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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류씨 - 뿌리 깊은 버드나무
 
 
 
카페 게시글
류-차 문제 차원부설원기의 평가
채하 추천 0 조회 471 15.05.13 18:28 댓글 3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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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5.14 12:48

    첫댓글 거 참...딱하오.대학교수고 박사이면 무엇이든 자기 주장만이 옳고, 남의 생각이야 어떻든 자기만의 아집에 사로잡혀 맑은 눈을 가져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단 말이오.
    당신이 믿고있고, 믿고싶은 저 위 박은정이나 그 영남대 이수건인가 박수건등등.....
    소위 그들이 말하고 있는 설원기에 대한 "편견"된 주장들일지 모를 그것들도, 그들이 당신과 같은 교수이고 무슨 박사이면, 그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들이 옳고 정설인냥
    "치부"하는 작태들이 한심하오.
    만약 .....대학교수이고 무슨 박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 맞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그런거요?

  • 15.05.14 12:56

    당신이 뭐그리 대단한 인물이라고 --문헌을 살펴볼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런 오만함을..... 내가 볼 때에는 당신보다 그 "천산"이란 분이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편견된 아집이 없고 학문적이더만요.

  • 15.05.14 18:19

    그래도 제가 비판을 받게 되는 인연으로 해서 제 짧은 식견의 글을 읽게 되었으니 영광입니다. 저는 1790년대 직전까지만 해도 차원부의 설원과정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던 관료들이 1790년대를 거치면서 확고하게 믿게된 이유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어떠한 것이 사실의 역사인지는 아직 식견이 부족해서 판단하기는 벅차지만 조선의 관료층에서 인식의 전환이 생겼고 그 중심적인 위치에 당대에 최고의 학문연구기관이라고 하는 규장각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 15.06.20 01:47

    혈기와 오만함이 흘러넘치는 님의 글을 뒤늦게 보고 한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천산"님이 쓰신 내용중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차문절공유사(車文節公遺事)는 전편에는 설원록 있고 후편에는 세계도와 기실(紀實) 및 부록(附錄)편이 실렸는데 기실(紀實)편에서 차원부는 공민왕 때 급제하고 간의대부를 지냈다고 기록하였으며 인용한 출처는 동국여지승람이라고 기록하였다" 로 되어있는데 고려시대 문과급제 명단에 "차씨"는 "차약춘" 단 한분 뿐인데 "차원부" 성함은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역사서에는 정사와 야사가 있는데 야사를 믿으시는지요 ?
    밝은 가르침을 기다리겠습니

  • 15.06.20 01:58

    @천산 "흰머리님"께서 존경하시는 "천산"님이 쓰신 내용중에
    "차원부"는 공민왕때 급제한것으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고 출처를 밝혔는데
    공민왕 1351-1374년간 과거급제자 20명의 명단에 "차원부" 성함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여기에 대한 견해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15.06.22 17:28

    @山井류기창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의 차문절공유사에 대한 해제에서 차원부는 고려 공민왕대에 문과에 등제하고 벼슬이 간의대부에 이르렀다고 기록하여서 그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차문절공유사의 편찬과정에 대한 판단기준은 아직까지는 제가 올린 글의 내용과 똑 같이 판단하고 있습니다. 차문절공유사에서 차원부의 행적에 대한 내용은 동국여지승람과 정인지의 문집을 참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규장각에서 차문절공유사가 편찬 하였던 과정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근거에 대한 부분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의 해제만이 아닌 저의 판단도 동일합니다.

  • 15.06.22 17:29

    @천산 또한 훈구파와 사림파의 역사지리 인식에 대한 부분이 달랐다는 것과 그로인해 훈구파의 편찬 자료들이 서적 보존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림세력이 전승한 현존하는 자료만으로 조선 초기 집현전 학자들이 편찬한 자료의 내용을 확정적으로 유추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러한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대외적으로 주장할 입장과 위치는 아닙니다. 제가 감히 누군가의 견해를 평가할 학식은 없습니다. 제가 논리적으로 공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저의 견해로 인해 심정에 문제가 생기셨다면 그 점은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 15.06.22 17:29

    @천산 참고로 저는 역사 분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초등 수준의 한자도 모르기 때문에 옥편 찾아가며 진땀 흘려가며 과거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견해가 논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감사할 일입니다. 견해가 일치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깊인 학식을 존중하며 류문의 번영을 기원드립니다.

