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으로 기억된다.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TV프로그램에서 경북 영덕에 있는 남씨 집성촌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어느 집 고가(古家)의 큰 대문에 커다란 글씨로 신다(神茶)라고 써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계절은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동국세시기]에서 ‘신다’라는 부적이 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지만, 입춘대길도 아닌 신다라는 글자가 대문에 커다란 글씨로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또 반갑기도 했다. 부적이라기보다 입춘대길을 보는 것 같았다.
1849년 간행된 [동국세시기] 정월 "입춘"에 보면, 입춘 날 문이나 문설주, 기둥에 벽사(僻邪)를 위한 부적을 붙인다고 되어 있다. 또 입춘에 단오에 붙일 부적도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정조 때는 부적 대신 [은중경]의 진언을 인쇄해서 나눠주어 문에 붙여 액을 막도록 했고, 단오에는 문에 신다(神茶)와 울루(鬱壘)라는 글씨를 써서 붙인다고 하였다.
이 습속은 중국 고대 3황5제의 한 사람인 황제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창해(蒼海) 가운데 도삭산이란 산이 있었다. 이 산 위에는 큰 복숭아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는 3천리나 되는 긴 굴이 있었다. 이 굴의 동쪽에 있는 문으로 수많은 귀신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그 동쪽 문 입구를 지키는 문신(門神)의 이름이 신다와 울루 형제였다. 두 형제는 문을 지키며 사악한 귀신이 그 굴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갈대 끈으로 묶어 늙은 호랑이에게 먹였다고 한다.
그후로 사람들은 문에다 신다와 울루, 늙은 호랑이를 그려 붙임으로써 부적으로 삼았다. 또 복숭아나무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갈대 끈을 달아 악귀의 침입을 막기도 했다. 복숭아나무를 문에 단 것은, 복숭아나무가 나무 중에 으뜸이라고 생각했으며, 복숭아의 정령이 문을 들고 나는 악귀를 제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산해경]에 실려 있다고 할 뿐, 지금의 [산해경]에는 없다. [백미고사]에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왕충이 [논형]을 지으면서 [산해경]을 인용하였다.
차 자(字)를 부적으로 사용한 예는 또 있다.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 "벌레 없애는 법"에 보면 ‘단오 날 주사(朱砂)로 차 자를 많이 써서 붙이면 뱀과 지네가 없다’고 되어 있고, 홍만종의 [산림경제]에도 ‘단오 날 주사로 차 자를 써서 붙이면 뱀과 전갈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부적은 아니지만 [산림경제] "누에 기르는 법"에는 ‘정월 초닷새 날 잠신(蠶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잠신은 오방(午方)에 있어야 하고, 제사를 지낼 때는 향과 음식을 갖추고 누에 칠 여인으로 하여금 제사를 드리게 한다. 이 때 술 대신 차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규합총서], [산림경제]의 기록대로 주사로 차 글자를 써 붙인다고 뱀과 전갈이 없고, 차로 제사를 지낸다고 누에가 더 잘 클까. 황제 때부터 있었다는 신다와 울루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발생한 풍속이 아닌가 한다. 또 차가 우리 생활과 밀접해지면서 차가 사계절 푸른 상록수라는 것, 차의 맑은 맛, 오래 두어도 곰팡이가 피지 않는 차의 특성도 부합되었을 것이다.
단순한 고유명사에 지나지 않을 신다라는 글자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 신비롭지만, 그것은 차의 긴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신다 부적을 병마를 쫓는데 사용한다고 하니, 차를 마실 때 우리 몸의 질병도 조금씩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