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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오분법신향 ③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光明雲臺 周邊法界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공양시방>이라고 할 때 공양은 참으로 중요한 말입니다. 공양은 흔히 꽃 · 음식 · 초 · 향 · 음악 · 춤 · 의복 등 부처님께 이바지하고 도와주는 모든 사물과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께 올리는 모든 것을 공양이라 하여, 엄밀히 말해서 부처님께만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분에 관계없이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공양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은 위대한 깨달음을 얻는 부처님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부처가 될 씨앗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도 공양이란 말을 쉽게 쓰는 것입니다. 절에서 밥 먹는 일을 '공양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에는 '당신도 부처님입니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 쓰는 공양이란 말을 우리들에게도 쉽게 쓰는 것은 바로 우리도 부처님 처럼 공양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양 올리는 자가 곧 공양 받는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부처님과 같이 대한다는 뜻이 공양이란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상불경(常不輕)이란 참으로 훌륭한 보살이야기가 나옵니다. 상불경 보살은 평소에 수행을 할 때 남들처럼 경을 읽거나 기도,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 마다 부처님으로 존경하고 예배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상불경 보살은 모든 사람이 부처님의 씨앗을 품고 있음을 알고, 그에 대한 확신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예배하는 일에도 너무 바빠 다른 수행은 할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처럼 존경하고 예배하는 일로 평생 수행을 닦았던 것입니다. 그 일로 해서 그는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공양이란 말속에는 상불경 보살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각 가정에서 '공양 하십시오' 라는 말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 말속에는 훌륭한 만행 만덕과 무한한 능력과 광명을 지니고 있는 부처님의 씨앗이 당신에게도 심어져 있으므로 부처님처럼 존경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금강경』에는 법공양의 위대성을 "설사 삼천대천 세계만한 금은보화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희사한다고 해도 짧은 사구게(四句偈) 한 구절만이라고 서사수지(書寫受持) 위인연설(爲人演說) 을 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공덕은 없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金剛經 四句偈(금강경 사구게) ▒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진실)를 보리라.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 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 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응당 색(물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요. 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 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진실)를 보지 못하리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위와 같이 금강경에는 4개의 사구게가 있으나, 이 4개의 사구게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하나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변하고 있는 것일 뿐이고 실제 진실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소리 나는 것, 맛, 향기 나는 것은 물론 이고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는 것, 좋고 나쁜 것, 크거나 적다는 것, 깨끗하고 더러운 것, 그런 모든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며, 그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공양이라고 해서 단지 먹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진리에 대한 공양, 법에 대한 공양, 가르침에 대한 공양입니다. 이것은 곧 지혜의 광명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우리는『예불문』의 공부를 통해 조금이나마 진리의 공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공양이란 말은 참으로 고맙고 빛나는 값진 말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공양이란 말과 함께 있는 시방은 동·서·남·북의 사방(四方)과 동남·동북·서남·서북의 사유(四維)에 상·하를 합한 것입니다.
결국 시방은 불교의 공간 개념을 나타낸 말로써 온 우주 전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어느 곳에서나 항상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량불법승>은 '한량없는 불·법·승 삼보'라는 말입니다. 불·법·승은 부처님과 진리와 불교 단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곧 온 인류, 모든 만물에게 모두 진리의 빛이 펼쳐지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온갖 만물에게 진리의 빛이 골고루 펼쳐져 바람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의미가 <무량불법승>속에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불·법·승 삼보 중에서 <승>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출가 수행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교 단체, 불교 집단, 불교 대중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출가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는 물론 제가 남녀인 청신사(淸信士)·청신녀 (靑信女)를 모두 합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흔히 사부대중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계향>에서부터 <무량불법승>까지의 내용에서 살펴보면, 이 속에는 불교의 목적하는 바가 모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대목인 것입니다.
헌향진언 (獻香眞言)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세번)
향을 사르어 올리는 진언 옴 금강소향존(金剛燒香尊)이시여 훔
<헌향진언>은 '향을 올리는 진언'입니다. 여기서 향은 부처님이나 불보상의 완성된 인격체를 다섯 가지 덕으로 표현한 오분법신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향을 꽂음으로써 우리도 부처님처럼 위대하고 원만한 공덕을 갖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향을 하나 꽂더라도 <계향><정향><혜향><해탈향><해탈지견향> 의 마음으로 꽂아야 하는 것입니다. <헌향진언>에서 <진언>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참된 말'이란 뜻입니다. 진언은 우리가 쉽게 그 뜻을 모르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진언이라는 말 외에 다라니 혹은 주문이라는 말도 함께 쓰는데, 그 뜻은 비슷합니다. 진언은 인도말로 만트라(mantra)라고 하는데 주(呪)·신주(神呪)·밀주(密呪)·밀언(密言) 이라고 해서, 전통적으로 그 뜻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진언이 함축하고 있는 뜻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한 두 가지로 잘못 번역하면 오히려 본래의 의미와 거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그 뜻을 모르고 외워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진언입니다.
