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四面楚歌)는 " 四方에서 들려오는 초(楚) 나라의 노래" 라는 의미(意味)이지만 그 뜻은 四方이 모두 적(敵)으로 둘러싸여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궁지(窮地)에 몰린 상황(狀況)이나, 주위에 온통 반대(反對)하는 사람만 있어 외롭고 곤란(困難)한 처지(處地)를 비유(比喩)한 말이다. 비슷한 말로 "고립무원(孤立無援)" 이라는 말이 있다.
@ 출처(出處)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故事>
中國을 통일(統一)한 진(秦) 나라 시황(始皇 = 秦始皇)은 한비자(韓非子)의 법가사상(法家思想)에 의한 엄격(嚴格)한 법집행(法執行), 분서갱우(焚書坑儒)의 폭거(暴擧),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축조(築造), 아방궁(阿房宮)의 호사(豪)奢 등으로 百姓들의 生活은 도탄(塗炭)에 빠졌고, 더욱 不幸한 것은 진시황(秦始皇) 사후(死後) 암우(暗愚)한 아들 호해(湖亥)와 환관(宦官) 조고(趙高)의 폭정(暴政)에 이곳 저곳에서 민란(民亂)이 일으나 天下는 다시 혼란(混亂)에 빠졌다. 그 중에서도 초한지(楚漢誌)의 主人公인 초(楚) 나라의 항우(項羽)와 한(漢) 나라의 유방(劉邦)은 天下를 양분(兩分)하고 패권(覇權)을 다투게 되었는데 그 과정(過程)에서 나온 말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이다. 초기(初期)에는 초(楚) 나라 왕족(王族) 出身인 항우(項羽)가 우세(優勢)하였으나, 한신(韓信) 장량(張良) 진평(陳平)같은 우수(優秀)한 人才를 얻은 유방(劉邦)이 차츰 유리(有利)하게 되었다. 自身의 能力을 과신(過信)한 項羽는 범증(範增)같은 지략가(智略家)의 충언(忠言)을 귀담아 듣지 않은 오만(傲慢)함은 결국 몰락(沒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뒤늦게 전세(戰勢)가 불리(不利)함을 깨달은 項羽는 劉邦에게 休戰을 제의(提議)하고 팽성(彭城)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군대(軍隊)를 후퇴(後退)시킨다. 그러나 劉邦은 모사(謀士)들의 진언(進言)을 받아들여 項羽를 뒤쫓아가서 결국 해하(垓下)에서 겹겹히 포위(包圍)하게 된다. 해하에 주둔(駐屯)한 項羽의 軍士는 격감(激減)하고 군량미(軍糧米) 또한 턱없이 부족(不足)하게 되었다. 이 때 유방(劉邦)의 휘하 장수(將帥)인 장량(張良) 은 軍士들을 시켜 밤마다 초(楚) 나라 軍士들을 향해 고향(故鄕)을 그리워 하는 노래를 부르니, 楚 나라 軍士들은 四方에서 들려오는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사기(士氣)가 땅에 떨어져 도망가는 자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 전의(戰意)를 상실(喪失)한 項羽는 자신의 비통(悲痛)한 심정(心情)을 " 해하가(垓下歌)>로 노래하였다. "힘은 山을 뽑을 수 있고 기운(氣運)은 世上을 덮을만 한데,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烏騶馬)가 달리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項羽의 애첩(愛妾) 우희는 이미 전세(戰勢)가 너무 불리(不利)해져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項羽에 대한 절개(節槪)를 지키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項羽의 보검(寶劍)을 꺼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애처로운 項羽와 우희의 이별(離別)을 가리켜 "패왕별희(覇王別姬)" 라고 한다. 이튼날 項羽는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기약(期約)하며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말머리를 돌렸으나, 오강(烏江)에 이르러 자신을 따르는 軍士가 없음을 알고 혼자 살아 돌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다시 적진(敵陣 = 유방의 군대)에 뛰어 들어 최후(最後)의 一戰을 벌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原文> 항왕군벽해하(項王軍壁垓下)- 항왕(項羽)의 군사가 해하에 진을 쳤으나(주둔하였으나)
병소식진(兵少食盡) -- 군사는 격감하고 군량미는 다 떨어졌는데
한군급제후병위지수중(漢軍及諸侯兵圍之數重) -- 한나라 및 제후들의 많은 병사들이 겹겹히 포위하고
야문한군사면개초가(夜聞漢軍四面皆楚歌) -- 밤마다 한나라 군사들이 부르는 초나라 노랫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니
항왕내대경 왈(項王乃大驚 曰) -- 항왕(項羽)이 크게 놀라 이르기를(말하기를)
한개기득초호(漢皆己得楚呼) -- 한나라(漢王 - 劉邦)가 이미 초나라를 모두 얻어 다스리는 게 아닌가?
시하초인다야(是何楚人多也) -- 초나라 백성이 많다 한들 이제 어찌할 것인고?
(" 초나라 땅에 초나라 백성이 많지만 어찌할 수 없구나" 라는 뜻)
@ 壁(벽 벽. 진 벽) 己(몸 기. 자기 기. 다스릴 기) 是(바를 시. 이 시) 何(어찌 하)
<垓下歌의 原文>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騶不逝) --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는 달리지 않는구나.
추불서혜가내하(騶不逝兮可奈何) --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우혜우혜내약가(虞兮虞兮奈若何) --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 拔(뺄 발) 兮(어조사 혜) 蓋(덮을 개) 騶(마부 추. 말먹이는 사람 추) 逝(갈 서. 죽을 서) 奈(어찌 내)
可(가히 가. 옳을 가. 쯤 가. 들을 가) 何(어찌 하) 虞(생각할 우. 편안할 우. 근심할 우. 걱정할 우)
# 추(騶 = 項羽의 愛馬 오추마<烏騶馬>를 말함)
우(虞 = 項羽의 愛妾 우희<虞姬>를 말함)
<참고> : 범증(范增)의 충언이란?
범증(范增)은 진(秦) 나라 末期 내란(內亂)이 일으났을 때, 軍士를 일으킨 초(楚) 나라 項羽의 책사(策士)로 七旬의 나이에 지략(智略)이 비범(非凡)하였다고 한다. 장차 劉邦이 項羽를 위협(威脅)할 人物이라는 것을 깨닫고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라고 하였으나 오히려 항우로부터 유방과 내통(內通)한다는 오해(誤解)를 받아 파면(罷免)당하였다. 실의에 고, 고향 팽성(彭城)으로 돌아가 실의(失意)에 빠져 살다가 죽었다. 그후 項羽는 劉邦에 패하여 오강(烏江)에서 자결(自決)히였다. <끝>
@ 窮(다할 궁) 困(곤할 곤) 喩(깨우칠 유) 難(어러울 난) 焚(불사를 분) 坑(빠질 갱) 儒(선비 유) 塗(진흙 도). 炭(숯 탄)
暗(어두울 암) 愚(어리석을 우) 覇(으뜸 패) 傲(거만할 오) 慢(게으를 만) 垓(지경 해) 喪(죽을 상) 節(마디 절)
槪(절개 개. 대강 개) 捲(거둘 권) 皆(다 개. 모두 개) 威(위엄 위) 脅(위협할 협. 으를 협) 驚(놀랄 경) 彭(성 팽)
첫댓글 "사면조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