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여신도와 놀아나고 스님이 고급 룸싸롱에서 여자끼고 술판을 벌였다는 뉴스가 도배하는 세상에 따스한 뉴스 하나가 올라왔다. 우리 주위에는 사이비 목사와 엉터리 중들도 있지만 진흙속의 보석같이 아름다운 목사님과 스님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올해는 좀더 밝고 아름다운 소식이 동아 블로그를 장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난한 김정하 목사는 구두를 닦아 번돈으로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아이들을 교육시켜왔다고 한다. 그러던중 2010년 초 근육이 무기력해지는 루게릭 병에 걸려 요즘엔 말하는것 조차 힘 들어졌다.
그러나 김목사는 “자신의 생명이 10개라도 다 나눠주고 싶다” 고 하면서 웃는다…
루 게릭 병에 걸려 몸이 무너져 가도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김정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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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뉴스와 자료:
<구두닦이로 불린 김정하 목사, 세상을 光 내다>
“김중철 성도님이 작년 말로 드디어 술을 끊으셨습니다. 직장도 구해서 새해부터 다닐 거예요.”
20 평 남짓한 예배당 안, 접이식 의자에 띄엄띄엄 앉은 교인 10여명이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쳤다. 얼굴이 새빨개진 젊은 남성이 쑥스러운 듯 잠깐 일어나 목례를 했다.
경기도 성남시 단대동의 대로변 상가 건물 3층 샬롬교회. 지난 1일 새해 첫 예배를 드리는 이 교회 안은 가족들이 모인 명절 고향집 같았다. 예배 인도를 맡은 최미애(43) 전도사가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 새해에도 잊지 말고 담임목사님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 성남 샬롬교회 문 앞 ‘사랑의 쌀독’. 연 2400㎏의 쌀이 배고픈 이에게 전달되는 통로다.
주변에서는 이 교회 김정하(53) 목사를 ‘구두닦이 목사’로 불렀다. 생계도 꾸리기 어려운 개척교회 목회를 하면서 김 목사는 2010년 초까지 3년간 구두통을 들고 주변을 돌면서 한 켤레에 2000원을 받고 구두를 닦았다. 부르키나파소·에 콰도르 등 저개발국가 아이들 7명을 후원할 한 달 31만5000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교회 앞에는 뚜껑에 ‘필요할 땐 누구든 와서 얼마든지 퍼 가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사랑의 쌀독’도 놓여 있다. 한 병원의 후원으로 1년에 20㎏짜리 쌀 120포대가 이 쌀독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전해진다.
그러던 2010년 초 김 목사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 근육에 신호를 보내는 기능이 정지되고, 신체 기능이 멈추면서 결국 호흡도 끊겨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김 목사는 강대상 옆 대형 TV에 설교 내용을 띄워 놓고 설교를 했다. ‘아, 어, 으’ 외에는 들리지 않는 설교였다. 밥 먹는 것부터 생리 현상까지 모두 부인 최미희(49)씨가 돕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상태다.
◇부인만 알아듣는 ‘루게릭 방언’
김 목사의 ‘루게릭 방언(方言·성령의 인도로 외국이나 다른 지방의 말을 하는 것)’을 ‘통역’할 수 있는 사람도 부인뿐이다. 지금도 어려운 삶이지만 김 목사의 평생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렸을 때 갈라선 부모는 그를 강원도 삼척 할머니에게 맡겼고, 중학교 졸업 뒤 객지생활이 시작됐다. 공장 공원, 양복점 점원, 커튼가게 기사, 건축현장 막노동….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9년 만에 야간고를, 8년 만에 방통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교회는 1987년 부인과 결혼하면서 나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손잡고 교회 가는 가족들이 그렇게 부러웠어요. 가족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해 보고 싶었지요.”
건강식품 대리점을 하며 얻은 안정도 잠시, IMF가 덮쳤다. 1998년 초 아들·딸까지 가족 넷이 고향 삼척으로 돌아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버려진 산골 흙집에서 살았다. “군부대 짬밥을 받아다 개를 기르면서 그 속의 생선 토막을 건져 씻어 먹던 시절”이었다. 삼척의 한 교회에서 관리집사 일도 했다. 그의 신앙심과 전도 열정을 눈여겨본 주변 사람들이 2003년 그를 경기도 광주의 한 신학대학에 편입시켰다.
