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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에 대한 속담
1. 나갔던 며느리 효도한다.
- 처음에 좋지 않게 여겨지던 사람이 뜻밖에 잘할 때 쓰는 말.
2.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
- 자식들에 대한 교양에서 부모들의 실천적 모범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
3. 아래 사랑은 있어도 위의 사랑은 없다.
-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힘들다는 뜻.
4. 삼년 긴병(진병)에 불효 난다.
- 병수발은 오래 하기 힘들다는 뜻
5. 삼 년 구병에 불효 난다.
- 병수발은 오래 하기 힘들다는 뜻
6. 사랑은 내리사랑.
-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힘들다는 뜻.
7. 효자 끝에 불효 나고, 불효 끝에 효자 난다.
- 모든 집안에서 항상 효자나 불효자가 나는 것이 아니라 효자가 나면 불효자도 나고, 불효자가 나면 또 나중에는 효자가 나게 된다는 말이니 세상의 모든 일에는 흥망성쇠가 되풀이 됨을 이르는 말.
8. 부모 속에는 부처가 들어있고, 자식 속에는 앙칼이 들어있다.
-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나, 자식은 불효할 뿐이다.
9. 제 부모를 위하려면 남의 부모를 위해야 한다
- 자기 부모를 잘 섬기려면 남도 내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하므로 제가 먼저 나의 부모를 극진히 위해야 한다.
10. 제 부모 나쁘다고 내버리고 남의 부모 좋다고 내 부모라 할까
- 좋건 나쁘건 인륜人倫은 어쩔 수 없다는 뜻
11. 찬물도 위 아래가 있다.
- 어른을 공경하여 하잘 것 없는 찬물이라도 어른부터 모셔야 한다는 뜻
12. 눈먼 자식이 효자 노릇한다.
- 못났다 내버린 자식이 오히려 효도를 하니 겉 모습만으로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뜻
13. 부모가 착해야 효자가 난다.
- 처음에 좋지 않게 여겨지던 사람이 뜻밖에 잘할 때 쓰는 말.
14. 효자 효녀가 나면 집안이 망한다.
- 옛날에 상을 당하면 오랫동안 거상을 했는데 효자 효녀는 이것을 꼬박 지키느라고 일을 못하였으므로 집안이 어려워진다는 뜻
15. 잔병에 효자 없다.
- 병수발은 오래 하기 힘들다는 뜻
16. 효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 풀이 난다.
- 효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해 기적을 일으킨다는 뜻
17. 효자 가문에 충신 난다.
- 충과 효는 하나이다라는 뜻
18. 부모는 자식이 한 자만 하면 두 자로 보이고 두 자만 하면 석 자로 보인다
- 부모가 볼 때는 자식이 하는 모든 것이 다 한없이 예뻐보인다는 뜻
19.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 자식이 많으면 부모의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는 뜻
20. 열 손가락에 어느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을까?
- 부모에게는 모든 자식이 다 사랑스럽고, 귀하다는 뜻
21. 흉년에 어미는 굶어 죽고 아이는 배 터져 죽는다.
- 이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는데,
첫째, 흉년이 들어 어미는 제 배는 굶주리더라도 아이는 꼬박꼬박 밥을 먹인다는 어머니의 사랑을 뜻함
둘째,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으면 어른인 어미는 굶주려 죽고, 아이는 못 먹어서 배가 볼록하게 나와 죽는다는 뜻 (아프리카 굶어죽는 어린이들이 굶주림이 한계에 다르면 왜 배가 볼록하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아이들의 굶주린 모습을 비유한 말입니다)
22. 며느리 늙어 시어머니 된다.
- 시어머니에게 고초를 당하던 며느리가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면 더 심하게 행동한다는 뜻
23. 자식을 가져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
- 제 스스로 부모가 되보기 전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는 뜻
24.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불효한다
- 제 스스로 부모가 되서 부모님의 은혜를 알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비꼬는 말
25. 얼러 키운 효자 없다.
- 너무 오냐오냐 하며 키우면 자식이 버릇이 없어져 불효를 하게 된다는 뜻
1>망운지정<望雲之情>=구름을 바라보며 그리워 한다는 뜻으로
객지에 나온 자식이 고향의 부모를 그리는 정을 가리키는말.
