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8:18-20절)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대한다’는 말은 기다림에 지쳐 목이 빠지겠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학수고대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사람의 공통점은 구원의 찬스에 엄청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겁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과 주를 사모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 부름을 받고 있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전 간혹 사랑은 입맛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스르르 기울어지는 성향이기도 하고요. 부르심과 의로움 그리고 영화롭게 되는 구원의 프로세스는 우리 주님의 기도의 전부입니다(요17장) 지금도 그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히7:25) 그 기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바로 주의 영과 생명이 우리 안에 나타나길 학수고대하는 것입니다.
몸의 구속의 소망(롬8:24)이 현실로 나타나길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로 인해 현재 고난과 함께 허무한데 굴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구하고, 좁은 길을 찾고, 닫힌 문을 두드립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죽어서나 가는 곳이라 단정하고 그 문을 닫아 놓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대못을 쳐놓고 있습니다. 화가 있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행위입니다(마23:13) 그래서 성경은 말하지만 진리의 성령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겨우 은혜 운운하고 맙니다. 진리의 성령,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 이 길이 바로 천국 문이 아닙니까? 다만 생명의 말씀을 듣고 믿고 깨닫는 자에겐 열린 문이고 그렇지 못한 자에겐 닫힌 문이겠지요.
오늘날이라고 하는 이 날은 성령의 날이며 주께서 열어놓으신 하늘 문을 들어가서 생명의 양식을 먹고 주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사모하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을 드러내는 날입니다. 대단한 구원의 날이며 크고 놀라운 날입니다. 이 날에 자신 안에 주의 생명의 빛이 나타나길 사모하는 마음과 간절한 기대가 없다면 허무한데 굴복하며 탄식하는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 그 허무한데서 썩는 양식을 얻어먹고 사는 육신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허무한데 굴복하고 있음은 이 썩은 것들의 종노릇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를 학수고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8:21) ‘천국 갈 때까지만 참고 참아라’ 이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이 그 심령 속에 빛으로 생명으로 사랑으로 나타날 때까지 참으세요. 그래서 영광스럽고 자유로운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델이 되세요. 이건 하나님의 설계도입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미리 아시고 부르셨습니다(롬8:29) 이 구원의 사업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천국에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셨다는 것은 더 투자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하지만 진리의 성령에 대해 닫힌 이 세상에서 진리의 성령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환난입니다. 왜요? 그 때부터 세상은 허무하고 썩은 것이기에...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는 점점 가까워오고 있으니 이 소망에 목을 길게 뺄 이유가 충분합니다.
첫댓글 아멘! 제안에 주의 생명의 빛이 나타나길 간절이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