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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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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이동원목사
(2003) 2월 12일 현대 호텔의 아버지라 불리운 케몬스 윌슨(Kemmons Wilson)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것은 세계적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수성가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태어난지 9달 되었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어린 시절 미국은 경제적 대공황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인생의 기둥이었던 어머니마져 실직하자 친구에게 50불을 빌려 극장안에서 팝콘 장사를 시작합니다.
이 팝콘 사업으로 1,700불을 번 그는 자신과 어머니가 살 집 한채를 구입합니다. 그는 또 다시 그의 집을 잡고 돈을 빌려 다시 식당내 전자음악 연주박스(Juke Box)사업을 시작합니다.
그후 그는 다시 제재소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동업자들에 의해 해고됩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울분에 찬 그가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아내의 권유로 믿음을 갖게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후 아내 자녀들과 함께 워싱톤을 여행하다가 값싼 비위생적인 호텔에 투숙했다가 값도 저렴하고 깨끗한 호텔의 비전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테네시주 멤피스 교외에 작은 호텔을 짓기 시작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 십계명의 순종, 그리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이웃을 대접하는 황금률의 원칙에 따라 호텔을 경영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이것이 세계적인 홀리데이인 호텔 체인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며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그의 직업의 장을 그의 소명을 실현하는 장이 되게 한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다른 어떤 때보다 경제적으로 위축된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 회복의 열망이 아니라, 우리가 왜 사느냐는 이유의 확인 곧 소명의 발견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부였던 시몬 베드로는 밤을 새워 고기를 잡았지만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는"(5절)낙심의 와중에서 주님을 만나고 소명을 받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교훈에 비추어 오늘의 곤고한 시대를 극복해 가기 위하여 우리가 붙잡아야 할 소명이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1. 직업이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소명이란 쉽게 말하면 부르심입니다.
성경에서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가장 빈번하게 쓰여진 장이 있다면 고린도 전서 7장입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독신으로 살것인가 기혼자로 살것인가도 부르심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도 부르심을 따라 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고전7:20에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일반적인 삶의 정황과 신앙체험의 정황을 다같이 부르심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교회내에선 일반적인 소명과 특별한 소명으로 나누어 가르치게 됩니다.
일반적인 소명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을 영어로 vocation이라고 합니다.
본래 이 단어는 라틴어 vocatio에서 나온 말인데 그 단어 자체가 소명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나의 재능과 은사에 걸맞는 어떤 직업의 장에서 그 일을 수행하고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부르심 곧 소명인 것입니다.
성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가르칩니다. 종교개혁의 기여중의 하나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직업의 소명을 회복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직업의 성직성을 가르쳤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의 제자들이 고기잡이하던 직업의 장에서 부르심을 받아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너무 빨리 쉽게 피상적으로 읽은 나머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직업의 장에서 떠나야 할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본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몬 베드로가 그날 따라 이 직업의 장에서 힘겨운 싸움을 싸우면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주께서 그를 도와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사건을 계기로 그를 더 높은 소명의 자리로 부르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주께서 그가 지금까지 섬겨온 직업을 평가절하하시거나 폄하하신 일이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본문의 전반부에서 주께서는 어부인 베드로의 그날의 좌절을 이해하시고 오히려 그가 어떻게 고기를 더 잘 잡을수 있을가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그리고 그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는 성공을 선물하신 것입니다.
그는 고기가 어디에 모여 있는가를 정확하게 아셨고 그곳으로 시몬을 인도해 가신 것입니다.
구원의 주님이 또한 생업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는 좌절에 빠진 그리스도인 직업인들이 주의 도움을 구하며 일어나서 재기에 성공한 간증으로 가득합니다.
여러분의 직업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직업에 장에 어려움이 계시다면 이때야 말로 주의 도우심을 구하셔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주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모든 직업은 주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지금까지 그가 섬겨온 직업보다 더 높은 소명을 주시고 있음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기 우리가 둘째로 붙잡아야 할 가장 고귀한 소명이 있습니다. 전도의 소명입니다.
2. 전도는 가장 높은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본문의 정황에 근거하여 전도를 정의한다면 "전도는 주님없이 살고있는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기잡는 일밖에 몰랐던 그에게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복음서의 표현에 의하면 고기낚는 어부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도 귀하지만 사람은 훨씬 더 고귀한 존재가 아닙니까?
예수께서는 한 생명의 가치를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존재라고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까?
창세기에 의하면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차별화되는 존엄성은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실에 기초합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같이 소중한 인생들을 구원하시어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된 영광을 회복하도록 친히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인생, 이런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 전도라면 전도보다 더 높은 소명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복음주의적 기독교는 이 전도 소명을 가르쳐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곧 가장 높은 소명이라고 가르쳐온 것입니다.
이 가장 높은 소명을 이루기 위해 주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의 직업을 떠나 전적으로 전도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도록 초청하십니다.