望...바랄 망
雲...구름 운
之...갈 지
情...뜻 정
2>반포지효<反哺之孝>=어미에게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 이라는뜻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이르는말.
反...도돌릴 반
哺...먹을 포
之...갈 지
孝...효도 효
3>풍수지탄<風樹之嘆>=부모 사후에 생전에 충분히 못해 드린것을 후회함.
효도를 다하지 못한채 어버이를 여윈자식의 슬픔.
風...바람 풍
樹...나무 수
之...갈 지
嘆...탄식할 탄
4>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일찍이 문안을 드린다는뜻.
부모에게 효도하는 도리를 이른말.
昏...어두울 혼
定...정할 정
晨...새벽 신
省...살필 성
5>가빈친노<家貧親老>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었을때는 그봉양을 위해
마땅치 않은 벼슬 자리라도 가한다는 뜻.
家...집 가
貧...가난랄 빈
親...친할 친
老...노인 노
6>사친이효<事親以孝>세속오계의 한가지.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로써함.
事...일 사
親...친할 친
以...써 이
孝...효도 효
효도에관한 격언
그대가 새벽에 저자로 나가 떡을 사는 것을 보는데, 부모에게 드린다는 말은 듣지 못하고 자식에게 준다는 말만 들었다. 부모는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자식이 먼저 배가 부르니 자식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이 좋아하는 것에 비하지 못하리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떡 살 돈을 많이 내어 사실 날도 얼마 안 남은 늙은 부모님을 잘 봉양하라. -명심보감
나를 낳아 고생하며 길러주신 부모님! 그 은혜 보답하려 하나 길이 없도다. -부모은중경
나무가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한시외전
내가 아버지께 효도하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한다. 내가 어버이께 효도하지 않는데,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 -강태공
내 자식들이 해주기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 -소크라테스
내 한 몸은 곧 백 천만대의 선조가 전한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감히 내 몸이 곧 나만의 소유라고 말하겠는가? -장현광
부귀할 때면 부모를 봉양하기가 쉬우나 부모는 늘 마음이 편치 않고, 가난하고 천하면 자식을 기르기 어렵지만, 자식에게 굶주리고 춥게 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마음에 두 가지 길이니 자식 위하는 마음이 부모 위하는 마음 같지는 않네.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모 섬김을 자식 기르듯 하고 무릇 집이 넉넉치 못한 데 미루지 말라. -명심보감
부모가 늙어 기력이 약해지면 의지할 사람은 자식과 며느리밖에 없다. 아침저녁으로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과 잠자리와 즐겁게 말상대를 해 드림으로써 노년의 쓸쓸함을 덜어드리도록 하라. -부모은중경
부모가 살아계신다면 멀리 가서 놀지 말 것이며, 놀 때는 반드시 가는 곳을 알려야 한다. -공자
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시더라도,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옳게 행동하는 것은 부모의 명예를 빛내는 것이니 힘주어 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나쁜 짓을 하려다가도 부모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다시 반성하여, 좋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예기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되도록 멀리 가지 말아야 하며, 부득이 멀리 떠날 때는 가는 곳을 분명히 알려 드려야 한다. -논어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은 쉬우나 부모를 사랑하는 효행은 어렵다. -장자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오직 두분 뿐인데도 늘 형과 동생이 못 모시겠다고 다투고, 자식 기르는 것은 열 명이라도 모두 혼자서 맡느니라.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 것은 항상 물어보면서도 부모가 배고프고 추운 것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모를 받들고 섬기기에 힘을 다하여라. 그대를 기를 때 입는 것과 먹는 것을 그대에게 빼앗기셨다네. -명심보감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을 얕보지 않는다. -불경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벗하지 말라.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부모를 왕위에 나아가게 한다 해도 그 은혜는 다 갚지 못한다. -석가모니
부모 앞에서는 결코 늙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소학
부모에게 잘못이 있을 때는 공손히 간하라. 설사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시더라도 공경해야 한다. 속으로는 애태우더라도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공자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다. -주희
