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말씀을 전하는 것
질문 : 고린도 전서 14장 34절의 말씀과 디모데 전서 2장 12절에서 바울은 모두 여자의 교회 중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한다고 말했다. 여자가 교회 중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마땅한지 여부를 모르겠습니다. 만약 모든 여자들이 말씀전하는 것이 불가하다면 감히 묻는 것은 사도행전 2장 17절에서 18절, 21장 9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답변: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의 첫 구절은 『모든 성도들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같이」라는 말은 모든 각지에 있는 교회들이 동일한 실행 안에 있어야 함을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1장 2절과 10장 32절은 하나님의 교회를 언급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온 성도들의 교회를 본다. 『하나님의 교회』는 교회를 조성하는 성분을 가리킨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요소로 조성된 것이다. 『성도들의 교회』는 교회들의 구성요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교회는 성도들로 구성된다.
34절은 『여자들은 교회들 안에서 잠잠하라 이는 저희의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하였나니 오직 복종할 것이요』라고 말한다. 「교회들 안에서」라는 구(句)는 교회의 집회들을 가리킨다. 11장 5절에 의하면 여자들도 그들의 머리를 덮은 채 예언할 수 있다(물론 공중 앞에서). 그리고 사도행전 2장 17절과 18절, 21장 9절은 예언하는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확증한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서는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 즉 권위로써(여기 가르침은 권위의 사용에 관계된다) 가르치고 교리를 정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원칙에 의하면 교회 집회 안에서 여자들이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은 여자들이 권위를 가지고서 교리를 정의한 것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교회 집회 안에서 잠잠해야 한다. 그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분의 통치 안에 있는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의 문제에 관계된다. 하나님의 통치적인 규정 안에서 여자들은 남자 위에 권위를 가지고서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기도하고 예언할 수 있다. 즉 주로 주님을 위해 말하고 주님 자신을 말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형제들의 덮음(the covering) 아래에서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기에서 복종하도록 권고 받기 때문이다. 34절에 있는 「율법」은 모세가 쓴 책을 가리킨다(마 5:17, 7:12, 11:13).모세의 글 중 창세기 3장 16절은 여자에게 남자의 다스림에 복종할 것을 권고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을 성경에서 독립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우리는 성경은 성경으로 성경에 의해서 해석해야 한다. 신약전체의 가르침에 의하면 자매들이 예언은 할 수 있으나 교리를 정의할 수 있는 권위는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형제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더욱이 어떤 심각한 이단들이 여자들을 통해 들어온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1933년 나는 주님을 전시간으로 봉사하기 위해 직업을 포기하고서 상해(上海)에 있는 니(Nee) 형제님을 방문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내게 형제회 실행의 영향으로 그들은 자매들이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물론 기도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십 일년 동안이나 그러한 실행을 따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니 형제님은 만일 자매들이 집회에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반쪽은 중풍병에 걸려 기능이 끝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집회에 손상과 손실을 가져왔으며 그로 인해 니 형제님은 이 상황을 어떻게 교정해 나갈 것인가를 고려하게 되었다. 그는 이 문제를 내게 언급하고 나서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자매들이 집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교리에 관계된 것을 결정하는 한 예이다. 그와 같은 결정은 권위와 관련된다.
권위 있는 이 같은 결정이 바울이 33절에서 언급한 말하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 그는 교회 집회에서 자매들이 형제들 위에서 권위를 사용하여 말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이 구절을 이렇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자매들이 머리를 덮고 기도나 예언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11장과 조화시킬 수 없다. 이것은 자매들이 그들의 머리를 가리는 한 집회에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고린도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63번)
디모데전서 2장 11절에서 바울은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고 말한다. 종용함은 조용함을 의미한다. 어떤 자매가 조용함과 일절 순종함 안에서 배우는 것은 여자로서의 그녀의 위치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지방의 모임 안에서 자매들을 그들의 위치를 벗어나는 주제넘음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12절은 계속해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가르치는 것은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 또는 거룩한 진리에 관한 교리의 의미를 정의하거나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가 이러한 방법으로 가르치거나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그녀의 위치를 떠난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남자는 머리로 정해졌으며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고전 11:3). 이러한 정함이 교회 안에서 지켜져야 한다. 12절에 있는 종용함이라는 말은 말하는 것에서 조용히 함을 말한다.