옛날에 장안의 유명한 거지가 중국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는 중국으로 간 김에 거짓말을 꾸며 융숭한 대접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변방의 어느 고을에 가서 왕의 조카라고 속이고 칙사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그는 자기가 왕족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늘 반찬투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귀족 취급을 해줄 줄 알았던 것 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국의 한 사신이 중국에 볼일이 있어서 우연히 그 곳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 고을 원님은 사신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왕의 조카가 반찬투정을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의 조카가 중국으로 여행을 왔다면 그 사신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인데, 처음 듣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그런 일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신이 왕의 조카 라고 하는 이에게 나아가 인사를 하려고 보니 그는 장안의 유명한 거지였던 것입니다. 고을원님에게 그가 거지라고 한다면 그는 당장에 목이 달아나고 말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신은 한 가지 현명한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사신은 고을 원님에게 그가 반찬투정을 할 때마다 자기가 한 마디의 진언을 일러 줄 터이니 그 말을 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지인 주제에'라는 말이었습니다. 중국 사람은 그 말의 뜻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사신이 떠나고 난 후 왕의 조카란 자가 반찬투정을 할 때마다 뜻도 모르고 원님은 '거지인 주제에' 라고 외웠습니다. 그렇게 무심코 뜻도 모르고 내뱉은 한마디 말이지만 진짜 거지가 듣고는 완전히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중국 사람은 아무 뜻도 모르고 영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진짜 거지에게는 '거지인 주제에'라는 말은 자신의 생명을 오락 가락하게 만드는 엄청난 말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진언은 모르고 외워도 신비한 영향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신앙적인 면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이 '거지인 주제에'라는 진언의 말뜻을 알려고 노력하면 결코 모를 말은 아닙니다. 요즈음은 법회에서 진언을 해석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진언의 뜻을 알고 외우면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신심이 고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야기 속의 고을 원님이 '거지인 주제에'라는 말의 뜻을 알았더라면 그 거지에게 어떠한 상황이 벌어졌겠는가를 상상해 보면 믿음이 갈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진언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옴 바아라 도비야 훔>에서 <옴>은 모든 진언의 정형구조로써 그것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진언이 됩니다. <옴>은 모든 진언의 모체가 되는 진언 중의 진언으로써 모든 법문의 어머니 이며, 상대를 지극히 찬탄하는 극찬구(極讚句)이며, 모든 소리의 근원이며, 상대를 섭복(攝伏) 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옴>은 우주의 핵심이며, 피안에 이르는 범선(帆船)이며, 우주와 삼라만상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이 우주와 삼라만상은 <옴>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옴>은 그 뜻이 매우 깊고 중요해서 한 두 마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옴>은 항상 진언의 맨 앞에 위치하며, 전체 진언의 내용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옴>은 모든 진언 중에서 가장 차원이 높은 진언인 것입니다.
다음의 <바아라>는 원래 <바즈라>라고 해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바즈라>라고 물어 보면 '다이아몬드'라고 그 뜻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즈라>는 우리가 쉽게 쓰는 말로 하면 '금강(金剛)'이 됩니다. 흔히 금강과 같은 견고한 지혜를 금강반야(金剛般若)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의 지혜는 그 어떤 탐·진·치 삼독이나 번뇌 망상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 그 자체를 깨뜨릴 물건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지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도비야>의 뜻은 '소향존(燒香尊)에게'라는 말입니다. 끝의 <야>는 '∼에게'라는 위격조사입니다. 소향존이란 향을 살라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이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금강과 같은 지혜의 향을 사루는 분이 소향존입니다. 그 소향존은 지혜로, 광명으로, 오분법신으로 무장된 소향존입니다. 금강의 지혜가 마음속에 간직된 소향존이기 때문입니다. 그 향으로써 이 세상을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훔>은 '이구청정(離垢淸淨)'이란 뜻인데 진언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정형구입니다. <훔>은 더러움을 벗어난 청정의 세계를 뜻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수양자들이 마음으로부터 미심쩍은 음식을 먹을 때 먹기 전에 음식에다 <훔>자를 쓰고 먹기도 했습니다. 지혜의 향이 있는 곳에 더러움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향기도 중요하지만 좀 더 강력하고 좋은 향기를 발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향기를 풍겨야 온 세상이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옴 바아라 도비야 훔>을 붙여서 해석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하고 훌륭한 마음으로 향을 올리는 존귀한 분을 지극히 찬탄하면 이 세계가 청정해진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부처님의 공덕은 향과 같이 이 세계를 청정하게 만들고 있음을 찬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