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서
지난 10월 28일, 경찰청은 평화적 시위를 보장하는 [평화시위구역] 시범 지역으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등을 지정한다고 공식 발표하여 큰 파문과 충격을 주었다.
이는 대학로에 마지막 남은 허파, 유일한 쉼터 공간, 휴식문화의 상징 마로니에 공원마저 [평화시위구역]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각종 시위의 각축장으로 전락시키겠다는 의도이며 이것은 곧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 향수권을 빼앗는 처사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대학로는 현재 100여 개가 넘는 소극장이 밀집되어 있는 공연예술의 거리이다. 한마디로 세계적으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공연문화의 메카로서 관리 육성되어야 할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대학로에서 벌어진 숱한 시위, 집회를 우리 연극인들은 여러 가지로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위-집회가 열리면 각 소극장들은 관객이 없는 공황 상태에 빠지고, 모처럼 대학로의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은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물론 시위-집회는 모든 국민의 기본 권리이다. 기본 권리는 자연스러운 생존권이며 표현의 자유의 한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집단의 이익이나 생존권과 상충될 때는 반민주적인 행위가 되며 집단 이기주의로 전락되고 만다. 대학로에서 시위-집회가 벌어지면 각 극장은 관객이 없는 텅 빈 객석을 놓고 배우들의 외로운 공연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에도 각종 시위-집회에 의해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극인들은 각 이익 집단들의 권리를 존중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인내심은 이번 [평화시위구역] 지정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여 한계에 다다랐다.
‘85년부터 문화의 거리로 불러져온 이래, 2005년도에 [문화지구]로 지정된 대학로는 말 그대로 예술과 문화의 거리로 성장, 도약해 가야 한다. 오히려 마로니에공원은 공연문화를 활성화하고 시민들에게 질 좋은 야외공연을 제공할 수 있는 문화공원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 현재 야외 공연장이 있지만 그 시설은 매우 열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경찰청은 거꾸로 이 마로니에공원을 [시위지구]로 지정한다고 하니 대학로 지킴이 노릇을 해오고 있는 우리 연극인들로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발상은 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문화가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성장의 동력이라고 정부나 서울시, 관련 부처들이 공언하고 있는 이때에 경찰청은 문화의 거리, 문화지구로 성장해야 할 대학로를 왜 [시위지구]로 전락시키려 하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러우며, 나아가 이번 지정이 정부적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적 차원에서 합의 도출하여 결정한 것인지 준엄하게 묻고 싶다.
문화란 그 나라의 정신이요 요체이다. 허나 문화지구로 지정하고도 이렇다 할 정책도 펼쳐내지 못하고 있는 판에 거꾸로 경찰청이 대학로를 ‘시위지구’로 지정, 운영된다면, 앞서 지적한 대로 우리 연극계와 연극인들에게 닥쳐올 생태계 파괴는 불보듯 뻔하며 또한 공원을 찾는 시민들의 문화 향수권 마저 박탈하는 처사임에 분명하다. 이에 우리 연극인들은 다음과 같이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 경찰청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평화시위구역’으로 지정한 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경찰청장은 공식 해명, 사과하라.
-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종로구청은 대학로 문화발전을 저해하는 경찰청의 이 같은 방침을 철회시키는데 적극 나서서 동참하라.
위의 사항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우리 연극인들은 시민들과 함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끝까지 투쟁할 것을 엄중히 밝히는 바이다.
2008년 10월 30일
평화시위구역 지정 저지 연극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박계배)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 한국연극배우협회, 한국소극장협회,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한국희곡작가협회, 한국무대예술가협회, 한국연극평론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