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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비리는 아이들의 꿈을 훔치는 도둑질"[만민보] 해직교사에서 교육의원으로 돌아온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가 그의 꿈이었다. 그러나 학교는 내부 비리를 공익제보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임했다. 1년도 넘게 홀로 교육 비리에 맞서 싸웠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랬던 그가 시련을 딛고 교육계의 국회의원격인 교육의원으로 돌아왔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김형태 지난 6월 2일 치러진 지방선거를 ‘기적’으로 만든 이가 있었다. 양천고등학교 해직 교사 김형태(46)씨다. 전교조 출신의 해직교사였던 그가 7월 1일자로 서울시 교육의원이 됐다.
김 의원이 교육비리에 맞서 싸운 ‘양심교사’의 전형이 된 것은 투철한 사명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제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국어교사로 20년을 살아온 김 의원은 담임을 맡을 때마다 3월 1일에 아이들 이름을 외우곤 했다. 사진이 없어도 명단을 보고 모두의 이름을 미리 외웠다. 그의 아내는 고생을 자초한다며 타박하기도 했지만 ‘제자를 사랑하는 것은 교육의 기본’이라는 신념을 가진 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 의원이 처음부터 교사라는 직업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신앙심 깊은 그는 신학대 교수나 목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의 꿈이 바뀌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돌아가시면서였다. ‘풍비박산’난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가 신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결국 기도원에서의 20여일 금식기도 끝에, 국어 관련 출판사를 거쳐, 입시 학원 강사로 나섰다. 그는 일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가는 학원 강사’가 됐다. 그렇게 새벽부터 강동, 강남, 안양을 오가며 정신없이 2년을 일했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당시 돈은 많이 벌었으나 보람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제 관계나 강사들 간의 동료의식도 없었어요. 특히 연말에 허탈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성적이 올랐다는 학생들의 얘기도 없었고 강사들의 이적도 많았습니다. 저는 돈은 적게 벌더라도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 보고 싶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결국 학원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김 의원은 신문에서 채용 공고를 보고 1990년 양천고등학교로 갔다. 남들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갈 때 그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고민은 생각보다 컸다. 성적,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것은 알았지만 학교가 주는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아이들의 무거운 짐을 어떻게 덜어줄까 , 어떻게 하면 사막 같은 고등학교 생활에서 오아시스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생일파티와 세족식 등 ‘추억만들기’이다. “남학교는 엄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작은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어서 매달 한 번 정도 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위해 초코파이케이크,요구르트 등을 준비해서 생일 파티를 했어요. 또 수학여행을 가서 세족식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상하개념이 아닌 서로 사랑하자는 뜻에서 아이들의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제자를 생각하는 김 의원의 행동에는 진정이 담겨있었다. 아이들은 눈높이를 맞춘 김 의원의 진정성을 그렇게 깨달아 갔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지, 또 좋은 선생님인지 아닌지 귀신같이 압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믿고 따라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지 여부에 따라 차별하지 않았어요.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이들도 기억하고 같이 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김 의원은 늘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애쓰고 아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었다. ‘교육적, 민주적, 자율적’ 3가지 지도 원칙을 세우고 학생들을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는 김 의원에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학교생활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때론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놨다. 8교시 야간 자율학습과 급식 문제도 아이들에겐 중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김 의원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물질이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점심 급식에 나온 메뉴가 저녁 급식에 그대로 나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이 당당하게 개선을 요구할 만큼 민주적이지 않았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혹시나 불이익이 있을까 말을 못 했던 거죠. 이 상황을 아니까 제가 학교장이나 교감 등 관련자들에게 개선을 요청했어요. 이웃 학교의 사례를 들고 대안을 제시했죠. 그러나 학교는 전혀 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교를 위한 저의 개선안을 악의적으로 해석하더라구요” 양천고에서 비리를 고발하다 파면당한 김형태 교사. 그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교육위원으로 당선됐다.ⓒ 민중의소리 김 의원에 따르면 일부 사립학교들은 거의 ‘왕국수준’으로 치외법권적 권리를 휘두르고 있다. 재단과 이사진들이 교장․ 교감을 선임하는 등 학교 운영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재단이 행복한 학교가 된 것이다.
