주손 고 죽남 최병민(竹南 崔炳珉, 한학자) 선생의 유묵, 14세 주손인 우산 최채량(崔埰亮, 교육자) 선생의 작품, 그리고 15세 주손 인산 최건(崔鍵, 서예가)선생의 작품이 전시된다. 정무공 세가 필첩 및 충의당 3대 서예전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 올바른 가치와 덕목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 사회의 건강하고 바람직한 정신문화를 살펴본다. 충의당은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생가로, 사랑채의 당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충의당 3대 서예전이란 정무공 장군의 종택을 지켜온 주손의 서예전을 의미한다. 경주최씨는 고운 최치원, 사성공 최예 이래 1,000여년 동안 학문하는 선비 가문으로서의 위상을 지켜왔다. 조선중기 정무공 최진립 이후에 내남면 이조마을을 중심으로 무신 특유의 실질을 숭상하는 가풍이 형성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난을 거치면서 목숨을 바쳐 국가에 충성하는 충의의 가문으로서 위상이 정립됐다. 고운 최치원 선생의 후손인 정무공 최진립(1568~1636) 장군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생 최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594년에 무과에 급제해 부장을 제수받았으나 병으로 사직했다. 그후 1597년 정유재란 때 결사대 수백 명을 인솔하고 서생포의 적을 격멸한 데 이어 양호, 권율 장군과 함께 도산에서 대승했다. 1600년 여도만호 겸 선전관에 제수됐으나 취임하지 않고 1607년 도총도사에 제수되자 비로소 관직에 나갔다. 경흥부사와 공조참판을 거쳐 1630년(인조8) 경기수사로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했다. 1634년 전라수사를 거쳐서 1636년 공주영장으로 병자호란을 맞자 감사 정세규를 따라 참전해 용인 험천에 이르러 청군을 만나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1637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1647년에 청백리에 녹선됐다. 경주의 숭렬사와 경원의 충렬사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정무이다. 고 죽남 최병민(1909~1987) 선생은 한학자였다. '죽남문집'을 남기며 경향의 문중으로부터 비문과 묘갈명 등을 부탁받아 50여 좌를 찬서 했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그의 귀한 필력의 유묵 40여 점과 직접 찬문하고 쓴 묘갈명 등 수십 여점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우산 최채량(1933~ ) 선생은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교육자다. 후학 양성에 뜻을 두고 중고등학교에 봉직했다. 서예에 조예가 깊어 도남서원, 나산서원, 청송 의병기념관 등 현판 50여 점과 일본의 퇴계선생현창비, 임란창의비, 운곡서원 신도비 등 비문 100여좌를 찬서 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생의 서예작품과 금석문 100여점을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인산 최건(1954~ )선생은 조선전통의 필력을 이어받아 현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서예가다. 제10회 대한민국서도대전에서 대상 수상을 비롯해 각종 서예대전에서 인정받고 있다. 인산서실과 국선도 단전호흡 경주지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노작 60여 점이 짙은 묵향을 흠뻑 쏟아낼 것이다. 이은희 기자
첫댓글 내일(2014년 10월 25일) 오전 11시에 개막식 행사 합니다.
참석하시는 분 모두에게 점심제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