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에 새로 지은 광화문 현판을 조선 고종 때 임태영이 쓴 한자 현판을 디지털 복제하고 쌍구모본 방식으로 만들어 달았다. 그런데 석 달도 안 되어 금이 가서 다시 만든다고 한다. 한글 현판을 떼고 한자로 만들어 건 것도 잘못이지만 나라의 운명과 체면에 중대한 관련이 있는 새 문화재를 만들면서 문화재위원 몇 사람이 결정하고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서둘러 단 것도 매우 잘못된 일이다. 이번에는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잘 만든다고 하니 다행이다.
한글단체는 2005년 한글 현판을 뗀다고 할 때부터 반대했고 한자로 만들어 달 때도 반대했다. 왜 현재 걸린 한자 현판이 잘못된 것이며 한글로 바꿔 달아야 하는지 그 까닭을 밝힌다.
첫째, 이번에 새로 지은 광화문은 '복원'이라는 의미보다 새 문화재로 '창건'한다는 의미가 더 크고 지금 현판은 원형을 복원한 것도 아니다. 예전의 한자 현판이 남았다면 그 현판을 달 수 있지만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고 흔적도 없다. 쌍구모본(雙鉤模本)이란 본떠서 색칠한다는 것인데, 100m 앞에서 찍은 흐릿한 사진을 일본에서 가져다가 확대하고 디지털 복제한 뒤에 본떠서 만든 것 자체가 원형복원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걸린 한자 현판은 사진을 확대해서 하나 더 걸어 놓은 것밖에 안 된다.
둘째, 원형을 강조한다면 1968년에 한글로 써 달았던 현판이 원형이다. 더욱이 임태영이 쓴 현판을 달고 나라가 망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달고 나라가 번성했다. 그 의미와 가치로 볼 때 한글시대에 세종정신과 한글을 창제한 경복궁 역사가 담긴 한글 현판을 그대로 다는 게 더 좋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길 때 달린 한자 현판은 속된 말로 재수가 없는 현판인데 그걸 다는 게 원형 복원이라고 그 조그만 사진을 일본에사 가져다가 본떠서 달려고 한 정신을 이해할 수 없다.
셋째, 한글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로 우리 겨레의 우수함을 나타내는 보물이고 문화재이다. 이 글자가 태어난 곳이 광화문 뒤 경복궁이란 역사도 외국인과 후손들에게 알려주고 자랑하는 뜻에서 현판은 한글로 쓰는 게 가치가 높다. 특히 광화문은 단순히 다른 고궁이나 경복궁의 문들과 다른 위치이다. 서울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의 얼굴이고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문패와 같다. 그 얼굴이고 문패인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쓸 때 관광자원으로서 가치도 크고 국민의 기를 살려주어 나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다.
끝으로 한자로 쓰자는 분의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역사 후퇴요, 한글로 쓰는 게 새 문화 창조로서 자랑거리가 된다. 한자를 고집하는 분들은 한석봉이나 추사 김정희 같은 한문 글씨에서 따다가 현판을 만들자고 한다. 그럼 누구의 글씨체로 할지 합의도 힘들고 그런 식으로 한 글자씩 따서 모은 현판은 혼도 들어가 있지 않고 예술성도 떨어진다. 괜히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고 광화문에 얽힌 역사와 의미를 살리는 뜻에서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 해례본 글씨체로 조합해서 만들어 달거나 그 글씨체로 서예가가 써서 다는 게 훨씬 더 좋다. 외국인과 후손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도, 서울시가 세종로 일대에 추진하는 한글마루지 사업과 정부가 추진하는 서울 상징거리 사업 성공을 위해서 광화문 현판은 꼭 한글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