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 9일차 상트페테르부르크-표트르 여름궁전, 분수정원-겨울궁전, 에미르타쥐 국립박물관-운하투어[50유로]-상트페테르부르크(9박)
러시아 Russian Federation
수도 모스크바
언어 러시아어
면적 약 1,709만㎢ 한반도의 77.4배
인구 약 14,235만명
통화 러시아 루블 1RUB=19.24원 (2017.08.31. 15:53)
러시아는
1991년 12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약칭 USSR, 즉 소련)이 해체되면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을 구성한
공화국의 하나로 그 주축이 되는 국가이다. 면적은 1709만 8242㎢로 구소련의 약 4분의 3에 해당되고, 인구는 1억 4245만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모스크바(Moskva)이다.
러시아연방공화국 이전의 구소련은 1917년 10월 볼셰비키혁명에 의하여 탄생된 사회주의 국가로서 정식명칭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었다.
공용어는 러시아어이나, 약 150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약 200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 인구의 70%가 넘는 러시아슬라브족이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러시아정교를 신봉하였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조 2358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8,447달러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연방의 북서부 끝에 있으며, 지난 2세기 동안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러시아 역사의 중심무대를 이루었고, 지금도 공업, 문화 도시 및 항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703년 표트르 대제가 네바 강의 하구에 세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서 비롯된 도시로 처음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했다가 1914년 페트로그라드로 개칭되었고,
1924년 레닌이 죽자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로 명명되었다. 그후 1991년 11월 7일 사회주의 개혁의 와중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본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다.
이 도시는 1917년 2월혁명과 10월혁명의 현장으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독일군의 극심한 포위공격을 끝까지 버텨낸 곳으로 유명하며,
건축적인 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화로운 도시의 하나로 명성이 높다. 인구는 약 522만명 (2016)
표트르 대제 여름정원의 아름다운 분수 감상.
여름정원
'표트르의 궁전' 또는 '페트로 드보레츠'라는 이름의 여름 궁전 옆에 자리 잡은 대규모 정원를 말한다.
1704년 표트르 1세가 처음으로 구상하여 1712년부터 1725년까지 네덜란드식 바로크 양식으로 설계된 상징적인 정원이다.
'예술의 진주'라고도 불리는 아래공원은 갖가지 분수와 가로수길, 소궁전 등이 야외 조각 전시장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여름정원 내의 체스폭포
여름정원 내의 나무분수
여름정원 내의 태양분수
여름정원 내의 표트르 대제 동상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재위 1682 ~ 1725).
표트르 대제로 불리기도 한다. 표트르 1세는 서구화 정책과 영토 확장으로 루스 차르국을 러시아 제국으로 정립했다.
여름정원 끝단에서 바라본 필란드만 전경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1709년 스웨덴과 치른 볼타바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자신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감명 깊게 보았던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을 동경해
1714년~1725년에 걸쳐 완성되었지만 현재의 바로크풍 장식은 겨울궁전을 건축한 라스트렐리에 의해 1745년부터 10년간의 공사로 만들어졌다.
궁전의 규모는 길이 300m, 3층 규모이고,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1~2층만 개방되고 있다.
여름궁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은 언덕 위에 있는 대궁전과 그 앞의 계단식 폭포, 그리고 그 주변의 조각상들과 64개의 분수이다.
삼손이라 불리는 대분수에서 시작되는 운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배들이 도착하는 핀란드만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궁전 아래쪽으로 만든 폭포는 64개의 분수가 물을 뿜어대고, 7개의 계단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그 주위에는 260개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나오는 황금색 조각상이 있다.
언덕 위에 있는 대궁전과 그 앞의 계단식 폭포, 그리고 그 주변의 조각상 모습.
당겨서 바라본 모습
이 분수들은 280여 년 전에 기계의 힘으로 물을 올려 만든 분수가 아닌 중력의 힘으로 만든 분수이다.
황금 동상들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인데, 진짜로 황금을 입힌 것이다.
황금을 입히기 위해 수은과 금을 합해 바른 후 불에 태워 수은을 녹여버리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때 작업을 한 사람들은 수은 중독으로 모두 죽었다고 한다.
삼손이 사자의 입을 찢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
황금색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사자의 혀바닥과 윗턱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는 높이가 20m로 분수공원에서 가장 높게 뿜어져 나온다.
