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사
고려 희종 4년(1208)에 만연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만연선사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무등의 주
봉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다가 만연산 중턱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가고자 앉은 사
이 언뜻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1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를 하고 있는 꿈 이었
다. 잠을 깨서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백색인데 신기 하게도 선사가누운 자리 주변만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길로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6.25 이전까지 대웅전, 시왕전, 나한전, 승당,선당, 동상실, 서상실, 동병실, 서별실, 수정료, 송월료등 3전8방과 대웅전 앞의 큰 설루,설루 아래 사천왕문과 삼청각이 있던 대찰 이었다.
또 부속암자로는 학당암, 침계암,동림암, 연혈암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가 1978년 이후 대웅전, 나한전, 명부전, 한산전, 요사채가 복원되었고 암자로는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경내에는 1783년에 제작된 도 지정 문화재 제185호로 괘불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젊은 시절 부친이 화순현감 으로 부임 하던 때에 만연사 동림암에 거쳐한
적이 있으며 국창 임방울 선생이 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이 곳을 찾아 피나는 연
습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절에서 동쪽으로 2㎞지점에 만연폭포가 있고 고요
한 숲과 계곡의 물이 좋아 소풍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진각국사가 심었다는 고목
절 입구에는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심으셨다고 하는 둘레 3m 높이 29m나 되는 고목이 입구에 서있다
만연사 안내석
만연사 일주문
불사중인 만연사 누각
만연사 쾌불지주
높이 1.55m,너비 56cm,두께 23cm 내외 가량의 석조지주 2쌍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좌우에 위치하고 있다. 향좌의 지주는 46cm의 거리를 두고 있고, 향우의 것은 55c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다. 각 지주에는 약 10cm크기의 간공이 위 아래로 2개가 뚫려있는데 간공 사이는 향좌가 60cm, 향우가 68cm가량이다. 하단부에는 약간의 균열이 나 있으며 건립 시기는 괘불을 조성한 시기와 일치할 것으로 추정한다.
만연사괘불탱 - 보물 1345호
만연사괘불탱(길이821cm×폭624cm)
이 괘불은 1793년에 금어(金魚) 비현(丕賢)과 편수(片手) 쾌윤(快允)·도옥(道玉) 3명이 그렸다. 좌·우에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 줄기를 든 보현보살이 시립한 석가삼존불입상 형식으로, 삼존(三尊)의 크기가 서로 같지만 본존불은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협시보살은 얼굴이 작아 늘씬하다.
용·당초·파도 문양 등의 문양과 영락장식이 화려한 이 괘불탱은, 특히 보살의 하의에 마치 청화백자 문양처럼 흰바탕에 청색안료로 대나무·죽순·소나무·기암괴석 등을 묘사하고 있어 특징적이다.
비록 18세기 말 조성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면을 고수하면서 화려한 문양과 짙은 채색·유려한 필선 등에서 독보적인 경지가 엿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만연사 대웅전
대웅전내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