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그로(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 W,E,B 듀보이스
니그로, 흑인에 관한 노예, 인종주의가 가지는 무지와 역사왜곡에 대해 실증적 역사고찰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서구, 백인중심주의 안목이나 세계관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무지한 것인지에 대해 실제적 고찰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평이한 인류보편애가 결코 그냥 주어지거나 선물이 아니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지구상 곳곳에서 민족, 종교간 다툼으로 심각한 살육이 자행되고 있지만 사람을 노예로 물건으로 계산하고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네 땅에도 100여전에 종, 하인이 있었다. 니그로, 흑인을 매매수단으로 작동하던 시대가 불과 150여년 전이다. 지금도 인종간 불평등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태양속의 사람들에서도 보여지듯이 서구, 백인들 시각과 중심주의는 지구촌 곳곳에 심대한 부작용과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하루살이 인생처럼 그날 벌어서 그날 살기에도 바쁜 가난뱅이들이 삼성이건희 걱정하듯 하는 모습과 다를바 없다.
역사이래 부자이거나 강자가 가난뱅이나 약자에게 거져 나누고 일반적 삶의 질 향상을 베푼 적은 없다. 그 과정에는 끊임없는 가난뱅이 약자의 투쟁이 작용했고, 그 투쟁은 수없이 많은 피와 목숨을 담보로 한다. 권력을 쥐고 부자인 자들은 가난뱅이 약자로 하여금 세상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교육과 이데올로기 주입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 냉소의 끝은 어쩌면 줘도 못먹는 무능력한 존재임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는 가난뱅이, 약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대변하는 지도자를 거부하거나 선택하지 못하는 모양으로 나타나게 된다.
100년전에 쓰여진 듀보이스의 니그로는 고대인류역사의 찬란한 보고를 가진 아프리카 흑인은 결코 미개하거나 열등한 인종이 아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백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흑인에게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스포츠, 문화, 경제, 정치에서 뛰어난 흑인을 보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여전히 인종적 편견을 고집하는 개인, 집단의 권력과 부의 독점지향, 파시즘이다. 듀보이스의 노예, 인종차별은 경제적불평등과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독재로 여전히 현재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