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지맥(2008년 7월 11일)
구 간 : 36번국도(솔고개)-발치-상재오개재(광산)-남산성-마즈막재
계명산과 남산의 들머리이기도 한 마즈막재
마즈막재 표지석
신매고개 (절개지 왼쪽으로 내려와 왼쪽으로 오른다.)
발치에서 오른쪽으로 봄(조금아래 파란색 지붕의 민가가 있다.)
발치에서 왼쪽으로 봄
발치 내려오는 중간쯤 차돌바위
석산
석산 계약 표시인 모양
산신각과 동자승 인형
남산에서 동쪽으로본 산들과 충주호 일부
주간 일기예보엔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출발 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다른 건 몰라도 예보가 틀려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으나 곧 맑아지고 지독한 더위가 예상되는 그런 날씨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 때문에 아름다운 산천은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차분 하면서도 깊은 숲속의 향은 뻐꾸기의 경쾌한 노래 소리와 어울려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내기도 한다.
지난 3일 큰누님(94세)은 드디어 우리들의 손을 놓으시고 머나먼 길을 떠나셨다.
부디 저세상에서도 영원한 행복 누리시길 바라며 누님의 명복을 빌어 드린 지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계명지맥도 오늘이 이틀째이니 내일이면 이번 산행도 마친다.
어제저녁엔 살미면소재 3번국도 옆 황실파크장에서 에어컨을 돌린 채 편안하고 시원한 밤을 보냈다, 아침에 마즈막재로 가면서 국도로 가느니 충주호 옆으로 가면서 구경도 하자고 했는데 지도만 보고 결정한 우리가 큰 실수였다. 아주 형편없는 비포장 길을 1시간 가까이 가다보니 시간은 시간대로 손해고 고생은 고생대로 더 한 셈이다,
차를 갖다놓고 돌아 올 때는 충주시를 거쳐 국도로 오는데 20여분 걸리는 거리를 구경은 커녕 고민만 한 아침 시간 이었다
그러다 보니 6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잡목을 헤치고 아카시아 사이를 오르니 죽천부부의 시그널이 기다린다.
담배 밭과 개 사육장을 지나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니 길이 좋아진다.
길이 좋지 않을 것이란 예감을 완전히 뒤바뀐 아주 양호한 길이 우리를 맞이한다. 새로 개간하여 조성한 사과 과수원은 묘목이 우리들 키만 했지만 울타리 휀스망은 아주 많은 자금을 투자한 것 같았다.
아침 이동시 손해 본 시간을 이곳에서 보충해야 한다, 아침 移動길은 충주호가 생기기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아주 산골 오지였다.
255,9봉엔 납작 삼각점이 있었으며 7시 35분통과 했다.
몇 차례의 알바 끝에 신매고개 높은 절개지 왼쪽으로 내려왔다, 날씨가 더우니 적은 대원끼리도 의견대립이 대단하다. 별거 아닌 일에도 모두 신경이 날카롭다.
나 자신부터 속 좁은 일을 계속하고 있다. 상대가 좀 짜증낸다고 그걸 받아주지 못하는 내가 지금 생각하니 역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주이씨와 동래정씨 합장 무덤까지는 길이 좋고 그 다음 부터는 길도 좀 나쁘고 독도에도 주의하여 살펴야할 구간이다. 좋은 길 따라가다간 옆길로 빠지게 되어있는 구간이 몇 군데 된다.
378봉 풀숲엔 78,9 건설부 425 삼각점이 있었고 9시 30분통과 했다, 아주 무더운 날씨다. 온 몸에 물이 줄줄 흐르고 옷이 비 맞은 것처럼 흠뻑 젖어있다. 산행중 제일 더운 날씨인 모양이다,
이곳의 산은 실제 산 높이보다 고도감이 더 하는 그런 곳이다. 계곡의 깊이도 그러하지만 산들 자체가 深山幽谷이다. 그 느낌의 정도가 보통의 산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매미들의 노래 소리가 일시에 뚝 그치기도 한다.
발치에 12시 7분 도착했다. 묵은 임도인데 내려오는 길이 어렵고 독도가 어려운 구간이라 조심해야할 그런 곳이다.