부모의 나이는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오래 사신 것을 기뻐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이 많은 것을 걱정해야 한다. -논어
부친을 존중하고 그에 순종하는 것은, 부친은 가족을 위해 식량을 구하고 의복을 주기 때문이다. -탈무드
슬프도다! 부모는 나를 낳았기 때문에 평생 고생만 했다. -시경
시장에 있는 약 파는 가게에 오직 비아환(肥兒丸, 아이 살찌우는 약)이 있을 뿐, 부모님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 약은 없으니 어찌 이 두 가지를 차별하는가. 자식도 병들고 부모 또한 병들었다면, 자식 병을 고치는 일을 부모 병 고치는 것에 비하지 못할 것이니라. 다리를 베더라도 원래 부모님의 살이니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모의 목숨을 극진히 보중하라. -명심보감
신체발부는 부모에게서 받는다. 굳이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불경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다가 갚사오리. -정철
아버지가 사랑하고 아들이 효도하며 형이 우애하고 아우가 공경하여 비록 극진한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할지라도 그것은 모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 뿐인지라, 털끝만큼도 감격스런 생각으로 볼 것이 못되느니라. 만약 베푸는 쪽에서 덕으로 자임하고 받는 쪽에서 은혜로 생각한다면 이는 곧 길에서 오다가다 만난 사람이니 문득 장사꾼의 관계가 되고 만다. -채근담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고 수고하셨도다. 그 은혜 갚고자 한다면 그 은혜가 넓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다. -시경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충과 효를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알 것이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안락하게 제몸만 보호하는 사람은 몸은 비록 편안하나 그 자손이 어떻게 되겠는가. -명심보감
어린 자식들은 아무리 말이 많아도 그대가 듣기에 늘 싫지 않고, 부모가 어쩌다 한번 입을 열면 참견이 많다 한다. 참견이 아니라 부모는 걱정이 되어 그러느니라. 흰 머리가 되도록 긴 세월에 아시는 게 많으니라. 늙은이의 말씀을 공경하여 받들고, 젖내나는 입으로 옳고 그름을 다투지 말라. -명심보감
어린 자식의 오줌과 똥 같은 더러운 것도 그대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침이 떨어지면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는 뜻이 있다. 여섯 자나 되는 몸이 어디서 왔던가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그대의 몸이 이루어졌네. 그대에게 권하노니 늙어가는 어버이를 공경하여 모시라. 젊었을 때 그대를 위하여 힘줄과 뼈가 닳도록 애쓰셨느니라. -명심보감
어린 자식이 혹 나를 욕하면 내 마음에 기쁨을 느끼고, 부모가 화내어 나를 꾸짖으면 내 마음은 도리어 언짢아진다. 한쪽은 기쁘고, 한쪽은 언짢으니 자식을 대하는 마음과 어버이를 대하는 마음이 어찌 이리도 다른가. 그대에게 권하노니 오늘 어버이가 화를 내시면 자식 대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볼지니라. -명심보감
어버이께 효도하면 자식도 효도하고, 이 몸이 이미 효도하지 못했으면 자식이 어찌 효도하리요. -강태공
어버이를 공경함은 으뜸가는 자연의 법칙이다. -발레리우스
어버이의 사랑은 십분 가득하나 그대는 그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자식이 조금이라도 효도함이 있으면 그대는 곧 그 이름을 자랑하려 한다. 어버이를 모시는 것은 어두우면서도 자식 대하는 것은 밝으니 어버이가 자식 기른 마음을 누가 알 것인가.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질없이 자식들의 효도를 믿지 말라. 자식들이 어버이 사랑하기는 그대에게 달렸다. -명심보감
5형에 속하는 죄가 3천가지이나 그 죄가 불효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공자
요즘은 부모에게 물질로써 봉양함을 효도라 한다. 그러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 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여기에 따르지 않으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논어
이 세상에는 삼천 가지나 되는 많은 죄가 있다. 그 중에서 효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대한 죄다. -김시습
입신행도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높임으로써 부모를 알리는 것은 효의 끝이다. -불경
자식은 부모를 다음과 같이 공경해야 한다. 받들어 봉양함에 모자람이 없게 하고, 자기 할 일을 먼저 부모에게 여쭈며, 부모가 하시는 일에 순종하여 어기지 말며, 부모의 바른 말씀을 어기지 말 것이며, 부모가 하시는 바른 일을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선생경
자식은 부모님에게 말씀드려 설사 잘못을 고치지 않으시더라도 공경해야 한다. 속으로는 애태울지언정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논어