  • 15.06.22 17:50

    @山井류기창 "공민왕 1351-1374년간 과거급제자 20명의 명단에 "차원부" 성함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25년간 식년시(3년)와 특별한 때를 고려하면 10회 정도 실시하고 회당 30명 정도를 선발하였으면 300여명이 되겠지요
    그중 260여명 정도의 명단이 현존하고 대략 50명 정도의 명단은 누락된 것이 아닐런지요.
    고의로 누락을 한 것인지 누락된 50명정도 속에 포함된 것인지
    음서로 진출하면서 잘못 알았던 것인지는
    제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서 확언할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러한 부분은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통찰하지 못했습니다.

  • 15.06.28 00:03

    @천산 천산님의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 고려시대에는 문과 281회에 1,530명이 합격을 하고
    그중 공민왕대에 가장 많아서 11회 267명이 합격했습니다. 이 모든 명단을 확인해서 올린글인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차원부" 선생이나 "차씨"가 공민왕대에는 한분도 없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 작성자 15.05.14 15:14

    흰머리아저씨/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차원부설원기는 이미 위서라고 판정이 났습니다. 이미 논파된 것들을 다시 들고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반응하고 싶지 않으나 이런 일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반응이 없으면 인정한다고 오해할까봐 어쩔 수 없이 최소한으로 반응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실이 제시되지 않는 글은 자제해 주기를 바랍니다.

  • 15.05.14 17:56

    아..제 글이군요..좋은 지적 감사하게 받습니다. 저보다 월등한 전문가이고 저는 미약한 수준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저 보다는 사실에 가까운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생각과 판단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 저의 오류일 가능성도 인정합니다. 다만 아직까지 저는 다르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비전문가의 글은 그런 수준밖에 안되는가 봅니다. 수준이 되는 판단을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비전문가의 판단에 좋은 지적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승하십시요.

  • 15.05.14 18:31

    채하.....이것 보셔요...그 판정을 누가 감히 내렸습니까? 그 판정이란게 그 누가 결정하여 내렸는지요? 이수건? 박은정?남극관? 그리고...류주환.
    우섭군요...논문..논평...문집...이것들 만으로 "있었던 사실"에 접근 하였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혹여...단지...라고 추측이라면 모를까.
    사극 "징비록"의 모든 상황들도, 물론 어느 정도의 고증은 있었겠지만 그 고증 자체도 단지 추측일 뿐이고 "있었던 사실"과는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역사서(고서)들도 단지 "기록물"일 뿐이고 "있었던 사실"과는 차이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 15.05.14 18:55

    그렇기에 각각의 "주해서"나 "해설서" 등이 그 작자의 관점에 따라 같은 "기록"을 보고서도 달리 표현,기록 되어 졌다고 봅니다.
    요즘... 안경전 해설의 "환단고기"... 신채호의"조선상고사"를 읽고 있습니다. 생각 나네요...언제인가 채하님도 "환단고기"가 "진서"인 지 아님 "위서"인 지 한번 보고 싶으시단 말씀...

  • 15.05.14 19:29

    그렇습니다...전 이 책들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하지만 마음 한 모퉁이엔 어지러움도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대해 왜 이리 말들이 많을까요?
    무지하고 짧은 저의 생각으론- 다들 자기가 잘났고 좀더 안다고 깝질 되는-것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단지 "기록"일 뿐이고 "있었던 사실"에의 접근에 불과한 추측일 뿐...
    사실인 지 아닌 지를 감히 그 누가 판단 결정 하는 걸까요.
    채하님 말마따나 차원부설원기가, 차씨들이 자신의 한미한 가문을 명문인 "문화류씨"에 견강부회 하기위해 위작 했다고 하셨는데,
    과연 계연수나 이유립이 우리민족의 현달함을 위해 위작을 했을까요?
    이 판단은.................

  • 15.05.14 19:41

    그 어떤 누구도 내릴 수 없다고 봅니다.
    류주환님...
    당신께서 그 많고 많은 옛 문헌들을 섭렵하고 연구 하였다고 한들 그 "기록"들은 "있었던 사실"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 해서는 앙 될 것입니다.

  • 작성자 15.05.15 07:17

    환단고기는 위서입니다. 대부분 종교적인 경전입니다. 마치 기독경의 창세기 첫부분처럼요. 고고학적인 뒷받침이 없는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일 뿐입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차원부의 교지가 위조되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이런 것이라도 인정해야 대화라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인격모독은 범죄가 될 수 있으니 삼가하십시오.