많은 목회자들 그리고 선교사님들이 그런 소명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소명받은 분들을 우리는 보통 전임사역자(Full-time worker)라고 부릅니다.
본문의 베드로도 그런 소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고.
우리는 이런 소명을 특별한 소명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이 높은 소명을 따라 살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바울의 동역자였던 브리스가 아굴라 부부가 그런 예에 속할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텐트메이커로 천막 깁는 일을 하면서 바울을 도와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의사 누가도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끝까지 그를 의원 누가로 호칭합니다.
아마도 그는 그의 생애가 다하도록 의사로서 의료 기술을 사용하면서 복음전도에 헌신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도의 장은 직업의 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직장이 복음화되고 직업의 선교의 도구가 될수 있다면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는 훨씬 앞당겨질 것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주께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직업의 장을 떠나지 않으면서 전도 소명을 수행하기를 기대하시는 이유라고 할수 있습니다.
3. 전도 소명은 예수를 좇아감으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이제 사람을 취하라"고 소명받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배와 그물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좇아감이 바로 전도 소명 실현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정상적으로 좇아갈수 있었다면 그는 사람을 낚는 어부 곧 전도자가 되어 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 믿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 산다고 하면서도 아직 그가 전도해 본 일이 없고 그를 통해 예수 믿게 된 사람의 전도 열매가 없다면 그의 믿음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전도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예수의 제자들이 워낙 비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전도 안하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정상이고 전도 열심히 하는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여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전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정상이십니까?
자, 본문과 매우 유사한 정황에서 마태복음 4:19에 보면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우리의 책임은 예수를 따르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의 약속은 우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책임을 다한다면 약속은 실현되지 않겠습니까?
책임이란 말을 영어로는 responsibility라고 합니다.
두 개의 단어 response와 ability가 결합된 말입니다.
우리가 주의 명령에 정상적으로 응답(response)만 한다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능력(ability)은 주께서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주의 명령을 좇아 둘씩둘씩 짝을 지어 나갔을 때 주께서는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전도하도록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을 좇아내는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순종이 문제인 것입니다.
순종을 결심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좇는다는 것은 결국 예수께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좇기로 결심해 보십시오.
순종을 결심해 보십시오.
비로소 저와 여러분을 통해 전도 소명이 실현되는 영광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최근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로 읽히고 있는 현대판 사도행전 "하늘에 속한 사람"을 읽어 보셨는지요?
이 책은 1958년생 중국 전도자 일명 윈 형제 본명 리우전잉의 믿음행전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1974년 자기 부친의 기적적인 암치유를 계기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는 1984년 그가 중국 삼자교회에 가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중국정부의 극심한 박해속에 무려 30회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감옥과 토굴 거리에서 지속적인 전도 운동을 벌려 수천의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고 후배 전도자들을 양성합니다.
그는 위기에 처할때마다 금식하고 기도하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로 함께 하십니다.
그는 최고 74일을 금식하면서도 살아 남습니다.
마침내 1997년 9월 그가 중국 전도의 소명을 다했다고 판단하신 하나님은 그를 중국에서 독일로 탈출시키십니다.
그러나 막상 서구 자유의 세계로 탈출한 윈 형제는 서구 기독교의 모습에 큰 좌절을 느낍니다.
서구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쳐 은과 금은 소유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지 못하는 성도들, 헌신할줄도 전도할줄도 모르는 성도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최대가 아닌 최소의 것을 드리면서도 회개할줄 모르는 성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눈에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봉헌시간이면 두툼한 지갑을 열어 가장 적게 내어놓을 것을 찾는 모습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의 눈에 오늘의 한국교회 성도들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그는 중국 성도들의 봉헌 모습이 그립다고 말합니다.
"내일 주님을 전하기 위해 떠나는 성도가 있습니다"고 광고가 있으면 즉시 한사람 빼놓지 않고 주머니를 털던 성도들--
그중에는 주머니에 있는 전부가 아니라 종종 자신의 전재산을 드리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서구의 교회들이 다시 부흥을 경험하려면 말씀에 대한 전적 순종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충고합니다.
중국에서 윈 형제와 지하교회가 경험했던 기적은 바로 순종의 기적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결코 표적과 기사를 따라 다니지 않았다고--다만 순종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기로 했을 때 표적과 기사가 그들을 따라 다녔다고 증언합니다.
<설교 적용 질문>
1. 각자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고민을 나누어 보십시오.
2.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소 전도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십시오.
3. 오늘의 본문에서 시몬 베드로가 전도자로 부름 받는 과정을 정리해 보십시오.
4. 본문 11절에서 시몬이 전도자가 되기 위해 희생한 것들은 무엇이었으며 그 때의 시몬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나누어 보십시오.
5. 우리 각자가 작정한 VIP 태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으며 우리 각자가 어떤 작은 희생을 결심하고 있는지를 나누어 보십시오. 이동원목사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