자식을 길러본 후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 -왕양명
자식이 부친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경우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것이지만, 모친에게도 그렇다면 그 자식은 세상에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못된 괴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루소
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는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명심보감
저울 한쪽에 세계를 실어놓고 다른 한쪽에 어머니를 실어놓는다면 세계가 훨씬 가벼울 것이다. -랑구랄
젖을 먹는 아직 어린 돼지새끼는 그 어미를 못 잊기 때문에, 호랑이에게 가까이 가는 위험한 짓은 범하지 않는다. 부모를 생각하는 자는 위험한 곳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순자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지만, 의롭지 않다면 부유한들 무엇하랴. 단지 한 자식이라도 효도한다면 자손 많은 것이 무슨 소용이랴. -명심보감
천하의 모든 물건 중에는 내 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몸은 부모가 주신 것이다. -이이
효도하고 순한 사람은 효도하고 순한 아들을 낳으며, 오역(지옥에 갈만한 큰 죄)한 사람은 오역한 아들을 낳는다. 믿지 못한다면 저 처마 끝의 낙수를 보라. 방울방울 떨어져 내림이 어긋남이 없다. -명심보감
효자의 어버이 섬김은 살아서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함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드신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신 때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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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하의 효행
남순하는 조선 숙종 20년(1694)에 출생하여 영조51년(1776)에 사망한 조선후기의 인물로 본관은 의령, 자는 백훈(伯薰)이며. 수(壽)로 동지중추부사에 오른 효자이다.
어려서부터 극진한 부모 봉양과 함께 학문에도 힘써 근방에 칭송이 자자하였으나 아버지 수규가 연로하여 병환이 깊을 때 고사리 국을 먹고 싶다 하자 추운 겨울 눈 덮인 마차산 속을 헤메던 중 양지 바른 바위 밑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고사리를 발견하여 아버지의 병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에는 부모님 옷을 자기가 먼저 입고 체온으로 덥혀진 다음에 부모님께 입혀드리고 잉어가 잡수시고 싶다 하시면 얼어붙은 강물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봉양하는 등의 극진한 효행으로 마침내는 조정에 그의 행실이 알려지게 되어 그가 사는 이 마을에 영조의 명으로 정려문이 내려지게 되었다 한다.
이 효자문의 정문에는 「孝子嘉善大夫行同 知中 府事 南舜夏 之門」이라 쓰여 있다.
또한 남순하의 손자 업의 처인 청풍 김씨 역시 가난한 집안으로 출가하여 어려운 살림을 도맡아 꾸려오며 시부모 봉양을 극진히 하였으나, 어려운 가세에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중병을 앓아 눕자 백방으로 처방을 구해 보던 중, 복숭아를 달여 먹어야 낳는다는 의원의 말을 듣고 엄동설한에 마차산을 헤매 다니다 잠시 지쳐서 잠든 사이에 산신의 현몽으로 복숭아를 얻게 되어 남편의 병을 고치게 되었으며 그후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게 되어 영조 때 열녀 정문이 내려지게 되었다 한다.
현재 간파리 동구 밖 느티나무 남쪽에 위치한 효자문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 양식의 목조와가 건물로 6. 25 때 소실되었던 것을 수복 이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건립된 것이다.
출처 : 경기도 연쳔군청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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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보(李賢輔)의 효행
조선 왕조 연산군 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 사관으로 관직에 발을 디딘 이현보는 자기 직책에 충실한 관리였다. 사관이라면 왕의 정사를 기록하는 직책이라, 이현보는 자기 직책을 더욱 충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왕과 가까운 자리 앞으로 옮겨 연산군의 언행과 정사를 상세하게 기록해 나갔다. 그러나 사관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연산군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연산군은 마침내 금부에 명하여 임금을 업신여겼다는 죄목으로 이현보를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금부에 잡혀간 이현보는 임금을 불경한 죄로 모진 벌을 받았는데, 그 후 연산군은 이현보를 정 6 품 벼슬인 正言으로 승진시켰다. 고집이 세고 자기 일에 충실한 이현보를 골려 주려는 연산군의 장난기 섞인 짓이었지만, 임금 불경죄로 벌을 받았으니 당연히 삭탈관직당할 줄 알았던 이현보는 어리둥절하기만 하였다.
