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혜관스님<혜관정사 주지> - 【수행한담】1999.4.14호 -부처님 닮아가면서 자기부처 드러내세요- -한사람 한사람 보살의 언행 본 받으면- -이 사회는 그만큼 맑고 향기롭게 돼요-
나는 너의 허물을 보고 너는 나의 허물을 보고 서로 고쳐가는 것이 도반
※약력 ·1917년 제주도 서귀포 生 ·1940년 기림사 경림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2∼1977년 법화종 제주 종무원장 역임 ·1972년 법화종 총무원장 역임 ·제주 혜관정사 주지 ·법화종 원융학림 총재
나는 조금 늦은 나이인 23세에 경주 기림사에서 경림(擎林)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했습니다. 출가 전까지는 일본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불교를 접하게 되었지요. 어려서 일본에 갔기 때문에 ‘종교’ 자체에 대해 아주 문외한이었습니다. 종교로 먼저 경험한 것은 기독교였습니다. 함께 고학을 하던 친구가 기독교인이었는데 같이 교회에 다니자고 권유를 하길래 함께 다녔지요. 처음 교회를 갔는데 ‘조선인 예수교 교회’라는 간판을 보고서 ‘조선인’이라는 말이 어찌나 반갑고 가슴이 뭉클하던지 계속 교회를 다녔습니다. 한동안 다니며 가만히 들어보니 ‘천당’이란 말도 하고 ‘지옥’이란 말을 자주 하는데 도대체 거기가 어디 있는가 싶어 지도를 찾아보았지요. 그 정도로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일본인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 일본인들에게 종교가 뭘까 궁금해 물어봤더니 절에 나간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불교는 또 어떤 종교인가 싶어 절에 따라가 보았습니다. 교회하고는 판이하게 틀리더군요. 잘 모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두 종교가 비교가 됐습니다. 그 후 서점에 가 불교책을 사서 틈틈히 읽어보고 한 것이 내가 불교를 아는 전부 였는데 유학을 마치고 귀국을 해 집에 와보니 형님 서재에 가득 꽂혀 있는 것이 모두 불교서적이었습니다. 형님이 불교공부를 하는 것이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형님에게 불교를 좀 가르쳐 주십사하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랬더니 함께 절에 가자고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간 곳이 서울 뚝섬 봉은사였습니다. 형님과 안면이 있는 몇몇 스님들과 함께 담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 스님이 나를 보면서 “자네도 머리를 깎는 것이 좋을 사람인 듯한데 출가를 하는 것이 어떤가”하시더군요. 그 때는 그 말을 한귀로 흘려듣고 지나쳤는데 얼마후 다시 봉은사에 갔더니 그 스님께서 함께 어디를 가자고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간 곳이 경주 기림사였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게 된 것인데 은연중에 마음속에 불심(佛心)이 자리잡고 있었던 까닭인지 별다른 반감없이 그대로 기림사에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는 만주에 가서 3년 정도 지낸 후 다시 돌아와 제주시 하일리에 있는 중문국민학교 분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요. 곧 해방이되어 다시 절로 들어갔는데 당시 분위기는 젊은 스님들을 중심으로 ‘불교혁신운동’이 한참 일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만허스님, 관음사 주지를 지내던 오이화 스님, 백양사 출신 이일선 스님, 그리고 이세진 스님을 중심으로 혁신운동이 주도되고 있었지요. 당시 나는 출가한지도 얼마되지 않아 그저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였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해방직후 불교 실정이란 참 형편이 없었습니다. 순수한 불교라기 보다는 반 미신이었거든요. 불교혁신을 놓고 ‘그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이 모여 토론을 했었는데, 우리 중생들 뜻으로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지요. 부처님 가르침에 ‘오시설(五時說)‘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시란 ‘아함시·방등시·반야시·법화시·열반시’을 말하는데 그런 구분을 모르고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었습니다. 해방직후는 말세(末世)에 들어가는 시기이니부처님 가르침에 따르자면 법화·열반시에 해당되는 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법화경>을 위주로한 혁신을 하자는데 뜻을 같이했지만 <법화경> 강의를 해줄 만한 사람이 제주도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위봉사 최청산이라는 노장스님이 육지에서 제주도로 오시게 된거지요. 