안부 왼쪽에 물이 있을 것 같아 50여m내려가니 물은 이미 말라가고 있었고 구하려면 더 내려가면 가능하겠으나 나에겐 충분한 물이 있어 혹시나 시원한 물이 있나하고 찾아본 것이다. 우측으로도 조금 내려가면 민가가 있어 물이 필요할 땐 구할 수 있겠다.
발치에서 오르는 길 역시 경사가 심하다. 8부 능선쯤 오자 돌로 계단을 만들어 놓고 주석(蠟石)을 채광했던 흔적이 있었지만 경제성이 없었는지 그냥 둔 모양인데 바람은 한 점도 없으며 땀이 아닌 물만 줄줄 흐른다,
465,2봉을 1시에 통과 하는데 424 재설 76,9 건설부 삼각점을 보고 내려가니 才五介里고개엔 석산(인조석 및 고급모래생산)이 있어 사무실에서 시원한 물을 실컷 얻어 마시고 나왔다.
인조석의 질은 몰라도 모래는 아주 좋다.
홀대모 조진대, 최명섭(011-9967-3355)리번이 간혹 걸려있어 반가웠다.
만나본적은 없지만 같은 생각으로 같은 길을 찾았던 것만으로 많이도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4월에 했다는데 고생 많이 하셨겠다. 지금보다는 좀 나았겠지 만은...........
상재오개 안부엔 늙은 느티나무 3그루와 동자승 인형이 있었고 城隍之神이란 신을 모시는 사당도 있었다.
남산 직전봉은 정말 경사가 심해 코가 땅에 닿을 지경이다. 2시 50분 충주산성 남산에 오르니 정상석과 1등 삼각점이 있었고 산성과 임도 주변엔 산수유나무가 수천그루 심어져 있어 열매를 가득 매달고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마즈막재에 4시 25분 내려서 탄금대로 향했다, 내일 구간의 끝 지점을 오늘 둘러보고 내일은 일찍 마치고 헤어질 계획이다. 탄금대를 한 바퀴 돌고 나오니 5시 50분이다.
오늘저녁도 어제 잔 곳에서 자기로 했다. 아름다운강산,
물이 많이도 빠져버린 충주호
남산에 있는 충주산성엔 제초작업은 잘 되어 있었다.
성 안이기도 한 남산정상(1등 삼각점이 돋보인다)
정상 조금아래 이정표
잘 보존되어 있는 성의 일부(충북 기념물 제 31호) 忠州山城
속칭 남산이라고 하는 금봉산 정상을 둘러싼 석축산성으로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쌓았다하여 마고성이라고도 한다.
거리상의 차이는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충주목 고적조에 보이는 동악성일 가능성도 있다,
6세기 중엽 이후에 축성된것으로 추정되며 둘레가 1120m높이는 5~7m이며 네곳에 성문이 있다.
동문은 특수한 현문식 구조를 하고 있는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보아
사용시기는 신라시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것으로 보이며 충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성에서 바라본 충주시
남산에서 바라본 계명산
마즈막재에있는 무공수훈자 공적비
무공 수훈자는 252명으로
충주시 안림동 산 54-3번지로
고려때 몽고군과 싸워 이긴곳이며
6.25당시 격전지였던 이곳에 세웠다.
여기 조국과 민족을 수호하고
나라가 적의 침략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흥보국의 정신으로
용감히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워
영예로운 무공훈장이수여된 용사들이다.
이에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한 용사들의 전공을
찬양하며 후세에 애국애족정신의 귀감으로 삼고저
이 비를 세웠다. 2001년 7월,
마즈막재
탄금대(彈琴臺)
탄금대 시퍼런물 질펀하게 흐르는데
천고의 물결속에 지난일은 잠겼는가.
한 지아비 조령을 지키게 했던들
어찌 앞을 재촉해서 북녁땅 피난을 하게 했으랴.
강물은 바위를 돌아 흐느끼는데
무덤옆 나무만이 꽃도 없고 빛도 없네
돌에 부딛히는 물소리 으스스하기만하고
날은 궂은데 희미한 무지개
전각앞에 비를 몰아 앞산을 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