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 따라, 술맛 따라, 한국의 전통주를 찾아서-붉은 눈물 방울방울 모아 술을 빚다, 진도 홍주
▲ 진도홍주신활력사업소 저장고
아주 옛날부터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멀리 보내곤 했다. 정치적 대립이 심할수록 그들이 보내지는 곳도 멀었다.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진도에 굵직굵직한 선비들이 유배 보내진 까닭이다.
귀양 온 선비들은 그들이 왕도에서 누리던 수준 높은 문화를 유배지에 전했다. 진도사람들은 천리 먼 곳에 앉아서도 선비들의 문화인 문장, 글씨, 그림, 노래를 자연스레 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도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시인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노래 한자락 장구 한가락은 기본으로 한다.
그들의 문화를 꽃피우는 데 술이 빠질 리도 없다. 섬이지만 농사가 주업이었던 터라 술을 빚기 위한 쌀도 부족하지 않았다. 지금도 진도의 특산품은 흑미, 울금, 구기자 등 모두 농산품이다.
진도의 술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주 ‘홍주’다. 발효된 밑술을 고소리로 증류해낸 홍주의 알코올 함유량은 40%. 꽤 높은 도수다.
그래서인지 이 술엔 이야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은 홍주를 마신 후 어전회의에 참석하러 가다 말에서 떨어져 집으로 돌아온 허종의 이야기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비를 폐출하기 위한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연산군의 칼을 피할 수 있었다고. 홍주가 생명을 구한 셈이다.
작은 술잔 안에서 풍류를 찾은 고산자 김정호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홍매화 떨어진 잔에 봄눈이 녹지 않았나 싶고, 술잔에 비친 홍색은 꽃구경할 때 풍경이로다”라 한 것. 아마도 그 밤, 고산자는 홍주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듯하다. 돌아갈 때, 그의 손에 진도홍주가 들려 흥선대원군에게 대동여지도와 함께 전해졌다니 말이다.
▲ 지초
고산자를 반하게 한 홍주의 붉은 빛은 지초에서 나온다. 고소리에서 증류돼 내려오는 술이 지초를 통과하면서 붉은 눈물 떨어지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주는 지초의 약효를 품게 된다. 지초는 예로부터 3대 선약이라 불렸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도 지초를 배앓이, 장염, 해열, 청혈에 좋은 약재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도 지초 연구가 꾸준히 이뤄진다. 그 결과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의 연구에서 항당뇨·항비만 효과가, 농촌진흥청의 연구에서 관절염 치료 효과가 밝혀지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효과를 알고 있었던 듯 지초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다. 진도의 민가에서는 지초를 상비약으로 준비해 두었을 정도다.
당시 진도의 야산에서 지초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진도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지초를 구하기는 어렵다. 지초 재배도 그리 쉽지 않다. 물 빠짐이 좋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지초를 습기 많은 지금의 진도 땅에서 키우기 어려운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도홍주는 지초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40% 이상의 알코올에서만 녹아내리는 지초의 좋은 약효를 담을 수 있는 증류주이기 때문이다.
홍주의 역사를 고려 때부터로 보는 것도 증류주인 소주의 전래와 맥을 같이한다.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해 진도까지 내려온 몽고군을 따라 소주가 들어왔고, 그 술에 당시 진도에 많던 지초를 넣어 홍주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진도군은 가양주로 제각각 만들어지던 홍주를 균일하고 좋은 품질로 만들어 세계의 술과 경쟁하기 위해 홍주 연구를 해왔다. 그 결과 진도군수품질인증 홍주인 ‘루비콘’이 탄생했다. 각 공장에서 홍주를 빚되 진도군이 정한 기준대로 만들어 검사를 통과해야만 ‘루비콘’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으며, 친환경쌀을 원료로 사용하고, 2년 이상 숙성시켜 알코올의 나쁜 성분을 모두 걸러내 부드럽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 대대로영농조합법인에서 병뚜껑 마무리를 하는 작업자
대대로영농조합법인(061-542-3399)도 진도홍주를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위스키, 꼬냑, 데킬라, 마오타이 등과 견줄 수 있는 우리의 전통주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를 위해 물의 공급부터 완성된 술의 병입까지 모두 첨단 컴퓨터로 관리, 알코올과 지초의 함유량을 표준화한 위생적인 술을 생산하고 있다.
진도에는 볼거리가 많다.
군내면 용장리 17-1번지에 자리한 용장산성은 고려시대 몽고군에게 항쟁하던 배중손 장군의 삼별초군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계단식 밭처럼 보이는 행궁 터는 한창 발굴이 진행 중이다. 그 위로 능선을 따라 산성의 성곽이 이어진다. 용장사 약사전에 모셔진 석불좌상도 살펴볼 것.
▲ 남진미술관
임회면 삼막리 477-1번지 하미마을에 자리한 남진미술관(061-543-0777)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지은 사립미술관이다. 이곳에 장전 선생의 평생의 수집품이 전시돼 있다. 역사서에서 볼 수 있는 석봉 한호와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 이하응, 소치 허련을 비롯해 하위지, 정약용, 윤두서 등의 작품들이다. 남농 허건, 운보 김기창 등 현대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남진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임회면 용호리 1334번지 도장금마을에 발효코리아(061-543-9106)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진도사람들의 예술 감각이 옮겨진 듯 만들어진 컬러 식초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색을 식초에 옮겼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색상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식초가 이처럼 아름다운 색을 가진 것은 모두 자연 그대로의 색이 옮겨졌기 때문. 색뿐 아니라 원재료의 향기도 고스란히 옮겨져 식초지만 제각각의 맛을 낸다. 발효코리아는 직접 만들고 길러낸 효소와 배추, 무, 야콘을 사용해 김치를 담는 가을김장축제를 11월 20~30일 약 10일 동안 4차례에 거쳐 실시한다. 1일 체험으로 이뤄지는 이 축제는 여귀산에서 솟는 약수와 진도의 깨끗한 바닷물로 배추를 절이고 씻어 김치 담기, 쑥·자황고구마·울금 가루가 들어간 컬러 두부 만들기, 유기농 쌈채와 함께 먹는 바비큐 파티 등으로 이뤄진다. 참가 인원이 제한돼 있으므로, 반드시 예약 후 찾아가야 한다.
문의
- 진도홍주신활력사업소 061-540-6366
자료 제공: 한국관광공사(www.visitkorea.or.kr)
글·사진: 여행작가 한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