최청산 스님으로부터 <법화경> 강의를 듣고 법화사상이 무엇인지를 눈뜨게됐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기상으로 맞아 떨어진 것이 모두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법화경> 강의를 들으며 제주도내 불교혁신운동을 주도해 나가던 중에 생각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제주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육지에도 <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혁신단체가 있다면 알아보고 함께 공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됐지요. 당시 만허스님은 교육가로서 중문중학교 교감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 문교부에 출입을 할수 있었어요. 그래서 육지와의 공조에 대한 부분을 만허스님에게 위임하고 일을 진척시키고 있었는데 잇따라 제주도 소란사건(4·3항쟁을 일컬음)과 6·25 전쟁이 터지면서 그 일의 중심이 되던 다섯 스님이 모두 열반하시게 됐어요. 결국 그 일이 흐지부지 되어 버리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내 혼자 생각에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만허스님의 서재를 정리 해봤지요. 만허스님이 바로 나를 불가(佛家)에 입문하게 도와주신 친형님이셨습니다. 서재를 정리하다 보니 마침 육지에서 연락이 되고 있던 사찰의 주소가 나오더군요. 주소를 들고 무작정 찾아갔는데 지금은 폐사가 됐지만 서울 돈암동의 ‘무량사’라는 절이었습니다. 그 사찰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뜻을 함께 하는 10여명의 스님을 모은 후 법화종 도첩을 받아오게 됐는데 그것이 제주도 법화종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제주 불교의 혁신을 위해서 내부적인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제주도는 지역적인 특성상 불교에 미신적인 요소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정법신앙을 하게끔 가르쳤습니다. 예를들어 주술처럼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사바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입으로만 우물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관세음보살을 염해야 하고 정신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해야한다고 가르친것입니다.
‘일승법(一乘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른 부처님의 말씀, 그 하나로 돌아가도록 되어있다는 뜻이지요. 예전에는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절이 있었지요. 우리나라로 치면 양반과 천민의 구별이 뚜렷하던 시대인데 그런 때에는 아미타불을 염하면 죽어 극락세계에 간다고 말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부처님의 바른 사상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부처님의 바른 사상은 이 사바세계를 바로 극락세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예요. 그것을 ‘적광정토(寂光淨土)’라고 합니다. 극락정토 세계는 네 가지가 있는데 최고의 정토가 적광정토, 즉 사바세계를 말하지요. 사바세계 사람들이 환생을 하고 다시 환생을 하면서 닦아나가 극락세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닦음’이란 자기 자신만을 닦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회도 닦는 것을 뜻합니다. 말이나 글로만 장황하게 극락세계와 사바세계를 논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바세계를 극락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길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 하나라도 줍는 실천이 있어야 해요. 그런 정신이 필요한 것이지 입으로만 극락세계에 가기를 염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기심만을 더욱 조장할 뿐이예요. 한국불교가 160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정신이 살아있지 않는 한 참으로 자랑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종단 얘기를 해서 안됐습니다만 지난 연말 조계종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선풍(禪風)이 불어야할 조계(曹溪)의 가람(伽藍)에 권풍(權風)이 불었지요. 탁마상성(啄磨相成)의 도반들이라고 하여, 나는 너의 잘못을 보면서 나의 허물을 고쳐가고, 너는 나의 허물을 보면서 너의 잘못을 고쳐가며 서로 정진해 나가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법인데 세력도반들이 되고 말았더군요. 화두가 들어차 있어야 할 마음에 이기심이 꽉 들어차 있으니 도(道)가 터져야할 조계의 가람에 싸움이 터진 것입니다.