- 1일 경기도 성남시 단대동의 샬롬교회에서 부인 최미희씨가 휠체어에 앉은 남편 김정하 목사의 손을 잡고 웃고 있다. 루게릭병에 걸린 김 목사의 몸은 점점 말라가지만, 그를 통해 가난한 나라의 더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게 됐다. /이태훈 기자
◇”도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2006 년 10월, 그는 교회를 개척했다. 작은 교회 전도사로 받던 월급, 사택도 내려놓은 것.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들딸과 네 식구가 상가 옥탑방과 예배당 안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자 주일예배엔 혼자 사는 노인들, 노숙인이 된 실직자, 알코올 중독자, 소년소녀 가장 등 “주님의 손길이 더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작은 변화들이 시작됐다.
남편이 계단에서 실족사한 뒤 매일 소주 3병씩 마셨던 알코올 중독 A집사는 지금은 술을 완전히 끊고 직장도 다닌다. B씨 부부는 임신 중 검사에서 ‘다운증후군’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낙태를 하려 했다. 하지만 “장애를 갖고 태어나면 우리가 키워주겠다”는 김 목사 부부의 말에 낳은 아이는 지금 세 살, 지극히 정상이다. 혼전 임신으로 낙태할 생각도 했던 C집사는 아이 아빠와 결혼, 부부가 중·고등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그 렇게 교인이 40~50명쯤으로 늘어나던 재작년 초, 김 목사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더 이상 구두닦이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단골로 구두 닦던 손님들이 후원금을 보태기 시작했다. 김 목사는 작년에만 2500만원을 추가로 저개발국 아동 후원에 보탰다. “병원비와 약값에 쓰라고 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루게릭병은 치료약도 없고 저는 병원도 안 가니까요. 하나님이 저를 통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신다고 생각하지요.”
◇”남은 생은 덤… 내일 걱정 안해”
루 게릭병 환자는 통상 길어야 5년을 산다. 김 목사에게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물에 빠지고, 전기에 감전되고, 연탄가스에 중독되며 죽을 고비를 7번쯤 넘겼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은 덤이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시는 게 당연하다”고 했
다.
김 목사가 입을 움직였다. 그의 말을 부인이 다시 옮겼다. “죽은 뒤까지 아내와 자식 걱정하면 그게 천국이냐고 하시네요. 지금까지도 그랬는데 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는 거라고.”
<출처: 조선일, 이태훈 기자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03/2012010300173.html?outlink=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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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패션 단체에 대해
<자료 출처: http://www.freecolumn.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773 >
나는 지난 11월 26일 토요일 저녁 서울 서초구 양재동 온누리 교회에서 ‘작은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날 저녁 7시30분부터 두 시간 넘게 ‘2011 후원자와 함께 드리는 컴패션(Compassion) 감사예배’가 열렸는데 그 예배의 이름이 ‘작은 천국(Little Heaven)’이었던 것입니다.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뜻하는 ‘컴패션’은 미국의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1952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의 거리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어린이들의 참상을 보다 못해 본국으로 달려가 교회를 중심으로 후원금을 모집하면서 설립한 어린이 양육기구입니다.
컴패션은 그 후 1993년 한국에서 철수하기까지 41년 동안 10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후원하면서 매년 200만 달러의 후원금을 보냈는데, 외국의 후원기구 중 가장 오래, 가장 많은 한국의 어린이를 도운 기구로 기록돼 있습니다.
한 국 철수 후 10년째 되던 2003년 컴패션의 도움으로 성장한 한국인들이 은혜를 갚을 기회를 달라는 요청에 따라 컴패션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인이 대표인 ‘한국 컴패션’이 세계에서 10번째의 도움을 주는 후원국 기관으로 출범했습니다.
한국은 2009년 OECD산하 개발원조위원회 가입국이 됨으로써 2차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난주(11월29일~12월1일) 부산에서 세계개발원조총회를 주최한 아시아 최초의 나라가 되기도 했지만 컴패션에선 이보다 앞서 후원국이 됐던 것입니다.