  • 작성자 15.05.15 07:34

    천산님께/ 목판 간행과 연시가 이루어진 것에 주목하신 것은 의의가 있습니다. 제가 지적한 대로 목판은 먼저 진위와 간행 과정에 대해 살펴 보시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연시는 이루어진 것은 확실하지만 해당 집안에서 그것을 내세우지 않는 연유와 연시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차원부의 경우 그것과 합치되는지 등을 먼저 따져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연시에 대해서도 두어 차례 글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올라 있으니 찾아보십시오. 제가 지적한 것들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주저마시고 올려 주십시오. 좋은 대화가 될 듯합니다.

  • 작성자 15.05.15 08:18

    어떤 역사적인 주제에 대해 최신 연구 결과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사실에 대한 논의와 평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토론이 가능합니다. 최신 연구 결과에 그런 것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잘 제시되었기 때문에 인용하는 것이지 맹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지적된 것들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취지의 말을 수 십번은 한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실을 제시하지 않고 감정적인 말씀만 하는 것은 하지 말아주기를 바랍니다.

  • 작성자 15.05.15 07:48

    그리고 설원기가 특정 집안의 가문사의 뼈대라서 좀 곤란하긴 하지만 저는 역사의 관점에서만 바라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해 없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문화류씨 집안이 몇 년 동안 전부 매달려서 류차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2008년에 설원기를 배척하고 원파록을 폐기하는 문중 차원의 결론을 내린 것은 상대 집안에서 시조를 모독하는 극심한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파로 상대 집안의 가문사의 뼈대가 부정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최근 15년 정도의 최신 역사에 대해서도 배경으로 알아야 상황이 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 역시 아주 여러 번 지적 되었습니다. 논의가 제자리에 머물지 말고 진전되었으면 합니다.

  • 15.05.15 07:59

    흰머리 아저시께 : 차씨네의 경전 같은 차원부설원기가 위서라니 참담하시겠죠. 위의 책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400여 년 간 조선의 학자들과 2000년대의 석학들이 위서라고 지적한 연구물을 참고 하십시오. {이 카페 류*차문제방} 192번 2013, 1, 21." 류*차 동원과 황제연원의 참과 거짓" 이 곳에 책 제목을 모아 보았습니다. 거짓은 거짓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 15.05.15 19:12

    정말 한심스럽군요.....좀 배웠으면 우리 같이 부산의 사상공단 볼트(교수님이고 위대한 박사님이시니 볼트가 뭔지는 아실테고}공장에서 일 하는 노동자는
    자기의 의견을 좀..좀 얘기하는데 그게 무슨 이격모독 이란거요... 전에도 어디선가 법이 어떻고,인격모독이 어떻고 하시던만.
    위에 저것도 그래요..."환단고기"의 판정과 단정...당신이 무슨 절대자입까? 깝질입니다.깝질... 그럼...환단고기는 읽어 보셨는지요? 고고학적 발굴은 해 보셨는지요?

  • 15.05.15 19:39

    고고학적 발굴의 뒷받침 없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구월산의 대승공 묘소도 고고학적 발굴의 소산인가요?
    류문의 누군가의 글 중에는 대승공 묘소도 도장도 되고 그 도장이 또 이장도 되고 했다는데, 뭘 믿어야 하는지요?
    범죄..... 좋습니다. 좀 배웠으면 법 좋아 하시는 줄 모르겠지만 범죄가 뭡니까? 법치주의에서는 "사실"과 "증거"가 있어야만 -죄-가 성립 되는 걸로 배웠습니다.
    여태껏 채하께서 올리신 그 수많은 글(실록,문집들, 일성록,보책류,금석류등의 인용해석)들이 단지 "추측"일 뿐이지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한뜻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설원기의 작자가 차식3부자라고 단정 하셨던데 그 증거가 뭔가요?

  • 15.05.15 20:20

    어디 그 증거 좀 보시다. 남극관/홍계희/한현진/박은정/ 이수건...기타등등...이들의 추측...추측이 아닌 진짜 증거요.
    답답합니다.....짜증납니다.....배운게 별로 없어 그대들이 올린 그 수 많은 "글짜"들을 읽으면서 이게 정말 이런건가? 하는 의문도 들면서
    현혹되기도 하지만, 이게 단지 "글짜"일 뿐이지 명백한 "있었던 사실" 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도 기록물 일뿐 100% 사실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시 고려후반기에 저술 되어 진 그 사서들도 몇 천년 전의 사실에의 접근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여겨 집니다.