<법화경>에서는 5백년씩 나누어 2천5백년을 새로운 기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좀더 설명을 하자면 부처님 입멸 후 5백년 동안은 ‘해탈견고(解脫堅固)’의 시기지요. 부처님 앞에 나아가 법문을 듣고 지시를 받으면 곧 해탈을 할 수 있는 시기예요. 다음 5백년은 ‘선정견고(禪定堅固)’인데 해탈하는 사람은 없지만 도를 착실하게 닦는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또 그 후 오백년은 ‘다문견고(多聞堅固)’라 하여 아무리 닦아도 해탈을 못하니 이 경전도 찾아보고 저 경전도 찾아보지만 다문박식하게 많이 아는 것에 그치는 때예요. 그러니 그 다음 5백년은 ‘탑사견고(塔事堅固)’입니다. 탑을 많이 쌓고 시주를 많이 하면 공덕을 짓는다 하여 그 일에만 매달립니다. 마지막 5백년은 ‘투쟁견고(鬪爭堅固)’이니 싸움을 많이 하는 시기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니 이기심만 가득차서 싸움이 잦아집니다. 도를 닦아야 할 시간에 싸움을 했으니 언제 도를 이루겠습니까. 말로는 ‘무소유’라고 하지만 말이 곧 도는 아니예요. 이러한 ‘투쟁견고’의 시기에 무엇을 갖고 어떻게 부처님의 길을 찾아갈 것인가 한다면 그것은 곧 ‘일승법’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절에 가면, 불공만 하면 다 된다고 말을 하지요. 하지만 불공만 하면 정말 성불을 할 수 있을까요. 불교만 믿으면 복을 받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불교의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이라고 염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예요. 모르고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고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버니가 한 손님을 데리고 와서는 ‘이 분은 훌륭한 분이다’하고 말하니 그 자식들이 아버지는 무시하고 그 손님만을 받들어 모시는 것하고 똑같은 이치지요.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명호가 내 지혜 자리, 생각하는 그 자리에 세워지는 법입니다. 내가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관세음보살은 없는 것이예요. 또 예불을 할 때 우리는 누구에게 예불을 하는 것입니까. 내 마음속에 모셔진 부처님에게 예불하는 것이지요. 예불을 받는 이도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습니다. 돌이나 흙으로 만든 불상은 돌이나 흙이지 진짜 부처나 관세음보살은 아니니까요. 물론 모습을 대용으로 생각하는 건 좋지만 그 모습을 진짜로 알고 절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오로지 내 마음속에 모셔진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와 나는 하나란 말이예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둘로 나누자면 한 가지는 ‘수타의설(隨他意說)’이고 또 한 가지는 ‘수자의설(隨自意說)’입니다. 수타의설은 상대를 봐가면서 그 근기에 맞게 방편적으로 설법한 것을 말하고, 수자의설은 깨달음을 그대로 부처님 자신을 설하신 것이지요. 여러 경전 가운데 수자의설인 경전이 바로 <법화경>입니다. 부처의 마음은 이러한 것이고, 부처의 세계는 이러한 것이며, 부처의 정신은 이러한 것이라고 설하는 것입니다. 곧 ‘일승법’을 말하지요. 우리는 부처님의 행동과 마음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정신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부이기는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힘써 행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나날의 생활에 있어서 단 한시간 단 한순간만이라도 참으로 이해득실을 떠나서 진심으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부처님 마음과 접촉된 것이 되며 부처님에 가까운 마음이 된 때예요. 그러한 때가 단 한마디의 말, 한번의 동작이라도 남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커다란 감화를 주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믿고, 그것을 오래오래 계속해서 가지기만 하면 차차 입으로 하는 말이나 몸으로 행하는 행동이나 다 부처님의 뜻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라 ‘내가 곧 부처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요. 가령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도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관세음보살이 나를 도와줄거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곧 관세음보살이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실수를 하면 중생들이 다칠 것이라고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것이 곧 내 정신의 덕을 쌓아가는 길이지요.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타력심이 아니라 자력심을 길러야 합니다. 불교는 부처를 닮아가면서 내 자력심을 기르는 것이 근본이지요. 보살을 부르고 싶다면 입으로만 보살을 부를 것이 아니라 모든 보살님의 모범을 배워야 해요. 보살의 언어와 보살의 자비마음과 보살의 행동과 생활을 본받아 보살이 되어가겠다는 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살의 모습을 닮는 그 만큼 이 사회가 맑아지고 깨끗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리=김정은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