올 1월 현재 컴패션은 26개국 120만명의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으며, 그중 한국컴패션의 후원 어린이는 8만3,000여명이고, 후원규모는 작년기준 410억원으로 11개 후원국 중 3위에 올라 늦깎이 후원국이지만 다른 후원국들이 놀랄 정도로 활약이 크다고 합니다.
컴패션의 사업은 후원자가 어린이 1명의 양육을 위해 내는 월 4만5,000원의 후원금으로 이뤄집니다. 후원금의 80% 이상은 어린이 후원에 쓰이고 나머지는 운영비로 쓰는 구조입니다. 후원사업 내용도 양육지원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지도자로 양육할 목적의 대학생 대상 리더십 결연, 태아 및 영아의 생존 지원, 수도시설 설치, 재난지원 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컴패션 밴드, 컴패션 합창단이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전국의 교회를 돌며 펼치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예배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탤런트 차인표 씨와 부인 신애라 씨는 각가가 컴패션 밴드의 리더로, 홍보대사로 열성적인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 하에 열린 ‘작은 천국’ 예배에 수년전부터 우간다의 소년과 태국의 소녀를 후원하는 기회를 갖게 된 나도 초청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배에는 후원자 2,000여명이 참석해, 예배당 1, 2층을 가득 메웠습니다. 예배는 뮤지컬 공연처럼 흥겨운 찬양음악으로 진행됐고, 중간에 지구촌 교회의 이동원 원로목사의 설교와 한국컴패션대표 서정인 목사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두 목사의 설교와 기도 사이에 다른 한 목사의 동영상이 소개됐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샬롬교회의 김정하(52) 목사였습니다. 2008년까지만도 건강한 몸으로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세계 7개국 어린이 7명을 후원하던 김 목사였습니다.
영세 한 개척교회의 목회자로서 그는 후원금을 어떻게 장만할까를 놓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우유배달은 새벽예배에 걸리고, 폐지줍기는 할머니들의 일감을 뺏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어 군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구두닦이가 좋겠다는 응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교회 앞에다 구두닦이 대를 놓고 켤레에 2,000원을 받아 모은 후원금을 일곱 아이들의 생김새나 재능을 살펴 “케냐의 대통령이 되라”, “미스 콜롬비아가 되라”, “볼리비아의 장군이 되라”라는 식의 축복기도에 담아 보냈다는 김목사였습니다.
그런 그가 2010년에 루게릭병을 얻어 말과 거동이 불편한 불구의 몸이 됐습니다. 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차인표 씨는 올 초 김목사의 병세가 더 악화하기 전에 어린이 하나라도 만나게 할 생각으로 케냐에 가기로 했습니다. 거기에는 김목사가 케냐 출신 오바마가 미국대통령이 되었듯이 케냐의 대통령이 되라고 기도해주는 에릭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습니다.
활기찬 구두닦이 목사에서 루게릭 환자로 변해가는 과정과, 눈물로 범벅이 된 목사와 흑인소년이 화면을 통해서 만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비쳐지는 내내 장내는 눈물의 바다였습니다. 그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예배당에 와 있던 김목사를 한국컴패션 대표 서정인 목사가 소개하며 쾌유를 비는 기도를 드리자고 했을 때 감동은 절정을 이뤘습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빈민 구호를 하다가 지난 해 1월 48세에 작고한 가톨릭의 이태석 신부와 그를 소재로 한 영화 ‘울지마 톤즈’가 생각났습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훌륭한 일꾼들을 한창 일할 나이에 데려가거나, 시련을 주는 걸까?
동영상에서 김 목사는 “내가 죽어 많은 사람이 산다면 나는 열 번이라도 더 죽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살아 있을 동안 희망을 잃고 사는 어린이들을 더 많이 살려내고 싶다는 김 목사의 그 간절한 소망을 제발 들어 주소서, 하나님!!!
*’작은 천국’ 예배에 관한 영상 및 SNS관련 소식들은
한국컴패션 홈페이지 www.compassion.or.kr 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컴패션 대표전화 02) 3668-3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