  • 작성자 15.05.16 10:14

    대승공묘소는 북한에서 오래 방치되었다가 최근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북한에서 가치를 인정한 과정을 밟았습니다. 방치되는 동안 어쩌면 도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증언이 북한을 방문한 분에게서 나왔는데 그 말을 전에 제가 종원들에게 소식을 알리면서 글로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아무런 추가 언급도 없고 북한에서 국가유적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 정도로 끝난 일입니다. 이장? 그런 적은 없습니다. 대승공 묘소는 새로운 발굴의 소산은 아니고, 그냥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내내 알아왔던 것이고요.

  • 작성자 15.05.15 20:30

    내가 범죄라고 말한 것은 인격모욕을 하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귀하에게 인격모욕을 해도 내가 범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조심하자고 하는 말입니다.
    진짜 증거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는 대화할 상대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차원부 교지는 100% 위조임이 증명됩니다. 역사는 사실에 대한 논리에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교지가 아주 좋은 예입니다. 환단고기는 설원기가 위서라서 위서들에 대해 깊이 조사하면서 살펴본 것이며, 결국 일부 종교의 경전에 불과합니다. 더 이상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 15.05.15 20:30

    또한 대승공이나 그 아드님의 여러 설화도 마찬가지 입니다. 과학적 접근으로 볼 때에는 황당한 일일 뿐 입니다. 고려 초(900년대초)의 시조의 사실을 몇 백년 후에 "글짜"로 기록 되어 진 가정보의 여러 기록들이 과연 사실과 100% 일치 할까요?

  • 작성자 15.05.15 20:37

    한 마디만 덧붙이면 실록, 일성록 등등에 입각한 논의를 추측이라고 말한다면 설원기는 소설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무가치한 것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네 주장이 싫다'는 식으로 말하면 아무런 진전도 없고 시간만 낭비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차원부 시호 교지가 위조가 아니라고 엄밀한 역사적 사료들을 끌어다가 변증을 해보십시오. 왜 그런 지적에는 아무런 답변이 없이 다른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을 가지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만 해주시길 다시금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15.05.16 10:11

    또 말하지요. 대승공의 사적이 희미하다는 것은 저도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 성씨들이 대부분 그런 실정입니다. 오히려 대승공은 고려시대에 자손을 잘 두어서 당시의 금석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성씨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설원기는 어떻습니까. 조선시대 중반쯤에나 와서 혼인관계들을 조작해 내고, 수많은 저자들을 조작해내면서 시조의 행적이 어떻고 차원부의 행적이 어떻고 말합니다. 그것만 봐도, 곧 우리나라 성씨들의 일반적인 상황, 성씨 발달의 역사에 비추어 보아도 설원기는 위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15.05.15 21:01

    우리의 무자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기록 당시에 가승이나 족도등이 있어 참고하여 만드셨겠지만,가정보보다 또한 더 몇 백년 후의 기록이다 보니 더 많은 사실과의 괴리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흘러 갑니다.앞으로도 흐를 것 입니다.저 또한 -차가-이듯 그대 또한 -류씨-로 말 입니다.
    "국유형하고 사유혼하니"-류씨는 류씨로서의 그 형체이고, 차가도 차가로서의 그 형체이고, 그대 채하는 채하의 혼으로 남을 것이고, 나 또한 나의 혼으로 남을 것이니,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뿌리로 왔던 단지 그 뿌리가 있었음에 우리가 있음을.....

  • 작성자 15.05.15 21:44

    그냥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 위서가 통하던 시절은 아닙니다. 이미 400년 이상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털었습니다. 그런 일이 앞으로 우리나라 가문들에게서 일어나야 합니다. 꾸미고 거짓인 이야기들을 붙잡고 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금과 은으로 찬란하게 꾸며진다 한들 그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사람들을 여전히 불행하게 만들겠습니까.

  • 15.05.15 22:46

    흰머리아저씨님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하세요 문화류씨 무자보에서 문화류씨와 연안차씨가 아무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입증도 저희가 충분히 했구요 그러면 이에 대한 반론을 논리적 근거를 연안차씨 또는 흰머리아저씨께서 해주요

  • 15.05.15 22:52

    그리고 문화류씨 주장이 틀린다고 생각 되면 귀문의 홈페이지에 가서 귀문의 종원 책임자에게 이에 대한 반박을 하실라고 요구하세요 귀문의 책임자가 못하시면 본인 하시던가

  • 15.05.21 09:25

    고려 개국공신록에 있는 류차달 문화류씨 시조를 부정하고 류차달의 아들을 문화류씨 시조라고 자기들 유래비에 세기는 일을 하여 남의 성씨에 왈가왈부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아무관련이 없다는데 왜 자꾸 관련 있는 것처럼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남의 성씨를 가지고 말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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