양천고의 비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불법급식 수의계약,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동창회비징수, 학교운영회 회의록 조작, 공사비 허위로 부풀리기, 체육복 불법판매, 도서실비 불법징수 등 ‘비리사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김 의원은 고교 선택제가 다가오면서 양천고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는 김 의원의 의견을 학교에 대한 도전이자 간섭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처음엔 담임을 맡기지 않는 등의 불이익을 주기 시작했다. 지난 2008년에는 징계 얘기를 꺼냈다가 교장이 김 의원을 경고하는 선에서 그치기도 했다. “공익 제보 시 불이익이 주어질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지만, 저라고 인간적인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다만 신앙인이니까 하나님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달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학교를 위해 바른 소리를 했는데, 설마 해직시킬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요...” 그러나 지난해 2월 교육청이 일제고사를 반대한 교사들을 대거 해직하면서 양천고는 이때다 싶었는지 같은 달 급하게 징계안을 회부해서 김 의원을 해직시켰다. 반발을 막기 위해 새 학기 시작 전에 그를 급히 해직시킨 것이다. 이후 1년이 넘게 김 의원은 교육 비리와 맞서 싸웠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 했고 학교를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 어떤 폭언․ 폭력적인 방법도 쓰지 않았다. 학교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무지막지하게 해직시켰으나 그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단식농성도 하지 않기로 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지난해 3월 10일 시작해 올해 4월까지 1년여 넘게 이어진 교문 앞 ‘1인 시위’였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의 1인 시위마저 용납지 않았다. 이사장 및 학교 관계자들은 그가 든 손팻말을 가져가거나 훼손하기도 했고, 학교 앞에서 시위를 못하도록 법원에 접근금지 신청도 했다. 1인시위는 합법적인 것이라며, 판사를 이를 기각하긴 했지만 1년여의 시위가 수월했을 리 없다. “1인 시위로 실추된 저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바른소리했다고 교사를 어처구니없게 해직시키는 비상식, 반상식을 상식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해직이 기정사실화되면 또 다른 해직교사가 나올 것입니다. 정의와 양심은 반드시 이깁니다. 당시 제 1인 시위를 저의 제자들을 포함해 모든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었어요. 제가 포기하고 어느 순간 사라지면 아이들에게 ‘바른 소리․ 쓴 소리 하면 저렇게 해직되는구나’라고 각인될 것 같았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나중에 불의한 일을 보더라도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아이들에게 안 좋은 교훈을 남기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이 말과 함께 김 의원은 왼팔을 내밀어 보였다. 팔 한가운데 긴 수술 자국이 붉은 색으로 선명히 남아있었다. “당시 1년이 날마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당시 해직으로 인한 충격이 너무 크다보니 신체의 약한 쪽으로 충격이 오더라구요. 결국 팔이 저려서 신경을 옮기는 수술을 했습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다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그만 포기하고 학원 강사, 논술 강사나 시골 대안학교 교사가 되는 것을 권했다. 아내는 꽃을 좋아하는 김 의원을 생각해 꽃집을 차리자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독하게도 암담한 상황을 버텨냈다. 김 의원은 “비록 사학재단, 교육청은 거대하고 과정은 힘들지만 끈질기게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끝내는 정의와 양심이 승리한다는 생각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그렇게 김 의원은 지독한 고생을 겪으면서 반부패․ 교육 비리에 맞서 싸우는 양심교사의 상징이 됐다. 싸움은 외로웠으나 ‘양천고 김형태 선생님 부당파면 철회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시민사회 단체를 비롯해 언론과 학생․ 학부모들도 관심을 갖고 지지를 보냈다. 이에 지난해 국감에서 양천고 비리문제가 크게 다뤄졌을 정도다. 또 지난해 MBC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김형태 인터뷰 도중에도 김 의원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당선 후 3일 동안은 축하 받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고 아직도 감사 인사를 다 못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모했던 그의 결정을 지지했던 것일까.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해직교사가 보수성향이 강한 강서, 양천, 영등포구에서 과연 교육의원이 될 수 있을까. 그는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나 분신까지 생각했던 지난해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교육청에 도움을 청했으나 한통속이었어요. 검찰마저 저를 절망에 빠뜨렸어요. 대한민국에 기대할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때 분신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겠더군요. 그렇다면 나 하나 죽음으로써 교육 비리라는 벽을 깰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는 수술을 한 왼팔에 붕대를 싸매고 봉하 마을로 향했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음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 그의 절망을 주위 사람들이 먼저 눈치 챘다. 지인들은 ‘죽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서 싸우라’고 김 의원을 설득했다. 그리고 김 의원은 교육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김 의원은 “이것은 하늘의 부름, 시대의 부름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각오로 사재를 털고 대출을 받아서 선거에 출마했다. 아내는 차에 뛰어들겠다며 완강히 반대했다. 김 의원은 처음으로 아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한번만 갈길을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설득했다. “무모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 번 결정하면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이번 선거에 모든 것을 걸었어요. 