그 후 연산군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는데, 이현보는 왕세자를 가르치는 직책에 올라 귀하 게 대접받고 있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서연관의 잘못된 행위에 비분하여 논박 하여 나섰고, 그게 연산군의 비위를 건드려 안동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연산군의 폭정이 오래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1506년 성희안, 박원종, 유순정 등을 중심으로 한 중종 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폐위되었다. 그후 이현보는 복직되어 밀양부사, 안동부사, 청주 부사를 거쳐 부제학과 참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현보는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와 함께 있을 때는 항상 천진한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려 기쁘 게 해드렸다. 부모가 그걸 좋아하셨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 부모가 연로하여 병약해졌을 때 이현 보는 고향으로 달려가, 점잖은 부사의 벼슬아치임에도 불구하고 옥관자가 달린 관복을 차려 입고 뽐내며 자랑하기도 하였다.
벼슬이 더욱 올라 부제학으로 올랐을 때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 90세가 된 부모를 위해 고을 안 의 70세 이상 되는 노인들을 모셔와 부모와 함께 지내도록 하였다. 그 노인들 앞에서 이현보는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하기 위하여 어린애처럼 행동하곤 하였다.
형조참판의 자리에 오른 뒤 그는 90세가 넘은 부모를 모시고 살기 위하여 조정에 사직서를 제출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사직서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병을 핑계로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 가 부모를 봉양하며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부모가 맑은 공기와 수려한 경치를 즐기며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분천 동쪽 언덕 위에 '愛日堂'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집'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몸소 업고 이 정자를 오르내렸다. 이와 같은 효도를 받은 이현보의 아버지 이흠은 100세 가까운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출처 : http;//www2.kongju.ac.kr/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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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李舜臣)의 효행
성웅 이순신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임진란이 일어났을 무렵 그의 어머니는 78세였고, 충무공은 50세를 넘었다. 충무공은 늘 어머니를 그리워 하고 문안을 드렸으며, 어머니의 소식만 듣고도 반가와하고 몇날만 소식이 끊겨도 걱정하였다.
이런 그의 효심은 난중일기의 곳곳에 배어 있다.
"아침을 먹은 뒤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드리니 노모께서는 '잘 가거라, 가서 나라의 욕됨을 크게 씻어라' 하시며 두 번 세 번 거듭 타이르시며 위로하셨다."라거나,
"하루 종일 노를 저어 밤중에 어머님을 찾아뵈오니 백발이 부수수한 채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 앉으시는데 기력이 흐려져 몇날을 더 보존하시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앉아 그 마음을 즐겁게 풀어 드리기 위하여 장년의 시름을 잊고 소년의 모습으로 어머니를 위로하였다." 하여 어머니를 그리는 정을 토로하였다.
특히 "새벽 꿈이 몹시도 뒤숭숭하다. 병 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괴롭고 눈물이 흐른다."라는 일기의 기록은 그가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는가 잘 보여주고 있다.
(난중일기(亂中日記))
출처:http://www2.kongju.ac.kr/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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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孝子) 양차원과 잉어
효자(孝子) 양차원은 1778년 정조 2년(正祖 二年)에 청양군 대치면 광금리에서 출생하여 1823년 순조(純祖) 26년에 45세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하늘같이 모셨고 친구들과 사귈 때도 정으로 사귀니 그와 한번 만난 사람들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한다. 항시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서 심지어 부모(父母)님 밥상에 오를 반찬까지 끼니마다 걱정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래서 마을에서는 그를 가리켜 백년(百年)에 한번 만나 볼 수 있는 효자(孝子)라고 하였었다. 그의 효성도 아랑곳없이 하루는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어머니는 괴질에 걸려 병석에 아주 눕게 되었다.