대궁전 아래쪽으로 만든 폭포와 분수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나오는 황금색 조각상이 인상적이었던 여름정원
러시아 문화의 보고,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궁정광장 한 편에는 재정 러시아 황제들의 거처였었던 겨울 궁전이 네바 강을 따라 230m 나 쭉 뻗어있다. 담록색의 외관에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로코코 양식의 이 궁전은
1762년 라스트렐리(B.Rastrelli)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총 1,056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 2,000여개가 넘는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건물 지붕 위에는 170개가 넘는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겨울 궁전은 오늘날 총 6개의 건물로 연결되어 있는데, 에르미타쥐 국립 박물관 건물 중의 하나이다.
1764년 예까쩨리나 2세가 서구로부터 226점의 회화를 들여왔던 것을 계기로 현재는 약 300만점의 전시품이 소장되어 있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이 곳은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원시문화관, 러시아 문화관, 동방국가들의 문화예술관과 고대화폐 전시관 등 총 6개의 큰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전시된 작품들을 한점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총 관람시간이 5년이나 된다고 하는 에르미타쥐에서 꼭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은 125개의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 미술관으로 이 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우리와도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래로는 에르미타쥐 박물관 내부 모습
공작시계
돌아온 탕자
크기 264.2x205.1cm
제작시기 1668~1669년
원제 Terugkeer van de Verloren Zoon
작가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년
소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미술관
기법 유화, 캔버스에 유채
성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돌아온 탕자"는 렘브란트가 가장 마지막으로 그린 역사화로 알려져 있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의 처참한 심경과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 노인과 여인 (루벤스, 1612년 작) -♦
푸른 수의를 입은 노인은 젊은 여인의 아버지다.
커다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는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이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 싸운 독립투사 였다.
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 감옥에 쳐 넣고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음식물 투입 금지' 노인은 서서히 굶어 죽어갔다.
노인은 하나님이 준 천부의 권리를 독재정권에 빼앗기고 죽어갔다.
딸은 해산한지 며칠 지나서 무거운 몸으로 아버지 감옥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자기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였다.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음식물 투입 금지로 못 먹어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이 부끄러운가.
여인은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었다.
그리고 불은 젖을 아버지의 입에 물렸다.
"노인과 여인"은
인간의 존엄과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다.
푸에르토리코 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동일한 그림을 놓고 사람들은 '포르노'라고 비하도 하고, '성화'라고 격찬도 한다.(퍼온글)
♦-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루벤스) -♦
발끝의 흘러내리는 핏방울이 바로 떨어질 듯 하다.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
큐피드Cupid (고대 로마의 사랑의 신)
큐피드는 신들의 사자인 날개 달린 메르쿠리우스와 사랑의 여신 베누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큐피드는 보통 활과 화살통을 갖고 다니는 날개 돋힌 어린아이로 나타나며 이 화살에 맞으면 사랑과 열정에 빠지게 된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후 니콜라이 2세를 폐위한후 1922년 레닌은 에르미타쥐를 국립박물관으로 명명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900여일 포위 공격시 에르미타쥐 일부 유물을 기차 2대로 우랄산맥 속으로 대피시켜 보존했다고 한다.
예카테리나 2세(1729. 5. 2 ~ 1796. 11. 17)는
러시아 제국의 황후이자 여제(재위 34년, 1762 ~ 1796)다. 로마노프 왕조의 8번째 군주로, 본래는 프로이센 슈테틴 출신의 독일인이었다.
무능한 남편 표트르 3세를 대신해 섭정을 맡았으며, 화려한 남성 편력(23명의 정부?)으로도 유명했다. 1762년 남편 표트르 3세를 축출하고 황제가 되었다.
1745년 러시아의 황태자이던 표트르 3세와 결혼했으나 지능이 부족하던 남편을 대신하여 섭정을 했다. 그러나 남편 표트르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자 1762년 정변을 일으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표트르 대제(재위 43년, 1682 ~ 1725)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러시아를 유럽의 정치무대와 문화생활에 완전히 편입시켰다.
내각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제국의 행정과 법률제도를 개선했으며 크림 반도와 폴란드의 상당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영토를 넓혔다. 계몽주의 사상에 감명하여 볼테르 등과도
문학으로 교류하였고, 문학과 예술, 학예와 교육 등의 장려에 큰 관심을 쏟았고 각 지방관들로부터 직접 정무를 결재받음으로써 황권을 강화시켰다.
행정 개혁과 내치, 문예 부흥 등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 예카테리나 대제로 불리기도 한다.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외관
에르미타쥐 박물관은 박물관이자 미술관으로 1754~1762에 건축한 로코코양식의 제정 러시아 황제의 겨울궁전이었다.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에서 바라본 궁전광장 전경
궁전 광장에 세워진 알렉산드르 원주 기둥은 1834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탑이다.
높이 47.5m, 무게 600톤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5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