13절에서 바울은 설명의 말을 제공한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이것은 우리를 시작으로 이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그분의 시작으로 되돌리기를 원하신다(마 19:8).
14절에서 바울은 이어서 『아담이 속지 아니하였고 여자가 먼저 속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말한다. 13절은 여자가 남자에게 자신을 복종시켜야 하는 첫 번째 이유를 말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다. 이와는 아담의 머리됨 아래의 복종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녀의 머리를 덮지 않은 채 악한 미혹자를 직접 접촉함으로 그녀의 위치를 벗어났기 때문에 뱀에게 속았다(창 3:1-6). 이것이 사도가 지방의 모임 안에서 자매들이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이나 또는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조용함 안에서 배우고 일절 복종함 안에 머무르라고 말하는 강한 근거이다. 남자의 머리됨이 여자의 보호이다.(디모데 전서 라이프스타디 메시지 4)
...나(워치만 니)는 한 자매가 나를 위하여 수년간 기도했고, 또 다른 나이 많은 자매를 통하여 인도되어 주님께로 돌이켰습니다. 나의 영적인 생명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두 명의 서양 자매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중요한 것은 결코 개인의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여자는 형제에게나 혹은 형제들이 있는 집회 중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입니까? 우리는 감히 응답할 수 없습니다. 무릇 이러한 문제의 발생에 대하여 자신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면 마땅히 스스로 성경을 고찰하여야 합니다. 친애하는 자매들이여, 나는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여러분을 득죄하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요 3:11).
만약 주님이 참으로 여러분들이 이렇게 (교회 중에서 가르치는 것) 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면, 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감히 여러분의 말을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성공하기를 원하고 또한 주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여러분에게 기름부으시기를 원하며, 또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원합니다. 그러나 내가 충심으로 고하는 말은, 바로 알지 못하면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한 자매의 말씀 전하는 것을 듣기를 원하며, 그녀의 가르침을 받으며 또한 기도로써 그녀를 돕고 그녀의 사역에 효과가 있기를 원합니다.
나 자신은 다만 성령의 강령과 원칙을 알 뿐입니다. 개인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나는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시길 원합니다. 형제들이여, 만약 당신들이 성경에서 여자들이 집회 중에서 말씀 가르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한 것으로 여기고 당신들이 또한 여자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만나게 되면, 청컨대 조심하여 즉시 반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개인에 대하여 항상 마음에 둘 뿐,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는 태도를 취할 뿐입니다.
로마서 14장 4절의 가르침은 마땅히 전부 실제적으로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성경의 원칙에 대하여 우리는 마땅히 가르쳐야 하고, 개인의 행함에 있어서 (당신이 만약 이 가르침을 안다면) 우리는 결코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매들로 교회 중에서 말씀을 가르치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녀자가 교회 중에서 말씀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늘 사람들이, 주님은 그분의 예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남자들이 실패한 연고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드보라를 일으키셨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역시 이러한 예외가 있습니다. 드보라의 사사로서의 시비를 우리는 지금 말할 수 없습니다. 간단하게 말하기 위해 그것을 옳다고 해봅시다. 그러나 드보라는 결국 몇 명입니까? 참으로 오늘날 형제들이 실패한 것은 가장 비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마 특별히 새로운 드보라를 일으켜 세워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여자들이여, 여러분 개개인이 드보라라고 말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권리가 있으시나 우리는 결코 그분의 이러한 예외적인 것을 자신의 행동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권위를 행사하신 적이 있는지 없는지 여러분은 마땅히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위를 행사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로 특별히 형제들이 있는 집회 중에서 말씀을 가르치게 하셨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을 축복하시기 원합니다.
(워치만니전집 제1집 제7권제16장,164-1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