이번 승리는 그러한 마음들, 진정성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직 당시 도와준 분들이 많았어요. 이번에도 진짜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만사 제치고 와서 도와주셨어요. 학생들까지 나서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심지어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도 외출계를 내고 투표에 참여하셨을 정도였으니까요” 김 의원의 말대로 기적의 중심에 교사 김형태가 있었다. 하루아침에 ‘야인’에서 ‘공인’이 된 김 의원.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교육비리를 척결하려고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저는 양천고가 스스로 변화하길 바랍니다.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다른 문제있는 학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는 학교다워야 해요. 교육은 국가를 대신해서 하는 공적인 일이니까 학교를 통해 영리를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은 다니고 싶은 학교, 학부모는 보내고 싶은 학교, 선생님들은 일하고 싶은 학교를 꿈꿉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핀란드식 행복한 교육혁명'을 이루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은 6명, 보수교육감은 10명이 당선됐다. 과연 그의 꿈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에 김 의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했다. “서울과 경기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됐습니다. 서울시 교육감은 교육계의 대통령입니다. 인구수로나 중요도로나 강력한 힘을 가진 서울과 경기도를 진보교육감이 잡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실현 가능성 있습니다. 또 이번에 민심이 그대로 드러났어요. 왜 사람들이 화려한 경력에 훌륭한 다른 분들 말고 평교사 출신인 저를 택했을까요.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가 경기도입니다. 경기도지사로 김문수 후보를 찍는 사람들조차도 MB식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김상곤 후보를 뽑은 거죠. 무한 경쟁 때문에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아이들이 자살할 정도로 힘들어하는데 비효율적인 경쟁을 할 이유가 없죠. 이제는 교육의 큰 틀을 바꿔 행복한 교육으로 가야 합니다” 어찌 보면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교육 비리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김 의원은 임기 내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교육비리를 확실히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바른 목소리를 냈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내부 고발자는 자신으로 끝내겠다는 것. 김 의원은 “교육계 비리는 아이들의 꿈을 훔치는 도둑질”이라며 비리 사학에 대해 원칙을 세우고 교육계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교육비리 척결 외에 친환경급식, 청소년 인권 조례 등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를 ‘교도소’라 부르는지 잘 알기에, 학생들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는 일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나 교육감, 교육의원의 힘만으로는 우리나라 교육을 바꾸기에 부족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보여준 것처럼 국민들이 힘을 실어줘야 진정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의원의 생각이다. “민심은 중앙정부도 무시하지 못 할 것입니다. 다함께 대한민국 교육을 새롭게 바꿔나간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학부모들과 만나서 얘기를 듣고 있는데 위에서 다 해결해줄 것처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대신 학부모와 학생들이 정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이로 인해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제가 곽노현 교육감과 함께 힘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의원은 학교 민주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단 학교가 민주화되면 많은 것들이 자연스레 해결될 것입니다. 학교는 실험장이 아니예요. 바로 민주교육의 실천장, 산실입니다” 현재 검찰은 양천고 교육비리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미 2차례의 부실수사가 있었음에도 김 의원과 공대위가 포기하지 않고 재항고한 끝에 얻은 결과다. 지난 4월 남부지검의 담당검사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김 의원에게 약속했다. <구도희 기자 jjim8084@naver.com>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부탁 말씀>
김형태 선생님이 교육의원에 당선되자, 많은 사람들과 언론에서
양천고 교육비리 문제 처리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형태 선생님이나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 모두 교육비리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으니
원칙과 기준에 의거하여, 잘 처리하리라 믿습니다.
다만 김형태 샘 말대로 양천고가 먼저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과 달라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양천고 사안은 검찰이 수사 중입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서울시교육청이 새롭게 교육비리 척결을 위해 노력해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국민신문고 통해 수사 촉구하기 국민신문고 홈페이지 http://www.epeople.go.kr/jsp/user/UserMain.jsp
* 지난 2월 양천고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이 공동으로 수사의뢰한 사건 현재 정우식 검사실에서 수사 중 / 전화 2648-4494
* 전교조 서울지부가 재항고한 사건은 현재 대검 김홍일부장검사실에서 수사 중 / 전화 3480-2004 사건번호 2010 대불재항383호
남부지검은 지난 번 약속대로(검사의 이름을 걸고 압수수색도 하고, 그래서 이사장을 감옥 보낼 수 있으면 보내겠다) 한 점 의혹없는 엄정한 수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대검에서도 대검찰청의 명예를 걸고 양천고 교육비리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민심이 천심이고, 여론이 곧 힘입니다. 여러분이 더도 말고 한번씩만 수사 촉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