어머니가 병환에서 고생하는 것도 모두가 자식인 자기의 불효 탓이라고 생각한 그는 어머니 병환고치기에 온갖 정성을 다했었다. 공주에 유명한 한의가 있다면 공주에 다녀왔고 심지어 한양까지 가서 약을 구해다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하였는데도 그래도 어머니 병환은 낳지 않았다. 세상에 어지간한 병이면 어머니가 돌아다닐텐데 하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하루는 한 한의를 찾아가서 어머니 병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 즉 그 병에는 사람의 고기가 좋겠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사람 병을 고치는데 사람의 고기가 약효가 있다 하니 그는 그렇다면 약을 구하기 어렵지 않다고 약방을 뛰쳐나와선 집에 돌아와서 자기 오른쪽 허벅지 살을 베어 약을 해드리는 것이었다.
자식이란 항시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는 것임으로 어찌 부모의 병을 고치는데 자신의 살을 베어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그는 절둑 거리면서도 자신처지를 딱하게 또는 가련하게 생각지도 않았다. 사람의 살을 베어 약을 써 보라 하여서 그는 어머니 병환에 그리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니 어머니 병환은 더욱 심해갈 뿐이었다.
그 후 아버지가 또 병환에 눕게 되었다. 아버지 병환에 이번에는 자기의 왼쪽 허벅지 살을 베어서 약으로 썼다. 그렇다보니 자신의 양쪽 허벅지 살은 모두 베어서 약을 했지만 역시 아버지 병환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방에는 병환에 시달리는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이번에는 아버지 병환에 잉어를 한 마리 약을 써보라고 약제를 가르쳐 준다.
그는 허벅지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잉어를 잡기 위해 집에서 나온다. 엄동설한이라 여기저기 땅이 꽁꽁 얼어붙었고 바람만 요란하게 분다. 허나 아버지 병환에 잉어가 많이 있다는 못 위로 아픈 다리를 이끌고 나갔다.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얼음덩어리 빙판을 깨고 그 속에 낚시를 가라앉힌 다음 쭈그리고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선 눈을 지그시 감고 천신(天神)께 기도를 한다.
「천지신명이시여! 아버님 병환에 잉어가 약이라 하옵니다. 잉어 한 마리만 잡히게 하여 주소서. 잉어를 잡수시면 아버지 병환이 완쾌된다 하옵니다. 하나님 천신님이 가련한 불효자식이 효도를 할 수 있도록 잉어 한 마리만 나려 주시옵소서」
그가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잉어가 낚시에 걸린게 아니라 그가 깬 물구멍으로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빙판위에서 이리 저리 뛴다. 그는 천신이 자기를 돕는다고 생각하고 잉어를 잡아들고선 집으로 돌아와서 약단지에 잉어를 고아서 아버지에게 드렸다.
이번에는 천신께서 잉어까지 내리셨으니 아버지 병환이 문제없이 낳아 지겠지 하고 혼자 기뻐하고 있는데 그 잉어를 먹고 3일(日)동안 건전하고 병환에서 건강이 회복되는 것 같더니 3일(日)후에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으니 영민 하시는 것이었다. 부모님을 병환에서 구출하기 위해 자식된 도리로서 별일을 다 해봤지만 인명은 천명이였던지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절뚝거리며 아버지 마저 묘지에 모시고는 기진맥진 했는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와같이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모시는 정성이 참으로 눈물겹도록 귀감이 되므로 그의 효행은 잠깐사이에 전국에 퍼져 나갔다.
그의 효행은 드디어 나라의 임금께 알려지자 당시의 임금님이신 고종께서 정문을 내리고 그의 효행을 영구히 후세에 남기도록 하시니, 그 정문이 처음은 청양군 대치면 광금리에 세웠으나 그후 증손인 양해준이 정산면 서정리 입구에 옮겨 세우고 처음 정문이 나린 대치면 광음리에는 비석만 남겨 놓았다. 부모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직 효행을 위해서 살은 거룩한 정문이 바로 이 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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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안 효자문
조유안은 본관은 한양. 호는 산외옹이며, 경종 4년(1724)에 내린 효자정문으로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조유안의 효행적을 보면 부모에 효행이 극진하였다.
