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이 보이는 조짐의 응보는 큰 것이다. 김안로가 등용되자마자 혜성의 요괴로움이 바로 나타나니, 하늘이 조짐을 보임이 그림자와 메아리보다도 빠른 것이다.
1607년 : 조선 선조 때로 왜란 전후의 어수선한 혼란으로부터 점차 안정을 다지던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그해 선조는 병석에 누워 다음해 사망에 이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의 기록이 남아 있다.
구름이 짙게 끼어 혜성을 살필 수가 없다.
1682년 : 조선 숙종 때로 혜성 출현 다음날 숙종은 신하들에게 혜성의 변고를 두려워한다는 뜻을 알리고, 형조판서에게 감옥의 죄수를 속히 판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759년 : 조선 영조 때로 영조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있던 시기였는데, 혜성의 계속된 출현으로 천체의 재앙을 늦추는 방도는 오직 세자 저하께서 몸을 돌이켜 수성하는 데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상소가 올라왔다. 이에 사도세자는 따르겠다는 표시를 하였으나, 2년 후 영조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유람을 즐기는 등 계속되는 돌발 행동이 있었다. 그로 인해 영조의 불신은 더욱 커져 결국 1762년뒤주에 갇혀 사망에 이른다.
《성변등록》: 이것은 천문학, 지리학 등의 사무를 맡았던 관상감의 업무용 기록인데 1759년의 혜성 출현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혜성의 이동 경로, 꼬리 길이, 모양, 색깔까지 그림으로 상세히 묘사하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소중한 자료에 속한다.
1835년 : 조선 헌종 때로 혜성의 출현을 차분하고 과학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의 기록이 남아 있다.
혜성이 저녁에 나타났는데 빛은 희고 꼬리의 길이는 2척 가량이었으며 북극과의 거리가 32도였다. 또 4경에 혜성이 서쪽으로 사라졌는데, 헌종은 측후관을 임명하여 윤번으로 숙직하게 했다.
첫댓글 제목은 생각 안나지만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영화를 어릴 때 본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