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말>
지난 2월 초 한전 본사 앞에서 차려진 소박한 농성장을 방문했다. 송전탑 설치 반대를 8년째 외치고 있는 밀양의 어르신들이 며칠 전 릴레이 단식 농성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 밀양을 관통할 초고압 송전탑 설치가 기획되었고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싸움이 8년이 된 것이다. 사실 8년은 그 시간 자체만으로도 어떤 건장한 인간도 견디기 어려운 무게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텅 빈 시간이 아니었다. 용역들이 가하는 정신적 모욕과 신체적 폭력을 감당해야 했고, 한전이 보상금을 이용해서 파탄시킨 공동체를, 포탄 맞은 살림살이를 주섬주섬 주어 올리듯, 그렇게 아프게 챙겨온 시간이었다. 나이가 일흔과 여든을 헤아리는 촌부들이 그런 8년을 짊어지고 온 것이다.
8년을 싸운 이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작년 여름 밀양에 갔을 때 나는 그곳의 비장한 싸움이 얼마나 해맑은 웃음을 딛고 선 것인지 깨달았다. 한 어르신은 생전 처음 경찰서에 불려갔는데 지문이 나오질 않아 고생했다며 엄지를 내밀었다. 수십 년 땅을 파며 지문이 모두 닳아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지문들은 고스란히 얼굴로 옮아가 있었다. 어르신이 분노의 말을 쏟아낼 때마다 움푹 파인 주름들이 그 분노에 결을 더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름에 들어 있던 것은 가난했던 삶의 신산(辛酸)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군불을 지피며 흥얼대던 어린 시절의 노랫가락이 있었고 명절 때면 이웃과 놀던 흥겨운 기억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 웃음을 터뜨리면 그 주름들이 물결을 치며 고소한 깨를 쏟아내곤 했다.
지난 8년의 이야기도 어느새 그렇게 녹아들어 있었다. 한 할머니는 내게 용역들에게 당한 모욕과 폭력들을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다가 금세 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통닭을 시켜준 이야기를 하고는 땅을 치고 웃었다. 낮에는 행여 한전에서 공사를 강행할까 노심초사하여 초소를 지키고, 밤에는 이제 갓 고개를 내민 감자 싹의 숨구멍이 막힐까 손전등을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구멍을 내주었다고 했다. 지난 8년을 싸워온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저 고개를 막 내민 감자 싹 같은 것이다. 수십 년을 돌봐온, 하지만 단 한 해도 그 숨구멍을 열어주는 걸 게을리 해본 적 없는, 저 생명과 살림이 위험에 처했다는 본능적 자각. 나는 이들이 그런 생의 본능과 직관으로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한전 본사 앞 천막에서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 싸움에 8년을 넘어, 80년을 넘어, 아니 시간을 넘어 내려온 어떤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이야기는 한전이 한 마을과 옆 마을을, 그리고 한 집과 그 이웃을 어떻게 이간질하고 그 관계를 황폐화 시켰는지에서 시작되었다. 수억에 이르는 보상금 때문에 한 마을이 어떻게 옆 마을과 적대관계가 되었는지, 마을의 젊은 세대가 어르신들과 어떻게 얼굴을 돌리고 살게 되었는지 그런 이야기들이 가슴 아프게 몇 순번을 돌았다. 그러던 중 여든을 넘긴 손희경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송전탑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할 때 젊은 놈들이 왔어요. 우리 ‘젊은 것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느냐고. 그래서 내가 물었지. 그래 이야기를 해봐라. 그랬더니 돈을 받아서 마을을 발전시키면 좋지 않느냐고. 도로도 내고 목욕탕도 만들고 … 모두들 돈에 눈이 멀었어요. 돈 받아서 다 고향 뜰 놈들이야. 내가 그랬지. ‘젊은 것’ 이야기를 했으면 우리 ‘늙은 것들’ 이야기도 들어보라고. 너희는 정말 고향을 지킬 거냐고. 정말 고향을 지킬 생각이 있는 거냐고.”
처음에는 ‘고향을 지킬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할머니의 말이 깊게 이해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에게 고향을 지킬 의지를 확인하는 말이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이어 할머니가 꺼낸 오랜 이야기 하나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우리 어른[시아버지]이 돌아가실 때 내게 그랬어. 고향을 지켜줄 거냐고. 그니까 그 양반이 돌아가실 때 시누이가 와서 그러는 거야. 아버지가 언니 찾아요. 그래서 뭐 때문에 그럴까 하고 갔는데. 나한테 그러는 거야. 모두들 고향을 지킬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모두가 고향 떠날 궁리만 하고. 가만 보니까 니가 고향을 지켜 줘야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고향지키는 기 뭐 어렵습니꺼. 이것저것 심고 거두고 무덤에 풀이나 베어주고 하면 되지. 그러다가 자식들한테 물려주면 되고요. 걱정마세요, 제가 지키겠심니더. 그랬지. 그런데 그 어른이 이런 일 있을 줄 알았을까. 지금 일 당하고 보니, 내가 왜 그때 쉽게 대답해버렸을까, 왜 그렇게 말해버렸을까 후회도 되고.”
한 숨을 길게 내쉬던 할머니는 마저 말을 이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몸을 기다시피해서 화악산 자락을 오르락내리락 하셨던 할머니. 용역들이 나무를 베려 할 때마다 기계톱날 앞에 당신의 몸을 가져다 댔던 할머니는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말했다고 한다. “아버님, 너무 힘듭니더. 그러고나서 한참 울었어. 내가 일흔에만 죽었어도 자식들한테 넘겨주고 나는 내 할 일 하고 저 세상 아버님한테 편히 갔을 텐데. 인제는 별 수가 없다. 나는 철탑이 세워지든 안 세워지든 싸우다가 그 아래 묻혀야 해. 그래야 그 어른한테 할 말이 있지. 나는 하는 데까지 했다고. 어쩌겠냐고. 어떻든 난 어디 안 가. 저기 묻혀야 해.”
할머니 말에서 이번 싸움의 보이지 않는 밑동을 본 것 같았다. 한 사람과 다른 사람, 한 집과 다른 집, 한 마을과 다른 마을을 잇는 줄기들 아래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수백 년, 아니 시간을 잴 수 없는, 결코 나이 들지 않는 말이 굳건히 있었다. ‘고향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말.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확인하며 남기는 말. 그 말이 세대들 간의 정신의 계주를 이어온 것이다. 할머니는 그 말을 시아버지에게 받았고 당신이 죽기 전에 다음 세대의 누군가에게 넘겨야 했다. ‘너희는 고향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마을을 지키는 것과 말을 지키는 것은 똑같다. 선친이 남긴 말이 선친이 남긴 마을이기 때문이다. 송전탑은 마을을 파괴하면서 또한 죽은 자에서 산 자로 이어지는 말을 파괴할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필사적이다. “모두들 와서 나한테 그러는 거야. 국가와 싸워서 어떻게 이기냐고. 하지만 내가 그랬어. 싸워서 이겨보겠다고.” 별 수가 없다. 마을을 지키는 싸움만이 내가 그 말을 간직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저 세상 가서 어른에게 말할 거 아니냐고. 내가 싸우다가 저기 묻혀야 나도 가서 할 말이 있을 거 아니냐고.”
우리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할머니는 단식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한전 본사 앞에 섰다. 그가 든 피켓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한국전력은 당신들이 하는 짓이 무슨 의미인지를 스스로 깨닫기 바란다.”(함께 웃는 날 / 장애인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