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승니(僧尼)란 무엇인가?
1. 중이라 함은 일체 명상법(名相法)이 생기기 이전의
사람을 가리켜 중이라 하니,
萬有의 주인이요, 天上인간의 스승이 바로 중인 것이다.
2. 수행인(修行人)인 중은 부모 처자와 일체 소유(一切所有)를 다 버림은 물론
자신까지도 버려야 하나니라.
3. 중은 운명의 지배도 아니 받고, 염라국(閻羅國)에도
상관이 없어야 하며,
남이 주는 행(幸)·불행(不幸)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나니라.
4. 수도(修道)생활을 하는 것은 성품(性品)이 백련(白蓮) 같이 되어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니라.
5. 짧은 일생을 위하여 하는 세속학문(世俗學問)도
반평생(半平生)을 허비해야 하거든,
하물며 미래세(未來世)가 다함이 없는 전정(前程)을
개척(開拓)하려는
그 공부(工夫)를 어찌 천년(千年)을 멀다 하며,
만년(萬年)을 지루하다 할 것인가?
6. 생사윤회에 소극적인 학교 교육도 필요를 느끼거든,
하물며 생사 윤회를 영단(永斷)하고
참된 인간을 완성시키는 참선(參禪) 교육은 참으로
필요하다.
전 인류에게 시급히 알려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니라.
7. 세상 사람은 유위(有爲)로 법을 삼지만,
중은 무위(無爲)로 법을 삼나니라.
8. 세상 사람은 무엇이든지 애착심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중은 무엇이든지 애착심을 끊고 일을 하나니,
부처님이나 조사(祖師)에게까지도 애착심을 가지지
말 것이니라.
9. 세상에서는 혈통(血統)으로 대(代)를 이어가지만,
중은 자기를 깨달은 정신, 곧 도(道)로 대를 이어가는데,
세상에서도 조상의 향화(香火)를 끊게 되면, 그에서
더 큰 죄가 없다는데,
불자(佛子)가 되어 중으로 부처님 법을 자기 대에 와서 끊는다면
그 죄를 어디에 비할 것인가.
10. ??
11. 불교의 흥망이 곧 인류의 행·불행이니라.
12. 언제나 불교의 행운과 함께 세상에 평화가 동행(同行)해 오게 되나니라.
13. 공부하는 스님의 누더기는 임금의 용포(龍袍)로도
미칠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니,임금의 용포 밑에서는 갖은 업(業)을
짓게 되지만
중의 누더기 밑에서는 업이 녹아지고 지혜(智慧)가
밝아지나니라.
14. 중으로서 속인의 부귀를 부러워하거나 외로워하거나
설움과 한(恨)이 남았다면 게서 더 부끄러운 일이
없나니라.
15. 이 우주 전체가 곧 나인 것을 깨달아 체달(體達)된
인간을
중이라 하나니라.
16. 중은 자신의 노력으로 수입되는 물질이라도 사용(私用)하지
못하나니 중의 것은 다 삼보지물(三寶之物)이기 때문이니라.
17.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중의 명목(名目)으로
시물(施物)을 얻어 쓰는 것은 사기취재(詐欺取財)니라.
18. 중 노릇을 잘못하면 삼가(三家)에 죄인을 면치 못하나니라.
19. 자성(自性)이 더럽혀지기 전인 어렸을 때에 출가하여
평생을 무애(無碍)하게 중노릇을 잘하여 마치는 이는 하늘과 땅을
덮고도 남는 복이니라.
20. ??
21. 사상적(思想的) 방향은 정진에서만 확정(確定)을 하게 되고,
사상적 방향을 정하게 되어야 인생(人生)의 정로(正路)를 걷게 되고,
인생의 정로를 걷게 되어야 인생의 영원겁(永遠劫)에 장래를
보증할 수 있나니라.
22. 세속 일은 잠시라도 쉼이 있지만,
중은 정진하는 일을 꿈에라도 방심(放心)할 수 없나니,
털끝만한 틈이 벌어져도 온갖 마장(魔障)이 다 생기나니라.
23. 백천만인(百千萬人)을 죽인 살인수(殺人囚)라도
허심탄회(虛心坦懷)로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정진하는 중만 되면
백천 만인의 원결(怨結)을 푸는 동시에 백천 만겁에
지은 죄업(罪業)이
몽땅 소멸되나니라.
24. 중생이 보고 듣고 일하는 것이 모두 허무하게 되는
것은
망아(忘我)에 집착하기 때문이니라.
25. 중생은 시공간(時空間)에 의하여서만 생존(生存)하는 것으로
집착(執着)된 까닭에 시공의 제재하(制裁下)에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면치 못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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