아버지가 병이나자 향을 피우고 하늘에 아버지 대신 죽기를 빌었고, 아버지의 변을 손에 받아 맛을 보면서 아버지의 병을 간호 하였고,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여서 소생시켰다.
병자호란이 났을 때 90세 되는 할머니를 모시고 산중으로 피난가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가례대로 행동하였다. 옛 성현의 글을 벽에 걸고 매일 반성하고 성현의 말씀대로 수행하였다.
뒤에 효도와 학행이 장계되어 나라에서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고 한원군에 피봉하고 효자 정여를 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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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孝子) 강응정(姜應貞)과 '을문이'라는 고기
조선 중엽 가야곡면 산노리에 지체높은 첨지중추 부사의 의(毅)의 둘째 아들 강응정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마저 죽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극진히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나무를 해다 팔아가며 어려운 살림인데도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였다.
어느해 겨울 어머니의 병은 더욱 위독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갑자기 응정을 부르더니
"얘야 응정아 죽순이 먹고 싶구나" 하시는 것이었다.
철도 아닌데 죽순이 있을리 없었다.
응정은 어떻게 하면 죽순을 구할 수 있을까 하며 밤잠을 설치며 생각해 보았지만 묘안이 있을리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이튿날 시루를 열고 보니 죽순이 시루에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응정은 죽순을 가진 양념하여 어머니에게 봉양하였다.
또 어느 겨울이었다.
어머니는 응정이에게 "얘야, 을문이 고기가 먹고 싶구나" 하셨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고기를 이 엄동설한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고자 하는 일념에서 마당에 소반을 갖다 놓고 그 위에 청수를 떠다 놓고서는 정성을 다하여 빌었다.
"하느님, 저의 어머니께서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을문이 고기를 잡수시고 싶답니다. 저에게 을문이 고기를 내려 주십시요" 하면서 얼마 동안을 빌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더니 소나기와 함께 물고리 한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응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인천리 냇가에 나가 고기의 배를 가르고 내장고 함께 알을 냇가에 버렸다. 그후 그알이 부화되어 지금도 을문이 고기는 인천리 냇가에서 부터 논산 저수지 사이 5.6㎞ 안에서만 볼 수 있다 하며 그 지역을 벗어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 고기를 "강효자 고기"라고도 부르고 있다.
어머니의 병이 나은 후에도 응정의 효성은 지극하였다.
어느날 하루는 장에 나가 고기를 사가지고 오다가 지게고리에 달아놓고 뽕나무 밭에서 변을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까마귀가 날아와 고기를 채가는 것이었다.
상심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님이 그 고기를 끓여 잡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조정은 물론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 황제가 응정을 보고자 하였다.
응정은 중국 황제를 알현하게 되었다.
그런데 황제는 응정의 수저질 하는 것을 보더니 갑자기 "여봐라, 저놈을 당장 작두로 목을 베어라"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일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응정은 노모를 생각하고 울으니 황제가 그 연유를 물어 "너는 효자라고 하면서 어찌하여 왼손으로 수저질을 하느냐? 자식이 왼손으로 수저질 하는 것을 보고 부모가 그냥 있을리가 없는데, 너는 부모말을 거역하고도 효자라 하겠느냐?" 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응정은 눈믈을 거두고 "만일 부모님께서 그 같은 말을 한번이라도 하였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니 황제는 더욱 노하면서 "그래도 저놈이 이제는 거짓말을 서슴치 않고 하느구나" 하며 노발대발하자 응정은 "내말이 진실이라면 나의 손이 대궐의 주춧돌안으로 들어갈 것이고 그렇지 않고 거짓말이라면 손이 들어가지 않을 터이니 시험하게 해주시요."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황제가 승낙하자 응정은 대궐 마당에 청수를 떠다놓고 끓어 앉아서 "저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하며 간절히 빌은 뒤 손을 주춧돌안으로 밀어 넣으니 거짓말처럼 안으로 손이 쑥 들어가는 것이었다.
황제는 감탄하면서, "참으로 응정은 하늘이 낸 효자로다." 라고 치하하고 크게 상을 주었다고 한다.
이상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ㅗ 많이 활용할게요
좋은글 마음에 담아 갑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의 양식같은 글 감사드려요. 글 작성하여 올리시느라고 너무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