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화 등 수 많은 작품을 남겼다.
1589년 초 허 난설헌의 나이 스물일곱에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집안사람들에게 유언시를 남겼다 한다.
今年乃三九之數 금년이 바로 3·9수(스물일곱)에 해당되니
今日霜墮紅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도다
가히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졌던 사람답게 이 세상 떠나갈 날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 난설헌은 많은 작품을 생전에 태워버렸으나, 세상을 떠난 후 동생 허균이 이전에 베껴 놓은 것과 기억에 남은 것을 모아 그녀의 시를 《난설헌집》으로 펴내 지금까지 전한다. 허균은 1608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명나라 작가들에게 이 <난설헌집>을 보여, 난설헌의 시재에 탄복한 명나라 관리들의 주선으로 비용을 지원받아 중국땅에서 출간하여 그 간행본이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한편 1711년에는 일본에도 소개되어 분다이(文台屋次郎)가 그의 시를 간행, 한때 일본조야에서 애송되기도 하였다.
그뒤 허균이 광해군 말년 옥사당하면서 잊혀졌다가, 1940년 무렵 소설가 월탄 박종화선생이 허 난설헌의 시와 작품성을 평가 소개하면서부터 다시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허 난설헌은 특히, 가난한 집 쳐녀는 열심히 옷감을 만들어도 그 옷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조선사회의 빈부격차와 불공평을, 임금노동자는 그가 생산하는 소유물을 갖지 못한다는 마르크스의 《소외론》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미 삼백 년 전에, 시인의 직관으로 간파한 “노동의 소외”를 알린 선각자였다.
밤새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는데
뉘 집 아씨 시집갈 때 옷감되려나
손으로 싹둑싹둑 가위질하면
추운 밤 열 손가락 곱아오는데
남 위해 시집 갈 옷 짜고 있건만
자기는 해마다 홀로 산다네.
허 난설헌은 또 시를 통하여 저들만 잘 먹고 잘 사는 조선의 사대부들을 조롱했고,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불평등을 고발하는 강한 분노와 개혁지향의 의지를 나타냈다.
양반댁의 세도가 불길처럼 성하던 날
높은 누각에선 노래소리 울렸지만
가난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려
주린 배를 안고 오두막에 쓰려졌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규중의 부인이 갖고있는, 남자들보다 더 뛰어난 문재(文材)와 높은 예지(睿智), 그리고 사회비판의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을 기다리며 쓴 애절한 그 이의 기다림의 시들은 이들 사대부들에 의해 음탕한 시문으로 평가절하됐고, 심지어는 비교적 개화에 앞장 서 있던 실학의 거두 연암 박지원조차 그의 <열하일기>에, “규중부인으로서 시를 읊는 것은 애초부터 아름다운 일은 아니지만, 조선의 한 여자로서 그 꽃다운 이름이 중국까지 전파되었으니, 가히 영예스럽다고 이르지 않을 수가 없다.“ 라고 기술해놓았으니, 사대의 나라 조선의 사대부들이기에, 중국에서 이름을 떨치고 조선으로 역수입된 허 난설헌의 명성을 못마땅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양성평등과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여성의 역할을 외치는 여성운동가들이 신 사임당 대신 허 난설헌을 “우리시대에 필요한 여성 모델” 이라고 내 세우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현모양처의 상징이라면 역시 신 사임당이 한 수 위일 듯 싶다.
첫댓글 저도 허난설헌의 그 빼어난 재주는 칭찬하지만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한으로 여긴 여인이고 본받을 만한 삶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폐에 새기지 않는 게 좋다고 봅니다.^^
본받을 삶은 아닌데, 공감합니다. 동시에 일생동안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며 산 그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허난설헌 정도면 혜택을 받은 신분이었는데 말입니다.
“우리시대에 필요한 여성 모델” 이라고 ... 여성 운동가들에겐 모델이라고 할지 모르나 현 시대의 여성들을 남성들이 바라 볼때의 눈은 다르다고 본다.
남자가 해야 할 일 여자가 해야 할 일을 서로가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이라 하면 남여 구분이 있겠습니까. 단지 서로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김성립은 아내를 지켜야 하는 도리를 못 지켰고 아내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 한 것이지요 오늘 날에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 난다면 우리의 현 시대를 역사에 남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남여의 신분차가 없이 서로가 서로를 협력하여 이 시대를 창조해 나갈때
후손들은 롤 모델을
거기에서 찾아 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단지 여성 운동가들의 생각 그들의 모델이겠지 화폐의 모델은 아니라고 봅니다.
남자들의 시선이 사대주의 적이라면 최고의 화폐에 여자가 들어 간다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여겼겠습니까 율곡을 키운 어머니이기에
남자들도 존경하는 어머니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화폐의 모델은 역시 신사임당에 견줄 수 없겠지요. 그러나 그의 문학이 빼어나다 하니, 그 쪽에선 그 하나만 국한해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자끄 루소가 유아교육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 '친자식들은 죄다 길거리에 내버린 자가 무슨 자격으로' 라며 공격을 한다면,
그의 이론이 제 아무리 빛나는 것이라 해도 평가절하됩니다.
우리나라의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무척 돋보이는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성평등과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여성의 역할을 제주도의 김만덕에게 넘기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